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화
해가 저문 행운식당 골목.
이곳은 주거 지역에서 꽤 떨어지기도 했고 균열이 자주 출몰할 수 있는 위험 지역이기에 해가 지면 유동 인구가 거의 없었다.
그런 골목에 평소와 달리 인원들이 버글버글했다.
하나같이 새까만 양복에 무전 이어마이크를 꽂고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검은 고급 승용차 한 대와 커다란 승합차가 그런 이들을 헤치고 골목 안으로 들어왔다.
식당을 지나 한참을 들어가 동물원 앞에 섰다.
늦은 시각이었기에 당연히 이용 시간은 지나 있었지만, 평소와 다르게 환하게 불이 켜진 채 문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안으로 차량이 들어갔다.
그리고 새까만 양복의 인원이 동물원 입구를 에워쌌다.
***
경호와 성원이 서 있는 세계수 앞으로 검은 고급 승용차가 천천히 다가와 멈춰 섰다.
김이박 대통령이 차에서 내렸다.
환하게 웃고 있지만 긴장돼 보이는 묘한 표정이었다.
박재호 비서실장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대통령이 다가와 경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야기 들었습니다. 악마로 변한 동진과 싸우다가 많이 다치셨다고 들었습니다. 괜찮으신가요?”
“별거 아닙니다. 지금은 다 나았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부족하지만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전면에 나섰던 이들보다 더 어려운 일을 뒤에서 묵묵히 해낸 경호에게 김이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감사를 전했다.
“아니. 당연히 할 일을 한 건데요. 대통령님께서 애 많이 써 주셔서 오히려 감사드립니다. 빠르게 수배를 내려 주셔서 다행히 인명 피해가 없었습니다.”
악마가 도심을 활개 치고 다녔음에도 연구소에서 심장이 뽑혀 죽은 악마계약자를 제외하고는 희생자가 없었다.
“여러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나라를 지키는지 알면서도 그 정도도 못 하면 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필요가 없지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대통령은 머뭇거리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승합차에 제 아내와 딸이 타고 있습니다. 정말 여기서 악마의 기운을 제거할 수 있는 겁니까?”
처음 경호를 보자마자 하고 싶었지만 애써, 애써 참고 참았던 말이었다.
애타는 마음이 절절하게 담긴 대통령의 눈빛을 읽은 경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두 분의 상태를 봐야겠군요.”
경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승합차에서 수갑으로 구속된 여성 둘이 내렸다.
영부인인 최영숙 여사와 딸인 김이나 영애였다.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니 수갑에는 천을 덧대 다치는 것을 예방하였는데 그도 그럴 것이 계속 몸부림을 쳐대는 통에 그렇지 않으면 크게 다칠 듯 보였다.
거기다 으르렁거리며 옆에서 부축해서 오는 요원들에게도 이를 드러내는 것이 자칫하면 물릴 위험도 있어 보였다.
그 둘이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김이박 대통령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경호가 그렇게 다가오는 둘을 유심히 바라보자 슬쩍 고개를 돌리며 눈물을 훔친 대통령이 물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크흠. 치료가 가능하겠습니까?”
“우선 자세히 보겠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목에 염소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색욕의 마왕 아스모데우스의 문양이었다.
문양에서 흘러나오는 마기를 보니 생각보다 강하게 묶여 있는 상태였다.
이것을, 그것도 둘이나 풀려면 신력이 꽤나 필요할 듯 보였다.
경호가 아무런 말도 없이 계속 살피기만 하자 분위기는 점점 가라앉았다.
“생각보다 훨씬 강력한 계약이 맺혀 있네요.”
경호의 말에 대통령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그래도 다행히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이어지는 경호의 말에 대통령의 얼굴에서 사라졌던 핏기가 다시 돌았다.
대통령이 살짝 비틀거리다 물었다.
“가능한 건가?”
“원래 다구리엔 장사가 없거든요.”
“네엣?”
김이박 대통령이 놀라 되물었다.
농담할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기에 더욱 놀란 표정이었다.
옆에 있던 성원도 말은 안 하고 있었지만 ‘형님! 도대체 뭔 소립니까?’ 하는 표정이었다.
경호가 피식 웃으며 세계수를 가리켰다.
그러자 세계수 뒤편 수풀이 들썩이더니 흰둥이와 울피가 걸어 나왔다.
