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세상을 이루는 3대 기운인 ‘신력, 정령력, 마력’과 마신의 힘인 ‘마기’, 그리고 주신의 창조물이지만 차원계의 관리자이기도 한 드래곤의 기운인 ‘용력(龍力)’.
경호는 심장 안에 새로이 자리한 용력을 깨웠다.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의지’.
하고자 마음이 일자 그것이 곧장 심장 속 용력을 일으켜 세웠다.
심장이 순식간에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게 용력인가?’
마나코어의 힘을 끌어다 쓰는 마력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마치 피를 순환시키는 심장처럼 주변을 떠도는 기운을 심장을 중심으로 순환시켜 그 기운을 뭉치기 시작했다.
설명은 길었지만 찰나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심장에 모인, 뭐라 정의하기 어려운 기운이 목구멍을 타고 입안에 고였다.
‘이, 이게 바로 ‘드래곤 브레스’인가?’
경호는 입안을 가득 채운 엄청난 기운에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향해 입을 쩌억 벌렸다.
살면서 드래곤 브레스를 쏟아 낼 줄 상상도 못 한 경호였지만 자연스럽게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다.
경호는 입안에 고인 기운을 터뜨렸다.
이제 이 폭발하는 힘에 방향성을 주면 끝이었다.
‘자아! 그럼 이….’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으악! 케엑! 켁!”
방향성을 주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모두 멋지게 뿜어져 나오는 브레스를 기대하다 갑자기 경호의 입안에서 엄청난 굉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나자 놀라 소리쳤다.
-겨, 경호!
-경호 님!
“형님!”
입안에서 기운이 터지며 경호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으악! 내 입! 운, 운애! 입! 입! 입! 아악! 뜨거워!”
-잠시만!
운애가 손을 젓자 물줄기가 벌어진 경호의 입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콸콸콸콸콸.
“커헉! 어푸! 켁! 어푸! 그, 그만!”
정화와 치료의 힘이 담긴 운애의 물줄기에 입에 남아 있던 폭발의 기운과 그로 인한 상처가 어느 정도 씻겨 나가며 회복됐다.
“형님! 뭐예요! 용의 힘을 얻었다면서요!”
정확히는 이제 막 ‘용의 심장’을 얻은 것이었다.
말 그대로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온 드래곤, 태어난 지 1분이 지난 해츨링 상태였다.
그런 해츨링이 정신이 나가서 드래곤 브레스를 쓰려고 했으니 머리통이 날아가지 않았음에 감지덕지해야 할 일이었다.
“자, 잠깐만. 나도 정신 좀 차리고 이야기하자고.”
입안에서 느껴지던 고통은 운애의 도움으로 줄어들었지만 폭발로 인한 정신적 고통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경호는 드래곤 브레스를 쏟아 내는 것을 실패하며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함부로 하면 정말 X되는구나!’와 ‘입안에서 뭐가 터지면 정말 환장하게 아프구나!’라는 두 가지 사실을 정말 절실하게 깨달았다.
“후우. 그래. 용의 힘을 얻었어. 그리고 그 힘이 입에서 터진 거고.”
-경호. 정말 미안해. 내가 괜히 브레스를 써 보라고 해서. 괜찮아? 아! 해 봐. 어서. 입 안에 상처 있으면 오래가니까.
눈물까지 글썽이며 사과하는 운애의 모습에 경호는 그저 머리를 긁적이며 괜찮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덕분에 다 나았어. 내가 실수해서 그런 거니까 신경 쓰지 마.”
터지고 나서야 알게 된 거지만 잘못한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우선 심장에서 끌어올리기 전에 용력의 성질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그러니까 진짜 용의 경우는 해츨링 시절 심장에 기운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성질을 확립하게 되지만 경호는 그런 것이 없었기에 스스로 그것을 정해 담아내야 했다.
이를테면 불, 물, 독, 뇌전, 바람 같은 기운의 성격을 브레스로 쏟아 내기 전 확실하게 정했어야 했는데 그것 없이 그냥 흘러드는 기운을 그대로 담았다.
세계수, 흰둥이, 운애.
이들에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기운이 경호의 심장으로 흘러들어 용력의 기운에 담겼다.
신력, 정령력, 마력이 정제되지 않고 마구잡이로 섞여 있는 용력은 한마디로 시한폭탄과 같았다.
거기다 제대로 브레스를 쏘아 내는 법도 모르면서 무작정 시도한 것이었다.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것과 실제 몸으로 행하는 것은 정말 하늘과 땅보다 더 큰 간극이 존재하기에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용의 심장을 얻었다는 기쁨에 멍청하게 기술 쓰다가 머리통 날아갈 뻔했구나.’
