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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용사의 골목식당-187화 (187/335)

#187화

동진이 성원과 만날 장소를 그냥 아무렇게나 잡은 것은 아니었다.

물론 나오는 여성의 외모나 시설의 수준도 봤지만….

그곳을 약속 장소로 잡은 가장 큰 이유는 주점의 주인이 악마계약자여서였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일본인보다 친일파가 더 득세하며 악랄했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 대격변의 시대 역시 그랬다.

일반인, 헌터, 빌런, 악마계약자가 같은 세상에 완전히 다른 목표를 가지고 서로 치열하게 부딪히며 살아가고 있었다.

특히나 악마계약자는 마계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주 악랄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주점에도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마혼을 뿜어내는 마목(魔木).

안주에 아주 미량의 마목 가루를 섞어 놨고 접대하는 여자들이 들고 들어오는 담배에도 미세하게 마목 추출액을 넣어 놓은 상황이었다.

거기다 술에도 현혹 작용을 일으키는 악마덩굴의 뿌리 추출액을 넣어 놨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상황이 꼬이더니 갑자기 장소를 옮기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저 수다나 떨면서 친목을 다지려고 만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다현의 측근 중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무조건 마혼을 심어 조종해야 했다.

성공만 한다면 정말 단독으로 용사인 다현을 제거할 가능성도 있었다.

동진은 서둘러 머리를 굴렸다.

지금처럼 성원이 화를 내는 상황에서 주점을 고집하는 것은 하책이었다.

그래서 옮긴 곳이 바로 버거퀸 본점이었다.

마혼을 심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술은 어떤 거로 드시겠습니까? 혹시 좋아하시는 술이 있으신가요?”

동진은 술장고를 열어 보이며 물었다.

맥주, 소주, 막걸리, 와인, 양주, 백주까지.

사실 술에 크게 조예가 없는 성원이기에 술장고에 빼곡한 술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그저 맥주나 소주 정도면 족합니다. 대표님이 만들어 주실 안주와 어울릴 만한 술을 추천해 주시면 될 것 같네요.”

“그렇군요. 그럼. 우선 양념갈비를 구울까 합니다. 사실 양념에 미리 재우면 맛이 더 깊어지긴 하지만 바로 양념한 것도 고기 본연의 맛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서 좋거든요.”

“양념갈비요?”

“네. 요리 연구 중이라 마트에서 삼족우 갈빗대를 구해왔습니다.”

일주일부터 전국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정육코너에 마수고기를 납품하고 있었다.

이미 ‘천종원의 골목식당’ 같은 TV 프로그램이나 ‘행운식당’ 같은 곳을 통해 어느 정도 인지도가 퍼졌기에 마수고기 시장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오. 맛있겠네요. 구경해 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그리고 나이도 저보다 한 살 많으신데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가짜든 뭐든 어쨌든 친해져야 할 인물이었다.

“그럴까? 그럼. 맛있게 부탁해.”

“네. 형님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성원은 빌런보다 더 나쁜 놈인 악마계약자 따위에게 형님 소릴 듣고 싶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어. 오늘부터 형 동생 하지. 뭐. 그런데 진짜 아까처럼 실망스러운 행동하면 바로 손절이니까 다시는 그러지 마. 알았지?”

“네엡! 알겠습니다! 그럼. 형님. 요리를 설명하면서 만들도록 할게요.”

동진이 조리대 위로 커다란 갈빗대를 올렸다.

그러고는 험악해 보이는 손도끼를 꺼내 들고는.

“요리는 퍼포먼스도 중요한 법이거든요.”

그러더니 손도끼로 갈빗대를 퍽퍽 쳐서 잘라 냈다.

“오. 솜씨가 좋은데.”

확실히 눈앞에서 갈빗대를 손도끼로 잘라 내는 모습은 보는 맛이 있었다.

그렇게 토막 낸 갈빗대에 붙은 큼지막한 살덩이를 구이용에 알맞게 두툼하게 저몄다.

“이제 양념을 해야 하는데…. 사실 이대로 그냥 숯불에 구워 먹어 봤는데 그것만 해도 거의 사기 수준의 맛이더라고요.”

성원은 설명하는 동진을 보며 ‘정신 똑바로 차리자! 저놈은 악마계약자다. 세상 나쁜 놈이다!’를 속으로 외쳤다.

하지만 손질하는 고기에 물결처럼 퍼져 있는 마블링이 눈에 들어오며 자연스럽게 마음이 풀어지며 침이 고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나만 구워 드릴까요?”

꿀꺽.

“어. 그럼. 여기 흰둥이도 먹게 두 개 부탁할게.”

