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큭큭큭큭.
자신을 추종하는 네크로필리아 조직원의 심장을 모두 뽑아먹은 아가레스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생각보다 훨씬 맛있었고 영양도 넘쳤기 때문이었다.
“좋아. 육체 진화를 할 정도의 힘은 충분하군.”
영혼이 품고 있는 힘의 5%도 내지 못했던 몸이 받아들인 인간의 생명력으로 진화할 준비를 마쳤다.
아가레스가 연구실 뒤편 철창 안에 갇힌 수십 마리의 신수를 보았다.
군침이 싸악 돌았다.
숫자가 극명하게 적어서 그렇지 인간의 생명력보다 신수의 신력이 맛이나 영양 면에서 월등했다.
용사와 수호신을 죽이고 나아가서 지구 침략의 선봉장으로 서기 위해서는 몸을 제대로 만들어야 했다.
지금처럼 5%도 제대로 담지 못하는 쓰레기 같은 몸이 아닌 최소 50%는 담을 수 있는 그런 제대로 된 몸이.
그렇게 진화를 마치고 신수까지 먹어 치워 힘을 보충한다면 용사와 수호신 정도는 아주 가볍게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은 대략 10분?
그 정도면 될 것 같았다.
어차피 그 운디네는 쫓지 못했고 은신한 채 와서 딱히 미행도 없었다.
그 정도 시간은 충분했다.
그런 다음 새롭게 진화된 몸을 보신할 신수를 모조리 해치우고 용사와 수호신을 찾아 찢어 죽이면 될 일이었다.
아가레스는 그래도 혹시 몰라 손을 뻗어 입구 쪽에 마기를 뿜어냈다.
마기가 뭉쳐 커다란 칼날처럼 변해 날아갔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강!
콘크리트로 된 지상으로 연결된 지하도가 박살이 나며 무너졌다.
혹시나 외부에서 이곳을 찾더라도 저 길을 뚫고 들어오려면 한참이 걸릴 것이었다.
“자아. 그럼. 이제 시작해 볼까?”
아가레스의 몸에서 땀 같은 것이 전신에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물론 그건 단순한 땀이 아니었다.
누에가 실을 뿜어내어 고치를 만드는 것처럼 전신에 땀 같은 액체가 점점 투명한 거품처럼 부풀어 아가레스를 감싸고는 단단하게 굳었다.
***
경호가 도봉산 인근에 도착하자 운애와 땅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운애야. 그 악마놈은 어땠어?”
경호가 직접 전투를 치렀던 운애를 살피며 물었다.
꽤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솔직히 생각보다 강했어. 처음 빙의하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니 쉽게 제압하겠다고 생각했었거든. 그래도 엄청 약해지긴 한 모양이더라고. 도망까지 치는 것 보니.”
“음. 그럴 거야. 아마도 이번 웨이브 실패를 책임지고 이곳에 와서 용사와 수호신을 죽일 작정인 듯싶으니까. 제대로 힘을 끌어내면 죽일 수 있다는 자신이 있는 거겠지. 그게 유일한 살길이기도 하고.”
경호가 정령계를 지켜낸 용사니 뭐니 해도 마계의 사정을 다 알 수는 없었다.
아가레스라는 이름을 은가누에게 듣고도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정령계를 주로 공격한 마왕군은 폭식의 바알과 나태의 벨페고르였기에 마몬 마왕군까지는 잘 몰랐다.
그래도 은가누에게 아가레스가 악마대공이라는 것을 들었기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강해? 어차피 마기 농도가 약한 지구이니까 제대로 빙의를 마쳐도 그리 큰 힘을 쓰지 못할 거라며.”
경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우선 마기 농도를 떠나 인간에게 빙의하면 육체적으로 강대한 힘을 제대로 쓰기 어려웠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넘어오진 않았을 터였기에 걱정이 되기도 했다.
“마왕을 제외하고 가장 강한 이들이 바로 악마대공이라는 존재들이야. 당연히 엄청나게 강하지. 본래 힘에 얼마나 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꽤나 강할 거야. 부디 빙의가 제대로 안 되길 빌어야지.”
물론 경호는 최근 용의 심장의 힘을 거의 다 받아들이면서 그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해진 상태였다.
빙의가 제대로 되었다 해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래도 시간을 적게 줄수록 유리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기에 서둘렀다.
“가자!”
