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전국에 계신 도시헌터 팬분들 안녕하십니까!”
너튜브 채널인 ‘도시헌터’를 운영하는 ‘전용준’은 특유의 시원시원하면서 박력 있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도시헌터’
도시에서 발생하는 균열이나 던전의 파열을 공략하는 모습을 드론으로 찍어 중계하는 채널로 구독자가 300만이 넘는 인기 방송이었다.
“오늘은 도시헌터가 도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다들 알고 계시죠! 대한민국 최고 헌터인 다현 니무의 사라지지 않는 던전 파열 공략이 있는 장소입니다. 그럼. 화면 연결하겠습니다.”
용준의 말에 화면은 당장이라도 파열할 듯 출렁이는 던전 게이트의 차원막을 클로즈업하고 있었다.
“보시죠! 이제 곧 최강헌터 다현 누님의 불꽃쑈가 펼쳐…. 해신러브님께서 ‘최강은 수영 헌터님이죠!’ 라고 댓글을 남겨 주셨네요. 아. 죄송하지만 구라는 안 됩니다. 물론 제가 ‘마녀빠’인 것도 있지만. 사적 감정 싹 빼 버리고 객관적으로 봐도 최강은 명징하게 우리 다현 누님이 맞습니다!”
용준이 다현 팬이라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었기에 대부분의 시청자는 그런 그의 말을 옹호했다.
물론 그런 용준을 까기 위해 일부러 시청하며 댓글을 다는 수영의 팬들도 일부 있었다.
“네. ‘다현은 퐁퐁보다 더한 거품이다.’라고 하신 비누방울님 밴입니다. 아. 오늘 보시면 되겠네요. 거품인지 실력인지. 안 그래도 제가 듣기로 그 잘난 수영 헌터가 감히 우리 다현 누님에게 내기를 제안했다고 하는데요. 제가 오늘 내기에서 우리 다현 누님이 지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랜절 한 채로 대국민사과 방송 하겠습니다.”
용준의 말에 댓글창이 불타올랐다.
대부분 ‘정말 다현과 수영의 내기가 사실이냐?’는 질문이었다.
“제가 다현 누님께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신화길드에 있는 지인에게 전해들은 내용입니다.”
내기에 이길 자신이 있는 경호가 다현이 수영이라는 헌터에게 레인보우 식스 초기부터 따돌림당했다는 사실을 듣고는 일부로 용준의 귀에 내기 사실이 들어가게 만든 것이었다.
그때였다.
파지지지지직! 파지지지지지직!
영상 속 차원막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찢겨지며 터져 나가자.
“그럼! 헌팅을 시자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하겠습니다아아!”
용준의 대사와 함께 괴성을 지르며 수백의 오크가 흉엄해 보이는 도끼를 들고 달려나오기 시작했다.
“오큽니다! 위험종 하급 마수 수준의 오크는 다현 누님의 청염까지도 필요 없고 적염으로도 가볍게 한 방입니다. 그럼. 다현 누님의 화려한 헌팅을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용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크가 갑자기 진흙탕으로 변해 버린 바닥에 발이 푹 빠지며 멈춰섰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죠! 실력도 좋은데 이런 전술까지! 이러면 다현 누님에게 누워서 떡 먹기죠! 아니 떡 먹는 거보다 훨씬 쉽게 됐습니다. 이건 거의 오크 입장에서는 반칙 수준입니다! 물론 저는 이 반칙 찬성입니다!”
드론이 회전하여 다현을 클로즈업해서 잡았다.
“오우. 우리 다현 누님이 화면에 나오셨습니다! 그럼.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우리 함께 들어볼까요?”
용준의 말이 끊어지고 화면 속 목소리가 점점 선명해졌다.
-…했던 마법진이 제대로 먹혔어요.
성원의 목소리가 나오고.
-그러네! 그럼. 이제 우리 ‘울피’ 차례인가! 울피야! 부탁한다. 신수의 힘을 보여 줘!
다현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역쉬! 역쉬! 며칠 전부터 게시판에 돌던 이야기가 맞았습니다! 저 새끼 여우가 진짜 신수였습니다! 우리 누님께서 신수를 키우고 계셨습니다! 역시 머리 파란 누구랑은 격이, 격이 다릅니다!”
다현의 어색한 연기는 울피가 신수가 맞다는 사실 때문에 논란이 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어어어! 저 새끼 여우가 엄청나게 커졌습니다. 신수의 진짜 모습인 듯싶습니다! 다현 누님이 그런 신수에게 올라섰습니다! 정말 전설 속 영웅, 그 자체입니다! 진짜 한 폭의 그림 같아요! 아아악!”
