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용사의 골목식당-202화 (202/335)

#202화

[증폭]의 영향으로 미호는 하체에 힘이 실리며 통증이 사라졌다.

“네에! 치열한 레이스 중 누군가 넘어졌는데요! 어…. 행운식당 팀의 ‘정미호’ 참가자입니다! 다른 참가자들과 점점 거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MC 성주의 말에 미호는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달려가고 있는 다른 참가자들을 보고 미호는 다리에 힘을 줬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은, 지금이라면 올림픽에 나가라고 해도 나가서 달릴 수 있을 거 같았다.

‘좋아! 따라잡아서 칼날타조의 고기를 꼭 챙겨야 해!’

경호도 다리에 힘을 주며 일어서는 미호를 보며 소리쳤다.

“미호야! 할 수 있어! 힘내!”

미호가 경호를 힐끗 보고는 그대로 앞으로 뛰어나갔다.

증폭의 힘으로 평소보다 배는 빠르게 달려 나간 미호는….

“꺄아아아아아!”

철퍼덕!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

연속해서 미호가 넘어지자 달리던 주자들도 멈춰 섰다.

“정미호 참가자 또다시 넘어졌습니다!”

웃기는 상황이었지만 웃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미, 미호야!”

미호가 넘어진 것을 보고 나서야 경호는 아차 싶었다.

[증폭]은 말 그대로 대상의 기운을 일시적으로 증폭해 주는 특성이었다.

지금까지 스스로에게 사용하거나 다현이나 성원에게 걸어 줬을 때는 문제가 없었다.

이미 ‘힘’이라는 걸 쓸 줄 아는 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50m를 14초에 주파하는 실력을 가진 미호는 갑자기 늘어난 힘을 감당하지 못했다.

마음으로는 넘치는 힘으로 앞서가는 이들을 따라잡을 듯 몸을 날렸지만 그대로 바닥을 다시 구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미호는 증폭의 효과로 감각도 좋아져 바로 몸을 말아서 구른 덕분에 크게 다치진 않았다.

물론 성주의 멘트로 시선이 집중된 상태에서 바로 다시 넘어졌기에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경호도 서둘러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빠르게 증폭을 걸었던 것을 회수했다.

주변에서 촬영 스태프들이 미호에게 다가와 괜찮냐고 물었다.

많이 아프면 주자를 바꿔서 다시 찍어도 된다고 물어보고 있었다.

제법 큰 소리로 물어본 거라 경호는 물론 멈춰선 다른 주자들도 모두 들었다.

아니 일부러 크게 들으라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미호가 그 말에 경호를 쳐다봤다.

‘나쁘지 않지만 괜히 적을 만들 필요는 없지. 이제 고작 첫 화인데….’

오늘이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것은 TV 프로그램이었다.

이렇게 미호가 혼자 넘어져서 배려를 받는 모습이 누군가에게 나쁘게 비칠 수도 있었다.

어떻게 편집될지 모르지만 악마의 편집이라도 당해서 정말 미운털이 박힌다면 앞으로 경연에 지장이 있을 수 있었다.

오늘만 잘 풀려서 이긴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다.

별거 아닌 악플 하나에도 크게 상처 받을 수 있는 게 사람인 법.

길게 보면 요리 재료 확보보다 멘탈 관리가 중요했다.

경호가 미호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 괜찮습니다. 넘어진 것도 제 실력인걸요. 조금 아프긴 하지만 다친 데는 없으니 그대로 하겠습니다.”

미호의 말에 촬영 스태프들도 별말 없이 물러났다.

“네에! 정미호 참가자! 일어났습니다! 재촬영을 거부하고 당당하게 팬트리를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정말 대단한 근성입니다!”

성주의 멘트는 다행히도 호의적이었다.

‘후우. 다행이네.’

경호도 여론이 나쁘지 않을 거 같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미호는 걸어서 팬트리에 뒤늦게 도착했다.

당연하지만 팬트리는 횅했다.

횅한 팬트리와 대조적으로 다들 손에 쥔 장바구니엔 재료가 한가득 들어 있었다.

미호는 어두운 표정으로 마수고기가 놓인 곳으로 갔다.

삼족우, 뿔돼지, 칼날타조의 고기와 뼈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남아 있는 거라고는 삼족우의 우둔살 부위뿐이었다.

“하아. 이거 장조림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무조건 칼날타조 고기가 있어야 했는데….

처음부터 엉망이 되어 버렸다.

미호는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아 입술을 꽉 깨물었다.

멀리서 지켜보던 경호의 눈에 그런 미호의 감정 변화가 느껴졌다.

“미호야! 최선을 다했잖아! 괜찮아!”

미호가 경호의 말에 애써 울음을 참고는 정신을 차렸다.

공산품이나 채소는 제법 남아 있었지만 생각했던 칼날타조 칼국수를 만들 수 없어 그냥 삼족우의 우둔살만 담아서 팬트리를 나섰다.

진행을 맡은 조성주가 미호까지 팬트리에서 재료를 모두 고르자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

“자아! 그럼. 골목대첩, 그 첫 번째 대결을 시작하겠습니다아아!”

