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용사의 골목식당-192화 (192/335)

#192화

“으아! 살 것 같다!”

콩나물국을 그릇째 들고 마신 성원이 포효하듯 소리쳤다.

그 앞에 앉아 있던 경호가 그런 성원을 한심한 얼굴로 쳐다봤다.

“우와. 진짜 죽을 뻔했네요. 평소 같으면 마력으로 주독을 빼내기라도 할 텐데. 그것도 못하고….”

“그러게. 적당히 먹고 나오라니까.”

“저도 그러고 싶었는데. 아주 날을 잡았다니까요. 갑자기 나오는 것도 이상할 거 같고. 어쩔 수 없이 있었죠.”

그때 지숙이 꿀물을 타서는 탁자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젊을 때 잘 챙겨야지. 무슨 술을 그렇게 많이 먹었어?”

“누가 부탁을 해서요. 그래서 먹기도 싫은 술을 억지로 먹었습니다.”

성원이 지숙에게 대답하며 경호를 지긋이 쳐다봤다.

경호는 그런 성원의 시선을 피하며 꿀물이 든 잔을 건넸다.

“에이. 뭐 술도 적당히 먹으면 약이라잖아. 자아. 이거 먹고 어서 가자.”

“에휴. 알았어요.”

아직 식당 오픈도 안 한 이른 시간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나간다는 경호의 말에 지숙이 눈을 치켜떴다.

“아들! 이렇게 일찍부터 어디 가려고? 요즘 손님도 몰려서 바쁜데.”

“아. 말한다는 걸 깜빡했네. 이제 경연이 코앞이라 뭐 처리할 것들이 있다네. 회의할 것도 있고. 언제쯤 끝나지?”

경호가 꿀물을 마시고 있는 성원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아. 어머님. 오전이면 끝나요. 호돈이형 불렀으니 홀 서빙은 걱정 안 하셔도 될 거예요.”

“그래. 알았다. 그럼. 갔다 와.”

“어머님이 끓여 주신 콩나물국이랑 꿀물 아니면 죽을 뻔했습니다. 정말 잘 먹었습니다.”

“그래. 술 너무 많이 먹지 말고.”

“네에!”

경호가 바닥에 엎드려 있는 흰둥이에게도 전음을 날렸다.

-너도 가야지. 어쩌면 신수들이 잡혀 있는 곳을 알아낼 수도 있는 일인데.

-경호 님. 안 그래도 이제 일어나려고 했습니다. 사실 저도 성원이 못지않게 밤새 술자리에서 마혼을 태우느라 힘들었다고요.

어찌 보면 술 마시며 놀았던 성원보다 맨정신으로 그 상황을 지켜보며 밤새 신력을 뿜어낸 흰둥이가 더 고생했다.

-그래. 내가 저녁에 특식 만들어 줄게.

특식이라는 이야기에 흰둥이가 벌떡 일어나 꼬리를 흔들며 달려왔다.

앙! 앙!

그런 흰둥이를 보며 경호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너도 가려고? 지금은 산책 가는 게 아닌데? 괜찮아?”

“형님. 어차피 길드 하우스 가는 거라서 상관없을 거 같은데요. 흰둥이도 나가고 싶은 거 같은데 데리고 가죠.”

성원이의 연기력이 그새 많이 는 것 같아 경호가 피식했다.

역시 실전만큼 좋은 훈련은 없는 법이었다.

***

길드하우스 지하 회의실에 경호를 비롯해 다현, 성원, 흰둥이, 울피에 제니까지 모였다.

“자아. 오늘 모인 이유는 다들 아시죠?”

경호가 회의실 테이블 가장 상석에 앉아 회의를 진행했다.

테이블 위에는 버거퀸의 금고에서 가져온 마목의 펠릿과 사진 찍은 서류를 출력한 용지가 놓여 있었다.

“정말 그런 조직이 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네요. 사실 지금도 사장님, 아니 오빠가 그런 대단한 일을 한 ‘용사’라는 것도 믿기지 않는데….”

이게 경호를 오빠라고 부르는 제니가 테이블 위에 놓인 마목과 서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현재 제니는 신화학원의 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다현이 경호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만 해도 어디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다.

‘아니 정령계에 소환당해 마왕을 잡고 귀환해서 식당에서 일한다고? 말도 안 돼! 요즘 그런 유치한 내용은 판타지 소설에도 안 나온다고!’

힘순찐 판타지의 클리셰 범벅 이야기를 들은 듯해서 그녀도 처음엔 어이없어 했지만 다현과 성원이 굳이 그런 내용으로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기에 결국엔 믿게 됐다.

하지만 그 뒤로도 딱히 만날 일이 없었기에 잊고 있었던 사실이 오늘 회의에서 경호를 보면서 다시 떠오른 것이었다.

