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용사의 골목식당-244화 (244/335)

#244화

아가레스는 마몬의 1군단장이자 가장 큰 세력을 가진 악마대공인 자신이 이런 오크 웨이브 출정식 자리까지 나서야 한다는 것에 절로 한숨이 지어졌다.

앞에 있는 세 악마를 노려봤다.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노려본 것이지만 감동이라도 받은 눈빛이다.

하여간 웃기지도 않는 상황이다.

평소 버러지 취급하는 혼혈종 악마 따위를.

하지만 지금 그에게 이 셋은 중요한 존재였다.

빌어먹게도 1차 오크 웨이브 실패는 큰 타격이 됐다.

마신의 계시로 침략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여기저기서 말들이 나오는 상황에서 모든 책임이 그에게 전가되기 시작했다.

그저 사과하고 적당히 넘어갈 사안이 사지 근맥이 끊겨 노예형을 살아도 할 말이 없는 실책으로 변해 버렸다.

다행히 2차 오크 웨이브를 책임져서 만회할 기회를 얻었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주군인 마몬도 이번에 실패하면 죽을 것이라는 걸 확실히 못을 박은 상태였다.

‘제길. 주군마저….’

다섯 마왕은 마신의 분노를 피할 핑곗거리로 그를 찍은 것이었다.

-그대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 두려워 말고 전진하라!

형식적인 출정식에 굳이 길게 이야기해서 기운을 뺄 필요는 없었다.

2차 오크 웨이브가 시작됐다.

그렇게 지구로 모두 떠난 후 내색하진 않았지만,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지만 사실 까딱하면 떨어질 수 있는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다.

얼마 전까지 마왕의 자리를 노리고 있던 자신이 죽음을 각오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자 실소가 나왔다.

‘훗. 이런 나도 손에 쥔 것이 많으니 두려움을 느끼는 건가? 그럼에도 앞으로 더 쥐려고 하고 있고.’

무서워하고 있다고? 죽음 따위에?

두려움, 초조함 같은 나약한 감정은 굉장히 낯선 감정이었다.

화르르르르륵.

갑자기 확하고 타오르는 검붉은 불꽃.

지구에서 보낸 차원 통신이었다.

불꽃 너머 용사와 수호신이 오크에게 둘러싸인 모습이 보였다.

‘됐다! 됐어! 모든 과오를 씻고 다시 비상할 수 있게 됐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

속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않았다.

-신 스네스. 용사의 목을 치기 전 보고 드리기 위해 연락드렸습니다.

뭐든 좋았다.

거기다 오크 상태를 보아하니 그린 캔디도 먹지 않은 상태 같았다.

‘좋아. 그린 캔디를 써먹을 수 있겠어.’

지금 알려졌으면 마몬에게 상납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렇게 되면 끝까지 숨길 수 있었다.

그 후 그린 캔디의 부작용을 없애 완성한다면 마왕이 되는 일을 도와줄 훌륭한 무기가 될 것이었다.

-잘했다. 용사와 수호신을 죽이고 대업을 완성하라. 그리하면 너희 부족은 영원히 나와 함께 큰 성세를 누릴 것이다.

-아가레스 님. 감사합니다.

‘용사’와 ‘수호신’.

어느 하나 가벼운 존재가 아니었다.

정령계 침략도 실패는 결국 정체를 알 수 없는 용사와 신룡 탓이었다.

그것도 그냥 물러나는 정도의 실패가 아닌 마왕이 둘이 죽고 악마군단의 절반이 갈려 나간 엄청난 실패였다.

이번 역시 마신님이 직접 계시까지 내려 걱정하는 상황이었다.

‘이거 어쩌면 마몬님을 넘어 마신님께서 친히 상을 내리실지 모르겠군.’

그리되면 자연스럽게 귀족 회의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터였고 마왕의 자리에 더 빠르게 다가갈 수 있었다.

스네스가 입을 벌려 용사의 머리를 집어삼키려고 하는 모습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때.

퍼억!

스네스의 머리가 입을 쩌억 벌린 채 몸통에서 분리돼 튀어 오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 이게 뭐지?’

예상을 아득히 넘은 황당한 상황에 순간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죽었다고?’

악마의 머리가 오크의 도끼날에 날아가는 모습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화르르르르륵!

이제 거기에 하얀 불꽃이 확하고 붙더니 활활 타올라 곧 재가 되어 흩어졌다.

최하급, 혼혈종 악마라고는 하나 너무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퍽! 퍼억! 퍽!

