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디스팩트’의 영향력은 꽤나 강했다.
980만의 구독자를 가진 너튜브 채널이니 당연하기도 했지만 디스팩트는 일반적인 사설 시사 채널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신뢰’.
단순한 찌라시를 가지고 부풀리는 채널이 아닌 탐사를 바탕으로 팩트만 전달하는 채널이라는 사람들의 신뢰가 정규 방송의 시사 프로그램보다 강했다.
그 신뢰의 중심에는 허창수 기자가 있었다.
SBC에서 기업가나 정치인의 비리를 캐는 쪽으로 유명했던 그가 대격변 이후 돌연 사퇴하고 차린 회사가 바로 ‘디스팩트’였다.
“안녕하십니까! 허창수 기자입니다. 늦은 저녁이지만 급하게 전해 드릴 뉴스가 있어 이렇게 라이브 방송으로 인사드립니다.”
갑자기 허창수 기자 진행으로 디스팩트 실시간 스트리밍이 시작됐다.
천만에 가까운 구독자를 가진 채널이다 보니 금세 시청자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뭐지? 보통 큰일 아니면 라방 안 하는 디스팩트 아님?
-요즘 큰일이 뭐 있음?
-몇 달 전 김하빈 헌터 마약 밀매 사건 이후로 첨이잖아.
-허창수 기자 표정 보면 거의 2차 대격변이라도 터질 듯한 표정임.
-완전 엄근진 제대로 표정에 담았음.
-지금 방송 자막도 굵은 궁서체임.
실시간 채팅 글엔 방송을 진행 중인 허창수 기자의 표정과 목소리가 너무 진지하다는 내용이 많았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제 받은 상자에 담긴 메모지를 봤을 때만 해도 누군가의 장난인 줄 알았다.
-이것은 수호신이 직접 발설한 지구의 멸망 영상입니다. 조작되지 않은 영상임을 밝힙니다.
사실 ‘지구 멸망’이라는 단어를 보고 웃음부터 나왔다.
사람이 그래도 적당히 어느 정도 감이 와야 실감이 나는데 지구 멸망은 너무 먼 느낌이었다.
대격변도 이겨 내고 적응하며 살아가는 인류가 그렇게 쉽게 멸망할 리 없었다.
“이거 어린애들이 또 장난치는 건가?”
워낙 그런 제보가 많았기에 그냥 넘길까 고민도 했지만, 상자 안에 메모리카드까지 담겨 있었기에 확인은 해 보자는 심정으로 영상을 틀었다.
영상이 흘러나오고 그것을 지켜보던 허창수 기자의 다리가 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몹시 긴장하면 나타나는 그의 버릇이었다.
조용했던 사무실에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와 그의 다리 떠는 소리가 퍼져나가자 일하던 이들이 하나둘 그의 책상으로 모여들었다.
“허 선배. 뭔데 다리를 그렇게 떱니까?”
“그러게요? 최근 취재 나가신 거 없잖아요? 제보 들어온 겁니까?”
“어? 오크? 저 헌터…. 서지훈 헌터잖아?”
그 뒤로 모두 입을 다물었다.
서지훈 헌터의 양팔이 잘리고 수호신이 나타나 악마군단이 넘어온다고 경고했다.
악마 하나하나가 최상급 헌터보다 강하다는 믿기 힘든 설명과 함께.
“야! 당장 생방 준비해!”
영상이 끝나자마자 허창수 기자가 사무실이 쩌렁쩌렁 울리게 소리를 질렀다.
옆에 서 있던 후배 기자가 놀란 얼굴로 허창수 기자를 보며 물었다.
“선배. 이거 검증도 안 하고 바로 방송 쏜다고요? 팩트 체크해야죠? 그것도 생방인데요?”
“이런 건 무조건 속도가 생명이야. 어디에 누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고. 너 이런 기회 자주 오는 거 아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야. 내가 목 걸 테니까 걱정 말고 빨리 생방 준비해!”
“아니 선배가 목 걸까 봐 걱정하는 거라고요!”
투덜거리면서도 다들 재빠르게 움직여 생방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바로 경호가 연출하고 흰둥이가 촬영하여 성원이 편집한 영상이 채널 ‘디스팩트’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됐다.
***
“형님. 설마 했는데 바로 발표했네요.”
생방 소식에 영상의 주역들이 모두 성원의 사무실에 모였다.
연출 감독인 경호와 촬영 감독인 흰둥이, 주연 배우인 다현과 울피, 편집 감독인 성원에 배달원 비스트까지.