“아. 그 강아지 이름이 흰둥이였군요. ‘포메’가 원래도 귀엽지만 그 아이는 정말 귀엽네요. 혈통이 좋은가 봐요.”

혈통이라….

지구의 수호신이자 주신의 반려견이니 혈통으로 굳이 따지자면 우주 최강일 듯싶었다.

“그, 그렇지. 독일 황실 출신 품종이라고 하더라고.”

동진이 갑자기 혈통을 꺼내 들자 당황한 성원이 아무 말이나 막 내뱉었다.

“그럴 거 같더라고요. 독일 황실 혈통이 저렇게 동글동글하면서 새하얀 색이 나온다고 하던데 역시 그랬군요.”

성원의 아무 말을 동진이 아무 말로 받았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흰둥이만 속으로 피식 거렸다.

“그럼. 패티를 굽는 숯불 그릴에 구울게요.”

동진은 바비큐 집게로 손질한 삼족우 갈빗살을 집어 그릴 위에 올렸다.

치이이이이이이익.

연기가 피어오르며 고소한 육향이 확 올라왔다.

-역시 그릴이야. 저기서 마혼의 기운이 올라온다. 마수고기와 결합하면서 그걸 먹으면 마혼이 몸에 축적되는 거지.

흰둥이의 전음에 성원이 질문을 던졌다.

“내가 숯불갈비 매니아라 숯을 좀 아는데 그건 무슨 숯이야? 참숯도 좋지만 요즘엔 대나무 숯이나 야자 숯도 많이 쓰던데.”

“그렇죠. 저희 햄버거의 맛 포인트가 바로 숯불 그릴에 구운 패티라서 특히나 제가 신경 쓴 부분이거든요. 참숯에서도 가장 질 좋은 백탄이랑 커피나무로 만든 숯을 섞어서 쓰고 있거든요.”

“그래? 숯을 섞어 쓰기도 하는구나. 한번 봐도 되지?”

성원이 동진이 갈비를 굽고 있는 그릴로 다가와서는 그 안에 벌겋게 달아올라 있는 숯을 살폈다.

“저게 곧은 게 참숯이고 약간 휘어진 것들이 커피나무 숯인가 보네. 그런데 저 작은 숯은 뭐야? 군데군데 조금씩 놓여 있는 게 있는데.”

성원이 보통 갈빗집에서 보는 숯의 형태 말고 동글동글한 조그만 것들이 그 사이에서 벌겋게 불을 피우고 있자 동진에게 물었다.

“아…. 그거 향나무에요. 그걸 피우면 고기에 향이 배어서 좋거든요.”

동진의 설명에 성원에게 흰둥이의 전음이 날아왔다.

-찾았네. 향나무는 무슨.

동진은 작은 분무기도 꺼내 들고는 잘 익어가는 고기를 향해 뿌렸다.

“그건 뭐야?”

“아. 이건 악마덩굴의 뿌리로 술을 담근 겁니다.”

“악마덩굴의 뿌리로 술을 담근 거라고? 독기나 마기는?”

“악마덩굴의 줄기나 꽃은 독기나 마기가 좀 있지만 특이하게도 열매나 뿌리는 해롭지가 않거든요. 특히나 뿌리로 담근 술은 고기의 잡내를 완벽하게 잡아 주거든요.”

“그래?”

“악마덩굴뿌리주로 한잔할까요?”

“요리할 때 써야 하는 데 먹어도 괜찮아?”

“저희 둘이 먹어 봐야 얼마나 먹는다고요. 그리고 악마덩굴이 등급이 높은 마수기는 해도 워낙 크기가 큰 마수라서 구하려면 그리 어렵지 않거든요.”

악마덩굴의 특성인 [현혹].

그 때문에 악마덩굴의 열매나 뿌리를 많이 섭취하며 몽롱해질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 양이 아주 미량이라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경호도 고소하면서도 시큼한 고르곤졸라 치즈 같은 맛을 내는 악마덩굴의 열매로 피자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준 것이었다.

문제는 마혼의 특성에 있었다.

마혼은 단순하게 악마나 마수에게 흡수되어 마기의 양에 따라 상대에게 굴종하게 만드는 기운이 아니었다.

마혼은 몸 안에 자리 잡아 악마나 마수의 특성을 강하게 만들어 주는 [증폭]의 역할도 했다.

그렇지 않다면 악마나 마수가 굳이 마혼을 몸 안에 자리 잡게 둘 이유가 없었다.

단순하게 상대에게 강제로 굴종하게 만드는 기운이라면 억지로라도 몸 안에서 빼내려고 애를 썼을 것이었다.

