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용사의 골목식당-222화 (222/335)

#222화

“다현아. 엄마. 안 죽는 거 맞지?”

병원에서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지숙은 술취한 사람처럼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아무래도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엄마. 그거 한 번만 더 물으면 백 번쯤 될 거 같은데.”

“아무래도 꿈같아서 그래.”

“걱정 마요. 꿈 아니니까. 나는 처음부터 엄마가 이겨낼 거라 믿고 있었어.”

“다현아. 고맙다. 네 덕분이다.”

“내 덕분은 무슨. 각성 때문인데. 그리고 원래 각성이 그래. 갑자기 육체적 변화도 생기고. 레벨을 올리지 않더라도 일반인에 비해서 근력이나 감각이 높으니까.”

“그런데 각성자 검사는 안 받아도 되는 거니?”

지숙이 염려된다는 표정으로 다현에게 물었다.

“검사가 의무는 아니니까. 대신 성원이에게 이야기해서 마력이나 특성을 다루는 법은 익혀야 할 거야. 갑작스럽게 예상치 못한 능력이 튀어나와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무슨 말인지 알지?”

지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현의 말처럼 요리를 하다 말고 폭발 공격이 냄비를 향해 날아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자. 후우.”

잔뜩 긴장했던 지숙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꼬르르르르륵.

그때 그녀의 배에서 배고픔을 알리는 신호가 울렸다.

“어?”

“그러고 보니 검사하고 한다고 아침도 안 먹었잖아.”

“나이 드니 한 끼만 걸러도 힘드네. 뭐 먹고 싶은 거 있니? 완치 기념으로 엄마가 우리 다현이 먹고 싶은 거 다 해 줄게.”

지숙은 긴장이 풀리고 나니 허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보다 10년간 같이 고생한 다현이나 식당에 있을 아들, 경호에게 맛있는 것을 해 주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게 들어서 한 대답이었다.

“오늘 같은 날은 우리가 해야지. 엄마 먹고 싶은 거 없어요?”

“나? 나야 뭐. 너희들이 좋아하는 거 먹고 맛있어하는 게. 그게 좋은 거지.”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우웅. 우웅. 우웅.

때마침 경호에게 전화가 왔다.

-어때? 끝났어?

“어.”

-그러면 연락 좀 주지. 하여간…. 엄마는?

“어. 엄마 옆에 계시지. 데이트 그만하고 갈 거니까. 맛있는 것 좀 해줘. 알았지?”

-그래. 알았어. 고….

뚝.

한결같은 통화 스타일을 보이며 전화를 끊은 다현이 지숙에게 말했다.

“데이트 끝내고 간다고 했어. 경호가 맛있는 거 해 놓을 거야. 엄마. 아픈 거 다 나았어도 경호에게 이야기 안 할 거지?”

“뭐 하러. 괜히 자기 탓하며 속상할 텐데. 그냥 둬라.”

“알았어. 내가 따로 이야기 안 할게요.”

***

“그나저나 뭐하지?”

주방에 냉장고를 열어 보며 경호와 미호가 고민 어린 표정을 지었다.

지숙도 없고 ‘골목대첩’ 결승전 주제도 나와 오늘 하루 식당 문을 열지 않기로 했기에 다행히 여유는 있었다.

“오빠. 왜요?”

결승전 음식 연습을 위해 미호도 나와 있었다.

“다현이가 엄마랑 여기서 식사하겠다고 하는데. 뭘 해야 하나?”

‘면’과 ‘밥’에 이어 이번 주제는 밥과 함께 먹는 ‘한식’이었다.

그것도 자유 주제.

창작 요리는 배제한다고 했지만 애초에 현 단계에서 마수 고기를 가져다 창작 요리를 만드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덕분에 이번에는 재료를 직접 구해서 하기에 달리기니 사다리 타기 같은 것은 안 해도 됐다.

“어머님. 좋아하시는 거 없어요?”

