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용사의 골목식당-215화 (215/335)

#215화

‘골목대첩’

3화 분량의 이벤트성 프로그램이었지만 예상보다 더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골목식당’으로 마수고기에 대한 이목이 쏠리고 있던 상황에서 가장 핫한 신화그룹과 콜라보한 프로그램이다 보니 인기가 없으래야 없을 수가 없었다.

정규방송에 편성이 되지 않았음에도 시청률이 20%가 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2차전 녹화 날이 되었다.

“미호야. 걱정 마. 오늘은 달리기 안 한다고 하니까.”

출연자 대기실에서 1차전과 마찬가지로 잔뜩 긴장한 표정의 미호를 보며 경호가 말을 건넸다.

“아니. 사실 그래서 더 걱정이에요.”

“엥? 그게 무슨 말이야?”

“오빠. 그때도 사실 제가 구르고 자빠지고 해서 겨우 순위가 올라간 거잖아요.”

“아. 그게 또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구나.”

“아. 호돈이 오빠한테 낙법까지 배웠는데…. 쳇.”

“결승전에는 달리기를 부활시켜 달라고 청탁이라도 넣어 볼게.”

어느 새 긴장을 풀고 대화를 하고 있는 이들에게 반갑지 않은 인물이 다가왔다.

“경호 씨. 이번에도 1등은 저희 팀이 할 겁니다. 이번에는 정말 준비를 많이 했거든요.”

경호는 어차피 마혼의 기운과 최면으로 버거퀸 팀이 1등을 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어차피 이 경연 자체가 마수 고기를 알리기 위한 홍보 수단이었기에 알아서 이런 라이벌 구도를 만들어 주니 오히려 고마울 따름이었다.

“오늘은 저희도 지지 않을 겁니다. 아주 특별한 밥 요리를 준비했거든요.”

질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경호도 동진에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가요? 그럼. 기대하겠습니다.”

“네. 그럼. 행운을 빌….”

그때 안내 방송이 울렸다.

-잠시 후 녹화를 시작하겠으니 모두 제2 세트장으로 입장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말씀 드….

***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1차전이 방송에 나가고 저를 비롯한 골목대첩 관계자 모두가 아주 깜짝 놀랐습니다!”

조성주가 특유의 씩씩한 목소리로 진행을 시작했다.

“시청율이 무려 20%가 넘었습니다! 대한민국이 난리가 났습니다!”

성주 역시 ‘천종원의 골목식당’에 이어 연타석 홈런을 날린 상황이었기에 흥분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흥분을 했습니다. 그럼. 시작에 앞서 1차전과 달라진 팬트리 이벤트에 대해서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차전의 팬트리 레이스는 방송이 나간 후 뜨거운 논란에 휩싸였다.

그 놀란의 중심에는 행운식당 팀의 ‘미호’가 있었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둔한 운동신경으로 팬트리 레이스에서 두 번이나 넘어졌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어린 순서대로 뽑으면서 가장 어리고 약해 보이는 미호는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아무리 랜덤이라고 하지만 남녀가 저렇게 같이 나가는 것은 너무 불공평한 거 같은데.

특히나 미호의 허당미가 은근히 인기가 있었다.

-우리 미호 누님을 보호하라! 이런 말도 안 되는 레이스는 반대한다!

물론 재미있었다는 의견도 많았지만 방송국 입장에서는 불만 사항이 나오는 부분을 최대한 없애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했다.

그렇다고 원하는 재료를 모두 제공하는 것은 재미 부분에서 떨어진다고 생각을 한 제작진은 가장 말이 나오지 않을 방법을 떠올렸다.

“복불복 사다리 타기입니다!”

사다리 타기.

말 그대로 기술이나 실력이 필요하지 않은 방법이었다.

“자아. 그럼. 조금 전 출연팀이 녹화장으로 들어온 순서대로 사다리를 배정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각자 배정된 조리대에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사다리 배정은 어떻게 하지?’라고 고민하던 때였다.

“에이. 설마 또 꼴찌는 아니겠지? 이번에는 꽈당녀도 없어서 꼴찌 해 봐야 도움도 안 될 텐데.”

“푸훗. 그건 또 그렇네요. 그래도 칼날타조 고기만 있으면 되니까. 그리 치열하진 않을 거예요. 대부분 덮밥이나 볶음밥에 쓸 고기를 구할 테니까요.”

