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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용사의 골목식당-210화 (210/335)

#210화

‘으아악! 저질러 버렸다! 으아아악!’

경호는 ‘차라리 죽이라고!’라고 소리를 지르는 악마를 보며 짧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미치겠네. 이게 아니었는데.’

그저 오크들이 악마의 지시에 적당히 맞춰 주다가 수호신인 울피가 오면 증폭을 걸어 주면서 티 안 나게 도와주며 생포하는 게 경호의 원래 계획이었다.

처음 은가누가 몇 대 맞을 때까지만 해도 경호도 그렇게 진행하려 했었다.

흥분한 조장들까지 말렸던 경호였다.

‘후우! 그러게 왜 선을 넘냐고!’

마혼의 기운 때문에 다시 명령을 내리면 되므로 징벌적인 폭력은 가해도 설마 죽이기야 하겠냐고 생각하던 경호였다.

그런데 도끼를 들어 은가누의 목을 치려는 악마의 행동에 경호도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 나를 죽이지 않겠다는 거냐!

-그래. 안 죽인다니까.

악마의 핏빛 눈동자가 마구 떨렸다.

-사실 안 죽이는 게 아니라 지금은 못 죽여!

경호는 주먹에 마력을 실어 가볍게 악마 녀석의 턱을 후려쳤다.

뻐억.

켁! 하는 소리와 함께 꿈틀거리던 몸이 축 처졌다.

그렇게 악마를 기절시킨 경호가 주변을 둘러봤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은가누가 힘겹게 일어나서 자신을 향해 다가왔다.

조장들도 함께였다.

‘아! 뭐라고 하지….’

그리고 모두 ‘말도 안 돼!’라는 눈빛으로 경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

경호도 그런 그들을 ‘이거 어쩌지?’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아니. 지금 이 힘도 수호신님이 전해 준 것은 아니겠지요?

중급 악마를 죽일 힘을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수호신이 있다면?

그런 힘을 가진 수호신이 있다면 그냥 마계를 쓸어버릴 수도 있을 터였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은가누가 대답을 못 하고 눈알만 굴리고 있는 경호를 보며 말을 이었다.

-오크로 변하면서 아둔해지긴 했지만 사실 마계어를 하는 것부터 이상했습니다. 전음을 하는 것도 그렇고요. 그리고 악마가 나타났음에도 풍기는 여유로움 역시 그랬습니다.

은가누는 오크 주제에 경호보다도 예리한 구석이 있었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더는 변명도, 거짓말도 하기 어려웠다.

하아.

짧게 한숨을 쉰 경호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사실 제가 10년 전에….

***

영문도 모르고 정령계에 끌려가 엄청나게 고생고생해서 결국 마계와 싸워 이기고 10년 만에 지구로 돌아왔는데 이곳도 마계에 침략을 받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수호신도 회복시키고 세계수도 심고 여차여차해서 지금까지 왔다고 설명했다.

덥썩!

-저,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아니 정말 마계의 침략을, 아니 마왕을 죽이셨다고요! 마왕을요!

은가누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니 옆에 있는 조장들 몇몇은 이미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경호는 너무 드라마틱한 반응에 당황했다.

-아니. 네. 폭식의 바알과 나태의 벨페고르를 죽였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은가누와 조장들이 경호의 말에 함성을 질렀다.

마치 아이돌을 만난 여중생 같은 표정들이었다.

-그, 그래서 그랬군요! 마계에도 침략에 실패했다는 소문이 자자했었습니다. 전에 없던 마계 내부 싸움도 잦았고요.

외곽에 살던 이들도 알 만큼 바알과 벨페고르가 죽은 후 그들이 지배하던 구역을 차지하기 위한 나머지 마왕들의 싸움은 꽤 치열했었다.

-그게 여기 계신….

-경호, 최경호입니다.

-최경호님 덕분이었군요.

다현이나 성원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았을 때보다 훨씬 격한 반응이었다.

여기 있는 이들은 ‘로나스 대륙’이라는 차원계에서 살던 이들이었다.

‘혈사자 기사단’이라는 긍지 높은 황실기사단으로 끝까지 악마 군단과 맞서 싸웠기에 경호의 업적이 얼마나 대단하고 힘겨웠을지 짐작하는 것이었다.

과한 리액션이 슬슬 부담스러울 때쯤.

때마침 구원군이 도착했다.

앙앙!

-경호 님!

끼이잉?

-아니? 이건?

흰둥이와 울피가 거의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게 변한 악마 앞에 서서는 경호를 불렀다.

