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마몬이 지배하는 동쪽 대륙의 중심인 갈리안 지역은 오크들이 살아가는 마을이 많은 곳이었다.
-쿠잇! 쿠이익!
듣기 거북한 쇳소리 같은 목소리와 위로 올라간 콧구멍, 입술을 삐죽 비집고 나온 어금니에 털이 듬성듬성 난 주름진 얼굴.
사아아악! 사아아아악!
꿈에 나올까 무서운 외모를 지닌 우람한 덩치의 오크가 숫돌에 커다란 도끼날을 갈아대고 있었다.
그 도끼로 인간의 머리를 내리칠 때 쓰려는 걸까?
“흐음! 제법 잘 갈렸군!”
쿠잇! 쿠잇! 거리며 도끼날을 손가락으로 만지는 오크, 잭슨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때였다.
뒤편에 있는 허름한 움막 안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잭슨. 밥 먹어요!”
도끼날을 갈던 오크가 그것을 내려놓고는 움막 안으로 들어갔다.
움막 안은 그리 크지 않았다.
아니 덩치가 큰 오크 둘이 생활하기에는 누가 봐도 좁아 보이는 공간이었다.
겨우 둘이 누울 수 있을 듯한 침상, 작은 식탁과 작은 화구, 그리고 찬장에 놓인 조리 도구 정도가 전부였다.
“미안해요. 더 맛있는 거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머리를 길게 땋은 그의 부인인 안나가 미안한 듯 나무그릇에 묽게 끓인 죽을 퍼다 그에게 건넸다.
“무슨 소리요. 이거라도 먹을 수 있으니 감사해야지.”
잭슨은 미안해하는 안나를 보며 킁킁거리며 코를 씰룩거렸다.
“그나저나 당신이 걱정이야. 배 속에 아기가 제대로 크려면 잘 먹어야 하는데. 그래도 오늘 배급이 나오니 다행이야.”
잭슨의 말에 안나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이곳에서 이렇게 지내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지요.”
“후우. 그만 식사합시다.”
이렇게 지내는 것에 감사하다는 안나의 말에 잭슨은 화가 났다.
이런 모습으로 변한 것도.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 환경도.
죽지 못해 살고 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여보….”
“벌써 15년이요. 이젠 솔직히 너무 지치는구려.”
“여보. 배 속에 우리 아이를 생각해서 조금만 더 힘을 내요.”
“그래 봐야 이런…. 아니 미안해. 당신이 나보다 몇 배는 더 힘들 텐데.”
마계에서 살아가는 것은 악마가 아닌 존재에게는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철저한 계급사회인 마계에서 마왕과 악마 귀족, 그리고 그 아래 악마군단의 병사와 상급의 마수들.
이들은 거의 모든 자원을 차지하며 풍족하게 살았다.
그에 반해 흔히 ‘몬스터’라 불리는 주민들과 가축으로 쓰이는 하급 마수들은 벌레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살고 있었다.
악마와 주민 사이의 연결 역할을 하는 족장이나 촌장 정도만 겨우 조금 나은 대우를 받으며 살아갈 뿐이었다.
땡땡땡땡땡땡!
그때 요란한 소리가 마을에 울려 퍼졌다.
“마수고기를 배급하는 날이니 모두 나오도록! 광장으로 지금 당장 나와!”
어금니 마을의 촌장인 마크가 철판을 두드리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움막에서 하나둘 오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후 마을 중앙 광장에 마수고기를 실은 수레 앞에 길게 줄을 섰다.
평소 같으면 수레에 가득 실린 마수고기를 보며 좋아하며 왁자지껄할 이들이었지만 오늘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바로 수레 옆에 서 있는 존재 때문이었다.
-반갑다. 나는 아가레스 군단장님을 모시는 ‘시투로’라고 한다. 마수고기를 나눠 주기 앞서 할 것이 있어 이리 왔다.
죽음이 느껴지는 살기 섞인 목소리가 광장에 모인 이들을 옥좼다.
검붉은 피부색에 뱀의 그것처럼 샛노란 세로 동공, 칠흑같이 새까만 뿔이 달린 악마였다.
아가레스 군단의 돌격부대장 중 하나로 백작의 직위를 가진 상급 악마였다.
‘귀찮아. 정말 귀찮아 죽겠네.’
며칠째 웨이브 던전에 쓸 주민을 모으기 위해 마을을 돌고 있었다.
웨이브 던전에 쓴다는 말은 말 그대로 죽으러 가는 것이기에 혹여나 반발이 일어날 수 있었고 그렇기에 중급 이상의 악마가 그 임무를 맡았다.
거기다가 던전에 쓸 주민을 이동시킬 마법진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어야 했다.
그러한 필수적인 요건 때문에 발탁된 인물이 바로 ‘시투로’였다.
-은혜롭게도 말이야. 웨이브 던전에 쓸 인원을 가족 당 한 명씩만 차출해 갈 것이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지만 상급 악마가 풍기는 살기에 눌려 광장 안은 적막만 감돌았다.
