#256화
경호가 패배감으로 물든 탱커 조원들을 이끌고 간 곳은 길드 하우스에 있는 구내식당이었다.
다행히 아침 식사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갓진 모습이었다.
“자아. 배부르게 먹고 힘내서 더 열심히 하면 되니까 다들 얼굴 펴라!”
조장인 호돈이 자괴와 허탈, 실망이 혼재하는 얼굴의 조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물론 그 정도로 표정이 다 풀리지 않았지만 길드장이 마련한 자리고 스스로 진 것이 잘난 것도 아니기에 애써 표정을 풀고 자리에 앉았다.
물론 경호는 저들이 자괴와 허탈, 그리고 실망하든 말든 관심이 없었다.
“이나야. 나는 안 다치면 다행이다 싶었는데 이겼네. 진짜 대단하다. 안 힘들었어?”
경호는 혼자서 10년을 정령계에서 보내며 견뎌 냈기에 이나의 사정을 누구보다 더 이해하며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더 신경 써 주고 있었다.
“재미있어서 힘든지 몰랐어요.”
재미있어서 힘든지 몰랐어요.
재미있단다.
힘든지 몰랐단다.
푹! 푸욱! 푹! 푹!
그것들이 화살로 변해 벼락처럼 날아가 아직 이마에 시퍼런 도장 자국이 어렴풋이 남은 탱커들의 가슴에 깊숙이 박혀 들었다.
“대단한데. 뭐 먹을래? 좋아하는 거 있어?”
“좋아하는 거요? 사실 제대로 된 식사를 해 본 적이 많지 않아서요.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가슴 깊숙이 화살을 한 발씩 맞은 이들은 또 무슨 대화를 하나 귀를 쫑긋하고 있던 상태였다.
그런데 제대로 된 식사를 해 본 적이 많지 않아서 뭘 좋아하는지 모른다니?
대격변이니 뭐니 해도 가난하다고 못 먹고 못 사는 그런 시절은 아니었다.
아니 아까 훈련장에서도 분명 달려 보는 것도 거의 처음이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던 이들이었다.
‘아니 쟤 도대체 정체가 뭐야?’
그렇다고 딱히 엄청나게 불우해 보이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풍기는 분위기로 사람을 정확히 평가할 순 없지만 그래도 분명 그래 보이진 않았다.
“아. 그랬구나. 그럼. 내가 오늘 엄청 맛있는 거 해 줄게. 조금만 기다려.”
경호는 널찍한 주방으로 들어와 냉장고부터 살폈다.
마수 고기 유통의 메카라고 불리는 신화 길드의 구내 식당답게 마수 고기가 종류별, 부위별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때 성원이 들어와 뭔가를 건넸다.
크지 않은 유리병에 녹색 가루가 담겨 있었다.
“뭐야? 이거 묘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이번에 안정성 테스트 끝낸 그린 캔디 수정판이에요. 저번에 이야기했던 거요. 형님. 기억나죠?”
신수의 혈액과 마혼의 기운을 섞어 마력을 증폭시키고 마기에 굴종하게 만드는 그린 캔디는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약물이었지만 마냥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레드 캔디 때부터 신화 마도공학 연구소에서 연구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것이 그린 캔디 표본을 구하고 이번에 장비까지 확보하면서 이렇게 수정판을 완성하게 된 것이었다.
“오. 이게 벌써 나왔어?”
“부작용도 없어요. 아직 좀 더 개량하긴 해야 할 거 같긴 하지만요.”
마력 증폭이 아닌 마력 강화를 목적으로 만든 약이었다.
한마디로 장복하면 좋은 보약 같은 것이었다.
마혼의 기운을 빼고 세계수 잎 추출물을 넣어서 안정성을 높였다.
이제 대량 생산을 위한 설비를 만드는 중이었다.
“그래? 근데 어떻게 퍼뜨릴 생각인데. ‘시원사이다’처럼 기호품도 아니고 그냥 몸에 좋으니 무조건 먹으라고 홍보하긴 어렵잖아.”
세상엔 약물에 대한 절대적인 불신을 가진 이들이 생각보다 많았기에 전파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거 가루약이 아니에요. 조미료지.”
“조미료?”
“고향의 맛을 내는 조미료로 둔갑시켜서 팔려고요. 괜히 영약이다 어쩌고 하면서 팔려면 시제품까지 아무리 대통령이 밀어줘도 몇 년 걸리거든요. 대격변이라고 해도 식료품과 의약품은 허가 절차가 하늘과 땅 차이니까요.”
의약품은 동물실험, 1상, 2상, 3상 임상까지 마쳐야 했다.
그것도 각성자와 관련된 약은 더 까다로워 나라별 식약청에 허가를 따로 받아야 했다.
모르긴 몰라도 그러면 이기든 지든 마계 침략이 끝나고 난 뒤가 분명할 터였다.
그리고 이 가루는 ‘시원사이다’처럼 많은 수가 자주 먹어야 했다.
그러려면 전 세계 사람들이 쉽게 접해야 했다.