다른 악마 두 놈도 오크의 도끼질에 잘 다져진 고깃덩이로 변했다.

-이노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옴!

살기를 터뜨리고 핏대를 세웠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런 자신을 용사가 쳐다봤다.

‘크윽. 악마가 모두 죽었다. 그러면 또 오크가 투항할 수도 있어!’

당장 할 수만 있다면 사지를 찢고 지옥의 겁화를 일으켜 태워 버리고 싶었다.

“저번에는 삼백의 용사를 지원해 주더니 이번에는 아예 그 열 배를 지원해 주는 거냐? 어쨌든 고맙다.”

그렇게 말하고는 연결을 끊었다.

한참을 멍하게 가만히 있었다.

이번 작전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집히는 것이 없었다.

상상도 하지 못할 속도로 웨이브를 앞당겼다.

하지만 마법진을 깔아 놓았을 정도로 그것을 미리 파악했다.

‘아니 어떻게?’

도저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 텐데.

거기다 갑자기 배신하기로 한 오크가 오히려 역으로 악마의 목을 치다니….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래. 어떻게 세뇌를 시켜 배신하게 만든다 해도 어떻게 악마를 공격한 거지?’

혼혈종이긴 해도 분명 악마다.

그런 악마의 목을 오크가 친다는 것은 마혼의 기운이 심장에 박혀 있는 한 절대 불가능한, 절대적인 법칙이었다.

‘설마? 마혼의 기운을 정화했다고?’

이내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했다.

절대 그럴 수 없었다.

그것은 용사가 아니라 용사의 할애비라도 불가능한 일이었고 수호신이라고 해도 개입할 수 없는 영역의 문제였다.

‘마신만 할 수 있는 일이야!’

만약 정령계처럼 세계수가 있다면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었다.

세계수 역시 주신이나 마신처럼 모든 기운을 조절할 수 있는 존재니까.

하지만 세계수가 존재하지 않는 지구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으드득.

분노에 찬 아가레스가 송곳니가 부러져 입가에 피가 흐를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

아가레스가 이를 박박 갈고 있는 그때.

안갯속 오크들은 세 악마가 죽으며 명령의 주체가 사라지자 더욱 강하게 ‘현타’가 오기 시작했다.

‘어? 내가 꼭 저기 오는 인간이나 투항한 오크랑 싸워야 하는 건가?’

‘뭐지? 갑자기 가슴이 확 시원한 게 체증이 확 내려가는 느낌인데?’

‘조금 전까지 모조리 찢어 죽이고 싶었는데. 엉? 지금은 그냥 배가 고프고 졸린데?’

삼천에 가까운 엄청난 수의 오크가 각각 느끼는 감각은 모두 달랐지만 어쨌든 상쾌함과 함께 살의가 아닌 다른 엉뚱한 감정이 치솟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치열하게 싸우던 전투가 점점 느슨해지더니 하나둘 무기를 바닥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안개가 잔뜩 낀 전장의 하늘에서 수호신 역할을 연기할 울피가 거대한 불여우의 모습으로 변해 나타났다.

키아아아아앙!

울피가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앞발을 휘젓자 안개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삼천에 달하는 오크들이 무기를 바닥에 던져 놓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다 하늘을 모두 올려다봤다.

모두의 시선이 모이자 울피가 준비했던 연기를 시작했다.

-이 세상의 지키는 수호신 울피라 한다. 지구를 침략해 온 오크들은 들어라!

마구 날뛰던 마기는 가라앉았고 심장에 꼭 박혀 악마의 명령에 복종하게 만든 마혼의 기운은 시원사이다 안개에 눈 녹듯 사라진 상태.

울피의 말에 모두 귀를 쫑긋하며 집중했다.

-투항하라! 그대들의 삶을 망가트린 악마와 싸우는 데 그 힘을 쓸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지금 무슨 연유로 이런 변화가 생겼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이라면 악마를 향해 무기를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나, 둘. 서서히 물결처럼 번지며 양손을 머리 위로 들어서는 손을 펴 빈손을 보이기 시작했다.

-투항하겠다!

-함께하고 싶습니다!

-투항한다!

-투항하겠소!

통역기 없이는 뀌익! 꽥! 꿍꿍! 정도로 들리긴 했지만 모두 투항 의사를 밝힌다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렇게 2차 오크 웨이브도 마계의 의도와 다르게 끝이 났다.

***

버거퀸 본사 사장실.

