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용사의 골목식당-206화 (206/335)

#206화

짐이 가득 실린 트럭을 운전하고 있는 성원이 보조석에 앉아 있는 경호를 보며 말했다.

“형님. 한번 보시라니까요. 이번에 아주 기가 막히게 뽑았습니다.”

성원이 건네는 폰을 받아 든 경호가 너튜브를 열어 보이며 물었다.

“이거 맞지?”

“네. 그거요. 한번 보세요.”

경호가 화면을 재생했다.

커다란 그릴 위에 고구마가 맛있게 익어 가고 있었다.

-자아! 밤에 굽는 남자! 산적 두목이 가장 좋아하는 야식! 군고구마입니다! 이거 호박고구마네요!

산적두목 같은 차림으로 직접 숯불에 구워 먹는 방송으로 유명한 뉴투버 ‘밤굽남’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군고구마를 보며 외쳤다.

밤굽남이 고구마를 하나 들고는 쥐고 있던 꼬챙이로 푹 찔렀다.

-아! 푹 들어갑니다! 이게 잘 익었습니다!

그러고는 바로 반으로 갈라 양손에 잡고는 입으로 넣기 시작했다.

-후훗! 핫! 뜨거! 뜨거! 여러분 뜨거울 때 먹어야 맛이죠! 후훗!

후후 불어 가며 밤굽남이 군고구마를 먹기 시작했다.

-대박! 역시 고구마는 숯불로 구워야 맛이 납니다! 아! 근데 목메! 아! 마실 거! 마실 거!”

군고구마를 급하게, 그것도 너무나 많이 먹은 밤굽남이 목이 메 손을 허우적거리며 마실 거를 찾기 시작했다.

그때 투명한 유리병에 녹색 빛을 띠는 생소한 음료수가 그의 손에 건네졌다.

포옹!

숟가락을 쥐고 뚜껑을 딴 밤굽남이 음료수를 병째 마시기 시작했다.

벌컥! 벌컥! 벌컥!

‘탄산음료를 어떻게 저렇게 마시는 거지?’ 하는 의문이 생길 때쯤.

-푸아! 와아아아아! 대박! 이거 뭐야! 답답한 고구마가 한방에 시원하게 내려가네! 와! 정말 속이 시원하다!

그러고는 갑자기 밤굽남이 손에 쥔 음료수가 클로즈업되며 커다란 자막이 떴다.

‘시원사이다!’

1분 남짓한 긴 광고영상이었지만 끝까지 볼 만큼 재미있는 영상이었다.

실제로 인기도 엄청났다.

공개한 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조회수가 벌써 300만이 넘어가고 있었다.

인기 너튜버 ‘밤굽남’의 ‘두목TV’ 구독자 수가 200만 임을 생각하면 엄청난 숫자였다.

댓글도 벌써 1000개가 넘게 달려있었다.

베댓은 ‘두목’이라 불리는 밤굽남의 댓글이었다.

-광고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시원사이다’ 정말 대박입니다. 앞으로 방송에 음료수는 시원사이다로 고정하겠습니다. 이런 대박 사이다 만들어 주신 신화F&B 사랑합니다.

그 밖에도.

-이거 먹어 봤는데 정말 진심 시원함.

-시원사이다. 이게 컨펌이 났다고?

-거 시원사이다는 너무한 거 아니오.

-이름 ㅁㅊ. 누가 지었어!

-이름은 시원. 맛은 더 시원.

대체로 반응이 좋았다.

“근데 이거 이름은 누가 지은 거냐?”

‘시원사이다’라는 말도 안 되는 네이밍 센스를 발휘한 이가 누군지 궁금했다.

“아. 그거요. 제가 지은 거예요.”

“왜?”

경호는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었다.

아니 왜? 물론 ‘흰둥이’와 ‘땅개’, ‘골병이’까지 경호 역시 누구를 비판할 정도의 네이밍 센스를 가지고 있진 않았지만 이유가 궁금하긴 했다.

“사실 그린라이트, 그린콜, 그린샤워, 초록탄산 같은 음료 색과 관련된 의견이 많았는데 별로 같더라고요. 사이다 맛과 비슷하면서 더 깔끔하고 시원하니까 그냥 시원사이다로 하자고 밀어붙였죠. 뭐.”

그린라이트, 그린콜, 그린샤워, 초록탄산….

“그래. 시원사이다가 제일 낫네.”

대기업도 별거 없는 모양이었다.

