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용사의 골목식당-236화 (236/335)

#236화

경호는 예전에 읽었던 판타지 소설을 떠올렸다.

제목이 ‘던전에서 귀환한 S급 헌터’였나?

그때 읽었던 내용을 적절히 섞었다.

‘대충 통한 모양이군.’

놀란 얼굴을 한 대통령이 경호와 성원을 번갈아 봤다.

“사실입니까?”

거짓은 아니었다.

모든 것을 이야기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역시 조금 미심쩍긴 했지만 거짓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굳이 거짓말을 꺼낼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너무 놀라 자신도 모르게 질문이 튀어나왔을 뿐이었다.

대통령을 향해 성원과 정수가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 비밀은 여기 있는 이들과 다현, 그리고 수호신님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모르는 사실이죠.”

“박 실장. 다른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자신 있나?”

“저는 오늘 아무것도 보고 들은 게 없습니다. 대통령님.”

비서실장의 말에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경호를 쳐다봤다.

“풍문에 재벌 2세 인맥으로 덕을 봤다고 말이 많던데 사실 성원 길드장이 덕을 본 것이었군요.”

골목대첩 출연으로 일반인임에도 경호는 주목받고 있었다.

물론 실종과 가정사가 알려지며 응원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한편 성원과 엮인 경호를 부러워하며 심한 악플을 다는 이들도 많았다.

“맞습니다. 대통령님. 저희 형님 덕에 다현 누님도 알게 됐고 지금까지 저희 길드가, 아니 다현 누님이 해결한 일들 대부분에 형님이 뒤에서 힘을 써 주셨습니다.”

“그렇습니까?”

“종각역 사건, 돌연변이 마수 사건, 극지던전 관련 일까지 모두 그렇습니다. 그리고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강화도를 덮고 있던 악마덩굴을 처리한 것도 형님이고요.”

세계수를 키워 내고 수호신을 회복시켰으며 흩어져 숨어 있던 신수와 정령을 끌어냈다.

본격적으로 나서기로 결심한 이후로 대놓고 ‘용사’를 자처하진 않았지만 웨이브 던전을 넘어온 오크를 투항시켜 시간을 벌고 각성자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애쓰는 중이었다.

지금 여기서 대통령에게 협조를 구하는 것도 결국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래. 차라리 이런 기회가 생겨서 잘 된 거지.’

경호는 오히려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정령계는 마계의 침략을 막겠다는 한 가지 염원으로 모든 신수와 정령이 수호신의 명령에 따르는 구조였다.

하지만 지구는 이백 개가 넘는 나라로 나뉘어 있고 그 나라도 이념과 사상, 이익과 목적에 따라 이리저리 쪼개진 상태다.

지금 당장 한국만 놓고 봐도 지역과 진영으로 나뉘고 길드끼리 나뉘고 있으며 악마계약자나 빌런이 그것을 더욱 쪼개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힘을 더 집중하려면 대통령의 도움도 필요했다.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지금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뭐. 대격변에 던전이 나타나고 악마가 인간을 조종하는 시대에 경호의 말도 마냥 놀랄 일은 아니었다.

다만 갑작스러웠기에, 그리고 그것이 과연 자신과 대한민국에 이득이 되는 방향이 무엇일지 고민하느라 생각이 길어진 것이었다.

그때 경호가 대통령에게 한 가지 사실을 전했다.

“우선 대통령님 가족분들은 제가 치유할 수 있을 겁니다.”

상념에 빠져 있던 대통령이 그 말에 벌떡 일어났다.

“아, 아내와 딸아이를 다시 돌릴 수 있다고 했습니까?”

대통령은 거의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울먹이며 물었다.

“네. 대통령님.”

경호가 대통령의 아내와 딸을 치료해 주겠다고 했지만 사실 악마계약자의 계약을 없애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계약한 악마를 죽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사라져 버린 악마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 다른 방법은 신력이나 마력을 이용해서 계약의 문약을 지워 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나 악마의 계약이라는 것이 형식적이나마 거래의 형태를 하고 있기에 더욱 그랬다.

‘분명 딸의 치료를 이유로 계약을 했을 거다.’

당연히 계약으로 꼭두각시가 된다는 사실 따위는 제대로 알리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엄청나게 성장한 세계수의 힘과 용의 심장이 담고 있는 힘을 잘 쓴다면 충분히 계약을 해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제 아내와 딸도 구할 방법이 있고요?”