“경호 씨. 서운합니다. 다음에는 저도 좀 껴 주세요. 아니 미리 이야기라도 해 주세요.”
비스트가 영상에 대한 것을 모두 듣고 나서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다음에는 주연급으로 꼭 같이하시죠. 어! 이제 시작하나 봅니다.”
-모두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영상을 보시죠!
허창수 기자의 멘트와 함께 영상이 흘러나왔다.
가장 먼저 서지훈 헌터의 부정에 대한 영상, 녹취, 서류가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댓글 반응은 활기찼다.
-뭐야? 원래 쟤 쓰레기였잖아. 쓰레기를 쓰레기라고 하는데 뭐 그리 폼을 잡았누.
-그러게 약쟁이에 난봉꾼이라는 거 모르는 사람 없잖아?
-그러고 랭킹 탑 먹는 거 보면 신기함.
-그러게 어차피 이렇게 방송 때려도 의미 없잖아.
-결국 그들만의 리그임. 천룡인 위에 헌터 있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님.
영상이 바뀌며 성원이 나와 계약서를 들고 서지훈을 비롯한 팀장들과 설전을 벌였다.
평판에 있어 성원과 지훈은 완전히 상반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대한민국 헌터 브랜드 파워를 메긴다면 다현과 성원이 무조건 일등과 이등을 나눠 가질 것이 분명할 정도로 성원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런 성원이 나와서 이미지 바닥인 헌터들과 기싸움을 하니 댓글 반응이 뜨거웠다.
-내가 오크를 응원하게 될 줄이야!
-제발 오크한테 참교육 받기를.
-어차피 저 계약서는 그냥 휴지쪼가리임.
-오크가 이겨도 어차피 위약금이고 뭐고 낼 놈들이 아님.
역시나 성원이 예측했던 부분과 비슷한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영상은 바로 은가누와 서지훈의 싸움 장면으로 넘어갔다.
그때 비스트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서지훈 헌터가 개차반이긴 하지만…. 정말 오크가 그렇게 강합니까?”
비스트의 말에 경호가 피식 웃었다.
“보시면 압니다.”
비스트는 은가누의 실력에 대해 들었지만, 서지훈의 능력 역시 잘 알고 있기에 쉽게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오크가 강한 게 아니라 은가누가 강한 겁니다. 사실 마계로 끌려가서 오크로 변하지 않았다면 몇 배는 더 강했을 겁니다.”
그때 은가누가 서지훈의 칼날 채찍으로 변한 양팔을 잘라 내는 모습이 화면에 나왔다.
댓글이 아주 난리가 났다.
-미친! 오크가 저렇게 강해도 되나?
-오크가 저 정도면 오우거는 거의 혼자 지구 멸망시킬 수준 아니냐?
-미쳤네. 지금 화면 느리게 돌렸는데도 움직임이 안 보인다.
비스트 역시 놀란 얼굴이었다.
“정말 S급 헌터보다 더 강하네요.”
“앞으로 더 강해질 겁니다.”
벽을 넘어선다면 정말로 강해질 은가누였다.
“자아. 이제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화면엔 울피와 다현이 나와 악마군단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마냥 이런 평화가 이어지지 않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 예상을 산산이 부수는 충격적인 내용에 댓글은 걱정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한 헌터가 중급 악마도 겨우 상대한다는 거 실화냐?
-저거 진짜겠지?
-굳이 수호신이 거짓말할 이유가 있을까?
-인류 멸망인가? 헌터는 답이 없고 대격변 때처럼 신수나 정령이 많은 것도 아니잖아.
방송이 끝나자마자 모두가 한숨을 쉬었다.
“걱정 마. 이번엔 마신까지 아주 잡아 버릴 거니까.”
경호가 우울한 분위기를 느끼고 괜히 더 밝게 이야기를 꺼냈다.
“어? 형님.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 거예요?”
이번 영상처럼 자신이 모르는 무슨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런 건 아니고. 이제부터 생각해 봐야지.”
사무실의 분위기가 다시 무거워졌다.
***
쨍그랑!
동진이 디스팩트의 방송을 보다 화를 참지 못하고 들고 있던 커피잔을 벽에 던졌다.
“아니 미친 거 아니야! 저딴 걸 내 허락 없이 찍었다고? 거기다 그걸 저런 곳에 뿌려!”
동진이 화를 내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성원을 완벽히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중요한 일은 무조건 보고하라고 지시를 한 상황이었다.