‘재미없군. 몇 명이 좀 날뛰어야 피 맛이라도 보는데 말이야.’
지난 삼 일간 십여 군데가 넘는 마을을 다니면서 피로가 쌓인 시투로는 살심이 동했다.
그런 시투로의 눈치를 살피던 촌장, 마크가 눈치를 살피다 말했다.
“시투로 백작님. 그럼. 어떤 방식으로 차출하면 되겠습니까.”
-음. 내가 직접 고르도록 하지.
어차피 인원수만 채우면 되는 거였기에 어떤 방법으로 골라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가장 재미있는 방법은 자신이 직접 고르는 거였다.
-자아. 볼까.
첫 번째 가족이었다. 나이가 제법 있는 부부와 청년 정도로 보이는 아들이 있는 집이었다.
-흐음. 그래. 셋 중 누가 갈래?
시투로의 질문에 즉각 아비로 보이는 자가 손을 들었다.
“제, 제가 가겠습니다.”
“아니 제가 가겠습니다. 당신은 일해서 애들 먹여 살려야…..”
시투로가 둘 사이에 끼어들며 말했다.
-잠깐만. 아니 이런 일로 뭘 싸우고 그러나. 내가 그럼 아들을 데려가도록 하지. 둘이 싸울 일이 없고 얼마나 좋은가.
“아, 아니! 그, 그게! 백작님! 안 됩니다! 우리 아이는 안 됩니다! 제, 제발요!”
아비가 무릎을 꿇고는 두 손을 싹싹 빌며 시투로를 향해 간곡히 부탁했다.
-안 돼? 지금 나보고 안 된다고 한 거야?
퍼억. 뚜득.
시투로가 자신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빌던 오크의 목을 그대로 밟아 버렸다.
즉사였다.
뀌에에에에에에에엑!
남편의 죽음을 지켜보던 어미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감히 버러지 같은 게 어디…. 흐음. 그럼. 다음 가족을 한번 볼까.
다음은 어미와 세 아이가 있는 가족이었다.
-아비는 없느냐?
시투로의 물음에 벌벌 떨던 어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지, 지난 차출에 끌려가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런. 저런. 무슨 일에 끌려갔는지 아느냐? 가능하면 내가 알아보도록 해 주마.
시투로의 말에 어미가 고개를 꾸벅이며 말했다.
“그것이 마왕님의 연회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자세한 이유까지는 모르옵니다.”
-혹시 3년 전 아니더냐. 이런. 그때 마왕님이 오크 고기가 먹고 싶다 하셔서 대대적으로 차출한 때구나.
시투로의 말에 어미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 슬퍼하지 마라. 네년도 곧 남편을 만나게 될 테니.
그렇게 시투로는 직접 가족 중 가장 약하거나 가장 필요한 이들을 골라 웨이브 던전에 보낼 인원으로 차출했다.
그렇게 마지막 가족 앞에 시투로가 섰다.
마지막 차례는 잭슨과 안나였다.
-호오. 사이가 좋아 보이는 부부구나.
잭슨이 바들바들 떨고 있는 안나의 손을 꼭 붙들고 있었다.
-누가 가고 싶으냐?
시투로의 질문에 잭슨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백작님의 선택에 따르겠습니다.”
앞서 상황을 지켜봤던 잭슨이었다.
괜히 신경을 거슬렸다가는 즉각 처형당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몸을 사렸다.
-그래? 어? 보니 임신 중이구나. 축하하네.
시투로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걸렸다.
“….”
그것을 본 잭슨은 시투로의 축하에도 함부로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 축하한다는데 무안하게 이러긴가.
“가, 감사합니다.”
-그럼. 특별히 배 속의 아이를 데려가도록 하지. 난 가족 당 하나만 데리고 가면 되니까 말이야. 어떤가?
“….”
잭슨은 올라오는 욕지기를 이를 악물고 참았다.
지금 화를 내면 자신은 물론 아내와 배 속의 아이도 위험했다.
-그럼. 아이를 한 번 보도록 할까? 그리 많이 아프지는 않을 거야. 운 좋으면 살 수도 있을 거고.
시투로의 칼처럼 뾰족한 손톱에 마기가 피어오르며 날카로운 기운이 맺혔다.
“제, 제발 부탁드립니다.”
-부탁? 뭘 말인가?
아이처럼 천진한 표정으로 되묻는 시투로를 보며 잭슨은 할 수만 있다면 찢어 죽이고 싶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흐음. 그럼. 아이 말고 아내를 데려가도 되겠나? 아! 배 속에 아이는 꺼내 놓고 데려가도록 하지.
이러나저러나 아내와 아이를 죽이겠다는 소리였다.
‘이 개 같은 새끼!’
잭슨이 고개를 돌려 안나를 쳐다봤다.
‘여보! 그러지 마요! 제발! 제발!’
안나는 그런 잭슨의 눈빛에서 그의 각오를 읽어 내고는 고개를 저었다.