동진은 소파에 편한 자세로 앉아 기쁜 마음으로 디스팩트 생방송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아! 용사와 수호신에 목을 치는 거다!”

자신이 건넨 그린 캔디도 분명 한몫을 할 것이었다.

“좋구나 좋아!”

안 그래도 골목대첩에서 지는 바람에 요즘 계속 짜증이 솟구치고 있던 참이었다.

오늘 용사와 수호신의 목을 치고 악마군단이 넘어오면 다 끝이었다.

그러고 나면 친히 ‘경호’와 ‘성원’을 자신의 노예로 쓸 생각이었다.

경호가 만든 음식을 성원의 얼굴에 던지며 비웃어 줄 생각을 하던 동진의 눈에 드디어 기다리고 고대하던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크하하하하하하! 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이네!”

동진이 화면을 보며 크게 웃었다.

물론 그 화면을 보고 크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특히나 다현의 샤이 팬인 허창수 기자는 드론이 찍어 보낸 영상을 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눈을 했다.

“아니! 이게 뭡니까! 지금 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투항한 오크의 수장인 은가누가 다현 헌터의 목에 도끼날을 겨누고 있습니다!”

목소리가 떨리고 눈가가 붉게 달아올랐다.

당장 방송을 끄고 바닥에 있는 삼각대라도 들고 가서 당장에 저 은가누라고 하는 오크의 대가리를 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말도 안 됩니다! 말도 안 돼! 투항이고 뭐고 이게 다 악마의 수작이었다고? 아니 이게! 이게! 이런 씨이!”

방송 중에 나오면 안 되는 멘트였지만 그런 것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그렇게 충격을 받은 것은 비단 허창수 기자뿐이 아니었다.

이 ‘배신의 배신’ 작전은 경호 일행과 은가누와 다섯 조장을 빼고는 아무도 모르는 내용이었다.

그렇기에 디스팩트 영상을 보며 간절히 기도하던 김이박 대통령과 비서실장도 이 장면을 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이, 이게 도대체….”

오크 웨이브가 성공하면 자신의 가족은 물론 지구가 끝이라는 설명을 경호에게 들었던 참이라 대통령의 눈동자는 더욱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 최경호! 최경호 씨는 도대체 뭐하고? 이런 상황을 몰랐다고?”

쾅!

집무실 책상을 내려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가 그저 조금 강한 헌터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욱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곧 반전이 일어났다.

퍼억!

은가누의 도끼가 스네스의 목을 날렸다.

그리고 곧장 다현이 그런 스네스의 머리를 새하얀 불꽃으로 태워 버렸다.

너무 놀라 대통령도 그저 눈만 껌뻑이며 화면을 응시하고만 있었다.

그때 울먹이는 허창수 기자의 말이 흘러나왔다.

-지, 지금 악마가 재가 되어 사라졌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털썩.

다리가 풀렸는지 의자에 다시 풀썩 앉은 대통령이 숨을 깊게 몰아쉬었다.

“박 실장. 경호 그 사람 정말 놀라게 해 죽일 생각이었던 모양입니다.”

김이박 대통령의 말에 박재호 비서실장이 긴장한 표정이 역력함에도 억지 미소를 지었다.

“저는 경호 씨를 믿었기에 이리될 거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꼭 지구를 구해 준다고요.”

“이거 내가 믿음이 약했군 그래. 박 실장. 그럼. 우리도 약속을 지켜야지?”

“안 그래도 지금쯤 도착했을 겁니다.”

살얼음판 같았던 청와대 집무실 분위기에 다시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반대로 봄날처럼 따뜻하던 분위기에서 북풍한설보다 차갑게 변한 곳이 있었다.

챙그랑!

동진은 크리스털 재떨이를 벽에 던졌다.

“뭐, 뭐야! 뭐냐고! 저 녹색 괴물 새끼가 어떻게 배신을 한 거야!”

동진 역시 마혼의 기운이 주는 절대적인 법칙을 잘 알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챙그랑! 콰앙! 뿌각!

동진은 손에 잡히고 발에 채는 것은 모조리 부쉈다.

그때였다.

똑똑똑.

“뭐야! 내가 아무….”

분노의 찬 동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양복을 단정하게 입은 중년 남성이 엉거주춤한 자세의 동진을 날카로운 눈매로 노려봤다.

“중앙지검 형사4부 최정한 부장검사입니다. 횡령, 배임 및 부정거래 혐의로 압수수색 하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