“엄마가 좋아하는 거라….”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식이라는 게 당연히 존재한다.

한식이면 다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향이 너무 강한 음식은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음. 닭 요리를 대체로 좋아하는 거 같긴 하네.”

육해공(陸海空)으로 식재료를 나눈다면 엄마는 주로 공, 닭이나 오리고기를 다른 고기나 생선보다 좋아했다.

“오빠. 그럼. 이왕 할 거 겸사겸사 결승 주제 생각하면서 만들까요?”

“그럼. 주재료는 칼날타조로 하고. 뭐가 좋을까? 밥에 어울리는 요리여야 할 텐데.”

닭이나 오리.

거기다 한식이면 사실 그렇게 메뉴가 다양하진 않다.

닭곰탕이나 초계탕, 백숙 같은 메뉴를 밥과 함께 먹는 ‘한식’으로 보기에는 좀 어려웠다.

“음. 2차전에 겹치는 국이나 탕은 제외하고. 치밥이 유행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하긴 좀 그렇고. 닭매운탕이나 안동찜닭은 어때요?”

오! 그거 괜찮을 거 같았다.

“음. 안동찜닭으로 할까? 엄마가 매운 거 별로 안 좋아하시거든.”

“그럼. 그렇게 해요. 곧 어머님이랑 다현 언니 올 테니까. 바로 하죠. 오빠. 안동찜닭 할 줄 알아요?”

사실 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기본 요리 실력도 있었고 특성으로 [용의 심장]과 함께 [요리]가 생기며 레시피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하는 요리마다 마치 특성에 따른 보정이라도 되는 듯 맛도 기가 막혔다.

최근엔 요리를 많이 해서 그런지 [요리] 특성 레벨이 4로 올라섰다.

그래서 그런지 미호도 요리에 있어서 완전히 경호를 믿고 맡기고 있었다.

“어. 그럼. 내가 해 볼까? 네가 보면서 부족한 거 있으면 도와주고.”

“그럼. 오빠. 제가 밥하고 밑반찬 할 테니까 찜닭은 오빠가 해요.”

미호가 밥솥을 꺼내며 씩씩하게 말했다.

“오케이!”

그전에도 물론 정령계에서 10년간 홀로 요리를 하면서 쌓인 실력이 있기에 요리를 곧잘 했지만 이제 [요리] 특성에 대한 능력이 있었다.

거기다 시스템 제한을 풀며 더 날카로워진 감각이 [요리] 특성과 결합해 실력을 더 끌어올렸다.

경호가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에 손질된 칼날타조 고기들이 담긴 지퍼백이 몇 개 눈에 들어왔다.

상태창처럼 딱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이 중에 가장 신선한 건 이거네.’

단순한 감이라고 하기에는 훨씬 강한 확신이 드는 그런 감각이었다.

경호는 가장 신선한 칼날타조 고기가 담긴 지퍼백을 꺼냈다.

고기 부위는 다리 부위의 살코기였는데 양은 대략 1kg 정도 되는 정도였다.

탁! 탁! 탁! 탁!

한입 크기로 고기를 토막 낸 경호가 냄비에 물을 올리고 가볍게 데치듯 삶아서 물로 씻었다.

싱싱한 녀석이기에 이러지 않아도 잡내가 나지 않지만 핏물을 따로 뺄 필요 없이 가볍게 데치는 게 더 나았다.

이제 같이 넣을 채소를 손질했다.

대파, 양파, 당근, 감자를 적당하게 썰었다.

그리고 같이 넣을 납작 당면도 물에 불렸다.

안동찜닭은 만들기 어려운 요리가 아니다.

문제는 맛 내기 어려운 요리라는 점이었다.

과정이 복잡한 요리들은 과정 중에 맛이 잡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맛이 보장되지만 간단한 요리들은 재료나 양념, 조리 기술로 맛을 내야 했다.

튀김이나 볶음처럼 조리 기술이 크게 필요한 요리도 아니기에 특히나 양념이 중요했다.