잭슨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야! 이 악마 새끼야!”
죽음을 각오한 잭슨이 시투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래. 그래야지.
퍼억!
시투로는 손을 들어 달려오는 잭슨의 이마에 마기를 쏘아 보냈다.
단 한 발짝이었다.
잭슨의 이마에 손가락 크기의 구멍이 뚫렸다.
털썩.
잭슨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여보오옷! 으아아아아아악!”
안나는 그 모습에 이성을 잃고 시투로를 향해 뛰어갔다.
-모성애보다 부부애가 강한 여자로군.
퍼억!
안나 역시 마찬가지로 이마에 구멍이 뚫린 채 절명했다.
-그러게. 아들만 데려간다니까. 괜히 덤벼서는….
혀를 차던 시투로가 바로 몸을 돌렸다.
-다음 마을은 또 어디야. 아. 귀찮아 죽겠네.
***
주신이 창조한 차원계와 마신이 자신의 힘을 떼어 내 만든 마계.
겉으로 보기에 둘은 비슷해 보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창조의 능력이 없는 마신은 자신이 다스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권능과 생명력을 떼어 내어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창조의 능력이 없기에 주신이 만든 차원계처럼 정교하게 만들어 낼 수 없었다.
동물과 식물, 미생물까지 다양하게 만들어져서 먹이 사슬과 같은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그로 인해 생명의 진화와 문명의 발전이 끊임없이 발생하며 성장했다.
하지만 최초의 마계는 악마와 마수만 존재했다.
그 이상은 마신의 힘으로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마신이 만든 악마와 마수는 파괴 본능만 존재하기에 서로 먹고 먹히며 마계는 금세 생존을 위한 전쟁터가 되었다.
마신은 마목을 만들고 마혼을 심어 그것을 진정시켰지만 그것은 억지로 막아 둔 미봉책에 불과했다.
기본적으로 마계는 생태계가 유지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차원 침략이 시작됐다.
파괴의 힘을 타고난 악마와 마수는 차원계의 존재들보다 월등히 강했다.
그들은 차원계에서 수많은 생명을 죽여 그 혼을 삼키고 재물을 강탈했다.
그리고 쓸 만한 존재는 마계로 끌고 오기도 했다.
그렇게 종족을 납치해 그들의 몸에 마혼을 심고 암흑마기를 주입해 탄생시킨 것이 ‘몬스터’라 불리는 존재였다.
마혼은 말 그대로 악마의 혼을 더욱 강화하는 기운이었다.
그런 기운이 몸 안에 심어져 자라는 데 아무렇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다 악마 고유의 힘이자 권능인 암흑마기가 섞이자 전혀 다른 존재로 변했다.
엘프에서 다크엘프로, 거인족에서 서리거인으로 변하는 것은 그중에서 양호한 편이었다.
수인족들은 원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괴물로 변했고 인간 역시도 외형이 크게 변해 ‘오크’라 불리는 몬스터로 변했다.
그렇게 변한 몬스터들은 마계의 주민이 되어 살아갔다.
물론 산다고 해도 사는 게 아닌 삶이었다.
침략 전쟁을 하지 않아 식량이 없을 때는 악마의 식량으로 사용됐고 그렇지 않을 때는 척박한 마계를 일구고 마수를 사육하는 일을 했다.
‘웨이브 던전’을 연다는 것.
그것은 바로 차원계의 마기 농도를 높이기 위해 마계의 주민인 ‘몬스터’를 쏟아 낸다는 뜻이었다.
-그럼. 누구부터 내놓을 건가.
다섯의 마왕마다 자신마다 영역이 있었다.
대륙의 동쪽을 맡고 있는 마몬, 서쪽을 맡고 있는 사탄, 북쪽을 맡고 있는 루시퍼, 남쪽을 맡고 있는 아스모데우스. 그리고 대륙 바깥에 있는 흑해를 차지하고 있는 레비아탄.
하지만 다들 서로 눈치만 볼 뿐이었다.
하급 악마 하나가 몬스터 수천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전력에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노동력이나 식량으로의 가치가 있는 존재였다.
계속 눈치만 살피자 보다 못한 아가레스가 입을 열었다.
-웨이브 던전이 완전하게 열리지 않아 투입할 몬스터의 양을 예측하기 어렵지만 서로 공평하게 나눠서 투입하는 거로 하지. 어떤가? 참고로 나는 벌써부터 주민들을 차출하고 있다네.
-좋다. 그렇게 하지.
-나도 찬성.
-그것 나쁘지 않군.
다들 찬성을 하자 끝까지 대답하지 않고 있던 오로바스도 마지못해 찬성했다.
-그래. 알았다.
오로바스는 어쨌든 아가레스가 이렇게 회의를 진행하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 나는 가 보도록 하지.
오로바스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곧장 회의장을 나섰다.
-거참. 하여간 성질머리하고는.
아가레스가 그런 오로바스를 보며 실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