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용사의 골목식당-193화 (193/335)

#193화

“미르. 저번에 솔딘한테 들었는데 오크 같은 몬스터가 그쪽 세상엔 넘어왔다던데…. 정령계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안 넘어오는 이유 같은 게 있는 거야?”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에 필수적인 몬스터가 바로 ‘오크’였다.

‘록타르 오가!’를 외치며 커다란 전투 도끼를 손에 쥔 달려오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오크?

“어. 모르나? 돼지 얼굴….”

나의 설명에 미르가 피식하며 말을 이었다.

-당연히 알지. 마계의 주민이면서 거인족이나 다크엘프에 비해 압도적으로 숫자가 많은 종족이니까.

“아. 그래? 그런데 던전에서 거인족이나 다크엘프는 종종 보였는데 오크는 한 번도 나온 적 없잖아.”

-앞으로도 안 나올 거야.

“어? 왜? 너무 약한가?”

하지만 약한 거로 따지면 최하급 마수도 그랬지만 던전에서 많이 출몰했다.

-아니. 그 반대야.

“그 반대라니?”

-전에 내가 마왕과 악마, 마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야기했지?

주신과 달리 마신은 창조의 권능이 없어서 자신의 힘을 쪼개서 만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창조의 권능이 없는 마신은 마계와 악마, 마수를 만들었지만 그곳의 주민인 몬스터까지 만들기는 힘들었던 거지.

“그래서?”

-차원계를 침략하고 그곳에서 데리고 간 이들에게 마혼과 마기를 심어서 변화시킨 게 바로 ‘몬스터’라 부르는 존재야.

“어? 뭐! 뭐라고!”

-특히 오크는 인간이 변화한 종족이지.

그날 나는 먹었던 아침을 다 게워 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뭐야! 그럼. 거인이나 다크엘프도 결국 피해자잖아!”

-스스로 힘을 얻기 변한 변절자도 있지만 대부분은 침략의 피해자들이야.

“이런! 제기랄!”

-자책하지 마.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한참을 더 소리치고 주먹으로 몇 번이나 바닥을 내리치고 나서야 진정할 수 있었다.

“미르. 그런데 왜 오크는 안 넘어오는 거지. 그리고 아까 그 ‘반대’라는 소리는 뭐야?”

-오크는 다크엘프나 서리거인과 달리 원래대로 돌아갈 수도 있거든.

“뭐? 그러니까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인간은 주신이 가장 애정을 쏟아 그 혼을 불어넣은 존재거든. 인간의 영혼은 그만큼 강해.

“그래서?”

-엄마나무 정도 되는 세계수가 오크로 변한 이의 영혼에 박혀 있는 마혼과 마기를 정화한다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악마놈들도 그걸 알고 오크를 정령계로 보내지 않는 거고.

“오크로 변한 이들이 다시 인간으로 변할 수 있다니….”

그때부터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미르를 닦달해 마계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

각성자관리원의 대회의실에 ‘레인보우 식스’라 불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S급 헌터가 모두 모였다.

레드 위치(Red Witch),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강의 헌터이자 ‘화염의 마녀’라 불리는 김다현.

그린 비스트(Green Beast), 최고의 추적자이자 암살자인 ‘야수’라 불리는 이용호.

옐로우 빅원(Yellow Big-one), 최강의 탱커이자 ‘황금거신’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김제니.

오렌지 애로우(Orange arrow), 빛 화살을 쏘는 ‘태양궁귀’라는 별명이 더 유명한 박성계.

블루 아쿠아맨(Blue Aqua-man), 다현과 함께 대한민국 대표 헌터이며 ‘해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김수영.

퍼플 포이즌(Purple Poison), 세계적인 힐러 중 하나로 만독성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박민지.

오랜만에 모인 그들이었지만 회의장은 화기애애하지 않았다.

아니 겨울 찬바람보다 더 서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특히나 대한민국 헌터 투톱으로 불리는 다현과 수영은 그 정도가 심했다.

가장 나이가 어린, 만독성녀라 불리는 민지가 애써 밝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누가 보면 싸우러 온줄 알겠어요. 우리가 막 친한 건 아니지만 서로 이렇게 긴장하면서 있을 정도의 사이는 아니잖아요. 다현 언니, 최근 활약 많이 봤어요. 엄청 강해지셨던데요?”

“고맙다. 너도 간간이 소식 들었는데. 좋아 보이네.”

“저야 항상 뭐 비슷하죠. 힐러라서 언니처럼 막 나서서 싸울 순 없으니까요.”

물론 모두가 민지처럼 밝은 것은 아니었다.

특히 김수영은 다현과 동갑이면서 불을 다루는 다현과 초반부터 비교의 대상이 됐다.