대통령은 비척거리며 경호에게 다가와 손을 꼭 붙들고 고개를 숙였다.

“네. 가능할 겁니다. 치료 준비가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통령은 경호를 향해 몇 번이나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럼. 대통령님.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

“부탁이요? 말씀하세요.”

경호를 대하는 대통령의 눈빛과 말투부터 아까와 다르게 훨씬 정중하게 바뀌었다.

가족을 살릴 수 있는 은인인데 왜 안 그렇겠는가.

“지금 뒤에서 나쁜 짓을 꾸미고 있는 악마계약자 하나가 있습니다. 원래도 응징할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어쨌든 불법적인 것보다는 합법적인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경호의 말에 대통령도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 당연히 도와야지요. 그 악마계약자가 누굽니까?”

“버거퀸 컴퍼니의 김동진 대표입니다. 그자를 좀 털어 주십시오. 아마 먼지가 제법 날릴 겁니다.”

“네엣? 그러니까 지금 같이 골목대첩에 나오는 그 김동진 대표 말입니까?”

“나쁜 짓을 꾸미는 악마계약자라고 무조건 험상궂게 생긴 빌런은 아니거든요.”

“알겠습니다. 믿을 수 있는 이들을 통해서 조사해 보도록 하지요. 문제를 발견하면 바로 검찰을 통해 압수수색을 하거나 안 되면 국세청을 동원해 세무조사라도 하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오늘 최종 여덟 팀의 순위가 결정되는 파이날 라운드입니다!”

조성주가 평소보다 목소리에 더욱 힘을 실었다.

“그럼! 골목대첩의 주인공들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최종 결선에 남은 팀들은 모두 전국에 내로라하는 맛집들만 남은 상황이었다.

“우선 가장 기대를 모으고 있는 요즘 가장 핫플레이스죠! 버거퀸팀입니다!”

성주의 소개로 동진이 손을 흔들며 입장했다.

그 뒤로 간장치킨의 원조인 고촌치킨과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오래옥, 숯불갈비 명소인 마포갈비팀도 소개됐다.

“다른 쟁쟁한 팀들 사이에서 지금까지 1위를 유지하며 올라온 팀이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바로 행운식당팀입니다!”

최근 맛집으로 꽤 유명세를 타는 중이지만 다른 유명한 팀들과 비교하기에는 부족한 형편이었다.

그래서 더욱 ‘언더독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기도 했다.

경호가 미호와 함께 입장하며 피식 웃었다.

“미호야. 우리 우승하자.”

사실 마수고기 판매 촉진과 동진을 가까이 두면서 견제하기 위해 시작한 경연이었지만 어느새 경호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어차피 곧 동진을 처리할 생각이라 일부러 져줄 필요도 없었다.

“네. 오빠. 안동찜닭 맛있었으니 분명히 우승할 수 있을 거예요.”

오늘은 팬트리 경쟁도 없었다.

결승이다 보니 제대로 재료를 구할 수 있게 배려해준 덕분이었다.

그래서 경호는 칼날타조의 다리의 살코기를 주문했다.

지정된 조리대 위에는 커다란 박스에 음식 재료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미호야. 우선 이거 살짝 데쳐줄래. 나는 양념을 만들 테니까.”

경호는 양념을 만들며 분주해 보이는 버거퀸팀의 조리대를 쳐다봤다.

동진이 삼족우 갈빗살을 잘게 다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함박스테이크를 만든다고 했는데. 아주 칼을 갈았구나.’

함박스테이크.

사실 햄버그스테이크지만 일본식 발음인 함박스테이크가 아직도 꽤 쓰이는 음식이었다.

그리고 그 햄버그스테이크에 야채와 소스를 채워 번을 덮은 음식이 바로 햄버거였다.

한마디로 버거퀸이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요리가 바로 함박스테이크였다.

거기다 한쪽에서 숯불을 피우고 있는데 그곳에 엄청난 양의 마목을 태우는지 마혼의 기운에 미간이 찌푸려질 지경이었다.

지금까지보다 최소 몇 배는 더 강하게 양을 쓴 것 같았다.

‘그만큼 이기고 싶은 거겠지.’

아마 이번 디스팩트 영상을 통해 화가 난 계약 악마에게 깨지기도 많이 깨졌을 것이 분명했다.

분명 저 정도 마혼의 기운이면 상한 음식을 줘도 우승할 수 있을 수준이었다.