‘이건 보고 사항이다!’
먼저 보고하지 않았다가 흘러 들어가서 아가레스의 분노라도 사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었다.
아니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었다.
“보고하기 전에 우선 정확히 알아봐야겠군.”
동진은 즉시 성원을 불렀다.
***
성원이 동진을 해맑은 눈빛으로 마주 봤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표정이었다.
“특별한 의도가 없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내가 우습나?”
성원의 연기가 통했는지 동진의 목소리에서 화가 많이 빠져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저 말 안 듣는 길드원을 어떻게 하면 혼내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한 행동입니다. 절대로 특별한 의도는 없었습니다.”
“그래. 다 좋아. 그런데 왜 저기 수호신이랑 저 여자는 간 거지?”
이곳에 오기 전 경호와 다현, 비스트와 미리 동진이 할 것 같은 예상 질문에 대해 이야기하고 온 상태였다.
다행히 그에 대한 답변도 준비되어 있었다.
“생사결이 아니 대련이기에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말려 줄 인원이 필요했습니다.”
“그게 저 여자다 이건가? 그럼. 저 수호신은 왜 간 거지?”
“그것까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실 수호신이 오고 가는 것을 강제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좋아. 그럼. 마지막으로 묻지. 왜? 무슨 의도로 방송을 한 거지?”
“그것은 정말로 모릅니다. 누가? 왜? 어떻게? 찍은 줄 모르겠습니다. 정말입니다.”
동진이 성원의 눈을 봤다.
거짓을 말하는 눈동자가 아니었다.
애초에 세뇌된 성원은 자신의 질문에 거짓으로 답할 수 없었다.
후우.
동진이 깊게 한숨을 쉬며 속에서 끓어오르는 짜증을 애써 삭였다.
“그래. 알겠다. 다시 연락하지.”
그렇게 성원을 보낸 동진이 책상 서랍에서 섬뜩한 기운을 뿌리는 핏빛 단검을 꺼냈다.
“제길. 쓰기 싫었는데….”
푸욱.
“끄윽.”
단검을 들어 손바닥을 가운데에 찔러 넣었다.
울컥하고 터져 나온 핏물을, 신기하게도 핏빛 단검이 모두 빨아들였다.
동진이 손에 박힌 단검을 뽑아내자 피가 솟아나던 상처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후우. 후욱.”
물론 고통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피를 잔뜩 머금은 단검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우우우우우우웅.
단검이 잘게 진동하더니 확하고 불꽃을 일으켰다.
잠시 후 그 불꽃 안에서 아가레스의 모습이 나타났다.
-네가 날 먼저 찾다니…. 보아하니 좋은 일은 아닌 모양이구나.
아가레스의 눈빛에서 살기가 번들거렸다.
그 눈빛에 동진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 그것이….”
바닥에 납작 엎드린 동진이 성원에게 들은 사정을 최대한 포장해서 오크와 헌터의 싸움, 그리고 그 후 수호신이 나타나 악마군단에 대해 경고한 것을 누군가 영상을 찍어 전 세계에 알렸다는 내용을 아가레스에게 전했다.
모든 것을 들은 아가레스는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니 오크와 인간이 대결하고? 거기다가 오크가 수호신에게 예를 갖추고?’
악마의 지배를 받는 오크가 인간과 대결한 자체가 모순이고.
거기다 수호신에게 예를 갖춘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짜증이 일자.
화르르르르르륵.
그를 비추는 불꽃이 더욱 크고 뜨겁게 타올랐다.
“사, 살려 주십시오!”
바닥에 엎드린 동진이 뜨거운 열기에 목숨을 구걸했다.
-다시 연락하겠다.
화륵.
불길이 사라지며 죽을 것같이 뜨거웠던 열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커억. 컥.”
동진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숨을 몰아쉬었다.
***
경호는 점심 장사를 마치고 믹스 커피 한잔을 홀짝이며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우우웅. 우우웅.
성원에게서 기다리던 전화가 걸려왔다.
“어?”
-형님!
“그래. 어떻게 됐어?”
-저 마계 침략 막고 나면 헐리웃 진출해도 될 것 같은데요.
아주 자신감이 하늘 끝까지 올라가 있었다.
-그래. 우선 연기보다는 마계 정리부터 집중하자. 그래서 악마랑 연락은?
“제가 나가고 바로 악마에게 연락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세뇌됐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딱히 기운을 숨기지도 않더군요.”
-알았다.
전화를 끊은 경호가 바로 은가누에게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