“어. 형님. 저기죠?”

백색지대를 지나 회색지대 바로 초입에 위치한 거대한 목책이 보였다.

“어. 저거야.”

웨이브 던전을 통해 마계에서 넘어온 오크들을 수용하는 일종의 보호구역이자 일명, ‘혈사자의 숲’이라 불리는 마을이었다.

거대한 목책 주변으로는 헌터본부에서 관련 인원들이 파견 나와 있었다.

끼익.

성원이 헌터본부의 임시 사무실 앞에 차를 세우자 현장 책임자가 나와 성원을 향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곳을 책임지고 있는 이규석 팀장이라고 합니다. 본부를 통해 이야기 전해 들었습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이렇게 트럭을 타고 경호가 성원과 함께 이곳을 찾아온 사정은 이랬다.

이틀 전, 자정이 다 되어 가는 늦은 시간에 경호는 은신을 한 채 비행술을 펼쳐 ‘혈사자의 숲’을 찾았다.

당연히 헌터본부에서 파견 나온 인원은 물론 목책에 올라 경계를 서고 있는 오크들도 경호의 방문을 눈치채지 못했다.

경호는 이제 이곳의 족장이 된 ‘은가누’의 기운을 쫓아 움직였다.

‘혈사자의 숲’이라 부르는 마을의 중앙 가장 커다란 건물 안에서 그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은가누 말고도 2명이 더 있군.’

소리 없이 건물 위에 자리 잡은 경호는 그 안에서 들려오는 꽥꽥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오크 특유의 마계어였다.

-족장님! 이러다가 하급 악마라도 오면 끝입니다! 세계수로 우리를 원래대로 돌려놓진 않더라도 최소한 마혼의 기운은 제거해 달라고 지구의 수호신에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마혼의 기운이 있는 한 더 강한 마기를 지닌 존재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스랄의 말이 맞습니다. 족장님! 저희는 악마와 싸워서 죽는 것은 두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악마에게 다시 굴복하고 우리를 구해 준다 약속한 이들을 의지와 상관없이 싸워야 하는 것은 두렵습니다.

-스랄, 그롬. 알겠다. 수호신을 만나 보도록 하겠다. 밤이 늦었으니 어서 가서 쉬도록.

그렇게 혼자 남은 은가누는 깊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여기 이렇게 자리 잡은 것도 감사한데 먼저 나서서 마혼의 기운을 제거해 달라고 요청하기….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방법을 찾고 있었다.

분명 수호신의 목소리였다.

물론 경호의 전음이었다.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의 출처를 찾기 위해 은가누는 기감을 날카롭게 세워 주변을 훑었다.

하지만 건물 밖에서 집으로 걸어가고 있는 스랄과 그롬의 움직임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심장에 심어져 있는 마혼의 기운을 제거할 방법을 찾았다. 하지만 은밀히 해야 한다. 그 이유는 말 안 해도 알고 있겠지?

마계 쪽에서 마혼의 기운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와 아닐 때 대응이 다를 테고 당연하게도 있다고 착각할 때가 상대하기 훨씬 더 유리할 게 분명했다.

은가누가 고개를 끄덕이자 경호가 다시 전음을 보냈다.

-신화길드의 이성원 길드장과 연락하도록. 그에게 다 지시해 놨으니.

탁.

은가누도 건물 옥상에서 어떤 존재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당장! 이야기해야겠다!

자리에서 일어난 은가누는 바로 파견요원에게 이성원 길드장에게 연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

“그나저나 소통은 잘 됩니까?”

성원이 묻자 이 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능한 정도지 잘 되진 않습니다.”

마계어를 쓰는 오크와 인간인 파견 요원 사이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대화였다.

마도공학의 발달과 오크의 협조로 다행히 통역 장치를 만들 수 있었다.

물론 성능이 엄청나게 좋진 않았기에 복잡한 대화는 힘들었다.

하지만 간단한 의사소통은 충분히 가능한 수준으로 그를 통해 오크 부족과 소통하고 하고 있었다.

“마계어를 통역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네요. 어쨌든 트럭에 시원사이다를 실어 왔으니 나눠 드시기 바랍니다. 오크 부족만 아니라 파견 나오신 분들 드릴 것까지 넉넉하게 가져왔으니까요.”

시원사이다는 ‘대란’이라고 불릴 정도로 인기였다.

출시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았지만 입소문을 타고 난리가 났다.