그러고는 핑크색 너구리와 표범 무늬의 고양이, 강아지 크기의 코끼리, 사슴보다 작은 기린 같은 뭔가 이상한 느낌을 주는 동물들이 뒤를 이어 줄줄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에 그린 캔디 연구소에서 구한 신수들이었다.
“저, 저 동물들은…?”
대통령과 비서실장은 울피 정도만 보았기에 꽤 놀란 얼굴이었다.
“오늘 계약 해제를 도와줄 신수들입니다.”
굳이 시간 끌 필요가 없었기에 경호는 바로 신수들을 보며 부탁했다.
“아까도 설명했지만 잘 부탁할게.”
물론 경호가 ‘다구리’라고 했다고 정말 확 달려들어 아무렇게나 신력을 쏟아붓는 것은 아니었다.
신수도 신력을 가졌지만 종류마다 그 기운의 성질이 달랐기에 함부로 섞이면 위험했다.
경호가 ‘용의 심장’의 힘을 실어 세계수에게 말을 건넸다.
-여기 악마계약자가 된 두 명을 구할 수 있게 좀 도와줘. 뭐 해 줘야 하는지 알지?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했지만 역시나 찰떡같이 통했다.
꾸드드득. 꾸드드드드득.
잔뿌리 수십 개가 땅을 뚫고 솟아 나왔다.
경호와 성원은 ‘오! 뭘까?’ 하는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으허허헉! 으허헉!”
대통령과 비서실장, 그리고 몇몇의 요원들은 ‘나무 귀신이닷!’하는 표정이었다.
“계약 해제를 위해 여기 나무도 도와줘야 하거든요.”
너무 놀라서 기절이라도 할까 싶어 경호가 슬쩍 설명했다.
“나무도 도와야 한다고요? 아니 저게 도대체 뭐길래….”
“그냥 나무가 아니라 ‘세계수’거든요.”
“세, 세계수!”
웹소설 강국인 대한민국 국민치고 소싯적에 판타지 소설 한 편 읽어 보지 않았던 이는 없었다.
그렇기에 대통령 또한 ‘세계수’가 어떤 존재를 의미하는지 떠올릴 수 있었다.
그때 수십 줄기의 뿌리가 서서히 움직여 각양각색의 신수의 몸을 칭칭 감았다.
신수들이 신력을 세계수의 뿌리로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달이 그리 밝지 않은 어둑어둑한 밤.
총천연색의 다양한 빛깔의 신력이 빛을 발하며 뿌리를 통해 세계수로 모여드는 광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렇게 쏟아져 들어간 신력이 세계수의 뿌리를 통해 커다란 몸통에 모였다.
그리고 그 색들이 한데 섞였다.
다양한 성질을 가진 신력이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하나로 뭉쳐야 하는 가장 중요한 작업이었다.
자칫하면 힘의 균형이 붕괴해 폭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신(四神)을 품은 세계수에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우우우우우우웅!
총천연색으로 빛나던 기운에서 서로 뽐내던 색들이 흐려지더니 결국 순백의 새하얀 기운이 남았다.
그것이 반으로 쪼개지더니 몸통에서 다시 뿌리로 내려갔다.
그러고는 가느다란 뿌리 두 개가 요원들이 붙들고 있는 최영숙 여사와 김이나 영애에게 뻗어 나갔다.
지이이이이이이잉.
뿌리 끝에 새하얀 기운, 흰둥이와 울피를 비롯한 수십 마리 신수의 신력이 농축된 기운이 맺혔다.
그리고 마치 붓질하듯 목에 새겨진 염소 문양을 쓱쓱 문질렀다.
“끄아아아아아아악!”
그때마다 영부인과 영애는 마치 고문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김이박 대통령은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피가 솟구쳐 나올 정도로 주먹을 꽉 움켜 진 채 이를 악물고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나야! 이나야!”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딸아이의 이름을 힘겹게 부르며 응원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뿌리가 문지를 때마다 문신처럼 새겨진 문양이 조금씩 옅어졌다.
그리고 둘에게서 흘러나오는 비명도 옅어지며 악귀 같던 표정도 점점 가라앉았다.
“후우. 됐다.”
경호가 둘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안도할 때.
휘우우우우우우우웅.
갑자기 김이나 영애를 중심으로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다.
강력한 마력 파동을 동반한 바람이었다.