“어! 왔어?”

-아니, 경호 님. 이게 도대체?

흰둥이의 말에 경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짤막하게 조금 전 상황을 설명했다.

-아니! 그래도 참으셨어야죠! 이거 수습 어떻게 하시려고요. 최소한 저희가 올 때까지 기다렸으면 수호신에게 당했다고 핑계라도 댈 텐데….

문제는 계속 저렇게 기절시켜 놓을 수도 없었다.

마계로 연락해서 보고해야 하는데 수호신이 때려잡은 것이 아닌 경호가 때려잡은 상태라 그게 문제였다.

-그래도 마혼의 기운이 정화된 것은 모르니 다행이네요.

“어! 이거…. 흰둥아. 너도 마법진 좀 알지?”

경호는 미르의 주입식 교육과 악마들과 치열한 싸움 끝에 터득한 마법진이 여럿 있었다.

-용족에 비하면 부족한 편이지만 많이 아는 편이죠.

지구에 처음 왔을 때도 경호를 소환하거나 마력을 동결시키는 것 모두 흰둥이가 작동시킨 마법진의 힘이었다.

“그럼. 이 악마 가슴에 새겨진 마법진 좀 볼래? 내가 보기엔 계약 마법의 일종 같긴 한데….”

흰둥이가 악마 가슴에 새겨져 있는 마법진을 유심히 관찰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악마, 거의 갓난아인데요?

갓난아이? 악마도 임신하고 애를 낳았던가?

“아기라고 하기에는 좀 많이 우량아인 듯한데?”

경호는 여전히 혀를 빼물고 기절해 있는 악마를 훑어봤다.

호리호리한 몸을 가지긴 했지만, 키만 따지면 거대한 오크와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는 덩치를 가진 악마였다.

-물론 덩치는 크지만 어린 녀석이에요. 여기 보세요.

흰둥이가 악마의 입술을 까 보이며 말했다.

-서큐버스처럼 깔끔 떠는 녀석을 제외하고는 양치라는 개념이 아예 없는 애들인데. 방금 스케일링 한 것처럼 깨끗하잖아요.

“어. 그러네.”

경호가 겪어 본 악마들은 흰둥이의 말처럼 모두 입냄새가 고약했다.

가끔은 날아오는 무기보다 풍기는 입냄새가 더 무서운 놈들도 있을 정도였다.

“이 가슴에 새겨진 마법진은 뭐야?”

-어린 아이에게 이런 일을 맡기기 위해서 억지로 지식을 심은 거죠.

“그럼. 혹시 그 마법진을 수정해서 저 녀석이 좀 착각하게 만들 수 있나?”

-어! 그러면 되겠네요. 가능할 거 같은데요. 여기 울피도 있으니까요.

옆에서 경호와 흰둥이의 대화를 듣고 있던 울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카니스 님께서 마법진을 수정하고 제가 최면을 걸어서 마계를 속이자는 말씀이시죠?

-다른 좋은 생각 있어? 경호 님은요?

흰둥이의 물음에 경호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나도 그러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 안 그래도 이거 수습을 어떻게 하나 고민 중이었거든. 어쨌든 마계 쪽에는 세계수의 존재나 마혼의 기운을 정화시키는 사실이 흘러 들어가면 안 되니까. 그럼. 저놈 기절해 있을 때 얼른 하자.”

경호의 말에 흰둥이가 시원사이다 하나를 물고 왔다.

“그건 왜?”

-혹시나 마계에 보고하는 중에 마혼의 기운이 자극을 받아 최면이 깰 수도 있거든요.

“아!”

포옹!

흰둥이가 앞발로 사이다의 병뚜껑을 날리고는 그대로 악마의 벌어진 입에 병째 꽂아 넣었다.

꼴꼴꼴꼴꼴.

그렇게 시원사이다가 모두 악마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약효가 있는지 죽은 듯 기절해 있던 악마의 몸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크으으윽.

살짝 벌어진 악마의 입에서 낮게 신음이 흘러나오더니 펄떡거리기 시작했다.

시원사이다로 정화를 마친 오크 부족과는 비교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새로 태어났다고 해도 중급 악마와 마계 주민인 오크에게 내재된 마혼의 기운의 크기 차이가 컸기 때문이었다.

펄떡이던 악마의 눈동자가 번쩍 뜨였다.

-끄아아악! 도, 도대체 무….

옆에서 지켜보던 경호가 다시 주먹을 날렸다.

뻐억!

아래턱에 정확히 꽂힌 클린 펀치에 악마의 눈동자가 다시 감겼다.