이제 용준은 아예 중계를 포기하고 사심을 토로하는 중이었다.
그때 다현이 손을 뻗어 오크 무리를 가리켰다.
“악! 여러분! 우리 다현 누님께서 오크를 섬멸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셨습니다아아아아!”
물론 아니었다.
키아아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 여러분! 다현 누님이 부리는 신수도 주인의 의지를 알아듣고는 그에 맞춰 포효하고 있습니다!”
역시나 아니었다.
“자아! 이제 우리 다현 누님의 트레이드 마크인 불꽃 싸다구가 나올 차례입니다! 자아! 과연 어떤 기술을 보여 줄 것인가! 긴장감이 점점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제 돌격하는 일만 남았기에 용준도 점점 더 흥분하며 소리를 높였다.
그때였다.
오크 무리에서 커다란 덩치의 오크가 진흙탕을 빠져 나와 앞에 섰다.
바로 ‘은가누’였다.
“아니 뭐죠? 일기토 같은 걸 하는 건 가요! 오오! 오늘 우리 다현 누님! 무쌍 찍는 겁니까! 여포 다현! 가즈아!”
허나 용준, 아니 그 누구도 경호가 전음으로 은가누와 이야기한 것을 모르고 있었기에 당연히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용준의 말처럼 다현은 가만히 있고 은가누는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지르고 있기에 그냥 보기에는 일대일 대결을 하기 위해 나온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꽥꽥거리던 은가누가 다현을 향해 무릎을 꿇고는 펑펑 우는 것이 아닌가!
“아! 아아아아! 미쳤다! 미쳤어! 여러분! 보셨습니까! 지구를 침략해 온 마물의 대장이 우리 누님의 엄청난 힘을 느끼고는 스스로 굴복하는 장면을! 이건 정말! 지구상 그 어떤 헌터가 그저 풍기는 기세만으로 마물을 굴복시킨 적이 있습니꽈아아아아!”
용준이 미친 사람처럼 흥분해서 마구잡이로 소리를 질렀다.
댓글창도 미쳐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건 정말 엄청난 업적이었기에 비난 댓글로 도배하던 다현의 안티들도 찍소리 못하고 있었다.
잠시 후 무릎 꿇고 있던 은가누가 자리에서 일어나 진흙탕 쪽으로 가서는 역시나 알 수 없는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정말 거짓말처럼 수백의 오크가 모두 손에 든 무기를 내려놓고는 양손을 번쩍 들고는 진흙탕에서 빠져나와 바닥에 주저앉았다.
“여러분! 우리가 착각한 게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잘못 본 것도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을 저 오크는 알고 있는 거지요! 다현 누님은 건들면 안 된다는 것을…. 저들은 싸우지 않고 이미 알아 버린 것입니다. 저들에게도 생존 본능이라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역시 우리 누님! 대단합니다! 대단해요!”
그때 다현이 울피의 등에서 내려와 어딘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장면을 놓칠 도시헌터 전용준이 아니었다.
“우리 누님께서 던전 공략을 기세만으로 끝내시고 바삐 어디로 가십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함께 가 볼까요!”
다현이 걸어간 곳은 외각에 위치한 각성자관리원 소속의 던전관리국 요원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던전관리국 요원만 있지 않았다.
-김수영! 이정도면 내기에서 내가 이긴 거 같은데? 어때?
다현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잡혔다.
“여러분! 격이 다르긴 하지만 같은 레인보우 식스로 활동하고 계신 수영 헌터의 등장입니다.”
다현의 물음에 수영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보이시죠? 아주 얼굴이 똥 씹은 표정입니다! 뭐. 사실 물을 것도 없습니다. 기세만으로 수백의 오크를 투항하게 만들었는데 그것을 이길 방법이 있습니까? 제가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닌데 아까부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정말 답이 나오질 않네요!”
수영이 대답 없이 가만히 있자 다현이 다시 말을 이었다.
-왜 말이 없어? 설마 천하의 수영 헌터님께서 한입으로 두말 할 건 아니지? 그럼. 실망인데.
-그래. 내가 졌다.
결국 수영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내기에서 졌음을 시인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쏘리 질럿! 여러분! 이제 확실하게 우리 다현 누님이 대한민국 원탑이라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앞으로 누가 우리 누님 무시하면 지금 방금 짤 보여 주면 끝입니다! 아셨죠?”
-뭐. 졌으니까 말해봐. 소원 들어주기로 했잖아. 그래. 나한테 부탁할 소원이 뭔데?
수영의 날선 반응에 다현은 살짝 기분이 나빴지만 흥분한 수영과 달리 다현은 머리 위에 촬영용 드론이 떠 있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누가 보면 내가 내기에 진 줄 알겠네.