경호의 말에 땅개가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올랐고 그 뒤를 경호와 운애가 은밀하게 그 뒤를 따랐다.
도봉산 중턱.
등산로에서 한참 벗어난 곳이었다.
결계가 사라진 상태라 아가레스가 부서뜨린 철문이 그대로 보였다.
“저기네. 빨리 가 보자.”
지하로 향하는 통로를 따라가다 모두 멈췄다.
-주인님. 이거 아가레스가 일부러 그런 거 같네요. 여기 마기의 흔적도 있고요.
통로가 완전히 붕괴된 상태였다.
경호 혼자 왔으면 이걸 어떻게 무너뜨리지 않고 뚫고 갈지 한참을 고민했겠지만, 지금은 충직한 땅개가 있었다.
“땅개야. 이거 길 만들 수 있어?”
이제나저제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땅개였기에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대답했다.
-주인님! 이런 건 일도 아닙니다! 말씀만 하시면 도봉산을 전체에 길을 낼 수도 있습니다!
터널 공사도 아니고 산 전체를 뚫을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저렇게 칭찬해 달라고 대놓고 티를 내는 데 굳이 모르는 척할 필요는 없었다.
“역시 우리 땅개가 최고라니까! 그럼. 부탁할게!”
땅개가 경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엄청난 속도로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그 힘이 대단하면서도 소음은 거의 나지 않았고 무너진 통로를 파헤치는 데도 다른 곳이 무너지지 않고 길이 뚫리고 있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무너진 통로가 모두 뚫렸다.
‘이거 진짜 마음만 먹으면 터널도 뚫겠네.’
경호가 혀를 내두르며 땅개가 뚫어놓은 터널을 지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커다란 거품에 쌓인 아가레스를 발견했다.
“어?”
변태 중인 아가레스를 보며 경호는 힘에 맞는 육체로 진화를 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눈치챘다.
만화의 한 장면처럼 적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마기를 가늠해볼 때 저 번데기 같은 것이 깨어나면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이대로 갈라 버려 주마!”
경호는 바로 아공간에서 용아검을 꺼냈다.
‘단번에 벤다!’
이제는 용의 심장을 거의 용족 수준으로 쓸 수 있게 된 경호였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엄청난 수련이 필요했다.
상중하 단전을 정령계에서부터 사용했던 경호였지만 용의 심장을 제대로 사용하기 시작하자 상식을 뛰어넘는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용력(龍力).
지금까지 사용했던 용의 심장에서 뽑아내 썼던 것은 진짜 용력이 아니었다.
용의 심장을 제대로 이해하자 깊숙한 곳에 보석처럼 박힌 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진짜 용력을 찾아냈다.
그것은 신력이나 마력, 정령력과 완전히 다른 힘이었다.
달고나.
국자에 설탕을 넣어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가며 녹인 다음 소다를 콕 찍어 섞으면 확하고 부풀어 오르는 달달한 간식.
용력은 달고나의 ‘소다’ 같은 역할을 했다.
용족의 사기 같은 힘의 원천.
자신이 품고 있는 신력을 심장에서 솟아 나오는 용력과 섞으면 확하고 부풀어 올랐기에 그 거대한 육체를 움직이면서도 지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그 엄청난 증폭력 때문에 다루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었다.
자칫하면 폭주할 수도 있는 거대한 힘이었다.
그렇기에 용족도 용력을 완전히 다루기 위해서 수백 년이라는 해츨링 기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수천 년을 사는 용족과 달리 경호에게는 그리 여유가 있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마계에서 넘어올 수도 있는 상황.
정령계처럼 미르나 신수, 정령이 빵빵하게 있어서 뒤에서 받쳐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래서 경호는 의식의 세계로 들어가 수련을 시작했다.
정령계에서 거의 일 년을 의식의 세계에서 지옥 훈련을 겪었던 경호였기에 웬만해선 다시 찾고 싶진 않았지만, 직접적인 타격이 아닌 기운을 다스리고 조절하는 훈련에는 이곳보다 나은 훈련 장소가 없었다.
우선은 마나코어에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가장 친숙하고 가장 다루기 쉬운 힘.
경호는 그것을 주먹에 기운을 덧씌웠다.
권기.
그리고 정령력을 다루는 중단전 역할을 하는 그곳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기운을 깨웠다.
용의 심장 속 핵(核)은 그 크기가 아주 작았다.
