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용사의 골목식당-226화 (226/335)

#226화

“엄마. 내가 저녁에 맛있는 거 해 줄게. 그때까지 푹 자. 원래 처음 특성을 쓰면 많이 힘드니까. 알았지?”

오늘 같은 날은 푹 쉬어야 했다.

“그리고 꼭 마수를 잡지 않더라도 특성을 다루는 것은 잘할수록 좋으니까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연습해요. 아니 그냥 나랑 정기적으로 가서 연습해요.”

너무 울어 벌게진 눈으로 지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아들.”

“그럼. 어서 누워요. 엄마 눈 감을 때까지 안 갈 거니까.”

경호는 방으로 들어가 눕는 지숙을 보다 다시 신화길드 사무실을 향했다.

경호가 사무실을 여니 성원이 소파에 앉아 음료수를 건넸다.

‘시원사이다’였다.

경호가 건네받은 사이다를 보다 피식 웃었다.

“이거 언제 제로 칼로리도 만들었냐?”

“요즘엔 제로만 찾는 사람들이 있어서요.”

경호가 성원의 표정을 유심히 보다 물었다.

“뭔데?”

“저번에 형님이 그랬잖아요. 오크 부족이랑 훈련해 보면 감을 잡을 거라고. 그런데 저만 그런 게 아닌 모양입니다.”

무슨 스무고개도 아니고.

“뭐가? 뭐가 저만 그런 게 아니야?”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는 성원에게 경호가 다시 물었다.

“아시죠? 요즘 갑자기 예전처럼 던전 등급도 안 높고 균열도 잘 없고 그런 거요.”

그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경호였다.

“이제 곧 악마군단이 넘어온다는 소리지. 마수를 아끼고 노예 취급하는 마계 주민을 앞세워 마기를 끌어 올리려는 거거든.”

“그래서 빨리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형님. 그걸 저만 알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응? 뭐라고?

“오늘따라 왜 이렇게 어렵게 이야기하는 거야. 빙빙 돌리지 말고 제대로 이야기해 봐.”

“그러니까요. 형님. 그게….”

‘신화길드.’

지금이야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최고의 길드 중 하나로 당당히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몇 달 전만 하더라도 돈으로 뿌려서 질보다 양으로 밀어붙이는 곳 정도로 알려진 길드였다.

그러다 다현의 도움을 받고 학원까지 설립하면서 강해지기 시작했다. 이에 더해 드워프의 아티팩트와 최근 신수와 정령까지 가세해서 명실상부한 최강의 길드가 되었다.

그러나 던전 등급이 떨어지자 길드원들의 상태가 조금씩 해이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들 의리도 있고 근성도 있는 이들이라 처음 그런 조짐을 보일 때만 하더라도 성원은 그러다 말겠거니 했다.

아니 이럴 때도 있어야 또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나 사람은 참으로 간사한 존재였다.

점점 통제가 안 되기 시작했다.

길드는 가족도 아니고 군대도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회사보다 더 구속력이 낮은 조직이었고 심지어 가족도 갈라서고 군대도 탈영하는 세상이었다.

점점 더 엉망으로 변해 가는 이들에게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고 해 봐야 제대로 듣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안 해도 충분히 강하다고요!

마계에서 넘어올 악마군단에 대비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어차피 요즘 A급 던전도 잘 안 나오는 상황인데 뭘 그렇게 걱정합니까?

쓸데없이 걱정이나 하는 사람으로 몰렸고.

-길드장님이 너무 예민한 거라고요. 쉴 때는 쉬어야죠.

날이 갈수록 그러한 분위기는 심해지고 있었다.

성원과 정수, 다현이 직접 관리하는 팀들은 괜찮았지만 다른 팀에 속한 이들은 정말 엉망이었다.

그래서 최근 일이 잘 풀리는 와중에도 성원은 속으로 끙끙 앓는 중이었다.

마땅히 터놓고 이야기할 데도 없었다.

그러다 지숙의 완쾌 소식과 함께 기분이 좋아 보이는 경호에게 털어놓은 성원이었다.

“후우. 저도 정말 미치겠습니다. 형님.”

“이제 속이 시원하냐?”

경호가 성원을 보며 피식 웃었다.

성원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경호였다.

의리파에 잔정도 많았다.

싫은 소리도 잘못하고 순한 녀석이 그동안 얼마나 속을 끓였을지 눈에 훤했다.

“어떻게 해 줄까? 내가 복면이라도 쓰고 가서 신나게 두들겨 패줄까?”

“아니 그럴 거 같으면 제가 다현 누님께…. 아니 다현 누님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농담이야. 그런데 길드원 모두가 그런 건 아닐 거 아니야?”

“초기 멤버들이나 저, 다현 누님, 정수, 호돈이 관리하는 이들은 크게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학원을 통해 들어온 100여 명이 문제입니다.”

