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양념갈비.
짜장면과 함께 대한민국 외식의 상징과도 같은 음식이었다.
양념갈비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크게 나누면 간장과 소금,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흔히 식당에서 먹는 숯불 갈비는 거의 대부분 간장 베이스 양념이다.
하지만 소금 베이스 양념도 유명한데 바로 ‘수원왕갈비’가 대표적이다.
동진이 준비한 양념갈비 역시 소금 베이스였다.
“형님. 간장 대신 소금으로 양념할 건데. 혹시 드셔 보셨어요?”
동진의 말에 성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금 양념?”
갈비를 먹을 때 ‘찜’인지 ‘구이’인지, ‘돼지’인지 ‘소’인지를 고민하지 양념이 ‘소금’이니 ‘간장’이니 구별하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뭐. 보통 갈비 양념을 어떻게 하는지 알고 먹지 않아서 모르겠네. 그런데 갈비는 거의 간장으로 양념하지 않나?”
“그렇죠. 그런데 수원에서는 갈비를 소금으로 양념하거든요. 수원왕갈비 유명하잖아요.”
“아. 수원갈비가 소금 양념이었어?”
당연히 먹어 본 적 있었다.
불판을 가득 채우는 커다란 양념갈비가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았다.
“그거 맛도 깔끔하고 좋았는데. 그런 스타일이라 이거지.”
“네. 그리고 간장 양념보다 이게 훨씬 간단하기도 하거든요.”
동진이 커다란 대야에 손질한 갈빗살을 넣고는 소금과 설탕, 후추와 다진 마늘을 넣고 버무렸다.
그러고는 그릴에 올렸다.
치이이이이이이이익.
양념이 된 고기라 그런지 아까보다 더 올라오는 향이 더 강했다.
“오. 냄새가 아까 생갈비보다 더 좋은데?”
“저는 냄새만 아니라 맛도 이게 더 좋더라고요. 삼족우 고기 자체가 육즙과 지방이 많아서 고소하지만 먹다 보면 좀 느끼하면서 물리는 느낌이 있거든요. 근데 양념을 해서 먹으니 느끼함도 좀 잡히고 해서 더 좋더라고요.”
“그래. 기대할게.”
금세 잘 익은 삼족우 왕갈비구이가 접시에 담겨서 널따란 식탁 위에 올라왔다.
그리고 고추, 마늘, 쌈장, 고추냉이, 기름장까지 세팅을 한 동진이 성원에게 잔을 건넸다.
“우선 한잔 받으세요. 아까 고기 구우면서 뿌렸던 것보다 좋은 악마덩굴뿌리주거든요. 악마덩굴로 만들어서 좀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지만 드신 분들은 브랜디나 위스키보다 이걸 더 선호하거든요.”
고급스러운 크리스탈병에 담긴 호박색 액체를 성원이 쥔 잔에 조심스럽게 따랐다.
“그래? 이건 도수가 얼마쯤 되는데?”
“한 40도 정도 됩니다. 도수는 꽤 높지만 맛이 순하고 향이 풍부해서 모르고 마시면 소주랑 크게 차이도 없을 정도죠.”
성원이 술병을 건네받아 동진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솔직히 내가 갑자기 보자고 해서 놀랐지?”
“….”
동진이 성원의 물음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냥 물어보는 거니까. 그냥 대답하면 돼.”
“안 놀랐다면 거짓말이죠. 사실 햄버거 프랜차이즈로 경연에 참여한 것만 해도 놀랐는데요. 갑자기 투자 이야기하면서 보자고 하시니 안 놀랄 수가 있나요.”
동진은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사실 더 놀란 쪽은 성원이었다.
사실 이렇게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는 상태고 지금도 머릿속으로 계속 어떻게 해야 의심을 사지 않고 자연스럽게 현혹당한 연기를 하면서 친해질 수 있을지 거듭 고민 중이었다.
“나는 우리 아버지나 형님처럼 사업가 체질이 아니야. 알고 있지? 나는 우리 가문에서 좀 빠지는 녀석이니까.”
성원의 말에 동진이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옛날이야기죠. 요즘엔 ‘신화’하면 ‘이성원’ 아닙니까. 오죽하면 대한민국을 빛낸 인물에서 3위를 하셨을까요.”
“응? 내가?”
성원도 동진이 이야기한 대한민국을 빛낸 인물은 금시초문이었다.
그것도 3위라니? 그리고 3위면 대단한 건가?
“1위가 아버지고, 2위는 형님은 아니겠지?”
“에이. 1위는 세종대왕님이고 2위는 이순신 장군님이죠. 4위가 무려 단군 할아버지인걸요.”
동진이 웃자고 건넨 농담이었다.
“하하하. 좀 웃겼어.”
“그러니까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거죠. 자아. 우리 형님이 1등이 되는 그날을 위하여 건배!”