거대한 용족들도 핵은 주먹만 했으니 용족의 이빨만 한 경호의 핵은 손톱보다 작았다.
심방과 심실 사이 깊숙이 원래 있던 것처럼 박혀 있는 그것에서 용력이 경호의 의지에 따라 흘러나왔다.
손에 덧씌운 마력에 비하면 없다고 봐도 될 정도의 용력이었지만 그것이 마력과 섞이자 곧장 반응을 보였다.
우우우우우우우웅!
새하얀 권기가 갑자기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호도 [증폭]이라는 특성을 LV10 수준으로 익히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증폭에 대해 이해도가 높았기에 처음 하는 연습이었지만 용력의 엄청난 증폭력을 제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하지만 제어는커녕 손을 감싼 권기는 그대로 폭발했다.
그리고 손은 거의 걸레짝이 되었다.
의식의 세계에서 다치면 육체적 손상은 없지만 의식, 즉 영혼의 타격을 입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악!”
날아오는 칼날이 배에 꽂힌다면 경호는 이를 악물고 참을 수 있었다.
고통은 경호에게 그 어떤 것보다 친숙한 것이기에.
하지만 예상치 못한 고통은 그런 그에게도 비명을 지르게 만들었다.
마치 새벽녘에 화장실을 가다가 블록 장난감을 발로 밟으면 느껴지는 그런 고통스러움과 비슷했다.
“끄악! 끄아악!”
의식의 세계에서 곧장 깨어나 벌떡 몸을 일으켜 소리를 질렀다.
잠자리에 누워 시작했기에 곁에 있던 지숙도 깜짝 놀라 일어났다.
핏기가 싹 가신 얼굴로 비명을 지르는 경호를 쳐다보는 지숙.
그리고 그런 지숙을 보고 입을 꾹 다무는 경호.
“핫핫핫. 미안. 엄마. 놀랐지?”
아직도 권기가 터진 오른손이 욱신거렸지만 그보다 지숙을 놀라게 한 것이 더 마음이 쓰였다.
경호가 애써 별거 아니라는 듯 웃었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아들이 자다 말고 갑자기 비명을 질러대는 것은 결코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왜 그래? 몸이 안 좋니? 엄마가 보약이라도 지어 올까?”
지숙의 얼굴에 걱정이 줄줄 흘렀다.
경호는 안 그래도 용력 조절에 실패해서 멘붕이 온 상황에서 지숙이 걱정까지 하니 멘탈이 남아나질 않았다.
“아니. 그게 아니라 골목대첩에서 꼴찌하는 꿈을 꿔서….”
다행히 골목대첩 결승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대충 핑계를 댔다.
“우리 아들 부담감이 컸나 보네. 어째. 청심환 먹자.”
놀랐을 때는 이거 먹고 푹 자면 된다면서 지숙이 서랍을 뒤져 청심환을 꺼냈다.
“자아. 먹어라. 꼭꼭 씹어서 삼켜. 그리고 너무 부담 갖지 말고. 꼴찌 해도 상관없으니. 알았지?”
“어. 알았어.”
금박에 싸인 청심환을 꼭꼭 씹으며 경호가 다시 자리에 누웠다.
이번에는 꼭 성공해 낼 생각이었다.
집중하면 못 할 게 없다고 생각했던 경호였다.
하지만.
콰앙! 쾅! 콰아앙!
경호의 손은 그 뒤로도 계속 터져 나갔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100번이 넘어갈 때까지만 해도 웃음이 터져 나왔던 경호였다.
그런데 그 숫자가 200, 300, 400, 500…. 1000이 넘어가자.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거의 미친놈이 돼 가고 있었다.
“아니 내 힘인데 왜 쓰지를 못하니! 증폭 만렙이 이걸 못 쓴다는 게 말이 되냐고!”
물론 기운을 다루는 것에 타고난 용족도 몇 백년이 걸리는 것이지만 경호는 그것을 몰랐다.
“하아! 미치겠네!”
의식의 세계라 손은 바로 회복이 됐지만 영혼의 타격은 바로 회복되지 않고 쌓이고 있었다.
하지만 손이 터져 나가는 고통보다 정령계에서 굴렀던 10년이 모두 부정당하는 기분이라 그것이 더 많이 아팠다.
“아니야! 내가 이걸 못 다룬다고? 그래. 이거 다룰 때까지 내가 의식의 세계에서 안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