초반에 비슷비슷했던 실력이 어느 순간 다현이 확 치고 올라가면서 병적일 정도로 열등감이 심해졌다.

“에이. 민지야. 그건 아니지. 마수 잡는 모습 방송에 몇 번 나왔다고 대단할 거까지야. 우리야말로 방송엔 안 탔지만 음지에서 묵묵하게 싸우고 있었잖아.”

“언니. 왜 그래.”

그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수영은 명백하게 다현을 향해 시비조로 말을 하고 있었다.

오히려 민지가 당황하며 수영을 말릴 정도였다.

“수영. 지금 그거 시비 거는 거로 생각해도 될까?”

다현의 말에 수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시비라니. 요즘 TV에 얼굴 비추면서 재미가 들렸는지 사냥보다 방송에 집중하는 거 같아서 이야기 한 거였는데. 기분 나빴으면 미안.”

“왜 그래. 사적인 자리도 아니고.”

점점 시비를 거는 강도가 높아지자 옆에 있던 성계까지 그런 수영을 말렸다.

“아니 헌터가 연예인 병 걸려서 저러고 있는데 한마디 할 수는 있잖아? 아니야?”

수영의 계속되는 시비에 제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언니! 말이면 다야! 뭐! 연예인 병? 다현 언니가 얼마나….”

“제니야. 됐어. 앉아.”

예전 같으면 다현도 받아치며 같이 화를 냈겠지만 그녀의 성격도 경호가 돌아오고 지금까지 많이 유해진 상태였다.

그때 회의실 문이 열리며 오늘 회의를 소집한 던전관리국의 김명일 과장이 들어왔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회의가 예상보다 늦게 끝나가지…. 아니 여기 분위기가 왜 이럽니까. 자아. 다들 그러지 마시고….”

“회의 진행하시죠.”

명일이 싸늘한 회의실 안 분위기를 느끼고 억지로 풀어보려 했지만 말을 끊고 들어오는 수영에 의해 무산되고 말았다.

“아. 그럴까요?”

명일이 어색하게 웃으며 자료 화면을 띄웠다.

“지금 보시면 사라지지 않는 던전의 위치가 공교롭게도 모두 회색지대에 걸쳐있습니다.”

“확실히 뭔가 특이점이 있는 던전이군요. 보통은 생체반응이 큰 백색지대나 공략이 어려운 흑색지대에 던전이 생기는데 모두 그것도 서울을 둘러싸듯이 생긴 것을 보면 말이죠.”

서울 외곽의 회색지대를 빙 둘러 가며 사라지지 않는 던전이 배치돼 있었다.

당연하게도 우연히 그렇게 생긴 것이 아니었다.

웨이브 던전.

주기적으로 몬스터와 마수가 쏟아져 나오는 던전이었다.

하지만 백색지대에 배치하면 인간의 피해가 클 수도 있었다.

어디까지나 마기의 농도를 높이기 위한 장치였다.

그렇다고 흑색지대에 배치하면 낮은 등급의 몬스터와 마수가 나오기에 사냥하지 않고 무시할 수도 있었다.

회색지대라면 백색지대처럼 직접적으로 인간을 위협하지도 그렇다고 마냥 무시하고도 어려운 위치였다.

“다행인 것은 던전의 파동 분석 결과 그리 수준이 높진 않다는 점입니다.”

“그건 다행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명일이 던전 분석 자료를 보고 다행이라고 하자 다현이 고개를 저었다.

“다현 헌터님. 그게 무슨 소립니까. 다행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니요.”

“마기 농도가 급격하게 높아지면 좋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 알고 계시죠?”

다현 일행은 경호에게 들어 마기 농도가 높아지면 결국 악마군단이 넘어오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예전부터 그러한 사실을 예견한 마도공학자들이 몇몇 존재했다.

3년간의 연구를 통해 마기 농도에 대한 경각심이 부상한 것이다.

이로 인해 여러 국가는 마기 농도의 지나친 상승을 방지하기 위해 ‘마기변화협정’을 맺어 노력하고 있었다.

이러한 협정이 강제성을 가지는 것이 아님에도 많은 국가가 따르는 이유는 현 상황이 위기라는 데 모두 동의하기 때문이었다.

“물론입니다. 그래서 이번 일에도 던전 등급은 낮지만 일부러 레인보우 식스, 여러분을 부른 것입니다. 세계협정에 따라 최대한 마기 농도를 적게 높일 방법을 찾으려고 합니다.”

경호는 다현과 성원에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악마군단이 늦게 침공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경호도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 각성자의 수준에서 악마군단이 쳐들어온다면 그것은 정말이지 재앙에 가까운 전력 차였다.

