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지구 침략 중인 마계에서 지금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은 당연히 오크 웨이브였다.
2페이즈 시작인 극지던전부터 조금씩 삐걱거리더니 1차 오크 웨이브가 실패하며 기우뚱거리기 시작했다.
출발은 아주 좋았다.
마신이 직접 정령계 철수를 명하고 지구 침략을 선포했다.
그에 따라 대격변을 일으키고 그에 대항하는 인간들에게 적당한 먹이(던전, 균열)를 던져 주며 마도공학 같은 새로운 이기에 적응시켰다.
그렇게 서서히 마기를 지구에 퍼뜨리며 악마계약자를 요소요소에 심었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지구의 정령은 사라지고 신수는 흩어졌다.
수호신은 죽어 가고 있었으며 지구의 주인인 인류는 분열되고 계급화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2페이즈에 도달했다.
그때부터 ‘용사’와 ‘수호신’이 점점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 눈엣가시가 송곳이 되고 창이 되더니 어느새 마계의 침략을 막는 거대한 기둥이 되었다.
지구엔 악마계약자를 많았고 그렇게 존재하는 많은 계약자가 지구에 디스팩트를 보고 2차 오크 웨이브도 실패했다는 사실을 마계에 알렸다.
***
‘어떡하지?’
아가레스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그 답은 쉬이 떠오르지 않았다.
‘실패’하면 끝이라고만 생각했기에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죽음.
낯선 단어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화르르르르륵!
짙은 마기가 갑자기 솟구치더니 거대한 검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아가레스는 그 불꽃을 보고 바로 몸을 바짝 엎드렸다.
-미천한 종, 아가레스가 탐욕의 주인이신 마몬님을 뵙습니다!
검은 불꽃 속에서 마몬의 샛노란 눈동자가 아가레스를 노려봤다.
-나의 충직한 종, 아가레스여. 왜 나를 이리도 실망시키는 것이냐.
마몬은 고저 없는 음색으로 읊조리듯 말했을 뿐이지만 아가레스는 그 앞에 담겨 있는 살기에 갈기갈기 찢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허억. 허억. 허억.
절로 호흡이 가빠지고 머리가 깨질 듯 두통이 몰려왔다.
-한 번 더 기회를 주십시오! 제발! 주인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제가 기필코 용사와 수호신을 죽이고 오겠습니다.
‘용사’와 ‘수호신’을 죽이지 못한 것이 2차 오크 웨이브의 실패보다 더 컸다.
마기 농도를 높일 가장 좋은 방법이 오크 웨이브이긴 하지만 다른 방법도 많았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용사와 수호신을 죽이기는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
-제발! 제가 가서 직접 죽이겠습니다!
이번 실책을 덮고 용서받는 것은 절대 불가능했다.
이미 그렇게 이야기했기도 했고 다른 마왕들이 그걸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최고위 악마 하나를 날려 버리는 것은 마계 입장에서는 분명한 손해였지만 서로 견제하는 마왕 입장에서는 꽤나 이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마몬은 고민했다.
마계 서열 9위 악마대공 ‘아가레스’는 단연 자신의 가장 훌륭한 무기였다.
한참을 고민한 마몬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지구로 가라. 거기서 너를 증명해라. 용사와 수호신을 죽이지 못하면 죽음이 두려워 도망쳤다고 할 것이다.
악마, 그것도 대공이라는 최고위 악마에게 ‘명예’란 목숨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비겁한 도망자의 낙인이 찍힌다는 것.
-….
엎드려 있던 아가레스가 고개를 들었다.
-알겠습니다. 기필코 용사와 수호신의 목을 쳐서 들고 오겠습니다.
그 정도면 어찌어찌하여 무마할 정도의 공(功)은 되었다.
-그래. 더는 나를 실망시키지 말거라.
아가레스는 엎드려 고개를 조아렸다.
***
“아니 이거 뭡니까? 검사님. 이거 그냥 막 쳐들어와도 되는 겁니까? 선량한 시민을 이렇게 겁박해도 되는 거냐고요!”
동진은 최정환 검사에게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사관들은 동진의 발악에 엉망이 된 사무실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수색영장이 나왔기에 온 겁니다.”
“네엣? 영장이 나와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영장이 나옵니까!”
영장은 피의자 혐의 사실이 어느 정도 인정되어 관련 증거가 추가로 필요하다 판단될 때 법원에서 발부하는 것이었다.