“오빠. 다 데쳤어요.”

“오케이. 그럼. 채소 손질 좀 부탁해.”

그리고는 박스 안에서 시원사이다를 꺼냈다.

“어? 사이다네요? 오빠. 그거 협찬음룐가요? 저도 한 잔 주세요.”

채소를 손질하던 미호가 물었다.

“아니야. 이걸로 찜닭 하려고.”

“네엣?”

치이익.

경호가 사이다의 뚜껑을 열고는 고기가 담긴 냄비에 부었다.

“어? 물 대신 그걸 쓰시게요?”

“원래 콜라를 쓰기도 하는데 시원사이다 맛이 더 좋아서 써보려고.”

정말 물보다 시원사이다를 쓰는 게 맛에 더 좋을 거 같긴 했다.

단맛도 강하지 않고 탄산이 고기를 더 연하게 해주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호가 시원사이다를 넣은 이유는 맛 때문이 아니었다.

‘이정도면 저 마혼의 기운을 해소할 수 있을까 모르겠네.’

경호는 이어서 시원사이다를 한 병 더 따서 냄비에 부었다.

“오빠. 너무 많이 넣는 거 아니에요? 이거 찜이 아니라 탕 되겠는데요?”

“좀 연하게 오래 끓여서 조리면 되지. 그래서 서두른 거고.”

동진을 이기려면 맛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사이다 성분으로 싸워야 했다.

그때 그 장면을 주시하던 성주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행운식당팀! 냄비에 시원사이다를 마구 부었습니다! 콜라를 쓴다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사이다는 금시초문이거든요! 이거 심사위원인 이성원 길드장에게 잘 보이겠다는 속셈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뭐 어떻게 생각하든 이렇게 주목받으면 시청자 투표에 좋은 영향을 주기에 경호로서는 환영이었다.

‘그나저나 이거 다 조리려면 시간이 좀 간당간당하겠네.’

경호는 냄비의 불을 가장 강하게 올리고 슬쩍 냄비 아래에 마력을 이용해서 슬쩍 불꽃을 몇 개 더 피워올렸다.

그때 성주가 경호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사이다를 넣는 모습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아. 네.”

“아니 색과 맛을 위해 콜라를 넣기도 한다고 들었는데 사이다를 넣어도 되는 건가요?”

어차피 시원사이다는 마혼의 기운을 없애주는 것 말고도 신력이나 정령력이 스며들어 있기에 몸에 좋은 음료였다.

경호는 이참에 홍보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원사이다는 인공감미료 없이 천연원료로만 만든 음료라서 설탕을 대신할 수 있는 좋은 대체제가 될 수 있거든요. 특히 마수고기 특유의 질김을 해결해 주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아. 그렇군요! 시청자 여러분도 꼭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럼 색이 연해지는 것 아닙니까? 흑설탕을 빼면 간장만으로 진한 색이 나오기 어려울 텐데요?”

성주는 요리 프로그램을 여럿 맡아서 그런지 상식이 풍부했다.

“맞습니다. 그래서 춘장을 조금 넣어서 색 농도를 맞추려고 합니다.”

“아! 춘장! 그러다 짜장 찜닭 되는 거 아닙니까?”

“그 비율을 잘 맞춰야겠죠.”

“그럼. 기대 하겠습니다!”

그렇게 인터뷰가 끝났다.

냄비를 슬쩍 보니 다행히 많이 졸아든 모습이었다.

“오빠. 채소 여기요.”

미호에게 채소를 건네받은 경호가 냄비에 그것을 넣었다.

이제 양념을 만들 차례였다.

그전에 만들었던 양념에 흑설탕을 빼고 춘장을 조금 넣었다.

많이 넣으면 짜장 맛이 나기 때문에 양 조절이 중요했는데 그것은 [요리] 특성을 이용하니 쉽게 맞출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든 양념까지 넣고 10분쯤 더 졸였다.

“이제 3분 남았습니다! 모두 마무리를 해주셔야 합니다! 자아! 3분 남았습니다!”

경호가 박스에서 모짜렐라 치즈를 꺼냈다.

“어? 치즈?”

미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어. 치즈.”

경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달달하면서 짭짤한 찜닭에 쭉쭉 늘어나는 고소한 치즈가 눈처럼 덮여 있으면 무조건 맛있는 맛이 되는 건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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