김이나 영애의 목에서 문양이 완전히 사라진 소용돌이 치는 바람과 함께 그녀의 몸이 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설마!”
경호가 놀라 중얼거렸고.
-어! 이건?
흰둥이도 놀란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이나야! 이나야!”
대통령은 거의 실신 지경이었다.
그때 그녀의 감겨 있던 눈이 뜨였다.
번쩍!
눈에서 섬전 같은 푸른 빛이 번쩍였다.
“아, 아빠!”
***
김이나는 ‘근이영양증’이라는 불치병을 가지고 태어났다.
병은 육체만 갉아먹지 않는다.
특히나 불치병, 그것이 모든 자유를 박탈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일 경우는 더욱 그랬다.
처음에 김이나는 그저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엄마. 나는 왜 못 걸어?”
“아빠. 나는 왜 매일 이런 약을 먹어야 해?”
“흐흐흑.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해?”
팔다리가 마르고 굳어갔다.
‘평범’이라는 단어는 책에서만 존재하는 신기루 같은 이야기였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전쟁인 그녀에게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이 좋게 보일 리 없었다.
“제기랄! 왜 나는 못 걷는데!”
“싫어! 왜 매일 이런 약을 먹는데? 어차피 죽잖아!”
“아이 씨! 이렇게까지 살아야 해? 그냥 죽여! 죽이라고!”
냉소적으로 변한 그녀는 걸어 다니는 모든 것을 저주했다.
“이런 개 같은! 내 앞에서 걸어 다니지 말라고!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거야 뭐야!”
“걸어 다니지 말라고 했지. 그래. 나 같은 병신 약 올리니 좋니? 좋아!”
이렇게 악다구니를 지르는 것이 유일하게 자신을 표현할 방법이고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이렇게라도 가슴에 담긴 화를 쏟아 내지 않으면 정말 미칠 거 같았다.
아니 이미 미친 것일지도 몰랐다.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더 신기할 지경이었으니까.
물론 그러한 딸의 모습을 지켜보는 대통령과 그의 부인도 점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한 나라의 수장이자 권력의 정점이라는 자리에 올랐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을 위해 무엇을 한다고? 고작 딸아이의 아픔도 돌봐 주지 못하는 자신이?’
이런 괴로움이 계속해서 김이박 대통령을 괴롭혔다.
그러다 ‘소피아’라는 힐러를 알게 됐다.
정말 신기한 사람이었다.
그녀에게 치료받으면 굳었던 관절과 근육이 풀리고 말라비틀어진 팔과 다리에 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기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일이었다.
치료의 마지막 단계는 ‘계약’이라고 부르는 의식을 해야 한다고 했다.
어려운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몸에 갇혔다.
답답했다.
그녀는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몸 안에 갇히고 나서야 소피아의 진정한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악마!’
그녀는 악마였다.
곧 자신과 엄마를 이용해서 아빠도 계약하게 만들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안 돼!’라고 미친 듯이 외쳤지만, 그것은 그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혼자만의 외침이었다.
매일 매일 기도했다.
저 악마를 죽이게 해 달라고!
저 악마를 죽일 힘을 달라고!
하지만 현실은 스스로에게 갇혀 목소리 하나 낼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도 ‘신’은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자신과 엄마가 요원들에게 붙들려 가는 것을 보고는 그래도 ‘신’이 있어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었다며 펑펑 울었던 그녀였다.
물론 그 울음은 아무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지만.
그렇게 얼마나 오랫동안 갇혀 있었는지 모를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그녀의 눈앞에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울고 있었다.
자신을 보고 꾹꾹 감정을 누르고 있었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 속에 담겨 있는 감정이 그녀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미안해하고 있었고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너무나 끔찍이도 그리워하고 있었다.
“아빠는 내가 뭐가 그리 좋다고! 그만 울어! 이 바보 아빠야!”
물론 아무리 크게 외쳐본들 그 소리는 몸 안에서 메아리칠 뿐이었다.
매일 화만 내고 성질만 부리던 딸이 뭐가 좋다고.
그러다가 악마의 꼬임에 넘어간 바보 같은 딸이.
그녀는 갑자기 자신이 갇혀 있던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주변을 살피니 자신은 허공에 떠 있었다.
‘뭐지?’
뭐든 상관없었다.
그녀는 그저 바보 같이 울고 있는 아빠를 안아 주고 싶었다.
그게 가능할까?
“아,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