“그래. 세종대왕님 한번 이겨 보자!”
째앵.
성원은 잔을 마주치며 눈은 웃고 있었지만 심정은 복잡했다.
마치 죽을 줄 알고 사약을 받는 대역죄인의 심정이었다.
-걱정 말고 먹어. 악마덩굴이 직접 현혹을 걸면 모를까. 이 정도는 내가 바로 날려 버릴 수 있으니까.
흰둥이가 멈칫거리는 성원을 보며 말하자 그제야 받은 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성원은 입안을 채운 악마덩굴뿌리주를 서서히 목으로 넘겼다.
동진의 말처럼 맛은 좋았다.
목 넘김도 좋았고 입안에서 느껴지는 맛과 코를 타고 올라오는 향도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몽롱하게 올라오는 기분까지.
예전에 느껴봤던 [현혹]의 그 느낌이었다.
그때 시원하면서도 찌릿한 기운이 몸을 타고 돌며 몽롱하게 올라오던 기분이 서서히 사라졌다.
흰둥이의 신력이 작용한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연기를 해야 했다.
“오. 이거….”
“형님. 술맛이 어떠세요?”
“으음. 목 넘김도 좋고 맛도 괜찮네. 그런데 도수가 세긴 센가 봐. 이거 딱 한 잔 마셨는데 알딸딸한데. 사업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마력으로 술기운을 날려야 하나.”
성원이 슬쩍 운을 띄우자 동진이 말렸다.
“에이. 오늘은 그냥 친목 도모라고 하셨잖아요. 술은 기분 좋으라고 마시는 건데 아깝게 그걸 날리면 어떡합니까. 형님. 그냥 오늘은 사업 생각하지 말고 먹고 마시죠.”
“그래. 이 귀한 술을 날려버리긴 그렇지. 그럼. 한잔 더 줘 봐. 이거 한 잔만 마셔서는 잘 모르겠네.”
동진이 술을 따라 주고는 양념갈비 한 점을 집어서는 성원의 입에 넣어 주며 환하게 웃었다.
“형님. 안주도 잘 챙겨 드셔야지. 이게 잘 넘어가도 나름 독주라서 안주 없이 먹으면 큰일 납니다.”
물론 성원의 귀에는 동진의 말이 ‘형님. 마혼도 잘 챙겨 드셔야지. 현혹 효과가 더 잘 들어갑니다.’로 들렸다.
“그래. 고맙다. 안주도 잘 챙겨 먹을게.”
성원이 애써 눈의 초점을 흐리며 흐리멍덩하게 웃었다.
***
‘마혼(魔魂).’
마목에서 풍기는 기운은 꽤나 강렬하기에 아마도 평범한 각성자라도 느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흰둥이의 말처럼 마목 펠릿을 숯불에 같이 넣어 태우는 정도로 쓰는 거라면 경호나 흰둥이 정도가 아니라면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사무실이나 창고를 찾아가서 털어도 찾기 힘들 수도 있다.’
패티를 먹어서 그 안에 담기 마혼의 기운을 느끼는 것과 마목 펠릿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그냥 느끼는 것은 완전 다른 영역의 문제였다.
고추장의 매운 정도를 직접 맛을 보고 맞추는 것과 그냥 느낌으로 맞추는 것. 그 둘의 차이보다 더 큰 차이었다.
그래서 마기에 예민하면서도 침투에 유리한 존재, 운애를 데려가기로 했다.
땅개도 나쁘지 않았지만 특성상 운애보다 흔적이 남을 확률이 더 높았다.
게다가 땅개는 눈치가 너무 없었다.
-경호. 저기야?
모자와 마스크, 장갑을 낀 경호가 운애와 함께 버거퀸 본점이 보이는 맞은편 건물 옥상에 올라서 있었다.
“뭔가 느껴지는 게 있어? 좀 께름칙한 느낌 같은 거.”
침투를 위해 인간 형태가 아닌 반투명한 정령의 형태로 있는 운애가 고개를 저었다.
-성원과 흰둥이의 기운은 느껴지네. 여기서 그런 게 느껴지면 내가 정령왕쯤 돼야 가능할 거 같은데.
“그것도 그러네. 그럼. 가 볼까.”
은신으로 몸을 숨긴 경호가 가볍게 몸을 날렸다.
건물 뒤쪽으로 날아가 2층 창문을 열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잠겨 있었다.
“아. 이걸 깰 수도 없…. 어.”
경호가 멈칫하며 고민하는 사이. 뒤따라온 운애가 물줄기로 변해 창문 틈 사이로 통과해 들어갔다.
잠시 후, 끼릭하고 잠겨 있던 창문이 열렸다.
운애가 경호를 보며 피식거리고 있었다.
-경호. 이러라고 나 데리고 온 거 아니었어? 뭐야. 바보처럼.
그렇긴 한데 운애와 함께 있는 동안 그녀가 정령이라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리는 경호였다.