마혼의 기운도 거의 다 빠진 상태였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흰둥이가 기절한 악마의 배 위에 올라타서는 마치 수술대 앞에선 집도의 같은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우우우우웅!

신력을 끌어올리자 앙증맞은 앞발의 발톱에 새하얀 빛이 맺혔다.

그리고 그렇게 빛이 맺힌 발톱을 가슴에 새겨진 마법진에 갖다 댔다.

치지지직. 치지지지직.

검게 새겨진 마법진이 흰둥이의 발톱에서 나오는 빛에 닿자 투명하게 지워지며 새롭게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앞발을 이리저리 섬세하게 움직이며 악마의 가슴에 새겨진 마법진의 모양을 바꿔 나갔다.

그렇게 10여 분이 지나자 흰둥이의 발톱에서 빛이 사그라들었다.

-하아. 이거 생각보다 어렵네요. 이 마법진을 새긴 악마도 보통 녀석은 아닌 듯하네요.

마계 서열 100위 안에 드는 악마 공작이자 마왕 마몬의 1군단인 ‘아가레스’였으니 당연히 보통 녀석은 아니었다.

“그럼. 된 거야?”

경호의 물음에 흰둥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솔직히 상태를 봐야 알 거 같아요. 마법진이 복잡해서 정확히 했는지 저도 확신이 안 서서…. 어쨌든 기억은 지웠습니다.

“확인해 보면 되지.”

경호가 바로 악마의 뺨을 시원하게 후려쳤다.

쫘악! 쫘악!

-크어억! 컥!

악마가 시뻘건 눈을 부릅뜨고는 주변을 살폈다.

-여, 여기…. 끄아악! 내 다리가…. 도대체 너흰 누구냐?

마법진의 수정이 생각보다 잘 이뤄진 것 같았다.

이제 울피가 나설 차례였다.

화르르르르르륵!

울피의 몸에서 불길이 솟구치며 커다란 신수의 모습으로 변했다.

-끄억! 너, 넌 뭐야!

기억이 날아가며 지능까지 떨어진 듯한 악마가 울피를 보며 놀라 소리쳤다.

-나? 너를 그렇게 만든 수호신이지? 기억 안 나는가 봐?

울피가 악마의 눈앞에 불꽃을 일으켰다.

-자아. 이제 그 불꽃을 바라봐라.

-무, 무슨….

악마는 울피의 말에 반항하려다 자신도 모르게 불꽃에 눈이 갔다.

그러고는 눈이 풀리며 그대로 최면에 빠졌다.

이미 마력을 생성하는 심장도 쪼개진 엉망진창인 몸으로 마법진까지 고쳤기에 애초부터 울피의 최면을 저항할 힘이 없던 상태였다.

-너는 누구지?

-마왕 마몬님의 1군단장인 아가레스님을 모시는 미천한 종입니다.

울피의 물음에 악마는 초점 없는 눈을 한 채 대답했다.

-여기가 어디지?

-지구입니다.

-왜 왔지?

-잘 모르겠습니다.

-왜 쓰러져 있는 거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누구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뒤로도 울피의 질문이 이어졌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기억하는 것이 없었다.

-잘 듣고 기억하도록.

-너는 이곳에 넘어온 순간 수호신과 용사의 공격을 받았지만 다행히 오크 부족이 널 도와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거지. 물론 수호신과 용사 역시도 꽤 다쳤고. 알겠나?

-알겠습니다.

-앞으로 오크 부족에게 함부로 하지 말고 은가누의 말을 잘 따르도록. 그럼. 한숨 푹 자고 일어나거라.

울피의 말이 끝나자 악마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최면을 걸어서 하는 명령이었기에 뇌리 깊숙이 박혀 어길 수 없는 절대적인 명령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었다.

울피가 다시 새끼 여우의 모습으로 변했다.

“이제 끝난 건가?”

경호의 물음에 울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은가누. 이제 이 녀석은 그냥 어디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잘 묶어서 데려다 놔. 죽이지만 않으면 될 거야. 알았지?

경호의 말에 은가누가 머리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 정말 잊지 않겠습니다.

-에이. 뭘. 하여튼 뭔가 필요하면 또 연락하고.

아직 감사 인사가 익숙하지 않은 경호가 손을 저으며 말을 돌렸다.

“그럼. 우리도 갈까? 오랜만에 힘썼더니 배고프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경호의 말에 성원도 고개를 끄덕였다.

“행운식당으로 갈까요?”

“뭐?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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