다현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다.
“아니! 저, 저어! 여러분. 이거 내기에서 진 거 치고 너무 건방진 거 아닙니까! 우리 다현 누님이 너무 착해서 그냥 넘어가는 거지 이거 정말 제가 다 화가 나네요!”
수영은 다현의 반응에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제야 하늘 위에 조용히 날고 있는 드론을 눈치챘다.
어떤 방송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함부로 화를 낼 수도 없었기에 수영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안. 내가 너무 흥분했네. 다현아. 소원 말해 봐. 내가 축하하는 마음으로 다 들어줄게.
수영도 드론의 존재를 눈치챘음을 느끼고 다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다음에…. 다음에 말할게. 그럼. 잘 있어.
다현이 그렇게 말하며 돌아서자 용준이 흥분하며 소리쳤다.
“여러분! 보십시오! 정말 우리 누님은 도덕책 그 자체입니다! 저 같으면 앞으로 꼬박꼬박 존댓말하면서 언니로 모시라는 소원을 말했을 겁니다! 아니 더 한 것을 소원으로 말했을 겁니다! 하여간 물을 다루는 누구보다 마음이 더 물 같은 분입니다. 산성약수 아시죠? 우리 누님은 정말 산성약수 같은 분이십니다!”
용준이 흥분해서 다현에 대해 나오는 대로 칭찬을 던진 결과, 댓글창이 불타올랐다.
-산성약수! 이거 실화냐?
-사실 산성약수보다는 알칼리약수가 몸에 더 좋은 거 아님?
-육각수가 낳겠넼ㅋㅋㅋ
-ㄴ낳긴 뭘 낳앜ㅋㅋㅋ
댓글의 반응을 본 용준이 피식하며 추가로 말을 덧붙였다.
“하! 우리 님들이 제가 또 문자 쓰니까 댓글 폭발하네요. 산성약수 모르시는 분들 많으신데. 설명하면 고대 중국까지 넘어가야 하니까 검색창에 찾아보세요! 그럼! 오늘 여기서 도시헌터는 마무리하겠습니다! 뿅!”
-저거 끝까지 뭐 틀렸는지 몰랔ㅋㅋㅋㅋㅋㅋ
-우리가 미안햌ㅋㅋㅋ
-네가 좋으면 됐닼ㅋㅋㅋ
-물 맛은 성적순이 아니자나요
-용준아! 약수터에서 만나잨ㅋㅋㅋ
그 뒤로 용준은 한동안 ‘산성약수’와 관련된 댓글에 시달려야 했다.
***
콰아아아앙!
아가레스가 주먹으로 탁자를 내려쳤다.
멸혼석이라 불리는 단단한 암석으로 만들어진 탁자가 힘없이 부서졌다.
-지금 그게 사실이냐.
-사, 살려 주십시오!
마몬의 1군단장이자 악마공작 중 가장 강한 그가 살기를 뿜어내자 웨이브 던전에 대해 보고하던 전령이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후우. 후우우우.
아가레스가 분노를 삭이기 위해 깊게 숨을 골랐다.
그때마다 입에서 진한 유황불이 흘러나오며 메케한 냄새를 풍겼다.
-다시 말해 봐라. 뭐가 어떻게 됐다고?
겨우 화를 누그러뜨린 아가레스가 전령을 보며 물었다.
-그, 그것이…. 지구로 넘어간 오크들이 용사와 함께 있던 지구의 수호신에게 설득당해 공격을 멈추고는 투항했다고 합니다. 정확한 내용은 좀 더 지켜보고 연락하….
퍼억!
-케엑!
아가레스의 발이 보고하던 전령의 머리통을 차 버렸다.
한참을 날아간 전령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숨이 끊어졌다.
-그놈의 용사! 용사! 용사! 이제는 수호신까지 기어 나와서 설치는군.
용사와 수호신.
생각만 해도 끔찍한 조합이었다.
-정령계에서도 그놈의 용사와 수호신 때문에 실패했는데!
아가레스가 만약 그때 정령계의 용사가 지금 지구의 용사임을 알면 화병으로 쓰러질지도 몰랐다.
-오크 중 가장 강한 녀석들로, 그것도 마기를 마나코어에 가득 실어서 보냈는데…. 뭐? 투항을 했다고? 후우. 마혼이 심어져 있는데 투항을 하다니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거야! 내 기필코 용사년이고 수호신이고 찢어 죽일 테다!
***
“뭐지?”
경호가 귀를 새끼손가락으로 후비며 중얼거렸다.
“누가 내 욕이라도 하는 건가? 왜 이리 귀가 가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