경호는 가슴에 붙은 명찰에 적힌 번호를 보았다.

[행운식당-7번-최경호]

‘7번, ‘럭키세븐’이군.’

번호를 확인한 경호가 피식하고는 배정된 번호의 조리대로 갔다.

“죄, 죄송해요. 오빠.”

조리대에 미리 도착해있던 미호가 어두운 안색으로 경호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죄송은 무슨 죄송. 아까 넘어질 때 다치진 않았어?”

심지어 두 번째 넘어진 것은 [증폭]을 건 경호의 책임이 컸다.

“다치진 않았는데. 칼날타조 고기를 못 구했어요.”

“다치지 않으면 됐어.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최선을 다했잖아. 괜찮아. 정말 잘했어.”

물론 현실적인 걱정을 하지 않을 순 없었다.

“이거 뭘 만드나. 채소는 충분하긴 한데 이걸로 뭔가 육수 내기는 어려운데….”

“그러게요. 오빠. 우둔살로는 미역국이나 육개장 같은 건 끓여도 칼국수용 육수를 내긴 어렵잖아요.”

“그래. 그러면 되겠네.”

“네?!”

‘면 요리’라는 주제와 칼날타조 칼국수라는 요리 때문에 생각을 못 한 부분이었다.

“그래. 육개장 말이야.”

“육개장은 국…. 아!”

“육칼, 어때?”

물론 부드러운 갈비살과 다르게 삼족우는 다리 힘이 엄청난 마수답게 우둔살이 한우와 비교해서 굉장히 질긴 편이었다.

대신 한우에 비해 육향도 진했고 맛도 깊었다.

‘부드럽게 만들기만 하면 한우 육개장보다 더 맛있게 만들 수 있다.’

거기다 백반의 단골 메뉴인 육개장은 경호도 지숙만큼이나 잘 끓일 수 있는 메뉴였다.

미호 역시 한식을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우는 요리 중 하나임으로 육개장에 자신이 있었다.

“육개장 좋죠.”

“그럼. 우선 면부터 그리고 나서 재료 손질해 줘. 나는 고기로 국물 내고 찢는 거 할 테니까.”

“옛썰!”

경호의 말을 알아들은 미호가 장바구니를 들고 팬트리를 향해 다시 달렸다.

커다란 전광판에 시간이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57분 34초’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육칼을 하기에 넉넉한 시간은 아니었다.

‘우선 고기를 잘 삶아서 육수를 내고 고기를 찢어서 준비해야 하니까….’

그때 팬트리에서 육개장 재료를 담아 온 미호가 장바구니를 조리대에 올렸다.

칼국수 면을 만들 밀가루와 파, 무, 팽이버섯, 고사리, 토란, 숙주, 양파 같은 채소부터 양념으로 쓸 국간장, 액젓, 고춧가루, 생강, 마늘, 후추, 소금 같은 것들도 다 챙겨 왔다.

경호는 그중 파와 무, 마늘, 생강, 양파를 꺼내 들었다.

“그럼. 나는 고기 삶을게. 미호야. 그럼. 맛있는 면 부탁해.”

“네에. 오빠.”

밀가루를 채로 거르며 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육칼은 국물과 면만 잘 만들면 끝나는 요리였기에 경호는 고기 삶을 때 넣을 향신료를 다듬었다.

우선 파를 꺼내 뿌리를 다 잘라 모으고 무도 듬성듬성 썰었다.

경호는 조리대 밑에서 커다란 압력솥을 꺼냈다.

세계수 수액을 넣으면 향신료를 넣을 필요도 없이 맛있게 삶아지겠지만 자칫하면 카메라에 찍힐 수도 있기에 그냥 물을 절반쯤 받았다.

그리고 그 안에 깨끗이 씻은 파 뿌리와 썰어 놓은 무, 양파와 통후추, 생강, 마늘을 넣고 마지막으로 삼족우의 우둔살 덩어리를 물에 잠기게 넣었다.

압력솥 불에 올리고 슬쩍 불의 기운을 솥에 불어넣어 열기를 끌어올렸다.

그런 다음 미호를 보니 밀가루 반죽을 꼭꼭 눌러 가며 뭉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미호야. 내가 그래도 힘은 좀 쓰니까 반죽은 내가 마무리할게. 미호는 양념 만들어 줘. 채소도 부탁할게.”

조리 실력이 뛰어난 미호에게 양념을 맡기는 것은 합리적이었다.

“오빠. 알았어요.”

경호는 비닐랩을 꺼내 미호가 만든 밀가루 반죽을 감싸기 시작했다.

찌익! 찌익! 찌익!

면을 직접 만드는 팀이 여럿 있었지만 갑자기 반죽을 비닐랩으로 싸는 팀은 없었기에 모두가 경호의 행동을 주목했다.

“어! 7번 조리대! 행운식당 팀이 갑자기 밀가루 반죽을 비닐랩으로 싸고 있는데요! 숙성하는 건가요? 아니 시간이 40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숙성인가요?”