그런 면에서 경호의 특성이 또 능력을 발휘했다.

‘자아. 보자.’

양념 재료를 쓱 훑어봤다.

물론 머릿속에 레시피를 담고 있지만 그것을 떠올리기 이전에 자연스럽게 느낌이 먼저 왔다.

‘이거랑. 이거. 저거랑. 이거면 되겠네.’

그리고 레시피에 있지만 지금 가게에 없는 것을 떠올리면 대체할 만한 것이 또 느껴졌다.

‘이걸 대신하면 된다는 뜻인 거 같은데.’

그렇게 해서 고른 것들이 간장, 흑설탕, 청주, 후추, 매실청이었다.

계량도 [요리] 특성을 이용하면 쉬웠다.

그전까지 요리는 경호가 정령계에서 했던 요리라 특성을 이용할 필요가 없었지만 지금하는 안동찜닭처럼 레시피만 겨우 아는, 생소한 요리 같은 경우는 특성의 도움이 있으면 양념 계량도 간단했다.

양념 그릇을 꺼내서 우선 간장을 들고 붓기 시작한다.

그러다 묘한 감각이 들면 멈추고.

다음 흑설탕을 들고 붓다가 또다시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감각이 느껴지면 또 멈추고.

청주도, 후추도, 매실청도 그렇게 계량해서 넣었다.

옆에서 힐끗거리며 지켜보던 미호가 신기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오빠. 이 양념 다 된 거예요?”

사실 잘 모르겠지만 경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맛을 보긴 해야겠지만 대충 이 정도면 될 거 같아서. 먹어 볼래?”

미호가 새끼손가락으로 양념을 폭 찍더니 맛을 봤다.

“음음! 오! 오빠. 이거 완전 딱인데요. 단짠 완전 제대로네요. 매실청 때문에 약간 상큼함도 있고요.”

미호가 엄지를 치켜세우며 하는 칭찬에 경호도 맛을 봤다.

사실 처음 해보는 안동찜닭 양념이라 잘 모르겠지만 미호의 말처럼 단짠에 살짝 느껴지는 상큼함까지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럼. 이제 해 볼까?”

마늘의 민족답게 마늘 한 움큼을 다져서 데친 칼날타조 고기를 넣고 참기름을 두르고 가볍게 볶았다.

그리고 물을 고기가 잠길 정도로 넣고 양념과 함께 채소를 넣었다.

매콤함을 위해 건 고추도 넣고 좀 더 끓을 때 당면도 넣었다.

이제 한 3분 더 끓이면 완성이었다.

경호가 다현에게 전화하려는 순간.

람보르기니 특유의 배기음이 식당 문밖에서 들렸다.

타이밍이 아주 예술이다.

“미호야. 이거 2분만 있다 꺼 줘.”

“네. 오빠.”

경호가 홀로 나서자 지숙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 아들!”

지숙이 눈시울을 붉힌 채 경호에게 달려와 콱 안겼다.

그런 지숙의 모습에 경호도 가슴이 울렁거렸다.

죽는다는 단순한 죽음의 공포가 아닌 아들에 대한 미안함, 더는 보지 못하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컸을 지숙의 마음을 경호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애써 숨겨온 지숙을 위해 경호 역시 모른 척해야 했다.

그저….

“뭐야? 다현이가 때렸어?”

그 타이밍에 다현이 들어왔다.

“너 데이트 폭력이라도 한 거야? 서지숙 여사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데.”

평소 같았으면 등짝스매싱이라도 날렸겠지만 지금 경호의 표정을 보곤 다현도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아마 배고파서 그러실 거야. 왜? 너무 배고파서 눈물 찔끔 날 거 같은 때 있잖아.”

“아이고. 그럼. 어서 앉으세요.”

경호가 지숙을 식탁에 앉히고는 주방에 들어갔다.

“오빠. 잘 된 거 같아요. 간도 딱 맞아요!”