소년 만화의 모자란 엑스트라 악당이 나타나서 혼자 자학하는, 그런 개그 포인트로나 사용될 만한 내용이었다.
‘에휴. 그러기에도 너무 올드한 클리셰야.’
경호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의 권능을 쓰기 위해서는 앞으로 연습을 많이 해야 할 거 같아. 우선은 용의 심장은 확실히 얻었으니까 그것만 해도 큰 수확이지. 뭐.”
“형님이라면 곧 가능하실 겁니다! 제가 옆에서 응원하겠습니다!”
“어. 그래.”
성원의 열정적인 응원에 경호는 대충 대답하고 있을 때.
“뭐야! 왜 전화를 안 받아?”
회의를 끝낸 다현과 제니, 비스트, 그리고 울피가 동물원으로 찾아왔다.
다현의 물음에 성원이 신이 나서 달려가 쫑알쫑알 경호에게 일어난 변화를 설명했다.
“뭐! 경호가 용이 됐다고?”
경호는 용의 심장을 얻은 것과 용이 된 것은 좀 많이 다르긴 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뭐! 경호가 입에서 브레스를 뿜으려고 했다고!”
용이 됐다고 할 때보다 더 놀란 얼굴로 다현이 경호에게 다가왔다.
“대박! 브레스도 뿜었어?”
“아니. 사실 브레스는 실패했어. 입안에서 터져서 진짜 죽을 뻔했다고.”
“그, 그랬냐?”
다현은 사실 한 번 더 보여 달라 할 생각으로 경호에게 말을 꺼낸 것이었지만 실패했다는 말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뭐야! 이럴 땐 괜찮냐고 물어보는 게 정상적인 반응 아니냐?”
“딱 보니까 괜찮구만.”
“운애가 옆에서 치료 안 해 줬으면 며칠 동안 밥도 못 먹을 뻔했다니까.”
“어쨌든 괜찮아졌으면 된 거지. 엄살은.”
“그래. 너에게 걱정을 바란 내가 잘못이지.”
경호도 다현다운 반응에 피식 웃고는 주제를 돌렸다.
“그래 회의는 잘 됐고? 오크는?”
“오크 나오는 던전 배정 받았어. 그리고 재미있는 일도 있었고.”
“재미있는 일?”
다현의 말에 경호는 도대체 웨이브 던전을 막아 내기 위한 대책회의에서 재미있을 일이 뭘까? 생각하며 물었다.
“그러니까 그게….”
다현에게 해신, 수영과 내기를 했다는 이야기에 경호가 피식 웃었다.
“그 와중에 내기까지 한 거야? 너도 참 대단하다.”
“아니 걔가 먼저 시비 거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지. 실력이 안 되면 인정을 해야지. 하여튼 경호. 이 내기 이길 수 있지? 어? 무조건 이겨야 된단 말이야!”
다현이 입을 삐죽 내밀고는 투덜거리다 경호에게 반쯤 협박조로 이야기를 했다.
‘뭐, 뭐야! 내가 미쳤나! 갑자기 이게 귀여워 보인다고? 다현에게 하도 맞아서 정신이 나간 게 분명해!’
경호가 눈을 질끈 감고는 고개를 흔들어 머릿속을 비웠다.
“왜! 못 한다고! 저번에 무조건 오크로 고르라며! 어? 무슨 방법이 있는 거 아니었어?”
경호가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들자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신호로 알고 다현이 펄쩍 뛰었다.
정신을 차린 경호가 손을 저어 다시 흥분 모드로 들어가려는 다현을 말렸다.
“아니 그게 아니라 잠시 어질어질해서 그런 거야.”
“어? 그럼. 방법이 있는 거야?”
다시 헤실헤실하게 웃는 다현. 그만큼 수영과의 내기는 중요했다.
레드 위치, 화염의 마녀 김다현.
블루 아쿠아맨, 해신 김수영.
성별과 나이도 같았고 둘 다 특출나게 강했기에 ‘레인보우 식스’라 불리기 전부터 둘은 유명해졌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라이벌 관계가 되었다.
둘이 특별하게 경쟁하거나 의식한 것은 아니었지만 언론사는 그런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연일 둘의 활약을 비교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라이벌 구도는 자연스럽게 굳어졌다.
그리고 의식하지 않던 그들도 점점 서로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정부에서 각성자관리원, 일명 헌터본부를 만들며 그와 함께 ‘레인보우 식스’라는 조직이 탄생했다.