“가끔 손목에 폰을 차고 있으면서도 폰을 찾는 수준이라…. 네가 이해해라.”
-저기가 사무실인 듯하네.
은신을 해 몸을 숨긴 경호가 불이 꺼진 어두컴컴한 복도로 들어섰다.
역시나 복도엔 빽빽하게 CCTV가 달려 있었다.
운애 역시 정령 상태라 경호의 눈에는 보였지만 CCTV에는 잡히지 않는 상태였다.
철컥철컥.
당연하게도 대표 사무실도 잠겨 있는 상태였다.
스르르르르.
이번에도 운애가 물로 변해서 사무실 문 밑으로 스며들 듯 이동했다.
철컥. 철컥. 철커덩.
그렇게 문이 열렸다.
사무실 안은 평범했다.
고급스러운 책상과 소파. 그리고 벽장.
벽장에는 고급스러운 장식품들이 가득 있었다.
그리고 그게 다였다.
뭔가 느껴지는 특별한 기운은 전혀 없었다.
“운애야. 너는 뭐 느껴져?”
-나도 기운이 딱히 느껴지진 않는데….
말을 멈춘 운애의 몸에서 뿌연 수증기가 확 피어올랐다.
후우우우우웅.
운애를 중심으로 수증기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수증기.
‘기체 상태로 되어 있는 물’이라는 뜻이었지만 지금 사무실을 가득 채운 수증기는 단순히 기체 상태로 변한 물방울이 아니었다.
“너 안 데리고 왔으면 그냥 집에 갈 뻔했는데.”
이 물방울 하나하나가 느끼는 모든 감각을 운애가 받아들이고 있었다.
기체화된 물방울은 말 그대로 어디든 밀폐된 곳이 아니라면 어디든 들어갈 수 있었다.
후우우우우웅.
수증기들이 다시 운애에게 몰려들더니 흡수되어 사라졌다.
마치 습식사우나처럼 습했던 사무실 공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산뜻하게 바뀌었다.
운애가 손가락으로 벽장을 가리켰다.
-저기 뒤쪽에 금고가 있어. 한번 열어 봐야 할 거 같은데.
“오. 잘했어!”
-돌아가면 맛있는 거 해 줘. 요즘 바쁘다고 너무 뜸했잖아.
운애가 입을 삐죽거리며 투덜거렸다.
“알았어. 말만 해. 내가 다 해 줄 테니까.”
-그럼. 돈가스랑 피자! 콜라도!
그제야 운애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피어올랐다.
“아. 돈가스, 피자 질리도록 만들어 줄게.”
이런 고급 인력을 돈가스, 피자 정도로 부리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었다.
경호가 벽장으로 다가가서 샅샅이 훑었다.
“오. 요거 좀 의심스럽게 생겼네.”
벽장에 놓여 있는 장식품 중 유독 금동으로 만들어진 코끼리의 코만 반질반질거렸다.
경호가 코끼리의 코를 잡아당겼다.
끼리릭.
“빙고!”
드드드드드드득.
기계음과 함께 벽장이 옆으로 밀렸다.
그리고는 제법 커다란 금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경호. 이제 이걸 어떻게 열거야?
“아니. 이거 딱히 열 생각 없는데. 위치를 알았으면 됐어. 이제 나갈까?”
-응? 저 안에 그 마혼인가 뭔가 하는 게 들어있을 거 같은데. 그거 가지러 온 거 아니야?
나간다는 경호의 말에 운애가 놀라자.
“아니 내가 나가자고 했지. 그거 안 들고 간다고는 안 했잖아.”
***
“여기 맞지?”
그믐밤, 11시가 넘어가는 시간이라 가로등 불빛도 들어오지 않는 건물 뒤편은 아주 캄캄했다.
은신한 채 떠 있는 경호가 건물의 벽면을 가리키며 물었다.
-어. 아까 금고 바깥이 거기 맞아.
경호는 금고를 여는 것은 포기했다.
금고를 부수면 대대적으로 수사가 진행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방법을 찾아내서 정상적으로 연다고 해도 결국 동진에게 신호가 가서 눈치챌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금고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앞에서 열 수는 없지만 뒤를 열지 못할 거 같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금고를 턴다고? 이게 가능한 일이야?
“원래는 불가능한 일이지.”
건물 벽을 부수고 금고의 뒤편을 잘라 내서 몰래 물건을 꺼내 간다는 것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장비를 구하기도 어려웠고 만약 구했다고 하더라도 시간도 많이 걸리고 소음이나 진동을 막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안 되면 다른 방법 찾으면 되지. 뭐.”
시도한다고 경호가 딱히 손해 볼 건 없었다.
경호가 소음과 진동을 막기 위해 건물 외벽에 결계를 쳤다.
그리고 아공간에서 용아검을 꺼내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자아. 그럼. 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