센스쟁이 미호가 밑반찬이며 밥까지 세팅을 완료한 상태였다.

“미호야. 그럼. 먼저 가지고 나가라. 내가 찜닭 담아서 나갈게.”

경호가 찜닭을 커다란 접시에 담아서 나가자 식당으로 성원과 정수가 들어오고 있었다.

“형님. 좋은 냄새가 길드 사무실까지 나서 왔어요.”

“그러게요. 길드원 전체가 오겠다는 거 겨우 말리고 둘만 왔습니다.”

당연히 뻥이었다.

그냥 배고파서 뭐라도 얻어먹을 심정으로 들린 거지만 먹을 복은 정말 타고난 성원과 정수였다.

안동찜닭이 담긴 접시를 들고 가던 경호가 그런 둘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래. 앉아. 미호야. 밥 두 개만 더 퍼줄래? 없으면 그냥 쫓아내고.”

“넉넉히 해서 괜찮아요. 여기 앉으세요. 금방 가져올게요.”

“그런데 뭔 날인가요. 형님. 누님도 오시고.”

성원도, 정수도 다 알고 있었고 심지어 신화병원의 신태진 과장에게 보고까지 받았지만 모르는 척 너스레를 떨었다.

“어제 네가 알려준 결승전 주제 때문에 요리 연습 중이었는데. 때마침 엄마랑 다현이가 온 거지. 서지숙 여사님. 배고파서 눈물까지 찔끔 나셨는데 어서 먹어 보세요. 자아.”

경호가 집게로 양념이 잘 밴 살코기와 당면을 퍼서 지숙의 밥그릇에 올렸다.

“엄마. 밥에 쓱쓱 비벼서 먹어 봐요. 평소에 닭요리 좋아했잖아.”

지숙이 놀란 표정으로 경호를 봤다.

“아들. 설마 그래서 이거 한 거야? 정말?”

“결승전에 뭘 하면 좋을까 하다가 이왕이면 엄마가 좋아하는 요리해 보고 싶어서. 하여튼 빨리 먹어 봐요.”

지숙은 경호의 말에 울컥했지만 애써 참으며 크게 한술 떴다.

고기와 당면, 그리고 양념이 스며든 밥 한 숟갈.

고기는 양념도 촉촉하게 잘 배어 있었고 식감도 부드러웠다.

당면의 말캉하면서 쫀득한 식감이 재미를 더했고 밥에 스며든 양념은 달큼하면서도 짭조름하고 고소하기까지 했다.

지숙이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경호를 봤다.

“우리 아들. 언제 이렇게 컸지? 이제 정말 엄마가 배워야겠네. 너무 맛있어. 정말 너무 맛있다. 아들.”

“에이. 눈물 날 정도로 배고픈데 맛없는 게 있겠어. 자아. 당면 부니까. 빨리들 먹어. 어서.”

경호가 무안한 듯 말을 돌렸고 다들 고기와 채소를 건져 밥을 비벼 입에 넣었다.

“억! 안동찜닭 거의 거기서 거긴데. 이건 좀 맛이 사긴데요.”

정수의 솔직한 평가가 먼저 튀어나왔다.

“형님! 이거 무조건 1등입니다! 결승 우승이라고요!”

이제 영 신뢰가 가지 않는 성원이 역시나 또 1등을 예상했다.

“역시 밥이랑 먹으니까 더 맛있네요. 오빠. 양념이 정말 대박이에요.”

미호가 양손으로 엄지를 치켜세우며 대박을 외쳤다.

그때 구석에서 냄새만 맡으며 참고 있던 흰둥이가 슬쩍 경호 옆으로 와서는 말을 걸었다.

-경호 님. 저도 조금만 주세요. 이거 냄새가 아주 그냥 끝내….

그때였다.

“아, 아들! 흰둥이가 또 말을 해! 분명 내 귀에 들린다니까!”

놀라 눈을 부릅뜬 지숙이 손가락으로 흰둥이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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