‘약’이 아닌 ‘설탕’이나 ‘소금’처럼.
“마수고기가 조리를 잘못하면 약간 누린내가 나기 마련이라 그에 맞춰 끼워 팔기를 하려고요. 한 통에 천 원 정도면 너도나도 사려고 할 거니까요.”
소금도 한 통에 만 원이 넘는 시대에 조미료 한 통에 천 원이면 그냥 거저 주는 수준이었다.
“이거 일반인이 먹어도 상관없는 거지?”
“각성자에게는 마력을, 일반인에게는 정력을 키워 주는 효과가 있거든요.”
“흐음. 그래? 맛이나 좀 볼까?”
정력에 좋다는 이야기에 경호가 곧장 통에 든 녹색 가루를 손으로 조금 꺼내 입안에 털어 넣었다.
물론 맛을 본다는 핑계를 대면서.
입안 가득 짭조름하면서 침이 확 솟아나는 진한 감칠맛이 감돌았다.
‘오! 이거….’
남녀노소 동서양을 가리지 않을 ‘고향의 맛’, 어머니의 손맛 같은 MSG의 깊은 맛이 느껴졌다.
거기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벌써 몸이 반응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대박인데! 이거 이름은 정했어?”
“아직 확정은 아닌데 ‘연두’로 하려고요.”
“연두? 조미료 이름치고 너무 유치한 거 아니야? 맛미(味)를 써서 ‘미왕’ 같은 게 좋지 않을까?”
경호의 네이밍 센스는 언제나 제자리걸음 중이었다.
“형님. 가루 색도 그렇고 뭔가 친환경스럽잖아요. 뭐, 사실 100% 화학 조미료긴 하지만요.”
“그런가? 연두, 연두, 연두. 음. 생각보다 어색하지 않고 입에 잘 붙는데? 미왕보다 나은 것 같네.”
“그죠? 원래 이 프로젝트 명칭이 ‘그린빈’이었거든요. 그래서 콩이랑 연관성 있게 ‘연두’라고 지었죠.”
“나쁘지 않네. 그럼. 연두 넣어서 요리할 테니 나가서 기다리고 있어. 금방 해서 나갈 테니까.”
“알겠습니다. 형님!”
성원이 나가고 경호는 고기부터 꺼냈다.
삼족우 갈빗살, 뿔돼지 등심, 칼날타조 다리살.
부위도 좋았고 선도도 좋았다.
이런 재료는 그 자체가 품고 있는 맛을 끌어내기만 해도 훌륭한 요리가 되기에 손을 많이 데지 않아도 됐다.
경호는 삼족우 갈빗살을 뼈에서 분리해서 다지고 뿔돼지 등심은 잘라서 손으로 팡팡 쳐서 펼쳤다.
칼날타조 다리 살 역시 뼈를 발라내고 한입 크기로 썰었다.
“역시 나는 요리가 맞아.”
용아검을 들고 악마와 싸울 때보다 식칼을 들고 고기를 다질 때 더 즐거운 경호였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경호는 성원이 준 조미료, 연두를 다진 갈빗살과 펴놓은 등심, 잘라 논 다리 살에 뿌렸다.
탁탁탁탁.
칼로 다진 갈빗살은 손으로 탁탁 쳐대며 둥글게 뭉쳤다.
떡갈비였다.
원래는 간장 베이스 양념이 들어가야 하지만 연두만 넣어도 될 거 같아서 마늘 다진 것만 조금 넣고 그대로 뭉쳐서 떡갈비 모양을 잡았다.
그리고 연두가 충분히 녹아든 등심은 계란 물에 담가 빵가루를 듬뿍 묻혔다.
돈가스까지 완성이었다.
다음으로 연두로 염지가 된 다리살을 전분과 튀김 가루에 잘 묻혔다.
마지막은 닭강정이었다.
고추장과 케찹, 마늘, 맛술과 설탕을 넣고 우선 닭강정 소스를 만들었다.
“역시 양념 치킨 소스는 반칙이라니까.”
달콤 짭짤 매콤한 양념 치킨은 결코 맛이 없을 수 없었다.
거기다 바삭한 칼날타조 다리살 튀김이 들어가면 그냥 끝이었다.
다리살을 튀긴 경호가 기름에 뿔돼지 돈가스를 넣었다.
파르르르르르.
맛있는 소리를 내며 돈가스가 튀겨지기 시작했다.
숯불로 떡갈비를 익혀 내고 싶었지만 구내 식당에서 숯불을 피우는 건 무리였기에 오븐에 넣고 시간을 맞췄다.
띵!
돈가스도 다 튀겨졌고 닭강정도 소스에 한번 살짝 볶아졌을 때쯤 오븐에서 떡갈비 완성을 알리는 소리가 울렸다.
***
‘도대체 정체가 뭐야?’
‘아무리 수퍼 루키라고 해도 이건 너무하잖아!’
‘각성 1일 차는 원래 마력도 제대로 못 느껴야 정상 아니냐고?’