“살짝 걱정되긴 하네. 우리 팀의 요리가 나쁘진 않지만 다른 팀의 맛이 강하면 묻힐 수도 있으니까.”

경호의 걱정은 다른 게 아니었다.

성원이 무조건 1등 할 수 있다고 호들갑을 떨 정도로 칼날타조 육수밥은 분명 맛있었다.

하지만 덮밥이나 볶음밥 같은 것에 비하면 맛이 있다 없다로 구분하기긴 어렵지만 약한 것은 사실이었다.

“자아! 사다리 타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설마. 설마 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행운식당 팀! 이번에도 꼴찌, 열여섯 번째 입장입니다! 1차전에 이어 2차전도 꼴찌!”

하아.

경호가 성주의 멘트에 한숨을 뱉었다.

‘그래. 60억 중에 정령계 끌려갈 정도의 운빨인데 꼴찌 안 하는 게 이상한 거지.’

그렇게 모두가 거치고 간 팬트리에 경호가 들어갔다.

“미호가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하아. 이거 막막하네.”

자신도 모르게 경호는 휑한 팬트리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목에 달린 마이크와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가 모든 것을 담고 있다는 것을 깜빡한 경호였다.

팬트리에 제대로 된 고기가 없었다.

저번엔 그래도 우둔살이라도 골라 올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마저도 없이 요리하기 어려운 자투리 고기만 남아 있었다.

“뭐. 오히려 잘됐네.”

참가자들을 모니터링 하던 성주가 팬트리에서 두리번거리는 경호의 중얼거림을 들었다.

“아니! 도대체 뭐가 잘 됐다는 건가요? 지금 남아 있는 거라고는 자투리 부위밖에 없는데 말입니다.”

경호는 성주의 말에 의뭉스럽게 피식 웃고는 자투리 고기와 향신 채소, 약초를 담아서는 조리대로 돌아왔다.

미호가 자투리 고기들을 보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오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칼날타조의 목 부위랑 삼족우의 꼬리만 담아 놓은 건 주최 측의 농간 아닌가요? 지금 당장 꼬리곰탕을 끓여서 국밥으로 낼 수도 없고.”

“아니지. 우리에게 필요한 건 육수잖아. 어쩌면 더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어. 거기다가 퍼포먼스도 보여 줄 수 있고.”

“퍼포먼스요?”

뮤직뱅크에나 어울릴 단어가 경호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미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육수용 고기를 발라내야 하거든.”

당연한 이야기지만 육수는 무엇을 주재료로 삼느냐에 따라서 굉장히 다른 맛을 낸다.

고기 육수와 뼈 육수.

특히나 둘은 굉장히 달랐다.

간단하게 말하면 평양냉면은 고기 육수 베이스고 함흥냉면은 뼈 육수가 베이스였다.

또 다른 예로는 육개장이나 미역국은 고기 육수 베이스고 감자탕이나 순대국은 뼈 육수 베이스였다.

고기 육수가 깔끔하면서 진한 맛이라면 뼈 육수는 구수하면서 진한 맛이었다.

경호가 할 육수밥은 그래서 고기 육수로 밥을 지어야 했다.

뼈 육수는 삶으면 연골조직에서 콜라겐이 녹아 나오기 때문에 점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농도가 짙은 뼈 육수로 밥을 하면 질어진다.

찰기는 있어야 하지만 진밥이 되면 식감이 떨어져서 아무리 맛이 좋아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가 없었다.

칼날타조의 목과 삼족우의 꼬리는 크기가 작지 않은 편이지만 두꺼운 껍질과 뼈의 구조, 얽혀 있는 인대와 근육의 결 때문에 손질하기 쉬운 부분이 아니었다.

부드러운 닭 목살도 손질하기가 어려운데 칼날타조의 육질은 그보다 훨씬 단단한 난도가 훨씬 높았다.

경호가 과도를 꺼내 들어서는 마력을 아주 살짝 끌어 올렸다.

흐릿한, 마력검기라고 부르기 민망한 기운이 과도에 어렸다.

최하급 마수의 가죽에 겨우 상처 정도 낼 수 있을 듯한 수준의 마력검기였다.

하지만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카메라를 든 스텝들이 하나둘 붙으며 성주가 행운식당 조리대를 향해 걸어왔다.

“아니! 헌터가 마수를 사냥할 때나 사용하는 마력검기가 이곳 경연장에서 과도 위에 피어올랐습니다!”