마트에서 구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했고 리셀러까지 있을 정도로 인기가 어마어마했다.

성원의 말에 책임자인 이규석 팀장의 얼굴이 환해졌다.

보급은 충분했지만 시원사이다는 돈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니 더욱 반가웠다.

“아이고. 이런 귀한 것을…. 거기다 오크들에게도 준다고요? 아니 왜?”

“우리를 침략하러 온 이들이지만 사실 이들도 우리와 같은 피해자입니다. 좋은 건 같이 나누면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이 팀장은 아까워 죽겠다는 표정을 했지만 성원이 그렇게까지 이야기하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정말 왜 사람들이 신화, 신화 하는 줄 알겠네요.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야. 적당히 하고 빨리 들어가자. 칭찬은 내가 해 줄게.

경호의 전음에 뜨끔한 성원이 서둘러 말을 이었다.

“아. 그럼. 오크 부족과 할 이야기가 있어서 들어갔다 오겠습니다.”

“정말 저희 요원들이 같이 안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저희는 ‘수호신의 가호’를 받은 상태라 괜찮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늦지 않게 나오겠습니다.”

물론 ‘수호신의 가호’ 따위는 당연히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녀오십시오! 어이! 거기 문 열어!”

이 팀장의 지시에 목책의 문이 열리고 경호와 성원은 시원사이다가 가득 실린 트럭을 몰아 부락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가지 않아 많은 수의 오크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 오크 무리의 선두에는 머리 하나는 더 커다란 은가누가 서 있었다.

“자아. 내리자.”

“와아. 형님. 가까이서 보니까 덩치도 엄청나고 생김새도 정말 흉측하게 생겼네요. 괜히 괴물이라 불리는 게 아니네요.”

성원이의 말에 경호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 맞다. 내가 오크 귀가 엄청 밝다고 말 안 했었지?”

“네엡! 서, 설마….”

“뻥이야. 어서 내려. 그리고 말조심하고.”

경호의 말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던 성원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트럭에서 내렸다.

-환영합니다. 인간이여.

은가누가 그리 이야기했지만 성원의 귀에는 뀌엑! 뀌엑! 하는 것으로 들렸다.

“형님. 뭐라는 거예요.”

“환영한다는 거지. 이제 내가 이야기할 테니까. 그냥 웃고만 있어.”

경호가 은가누에게 인사하며 전음을 보냈다.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족장님.

-아! 아니!

경호의 전음은 분명 수호신의 목소리였다.

이틀 전에도 들었던 목소리라 은가누는 확신할 수 있었다.

-혹시 수호신님께서 직접 오신 겁니까?

은가누는 수호신이 폴리모프한 모습으로 착각하고는 경호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 아닙니다. 단지 수호신님의 특별한 가호를 받아 이렇게 대화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목소리가 비슷하게 들리시나 보군요. 어쨌든 수호신님께 모든 내용을 전달받았으니 궁금하시면 바로 물어보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우선 트럭에 실린 음료수부터 내려 주시겠습니까?

역시 오크답게 힘이 장사였다.

몇 명이 달려들어 사이다를 옮기자 금세 트럭이 비어 버렸다.

-저 음료가 마혼의 기운을 날려 버릴 수 있는 해독제입니다.

경호의 말에 은가누가 질문을 던졌다.

-혹시 부작용 같은 건 없습니까?

오크가 되면서 예전보다 많이 단순해지긴 했지만 그 역시도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존재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음. 사실 부작용이 있다고 하더군요. 수호신도 만들면서 생각지 못했던 부작용인데…. 만들고 나니 그런 부작용이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위험한 겁니까?

은가누는 위험하더라도 최소한 전사들은 해독제를 먹게 할 생각이었다.

-수호신님이 부작용을 물어보면 ‘위험한 것은 아닌데 부작용을 겪으면서 대처할 방법을 터득해야 하니 족장이 먼저 먹어서 몸소 확인해 봐.’라고 하셨습니다.

-후우. 알겠습니다.

경호의 말에 은가누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부작용을 느끼고 잘 해결해서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알려 주는 일,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누구에게 미룰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은가누는 상자에 담겨 있는 ‘시원사이다’를 한 병 꺼냈다.

뻥.

손가락으로 뚜껑을 날린 은가누가 병째 벌컥벌컥 들이켰다.

-푸아아아. 이거 맛있….

순식간에 한 병을 들이켠 은가누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어엇! 이, 이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