그때만 해도 라이벌 의식이 있었지만 사이가 나쁜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처음에는 정말 분위기가 좋았다.
그도 그럴 것이 레인보우 식스에서 따로 활동하는 비스트를 제외하고 나머지 인원이 함께하는 던전 공략은 정말 완벽한 조합이었다.
황금거신 제니와 만독성녀 민지는 최고의 탱힐이었고 태양궁귀는 최고의 원딜이었다.
그리고 다현과 수영은 원딜과 근딜을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최상급 딜러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현은 수영과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다.
상처와 아픔이 많은 다현은 경호를 제외하고 속마음을 터놓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외향적인 성격의 수영과 잘 맞지 않았다.
그랬기에 다현은 수영을 피했다. 아니 피했다기보다 애써 어울리려 노력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수영이 이해하고 넘어가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김수영.
다현과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그녀였다.
유복한 가정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란 영애로 예쁘장한 외모에 집안의 재력, 거기다 공부도 잘했기에 어릴 때부터 주변에 예쁨 많이 받으며 자랐다.
또한 스스로도 그것을 잘 알고 활용할 줄도 알았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앞에 ‘다현’이라는 존재가 나타났다.
자신과 라이벌 관계라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는 다현에게 친근하게 다가갔다.
물론 그렇게 다현에게 먼저 다가간 이유는 자신이 라이벌까지 감싸 주는 훌륭한 인성이라는 것을 주변에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현은 그렇게 먼저 다가간 자신을 피했다.
이런 반응은 처음이었던지라 수영은 기분이 몹시 나빴다.
거기다 다현의 실력이 점점 좋아지더니 어느 순간 자신을 뛰어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헌터로 자리매김했다.
화가 났다.
자신의 배려를 무시하는 것도, 자신보다 뛰어난 것도 그래서 수영은 레인보우 식스 내에서 다현을 따돌리기 시작했다.
뒤에서는 없는 말을 지어내서 음해하고 앞에서는 애써 무시하며 투명인간 취급을 했다.
그런 수영의 행동에 화도 났지만 그 정도 마음을 쓸 가치도 없다고 판단한 다현은 굳이 상대하지 않았다.
다현의 그런 모습에 수영은 더 짜증이 났다.
그러다 결국 폭발한 수영은 다현에게 시비를 걸었고 헌터로서 중범죄인 싸움이 발생했다.
부상까지 가는 큰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결국 언론에 알려지게 됐다.
그러자 드러나지 않고 수면 아래에 있던 여러 가지 사실들도 이 사건과 함께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은 것은 알려지지 않던 다현의 과거였다.
천애고아 출신에 학생 때부터 그러한 사실 때문에 왕따를 당했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힘겹게 살아야 했던 것이 알려지게 된 것이었다.
유복한 가정의 외동딸 수영과 천애고아 보육원 출신의 다현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은 하루 아침에 달라졌다.
왕따설과 수영과의 마찰도 모두 다현 쪽으로 동정이 일며 여론이 기울었다.
그러자 수영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참다못한 다현은 정부요원 직을 그만두고 나왔다.
다현의 능력이 더 뛰어나기에 정부 측에 이야기해 자신이 아닌 수영을 내쫓을 수도 있을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그냥 사람과의 관계에서 환멸을 느끼고는 그곳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솔플로 암흑지대나 균열을 깨고 나오는 마수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다현이 나오면서 혼자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비스트 역시 원래 프리랜서 성격이 강했기에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직하고 나왔다.
끝으로 제니는 다현과 친한 편이 아니라 수영의 잘못된 행동을 막지는 않았지만 계속 마음이 걸리긴 했었다.
그러다 이렇게 다현과 비스트가 정부 조직에서 나가자 같이 사직서를 던졌다.
그리고 그때부터 다현과 수영은 남보다 못한, 아니 적보다 못한 사이로 관계가 나빠졌다.
물론 경호는 그렇게 자세한 관계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수영이라는 헌터에게 뭘 소원으로 말할 건지나 고민하고 있어.”
“정말? 정말이지!”
“근데 언제 공략인데?”
“오늘 저녁에 계획서를 제출하고 통과되면 며칠 안으로 가능할 거 같은데.”
“그래? 그럼. 그전에 미리 흘려야 될 게 있어.”
“흘려야 될 게 있다고? 그게 뭔데?”
다현의 물음에 경호가 그녀의 품에 안겨 있는 울피를 보며 말했다.
“울피가 신수라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