“어쩌면, 어쩌면요. 마기의 농도가 단순히 던전의 등급과 마수의 흉포함만 높이는 게 아니라면요.”

다현의 말에 명일이 고개를 갸웃했다.

“마기 농도가 높아지면 다른 문제점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건가요?”

“이번에 페이즈 개념도 알게 됐고 사실 대격변 초기에 악마들이 넘어오기도 했잖아요. 그때 신수와 정령이라는 신비한 존재들 덕분에 피해를 최소화하긴 했지만, 기억하시죠? 그 악마들이 마수와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하다는 것을요.”

“다현 헌터님은 그러니까 마기 농도가 높아지면 지금의 2페이즈에서 3페이즈로 변하면서 초기에 넘어왔던 악마가 다시 올 수도 있다는 겁니까?”

“뭐. 안 될 것 있을까요? 지금까지 안 넘어온 게 더 이상한 일이죠.”

“그러면 뭔가 이유가 있다?”

명일의 말에 다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화그룹이 최근 헌터 관련 일에 왜 그리 전폭적인 투자를 하는지 아십니까?”

“그거야…. 그러게요. 수익도 크지 않은 분야에도 투자금이 크던데.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신화연구소 자체 연구 결과 마기 농도가 높아지면 거의 확실하게 악마가 건너올 확률이 높아진다고 하더군요. 초기엔 그러한 조건이 맞지 않아서 쳐들어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라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고요.”

“그러니까 마기 농도가 맞지 않아서 그것을 높이기 위해 던전과 균열을 만들어 내고 이렇게 시간을 끌면서 단계를 높이다 결국 악마가 건너온다?”

명일의 물음에 다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화그룹이 내린 결론은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헌터 관련 일에 투자를 하는 것이고요. 마수는 몰라도 악마가 넘어온다면 지구는 정말 끝이니까요. 그럼. 사업이고 뭐고 없잖아요.”

다현과 각을 세우던 수영까지도 진지한 얼굴로 둘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번 던전에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를 놔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몬스터를 죽이면 마기의 농도가 높아진다고 몬스터를 살려 두기에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백색지대가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있었다.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있지. 악마가 넘어올 가능성이 있다고 지금 당장 넘어오는 몬스터를 죽이지 말라고? 그런 궤변은 공학자들이나 내뱉는 거지. 우리 같은 헌터가 아니라.”

가만히 듣고 있던 수영이 따지고 들며 말했지만 다현은 그런 그녀를 무시하며 명일에게 물었다.

“혹시 오크가 나오는 사라지지 않은 던전이 있습니까?”

“네에? 아. 오크요?”

경호는 다현에게 오크가 나오는 곳이 있으면 그곳을 우선적으로 맡으라고 했다.

이유까지 묻진 않았지만 경호가 아무런 이유 없이 오크가 나오는 던전을 맡으라고 하진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여기와 여기, 그리고 여기도, 또 이곳도 오크가 나오는 것으로 측정된 던전입니다.”

여섯 개의 던전 중 오크가 확인된 것은 네 개소였다.

“그러면 가장 먼저 파열될 것 같은 던전은요?”

“이곳. 오크가 나올 것으로 측정된 이곳이 내일모레 정도에 파열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던전 중 마력 파장의 규모도 가장 큽니다.”

“그러면 이곳을 저와 신화길드에서 맡겠습니다. 그리고 보여 드리지요. 마기의 농도를 최대한 높이지 않고 처리하는 방법을요.”

다현은 그런 방법 따위 모르고 있었지만 경호를 믿고 우선 큰소리를 쳤다.

그러자 수영이 즉각 반발했다.

“던전 파열에 검증되지도 않은 방법을 쓰겠다는 거야? 그에 따른 리스크는 누가 감당할 건데?”

“그걸 너와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이익!”

“아니면 내기라도 할까? 제대로 공략 못 하면 내가 지는 거로 어때?”

“….”

“검증되지 않은 방법이라 걱정하면서. 왜? 제대로 공략할까 겁나는가 보지?”

“좋아. 다만 네가 공략을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네 팀이 하는 공략과 우리 팀이 하는 공략 중 누가 더 잘하나 비교하는 거로 하자. 어때?”

“그러던가. 그럼. 내기에서 지면 소원 들어주기로. 수천억을 내놓으라는 둥 그런 말도 안 되는 거 말고.”

“그래.”

“오케이.”

고개를 끄덕인 다현이 명일을 보며 말을 이었다.

“허가해 주시면 공략 계획을 오늘 저녁까지 보내 드리도록 하죠. 계획서가 마음에 안 드시면 공략을 취소하셔도 되고요.”

“알겠습니다.”

명일이 다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회의는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10분도 지나지 않아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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