“1팀이 10명이었나?”

“네. 형님.”

“그럼. 팀장 다 모으면 10명이겠네. 내일 너랑 오크 부족에 갈 테니까 그때까지 준비해. 분위기도 잡아야 하니까 다현이한테도 이야기해 놓을게. 오크한테 깨지고 다현이한테 털리면 정신 차릴 거야.”

“누님한테요?”

“왜?”

“요즘 수련하신다고 바쁘신데 방해하는 거 같아서요.”

“아니 다현한테도 도움이 될 거야. 그리고 원래 그런 양아치놈들 교육은 다현이 전문이거든. 아. 그리고 나 공방에 가서 물건 좀 챙겨가도 될까?”

경호의 물음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성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그 공방 다 가져가셔도 되니까. 형님 편하신 대로 하시면 됩니다.”

“이럴 때 보면 재벌 2세처럼 보인다니까.”

“아니 제가 그럼 평소에는 어떻게 보이는데요?”

“아니다.”

“형님!”

***

-최용사 공방.

경호가 간판을 보고 피식 웃었다.

전에 없던 간판이었는데 이번 새로 단 듯 반듯한 모양새였다.

“그냥 ‘신화공방’이라고 하면 될 것을. 하여간 또 솔딘, 그 양반이 고집을 부린 모양이네.”

공방 문을 열기도 전인데 쿵쾅거리는 소음이 꽤나 크게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경호가 거대한 철문을 가볍게 열었다.

후끈한 열기가 전신을 휘감고 지나갔다.

땅땅! 땅땅! 땅땅!

벌겋게 달아오른 쇳덩이를 망치로 메질하는 소리.

치이이이익! 치이이이익!

모양이 잡힌 물건을 담금질하는 소리.

스윽! 스윽! 스윽!

완성된 물건의 날을 시퍼렇게 세우는 소리까지.

모두가 한데 모여 묘한 하모니를 이뤄 내고 있었다.

그러나 소리의 조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곧 비명 같은 목소리가 그 조화를 깨뜨렸기 때문이었다.

“아악! 용사님! 용사님!”

파루스?

경호가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로 파루스의 모습은 엉망이었다.

생기를 잃은 퀭한 눈빛에 다크 서클이 얼굴 전체를 덮고 있었다.

말끔했던 수염도 어느새 덥수룩하게 자라 꼬질꼬질 때가 끼어 있었다.

“아니 꼴이 그게 뭐냐?”

경호는 드워프가 수염을 얼마나 애지중지 여기는지 잘 알기에 의아했다.

“용사님. 저 좀 살려 주세요! 제발요!”

다 죽어 가는 파루스가 철푸덕 바닥에 쓰러져서는 경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쇳소리가 나는 쉰 목소리로 살려 달라 외쳤다.

흠칫한 경호가 파루스에게 물었다.

“설마 악마가 눈치를 채고 찾기라도 한 거냐?”

악마 문양을 흰둥이의 신력으로 지웠다.

그것도 모자라 세계수의 기운을 끌어다가 공방 주변에 결계까지 만들었다.

공방만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악마에게 발각될 일은 없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공방 밖으로 멋대로 돌아다닌 거야? 내가 돌아다니지 말라 했었잖아! 그새 잊었어?”

파루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뇨! 공방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악마가 절 찾은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파루스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당장이라도 악마에게 붙잡혀 끌려가는 그런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근데 얼굴은 왜 그리 상한 거야!”

“아, 악마보다 더한 것들입니다! 저 이러다 정말 죽습니다! 죽어요!”

“너 저번에도 과로사로 죽는다고 엄살 부렸잖아.”

“엄, 엄살이라뇨! 저 정말 죽는다고요! 용사님! 오죽하면 마계에서도 없던 원형 탈모가 생기고 있다니까요!”

파루스가 어미를 잃은 오리 새끼처럼 꽥꽥 소리를 지를 때였다.

“거참! 목소리에 아직 힘이 실린 것 보니 아직 기운이 넘치는구만.”

솔딘이 커다란 망치를 어깨에 멘 채 파루스를 나무라며 등장했다.

“용사님! 연락도 없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어. 그게….”

“저 좀 살려 주십시오! 아니 보름 만에 전투 도끼 300자루가 말이나 됩니까! 어제 겨우 그거 다 만들고 이틀만 쉬게 해달라고 했더니 이번엔 방패 100개를 일주일 안에 납품해야 한답니다. 아주 돈에 영혼을 판 악마들입니다! 저기 솔딘은 악마라고요! 그리고 이거 노동법 위반 아닙니까! 아니 악마계약한 드워프는 뭐 과로로 쓰러져 죽어도 되는 겁니까! 으아아아악!”