사실 ‘정말 정령계 가서 마왕과 싸웠어요?’하고 묻고 싶었지만 회의 분위기가 생각보다 더 무거워 꾹 참고 있는 제니였다.

“경호야. 다시 한번 제대로 설명해 줘. 솔직히 나도 정확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으니까.”

“그래. 그러니까 악마계약자라는 존재….”

경호는 차분하게 마계가 침략하는 순서와 악마계약자를 이용하는 수법, 마혼에 대한 부분, 거기다 용사에 대한 마신의 경고와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웨이브 던전까지 설명을 마쳤다.

“와아아!”

경호의 말을 흥미진진하게 듣던 제니가 감탄사를 터뜨렸다.

“이거 언니가 말을 재미없게 한 거였네. 오빠 이 정도면 적당히 살 좀 붙여서 소설 써도 팔리겠는데. ‘귀환용사의 골목식당’ 같은 대충 이런 제목으로. 어때?”

제니의 말에 경호가 피식 웃었다.

“마계 침략을 해피엔딩으로 막아 내면 생각해 볼게.”

“그래서 이게 그 버거퀸 금고에서 나온 서류랑 마목이라고?”

제니가 서류를 대충 훑어보고는 테이블 위로 다시 올렸다.

“서류는 별거 없네. 뭐. 이걸로도 자금세탁이랑 횡령 같은 걸로 잡아넣을 순 있겠지만…. 어쨌거나 지금 찾아야 하는 건 저 마목을 재배하는 곳 아니야?”

“맞아. 흰둥아. 울피야. 이거 냄새로 못 찾아?”

울피야 그렇다고 쳐도 흰둥이는 개도 보통 개가 아니었다.

인간의 백만 배에 달하는 후각 능력을 가진 개의 진정한 조상이며 주신의 반려견이자 최상급 신수이자 지구의 수호신이었다.

경호는 마목의 펠릿을 손에 담아 흰둥이의 코앞에 갖다 대며 물었다.

“뭐가 느껴져?”

킁킁!

흰둥이가 경호의 손바닥 위에 놓인 펠릿조각에 코를 가져다 대고는 신중하게 냄새를 맡았다.

-으음. 마혼의 기운이 강하네요. 그리고 마목, 특유의 알싸한 향도 있고요. 마지막에 흙냄새도 좀 올라오고요.

“그래. 그 흙냄새! 그 흙냄새로 흙의 산지를 찾아서 범위를 좁히다 보면 찾을 수 있을 거야!”

경호의 말에 다들 기대에 찬 눈빛으로 흰둥이를 쳐다봤다.

하지만 흰둥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그건…. 솔직히 흙냄새가 그냥 흙냄새죠. 그걸로 산지를 어떻게 맞춰요.

“아니 왜. 소믈리에가 와인의 향을 느끼고는 원산지와 그 포도의 빈티지를 막 맞추고 하는 그런 거.”

경호의 말에 기대에 찬 눈빛을 한 채 지켜보던 이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와인이야 맛과 향이 어느 정도 규격화돼 있지만 이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냄새로 그런 거까지 맞춰요.

“그건 안 되는 거냐?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럼. 이게 될 거라고 생각하셨던 겁니까. 아니 경호 님. 아무리 그래도 이건 말도 안 되죠!

애초에 흙마다 다른 냄새를 풍길지도 의문이었다.

한껏 기대했던 이들이 흰둥이의 말에 아쉬워할 때였다.

똑똑똑.

회의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성원의 말에 문이 열리고 비스트가 들어왔다.

“어. 왔어.”

“비스트.”

경호와 다현이 아는 체를 하자 비스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회의실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좀 늦었습니다.”

“아니에요. 바쁜 데 괜히 불러서 저희가 죄송하죠.”

비스트가 신수를 납치하는 조직을 추적하는 것 때문에 바쁜 것을 알기에 경호가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사실 바쁜 비스트를 부르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를 빼고는 제대로 빼돌린 정보를 분석할 수 있는 이가 전무한 실정이었다.

그렇다고 이 자료를 가지고 경찰이나 검찰, 헌터본부에 가져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결국 비스트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오면서 다현이한테 대략적인 내용은 들었어요. 한번 봐도 될까요?”

경호가 비스트에게 서류와 마목 펠릿을 건네줬다.

“으음. 형사처벌은 가능하겠지만 정작 필요한 악마계약자의 증거가 될 만한 자료나 마목의 재배지 같은 정보는 없네요.”

서류를 빠르게 읽어 내려간 비스트가 그것을 내려놓고 마목 펠릿을 살폈다.

“그러게요. 그게 문제에요. 마목 펠릿으로는 재배지를 알기도 어렵고요. 결국 거래장소를 덮쳐야 할 거 같은데….”

경호의 말에 비스트가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위치를 알 수도 있겠는데요.”

그렇게 말한 비스트가 마목 펠릿 하나를 입 안에 넣고는 꼭꼭 씹었다.