“제가 무슨 횡령이니 배임이니…. 검사님. 저 정말 햄버거나 만들며 착실하게 살았습니다. 주변에 배 아픈 프랜차이즈의 모함입니다.”
대통령에게 경호가 그전에 금고에서 찍은 증거를 넘겼기에 그런 소리는 씨도 먹히지 않았다.
“우선 압수수색 후에 청에 가셔서 이야기하시죠.”
“하아.”
털썩.
동진은 한숨과 함께 소파에 기대앉았다.
안 그래도 2차 오크 웨이브가 막혀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는데, 갑자기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까지 이어지자 너무나 짜증이 났다.
어차피 금고만 털리지 않으면 상관은 없었다.
횡령이니 배임이니 부정 거래니 모두 금고 안에 관련 자료를 담아 놨다.
“여기 모두 모여 보세요! 여기요!”
그때 최정한 검사가 서랍이며 PC며 모조리 뒤지고 있는 수사관들을 불러 모았다.
바로 금고가 숨겨져 있는 책장 앞이었다.
동진은 그럼에도 태연한 표정이었다.
‘설마 책장 뒤에 금고가 있다고 생각….’
“이 뒤편에 뭐가 있는 거 같은데.”
최정한 검사가 책장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물론 그런 낌새는 전혀 나지 않았지만 경호가 알려 준 위치를 토대로 추측한 것이었다.
태연한 표정을 짓던 동진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책장을 열고 금고를 확인하진 못해.’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책장을 여는 방법은 자신도 헷갈릴 정도로 꽤나 복잡했다.
“다 빼세요!”
주변 수사관들이 책장에서 책을 빼냈고.
콰앙! 콱! 쾅!
어디서 꺼냈는지 갑자기 손도끼를 든 최정한 검사가 책장을 패기 시작했다.
책장이 장작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 이….”
애써 침착한 척하던 동진이 벌떡 일어나 책장으로 달려갔다.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기물파손으로 신….”
카앙! 깡!
내려치는 손도끼가 책장을 다 쪼개고 벽에 닿았을 때 날카로운 쇳소리가 터져 나왔다.
“빙고!”
책장이 우르르 무너지고 커다란 철제 금고가 나왔다.
“김동진 대표님. 이거 직접 여실 겁니까? 아니면 저희가 강제로 열까요? 물론 협조하지 않으시면 불이익이 생길 겁니다.”
동진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최정한 검사를 노려봤다.
“아니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금고도 사무실에 못 두게 했습니까? 그리고 압수수색을 하러 오신 거지 파손수색하러 오신 거 아니지 않나요? 법무팀을 통해서 강력하게 항의하겠습니다!”
동진은 이왕 이렇게 된 거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자신이 돈을 찔러준 검사만 해도 축구팀 몇 개를 만들 정도는 되었기에 나오는 자신감이었다.
그런데.
“아. 그러세요. 여기 장비 좀 가지고 오세요!”
“뭐?”
동진이 어이가 없든 말든 수사관 중 몇이 사무실 밖으로 나가서 커다란 장비를 들고 왔다.
산소용접기였다.
“미쳤어? 야! 이 미친 검사 새끼야!”
피식.
지검장도 총장도 아닌 대통령 빽이었다.
기회도 이런 기회가 없었다.
거기다 이놈 악마 끄나풀이란다.
빌런도 쓰레긴데 악마 끄나풀에게 좋은 감정이 생길 리가 만무했다.
당장 두들겨 패고 싶은 걸 참고 있는 최정한 검사였다.
“여기 수갑 채우세요!”
수사관들 역시 상황을 모두 알고 왔기에 바로 달려와 동진에게 수갑을 채워 소파에 앉혔다.
“뭐야! 뭐냐고!”
동진도 수갑이 채워지자 슬슬 위기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뭐야? 뭐라도 알고 이러는 거야?’
부장검사가 직접 압수수색을 나선 것만 봐도 이상한 일이었지만 멘탈이 나간 상황이라 이제야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닥쳐! 입 틀어막기 전에!”
최정한 검사가 눈을 부라리며 동진을 노려보자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치이이이이이이이익.
수사관들은 금고의 경첩 부위를 용접기로 녹이고 있는 상황.
금고는 말 그대로 판도라의 상자였다.
저것이 열리면 끝장이라고 생각하던 때였다.
‘어?’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지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나의 충직한 종이 위기에 빠졌구나.
바로 아가레스의 목소리였다.
***
마몬의 허락이 떨어졌지만 시간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날 처리하려 하겠지.’
다른 마왕들이 움직여 자신을 노릴 수도 있었다.