솔직히 오버였다.

성주는 주의종 마수의 가죽도 뚫기 힘든 수준의 마력검기를 가지고 굉장히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하지만 요리 경연이라고 하더라도 방송 프로그램이기에 분명 필요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경호도 이를 충분히 의식하고 있었다.

그냥 조용히 손질하려고 했는데 팬트리에서 자투리 고기를 들고나오는 자신을 보며 실실 웃는 동진을 보자 ‘그러지 말자. 우승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라고 속으로 되뇄지만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경호는 이왕 하기로 한 거 제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칼날타조의 목에서 살과 뼈를 분리해 내는 것은 마력검기도 마력검기지만 그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이 더 중요했다.

스으윽.

과도가 칼날타조 목의 껍질을 타고 들어가더니 멈추지 않고 성인 팔뚝 크기의 목을 이리저리 타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질긴 인대와 단단한 근육, 그리고 복잡한 목뼈 사이를 과도가 정확히 타고 다니며 살을 분리했다.

터억.

어른 주먹 크기의 고깃덩이가 목에서 분리되어 나왔다.

“대단합니다! 칼을 빼지 않고 단번에 뼈와 살을 분리했습니다! 아니 최경호 참가자. 도대체 어떻게 하신 거죠? 그전에 손질해 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정령계에서 수천 마리의 칼날타조를 잡으면서 깨달은 것이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사실 제가 저기 심사위원으로 계신 이성원 길드장님이랑 친분이 있다 보니 바쁠 때마다 마수 고기 처리를 돕고 있었는데 이렇게 도움이 될지는 몰랐습니다.”

“아! 이거 이성원 길드장님과의 친분이 이렇게도 도움이 되는군요! 분명 도와줄 때는 귀찮을 텐데요. 안 그렇습니까?”

“사실 귀찮았죠. 식당 일도 바쁘니까요.”

“전화위복이 되었네요. 그럼. 이어서 삼족우 꼬리 손질 모습도 보시겠습니다.”

성주의 말에 경호는 토막 나 있는 삼족우 꼬리를 도마 위에 올렸다.

삼족우 꼬리는 칼날타조의 목보다 구조가 단순했지만 껍질과 인대의 단단함이 훨씬 더 강했다.

경호는 단도를 힘겹게 박아 넣어 손질하는 척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단도에 두른 허접한 마력검기 만으로 쉽게 손질한다면 주목을 받는 것을 넘어 의심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한참 힘든 척하며 삼족우 꼬리에서도 커다란 살코기를 떼어 냈다.

“아니 그런데 이 고기들은 쫄깃함을 넘어 질긴 부위 아닙니까? 부드럽게 만들려면 반나절 이상 삶아야 할 텐데. 50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괜찮을까요?”

이제 아예 다른 조리대는 갈 생각도 하지 않고 경호에게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쉽지는 않겠지만 충분히 맛있는 요리가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성주의 눈에 엄청나게 손짓을 날리고 있는 연출자가 들어왔다.

“그럼. 다른 출연자도 만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성주가 가고 경호는 미호에게 쌀을 씻으라고 말하고는 육수을 낼 압력솥에 향신 재료를 넣기 시작했다.

“오. 여긴 한약재까지 완전 다 갖춰져 있어서 더 맛있겠는데.”

기력 회복에 좋은 황기와 어혈을 풀어 주는 엄나무, 관절에 좋은 오가피, 그리고 혈액 순환에 좋은 인삼까지 넣고는 칼날타조 목살과 삼족우 꼬릿살을 토막 내서 넣고는 불에 올렸다.

고기가 연해지려면 반나절을 삶아야 했지만 육수를 내기에는 20분이면 충분했다.

거기다 경호가 아무도 모르게 마력으로 솥 안에 열을 더해서 더 빨리 끓게 만드는 중이었다.

“자아! 여러분! 20분 남았습니다!”

어느새 40분이 흘렀다.

남은 시간은 20분 남짓.

경호는 고소한 김이 뿜어나오는 압력솥을 찬물로 식혀서 뚜껑을 열었다.

화아악!

새하얀 김이 확 올라오며 진하면서도 쌉싸름한 향이 코를 찔렀다.

한약재가 듬뿍 들어간 닭백숙 같으면서도 고기가 듬뿍 들어간 곰탕 같기도 한 그런 향이었다.

“자아. 이제 밥을 지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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