‘후우. 다행히 의심하지 않는군.’

동진은 성원이 마목이나 악마덩굴뿌리주에 대해 의심하지 않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까다로운 성격일 경우 잘 모르는 뭔가에 거부감을 강하게 나타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뿌려진 악마덩굴뿌리주에 담겨 있는 현혹과 마목에서 나온 마혼의 기운이 만나서 성원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쉽게 만들 것이었다.

-악마덩굴뿌리에 마혼. 두 조합이면 거의 최면이나 세뇌에 걸린 수준이 될 거야. 그러니 연기 잘해야 해. 알았지?

흰둥이가 성원이 현혹되지 않도록 막아 주겠지만 걸린 척 연기는 해야 했다.

그래야 상대가 방심하게 되고 그럴수록 이쪽에서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으아! 미치겠네. 지금도 죽겠는데. 현혹에 걸린 것처럼 행동하라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예전 빌런과 싸움에서 한번 [현혹]에 걸려 본 적이 있다는 것 정도였다.

수준에 따라 다르지만 현혹에 당하게 되면 술에 잔뜩 취한 상태처럼 알딸딸해지며 현혹을 건 상대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애정이 생기는 묘한 상태로 변하게 된다.

그래서 예전 빌런을 상대하며 정말 길드 전체가 위기에 빠질 뻔한 적이 있었다.

“자아. 이거 먹어 봐요. 양념갈비가 진리이긴 하지만 생갈비도 충분히 매력적이거든요. 이건 저기 귀염둥이 주고요.”

성원이 동진이 건넨 접시를 받아 들고는 잘 익은 갈빗살을 들어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씹자마자 바로 고기가 입안에서 사라지며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어엇!”

큰형님이 해 준 음식을 제외하고 자신이 이렇게 놀란 적은 정말 처음이었다.

불향과 육향이 아주 조화롭게 서로를 보완해 주고 있었다.

갈빗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부드러웠고 육즙도 넘칠 정도로 뿜어져 나왔다.

고소한 육즙이 입안에 오랫동안 남아 한동안 맛을 음미하게 만들었다.

“후우. 우와. 이거 정말 대박이네.”

흰둥이도 접시를 주기 바쁘게 금세 비워 냈다.

-마혼이나 현혹의 기운만 아니면 완벽한 맛이네.

그리고 흰둥이가 은밀하게 신력을 불어넣어 성원의 몸에 자리 잡으려고 하는 마혼과 현혹의 기운을 날려 렸다.

“자아. 애피타이저로 입맛을 돋웠으니 이제 제대로 양념갈비를 만들어서 한잔하면서 천천히 이야기하죠. 아. 서둘러야겠네요. 벌써 11시가 다 되어 가네요. 형님. 너무 늦은 거 아니죠?”

“아우가 맛있는 음식에 괜찮은 술을 준다는데 밤을 새워서라도 먹고 마셔야지. 왜? 밤새 놀까 봐 겁나나?”

‘이거 밤까지 새우게 생겼네. 에휴.’

속마음과 다르게 성원이 피식 웃으며 묻자 동진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이고. 저야 형님이 괜찮다면 밤새우는 거야 일도 아니죠. 그럼. 바로 만들게요.”

‘좋았어. 오늘 마혼을 완전히 심어서 혼을 쏙 빼놔야겠다.’

그렇게 성원과 동진이 동상이몽을 꿈꾸며 대화하는 사이 흰둥이가 경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지숙은 10시가 넘어 잠을 자러 들어가고 경호만 홀에 남아 맥주를 마시며 TV를 보고 있었다.

“흰둥이 녀석. 뭔가 알아내면 메시지 보내 준다고 하더니. 1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알아낸 게 없나 보네.”

흰둥이는 경호의 시스템을 조작하여 능력이 제한되던 것을 해제했지만 메시지 기능과 퀘스트 공유는 유용했기에 그대로 남겨 놓은 상황이었다.

“으아아함. 나도 그냥 잠이나 잘…”

경호가 하품하며 중얼거리던 그때.

[경호 님. 버거퀸 본점에 마목 펠릿을 숯과 함께 태워서 마혼의 기운을 넣더군요. 분명 본점 어딘가에 마목 펠릿을 보관하고 있을 거 같습니다. 그것만 찾는다면 마목을 키우는 곳도 알 수 있을 거고요.]

메시지를 모두 읽은 경호가 남은 맥주를 모두 마시고는 식당 밖으로 나갔다.

“자아. 그럼. 금고를 털러 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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