‘거기다 달리기도, 식사도 별로 못 해 봤다는 건 도대체 무슨 뜻인데?’
호돈이 나서지 않기에 모두 입을 다물고 있긴 했지만, 식당 안은 혼돈의 도가니가 되어 궁금증만 점점 커지고 있었다.
경호에게 연두를 건네주고 나온 성원이 그런 분위기를 느끼고는 이나의 옆자리에 앉아 조용히 물었다.
“여기 사람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해도 될까?”
귓속말로 건넨 말이었지만 여기 있는 이들 중 못 들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차피 알려질 것들인데요.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요.”
이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성원이 그녀의 사정을 짤막하게 설명했다.
‘선천성 근이영양증’을 앓았고 최근에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 했던 치료가 사실 악마에게 속아 계약자가 되었다고.
그러다 연이 닿아 수호신의 도움으로 악마의 계약을 끊어내고 각성까지 했다고 말이다.
“그리고 이나 씨는 김이박 대통령의 영애입니다.”
김이박 대통령의 영애.
대통령의 딸이란다.
조선 시대처럼 대통령이 왕 노릇을 하는 세상은 아니지만, 대통령의 딸이 주는 무게감은 이들에게도 꽤 묵직했기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중 몇몇이 김이박 대통령의 가정사를 기억해 냈다.
“어, 그럼. 죽었다고 했던 그….”
차마 말을 더 잇지 못하자.
“맞아요. 악마계약자가 되어 버린 저와 엄마를 아버지께서 따로 보호하며 죽었다고 이야기한 겁니다.”
조금 전까지 자괴와 허탈, 실망으로 속상해하던 이들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눈앞에 이나가 겪었던 일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악마에 대한 원망이 클수록 강하게 각성한다는 거 잘 아시죠? 그래서 이렇게 강할 수 있었던 겁니다.”
원망만 크다고 강한 건 아니지만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기에 성원은 그리 말했고 다들 이제야 이나의 강함을 이해한 표정이 되었다.
그때 맛있는 냄새가 확 풍겼다.
“자아. 식사하세요!”
뻘쭘할 수 있는 타이밍에 딱 맞춰 경호가 양손 가득 음식을 들고나왔다.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떡갈비와 보기만 해도 바삭해 보이는 돈가스, 군침이 도는 닭강정이 보였다.
“우와아아아!”
가장 큰 리액션을 보인 이는 바로 이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소화기관이 약해지기 시작한 청소년기부터는 식사도 유동식으로 대체하며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악마계약자일 때 음식을 먹긴 했지만, 몸 안에 갇혀 있는 상태였기에 음식에 대한 갈증만 더 커졌던 이나였다.
거기다 이나도 아빠에게 들은 것 말고도 경호에 대해 찾아보며 그의 요리 실력도 알았기에 더 기대하고 있던 참이었다.
식탁 위로 떡갈비와 돈가스, 닭강정에 갖가지 밑반찬이 올라왔다.
밥과 미역국까지 세팅한 경호가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맛있게 드세요.”
“오! 형님. 잘 먹을게요.”
“형님. 수고하셨어요. 어서들 먹자!”
성원과 호돈이 말을 꺼내고 수저를 들었다.
이나도 침을 꿀꺽 삼키며 차려진 요리를 쳐다보다 경호를 보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경호 오빠! 자, 잘 먹을게요!”
이나는 말까지 더듬으며 서둘러 젓가락을 뻗었다.
이나가 돈가스를 집어 소스에 찍어 입에 넣었다.
바사삭.
ASMR 방송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이나의 입안에서 터져 나왔다.
바삭함이 지나가자 바로 육즙이 촤압하고 터져 나왔다.
바삭했지만 딱딱하지 않고 속은 촉촉하고 육즙이 넘쳤다.
그리고 소스가 아닌 고기 자체에도 짭조름하면서 깊은 풍미가 느껴졌다.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환상적인 맛이었다.
흑. 흑흑.
이나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렸다.
모두가 그런 모습을 보고 가슴이 무거워졌다.
그녀의 울음이 너무나 공감됐기 때문이었다.
답답하게 갇혔던 병과 악마의 저주를 벗어던지고 처음 느껴 보는 해방감과 음식 맛에 눈물이 나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생각하는 이들이었다.
“괜찮아. 앞으로 내가 더 맛있는 거 많이 해 줄게. 그러니까 먹고 힘내서 지금까지 못 했던 거 하면서 남들보다 몇 배로 더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 알았지?”
“고마워요. 오빠.”
경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억지로 미소를 짓는 이나가 귀여워 피식 웃었다.
“야. 울다가 웃으면 큰일 난다고. 그러니까 그만 울어. 그리고 식으면 맛없으니까 빨리 먹고.”
훌쩍! 훌쩍!
“알았어요. 오빠. 헤헷.”
훌쩍이며 소매로 눈물 콧물을 쓱쓱 닦아 낸 이나가 환하게 웃으며 다시 돈가스를 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