당장 움직여야 했다.
우선 지구의 상황을 알기 위해 투항한 오크에 보냈던 사역마에게 연락하려 했지만 예상대로 되지 않았다.
‘역시 용사와 수호신에게 당한 모양이군.’
아가레스는 용사와 수호신에게 처음부터 완전히 당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다시금 분노가 확하고 치밀어 올랐지만 억지로 가라앉혔다.
‘어쩌지?’
그렇다고 마기 농도가 낮은 지구로 무작정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균형을 이루려는 우주 법칙 탓에, 가진 힘이 클수록 차원이동의 반작용이 커지기 때문이었다.
‘그냥 넘어가면 아마 엄청난 타격을 입고 그 파동을 느낀 용사와 수호신이 날 찾겠지.’
그렇기에 그냥 넘어가는 것은 자살행위에 불과했다.
힘을 낮춰 타격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다시 힘을 회복하여 용사와 수호신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더 강한 ‘사역마’였다.
아가레스는 제물로 쓴 손을 쳐다봤다.
대부분 회복됐지만 아직 손가락을 완전하게 쓰기 어려운 상태였다.
가능할까?
용사와 수호신.
자칫하면 투항한 오크나 다른 헌터가 붙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전 사역마보다 더 강한 존재를 만들어 보내야 했다.
중급 이상의 사역마를 만드는 것은 사지를 모두 제물로 삼아도 가능할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거기다 그 상태에서 습격이라도 받으면 그대로 끝이었다.
‘뭐가 됐든 직접 지구로 가야 해.’
하지만 어떻게?
그때 갑자기 인간의 왕이 될 거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멍청한 인간.
자신의 계약자인 동진이 떠올랐다.
아가레스는 즉히 마법진을 그려 은밀하게 동진을 살폈다.
‘하아. 여기도 엉망이로군.’
차라리 잘 됐다.
위기에 몰리면 인간은 뒤를 생각하지 않고 눈앞에 것만 쫒는 성향이 더 강해지기 때문이었다.
아가레스는 동진의 정신에 접속했다.
물론 그냥 불꽃을 일으켜 소통하는 방식보다 훨씬 많은 힘이 소모되었지만, 은밀하게 접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나의 충직한 종이 위기에 빠졌구나.
‘아가레스님! 미천한 종을 잊지 않으셨군요!’
-그래. 내가 너를 구해 주겠다.
‘아가레스님.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뭐든 할 테니 구해 주십시오.’
일 분 일 초가 급하다보니 동진도 바늘의 날카로움은 보지도 않고 미끼를 덥석 물었다.
-너에게 지금 그 위기를 벗어날 힘을 주겠다. 정말 뭐든 할 테냐?
‘네엡. 뭐든 하겠습니다. 이 위기를 빠져나갈 힘만 주십시오!
동진은 아가레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답했다.
-그럼. 계약은 이루어졌다.
‘네에? 계약이…. 크윽.’
영혼 전이.
흔히 강신(降神), 빙의(憑依)라고 하는 현상이었다.
물론 악마라도 차원을 넘어 살아 있는 인간에게 강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계약자인 동진이 대상이기에, 제약을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아가레스의 영혼이 차원을 넘어 동진의 ‘의식의 세계’에 들어갔다.
새하얀 공간.
그곳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동진이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에 반해 이마에 긴 뿔이 솟은 거대한 외눈박이 악마, 아가레스는 엄청난 위압감을 흘리고 있었다.
“아가레스님. 저에게 무슨 힘을 주시려는 겁니까?”
동진이 덜덜 떨며 힘겹게 아가레스에게 물었다.
아가레스는 그런 동진을 무심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다가왔다.
손을 뻗어 동진의 머리칼을 움켜잡아 위로 쑥 들어 올렸다.
“아악! 아가…. 아가레스님! 사, 살려주십시오!”
동진은 갑자기 자신의 머리채를 잡고 들어 올리는 아가레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것은 계약에 없던 사항이라…. 뭐든 한다고 했으니 억울해하지 말도록.
아가레스가 입을 크게 벌렸다.
뱀의 아가리처럼 쫘악 벌어진 입안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빽빽하게 돋아있었다.
“아악! 아가레스님! 아가….”
콰악! 콱! 우걱! 우걱!
인간의 왕이 되려고 그렇게나 발악했던 동진은 아가레스의 먹잇감이 되는 최후를 맞이했다.
우걱! 우걱! 우걱!
아가레스는 맛있게 그의 영혼을 꼭꼭 씹어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