경호의 의도대로였다.

미호의 부담감을 덜어 주기 위해 즐기면서 하자고, 괜찮다고 했지만 경호 역시 경연에 참여한 이상 당연히 이기고 싶었다.

단순하게 맛으로만 평가받는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심사위원의 평가와 시청자 투표를 종합하는 TV 프로그램이었기에 어쨌든 시선을 끌어야 유리했다.

철퍽!

비닐로 꼼꼼하게 감싼 밀가루 덩어리를 경호가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아니! 최경호 참가자 갑자기 밀가루 덩어리를 바닥에 내동댕이쳤습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경호가 그러고는 신고 있던 신발을 벗었다.

“요리하다 말고 신, 신발을 벗었습니다!”

일본엔 ‘소바는 관동, 우동은 관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관서지방은 대대로 우동이 유명했다.

특히 오사카, 쿄토, 나고야를 중심으로 면보다 국물이나 고명에 집중한 우동이 발달했는데 2000년대 이후 ‘우동 체인점’이 전국적으로 생기며 사누키 우동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사누키 우동은 극강의 가성비를 앞세워 관서 우동을 밀어내고 일본 우동의 새로운 강자로 등극했다.

그런 사누키 우동의 장점은 국물보다 면이 맛있다는 점이었다.

특히나 이로 씹을 때 느껴지는 쫄깃한 탄력이 최대 매력이었다.

그러한 쫄깃한 탄력의 비법이 바로 ‘족타(足打)’였다.

족타(足打).

면 반죽을 발로 밟아서 반죽하는 것으로 무게를 실어 반죽을 하기에 밀가루 반죽 사이에 공기가 빠져 나가 면의 탄력이 훨씬 좋아지는 방법이었다.

꾸욱. 꾸욱.

경호가 발로 랩으로 감싼 반죽을 밟기 시작했다.

“아! 족타 반죽입니다!”

경호가 마력을 하체로 내려보내며 다리에 힘을 줬다.

흔히 무협지에 나오는 ‘천근추’와 같은 방법으로 하체에 실리는 힘이 엄청나게 강해졌다.

물론 그렇다고 랩이 터질 정도로 힘을 줘서는 안 되기 때문에 섬세한 조절이 필요했다.

꾸욱. 꾸욱.

제대로 마력을 써서 밟으면 1분도 걸리지 않는 반죽이지만 TV에 나오는 상황에서 최대한 힘을 빼서 밟느라 10분이 흘렀다.

그래도 실리는 힘이 엄청 강하다 보니 금세 반죽이 탱글탱글해지며 매끈해졌다.

남은 시간은 30분.

경호가 고개를 돌려 미호를 봤다.

양념을 손질한 채소에 버무리고 있었다.

‘역시 센스 있게 잘한다니까.’

치익! 치익! 치익! 치익! 치익!

압력솥에서 김이 뿜어져 나오며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자아. 그럼. 고기 좀 볼까. 미호야! 여기 반죽. 조금 있다 밀어서 면 만들어 줘.”

경호가 족타를 끝낸 반죽을 미호에게 건네고는 압력솥을 싱크대에 넣고 찬물을 틀어 솥을 식혀 뚜껑을 열었다.

뜨거운 김과 함께 진한 육향이 터져 나왔다.

진하게 우러난 국물에 고기도 잘 익었다.

“오. 생각보다 잘 나왔는데.”

육개장에서 소고기는 맛도 맛이지만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모순적인 식감이 굉장히 중요했다.

이를 위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결대로 잘 찢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귀찮다고 칼로 썰어 넣으면 고기가 질기게 변한다.

그렇게 고기가 질겨지면 육칼에서 면발과 다른 야채와 함께 먹으면 고기만 입 안에 남아 전체적인 조화를 깬다는 문제가 생겼다.

김이 펄펄 나는 고기. 딱 지금 상태에서 찢어야 맛이 좋았다.

찬물에 담가 식힌다면 고기의 육즙이 빠져 나가 맛이 덜해질 것이었다.

마력을 활용한다면 끓는 용광로에 손을 넣어도 상관없는 경호였다.

하지만 마력량 D. 마나코어 E 수준의 각성자로 알려진 그가 이렇게 김이 펄펄 나는 고기를 맨손으로 찢는다면 분명 의문을 가질 수 있었다.

‘고기를 꼭 손으로 뜯을 필요는 없으니까.’

경호가 양손을 벌리고 마력을 아주 조금 끌어올렸다.

그러자 압력솥 안에 담겨 있던 뜨거운 고깃덩이가 둥실 떠오르더니 마치 손으로 찢어 내듯 고기가 뜯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 최경호 참가자! 뜨거운 고기를 염력으로 손질하고 있습니다!”

성주의 외침에 카메라가 경호를 쫓기 시작했다.

‘이거 은근히 재밌는데….’

주목받는다는 것.

부담도 되고 신경도 쓰이지만 꽤나 기분 좋은 일이라는 걸 경호는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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