퉤엣.

마치 맛을 음미하는 미식가처럼 한참을 씹던 비스트가 마목 펠릿을 뱉어 냈다.

“이거 미세하게 섞여 있는 마기의 맛이 낯이 익는데….”

“마기에…. 맛도 있어요?”

비스트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던 경호가 놀라 물었다.

“물론이죠. 물론 보통은 느끼기 어렵고 저는 [야성]이라는 특성이 있어서 마기나 살기 같은 특정 기운에 대한 감각이 엄청나게 뛰어나기에 느낄 수 있는 거죠.”

“그럼. 혹시 이 마목이 어디서 재배되는 건지 알 수 있을까요?”

그전까지 경호가 정체를 숨긴 채 처리하려 했기에 일이 복잡했던 거지 지금 여기 모인 이들의 도움을 받아서 악마계약자 조직을 공격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워낙 돌아다니면서 마기를 느끼다 보니 알게 된 건데. 산에 깔려 있는 마기가 보통 이런 맛이 나거든요. 거기다 서울 근교인 거 같아요. 정확히 딱 어디라고 한 곳을 집기는 어려운데 하여튼 그런 맛이 나네요. 서울 근교 산을 뒤져 보면 나오겠죠.”

경험적이고 감각적인 거라 비스트도 뭐라고 설명하기가 어려웠지만 어쨌든 덕분에 아무것도 없이 찾아 헤매던 것보다 훨씬 범위를 좁힐 수 있었다.

“와. 역시 대단하시네요. 흰둥아, 너도 더 노력하자.”

경호가 비스트의 말에 역시나 그냥 넘어가지 않고 흰둥이를 걸고 넘어졌다.

“그럼. 한번 찾아볼게요. 어차피 신수를 납치하는 조직이 마목을 재배할 가능성이 크다는 거잖아요.”

“아마도 그럴 거예요.”

우우우우웅! 우우우우웅!

그때 비스트의 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어? 본분데?”

비스트가 스피커폰으로 돌려 전화를 받았다.

-비스트 헌터님. 던전관리국의 김명일 과장입니다. 통화 괜찮으십니까?

“아. 네. 말씀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는 던전에서 파열 조짐이 보여 연락드렸습니다.

던전 파열은 보통 군부대를 통해서 대규모 화력을 쏟아 내 처리하는 방법을 썼지만 이번엔 새로운 유형의 던전이라 본부에서도 ‘레인보우 식스’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었다.

특히나 다현, 제니, 비스트를 제외한 세 명은 원래부터 본부 소속이었다.

비스트가 다현과 제니의 눈치를 살피고는 말했다.

“그래요? 다른 레인보우 식스에겐요?”

-저희 소속은 이야기가 끝났고 다현 헌터님과 제니 헌터님께 이어서 연락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럼. 제가 다현과 제니에게 연락해서 본부를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저희야 더 좋지요.

“언제 찾아가면 되겠습니까?”

-빠를수록 좋습니다. 언제든 이 번호로 연락주십시오.

통화를 마친 비스트가 다현과 제니를 쳐다봤다.

“언제 갈래?”

“당장 가자. 이거 말고도 바쁘잖아.”

사실 바쁜 건 비스트뿐만이 아니었다.

경호가 정체를 밝히며 모든 것이 빨라지면서 다들 몇 배는 바빠졌다.

성원은 거의 마무리 돼가는 동물원 공사와 요리 경연 준비, 신화학원에 길드 관리까지…. 몸이 한 개인 것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고 다현도 강사일에 수련, 헌팅까지 평소보다 몇 배는 바빴다.

제니도 역시도 최근 수련과 강의로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럴까?”

비스트의 말에 다현이 경호를 쳐다보며 물었다.

“경호야. 우리가 알아야 할 게 또 있어?”

다현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던 경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웨이브 던전은 말했듯이 침략의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만든 거야. 그러니 무조건 사냥하는 게 좋은 게 아니거든. 어쩌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벌 수도 있어. 어쨌든 우리에겐 시간이 부족한 게 사실이니까.”

“그래서?”

“던전에 몬스터가 나오는 곳을 맡겠다고 해. 특히 오크가 있다면 무조건 그곳으로.”

“오케이. 그럼. 갔다 올게.”

다현은 그 이유도 묻지 않고 울피를 안고는 쿨하게 비스트, 제니와 함께 회의장을 나섰다.

“형님. 그런데 오크를 꼭 선택해야 하는 이유가 있던 거예요?”

다현은 쿨하게 나갔지만 옆에서 듣고 있던 성원은 내심 궁금하던 참이었다.

‘오크.’

던전에서 마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출몰 비율이 낮기는 하지만 인상적인 외모 때문에 많이 알려진 몬스터였다.

“오크가 생각보다 말이 통하는 녀석들이거든.”

“네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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