뭘 만들든 결국 파루스 혼자서 마력회로를 새겨야 하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결국 파루스가 악을 쓰며 바닥에 드러누워 퍼덕거렸다.

“이제 곧 악마군단이 넘어올 거야. 그리고 우리가 승리하면 정말로 끝이야. 이제 이런 무기 말고 목걸이나 귀걸이 같은 거 만들면서 살아도 되는 그런 세상 말이야.”

경호도 심하게 초췌해진 파루스의 얼굴을 보면 안타깝기도 했지만 지금은 멈출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파루스가 경호의 말에 비척비척 일어났다.

“정말. 정말 저 빌어먹을 마계놈들 박살 낼 수 있는 겁니까? 그리고 이것도….”

그러고는 입고 있는 조끼를 풀어 헤치며 가슴에 박혀 있는 투명한 수정, 영혼석을 보였다.

“이곳에 갇힌 그들도 그렇게 되면 정말 자유로워질 수 있겠지요?”

“그래. 마왕 사탄을 죽이면 영혼석의 구속력도 사라질 거다.”

“후우.”

생기를 잃었던 파루스의 눈동자에 조금씩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용사님. 그럼. 용사님이 하신 말씀을 믿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꼭 마계놈들 다 없애 주십시오!”

경호가 고개를 끄덕이다 솔딘을 보며 말했다.

“혹시 무기 여유분이 있나요? 중병기 위주로요.”

“급하십니까?”

“며칠 안으로 큰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어서요.”

흐음.

솔딘이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사실 지금 만든 물건들은 대부분 기간 연장이 가능하니까 좀 미뤄도 될 거 같습니다.”

생기가 돌기 시작한 파루스의 눈빛이 다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경호가 물건을 받아 가면 그만큼 더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요?”

“그런데 얼마나 필요하신데요? 그리고 중병기라면 어떤 걸 이야기하시는 거죠?”

사실 중병기는 그리 인기 있는 장비가 아니었다.

무기의 크기와 무게로 인한 타격력에서 장점이 있지만 다루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거기다 헌터들은 특성을 이용하여 공격력을 높이는 것이 가능하기에 다루기 쉬운 무기가 인기가 좋았다.

물론 오크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솔딘. 이번에 넘어와 투항한 오크 부족에 대해서 들어봤죠?”

“뉴스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수백의 오크가 투항했다고 들었습니다.”

투항한 수백의 오크!

“설마! 에이! 설마!”

파루스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설마! 설마!를 외쳤다.

“그 오크들이 앞으로 넘어올 오크도 막아서야 하고 그렇게 다시 투항하게 만들고 할 인재들입니다. 그런데 보니 무기들이 형편없더군요.”

마계의 주민이라고 하지만 벌레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무기가 형편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 그럼. 오크가 쓸 만한 무기를 보여 드릴까요? 창고로 가시죠.”

“안 돼! 안 된다고!”

파루스의 처절한 외침을 뒤로하고 창고로 향했다.

와아!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철제 보관함이 2단으로 빼곡히 놓여 있는 거대한 창고엔 번쩍이는 아티팩트들이 가득 차 있었다.

“다행히 내일이 정기 출고일이라 물건이 가장 많은 때입니다. 용사님이 보시고 원하시는 것은 뭐든 챙겨 가시면 됩니다.”

“아니 솔딘. 납품일을 미룰 수 있는 것만 가져가겠습니다.”

“우선 고르세요. 위약금을 내더라도 알아서 하겠습니다.”

경호는 날이 번뜩이는 전투 도끼를 보며 물었다.

“이게 파루스를 저 지경으로 만든 원흉인 모양이군요.”

경호의 물음에 파루스가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300자루라고요?”

“네. 운철과 미스릴을 소량 섞어서 질도 좋고 마력회로를 통해 날카로움과 강도를 높여서 쓸 만할 겁니다.”

“그럼. 이거 300자루 다 가져가도 될까요?”

“물론이죠. 다른 것들도 좀 더 보시고 가져가셔도 됩니다.”

경호와 솔딘의 대화에 파루스의 낯빛이 점점 새하얗게 질려갔다.

“그럼. 지금 가져가도 될까요?”

“그럼. 직원을 시켜서 그쪽으로 보낼까요?”

“아니 제가 들고 가죠. 뭐.”

경호의 손짓에 따라 보관함이 열리고 300자루의 전투 도끼가 떠올랐다.

그리고는 경호가 열어둔 아공간을 향해 줄지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300자루의 거대한 전투 도끼가 모습을 감췄다.

파루스는 그 모습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히죽히죽 웃었다.

“그럼. 저 갈게요!”

경호가 솔딘과 파루스에게 인사를 하고 공방을 나오자 닫힌 철문을 뚫고 비명처럼 날카로운 파루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용사는 개뿔! 이 악마보다 더한 놈아! 정말 그걸 다 가져가야 속이 후련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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