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사신의 등장과 그로 인해 성장한 세계수는 흰둥이에게 큰 충격을 줬다.
사실 레벨 6을 달성하고는 살짝 우쭐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흰둥이는 사신의 힘을 느끼고, 그 힘을 받아들여 성장하는 세계수를 보며 자신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 같았는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경호를 졸라 사도를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사도를 찾지 못했다.
다행히 흔적은 찾았지만 모두 납치될 때 남은 흔적뿐이었다.
‘결국 내가 약해서 그런 거다. 수호신이라고 우쭐거리기만 했다. 실은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사신의 힘을 마주하고 나서 더욱 그러한 사실을 크게 느낄 수 있었다.
청룡, 백호, 주작, 현무.
그들 하나하나가 레벨 6에 도달한 자신보다 더 강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맡은 임무를 수행하며 지내고 있었다.
사신.
신격을 가진 절대적인 존재이기에 자의식이 강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런 존재들이 놀랍게도 마계의 침략을 막기 위해 곧바로 세계수에 힘을 실어 주는 모습을 보고 한 번 놀랐다.
그렇게 사신에게 받은 힘으로 곧장 엄청난 성장을 보인 세계수에 두 번 놀랐다.
흰둥이는 자신을 빠르게 성장시킬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래. 나한테 사신이나 세계수보다 오히려 더 유리한 부분이 있다.’
‘수호신’이기 때문에 이용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소원 퀘스트’가 바로 그것이었다.
지금까지 경호를 통해 굵직한 소원 퀘스트를 성공하며 나름 빠르게 성장했지만 그러한 것도 점차 줄고 있었다.
사실 애초부터 경호에게 퀘스트를 공유해서 카르마를 얻는 방법 자체가 편법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왕 편법을 쓰던 거 제대로 쓰기로 마음먹은 흰둥이였다.
***
-경호 님. 세계수가 성장하면서 새로운 능력이 많이 생겼더라고요.
“사실 세계수의 능력은 거의 무한하거든. 너도 잘 알겠지만 주신이 자신의 권능을 대부분 포기하면서까지 만들어 낸 존재이니까.”
-네엣?! 세계수를 만들면서 그렇게나 힘을 쏟으셨다고요?
흰둥이는 주신의 반려견이지만 그런 속사정까지는 모르는 듯싶었다.
“몰랐어?”
-그냥 주신님이 애를 많이 써서 만든 거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거든요.
지구에 가져다 심은 세계수 씨앗의 모체인 ‘엄마나무’에 대해 알고 있기에 경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내가 알려 줄 테니 잘 들어 봐.”
세계수.
주신이 그냥 심심해서 만든 나무가 아니었다.
정령계로 간 경호가 처음 ‘엄마나무’를 보고 미르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미르. 저 말도 안 되는 나무는 도대체 뭐야? 세계수의 역할이 있을 거 아니야?”
문외한인 경호가 보기에도 분명 단순한 조경용 나무는 아닌 듯싶었다.
-역할이야 많긴 하지만 주신이 세계수를 만든 가장 중요한 역할은 따로 있지. 좀 긴 이야긴데…. 들어 볼래?
어차피 죽을 정도로 가혹하게 수련만 했던 시기였다.
길면 길수록 좋았기에 경호는 혹여 마음이 바뀔세라 고개를 끄덕였다.
-태초에 우주엔 빛과 어둠. 그 절대적인 힘이 한데 섞여 있….
태초의 우주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카오스(chaos), 또는 혼돈(混沌)이라고 불리는 무언가만 있던 시기였다.
그때 섞여 있던 빛과 어둠이 분리되며 하나의 의지를 가진 존재가 됐다.
빛은 창조신이자 주신이라 불리는 존재가 되었고 어둠은 파괴신이자 마신이라 불리는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지고(至高)한 격을 가진 존재가 된 둘은 전혀 다른 행보를 보였다.
주신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세상을 만들고 그 안에 생명을 피워 내기 시작했다.
신계, 정령계, 중간계를 만들어 하나의 차원으로 묶었다.
주신은 그렇게 계속 차원을 늘려 나갔다.
마신은 주신과 달랐다.
창조의 힘을 가지지 못한 그는 자신의 힘을 떼어 내어 하나의 차원을 만들었다.
바로 마계였다.
그리고는 자신을 닮은 악마와 자신의 기운을 불어넣은 생명체인 마수를 만들어 냈다.
창조의 힘을 가지지 못한 마신은 주신처럼 온전한 생명체를 만들지 못했기에 결국 주신이 만든 차원을 침략해서 생명의 기운을 뺏어야 했다.
그렇게 마계의 차원 침략이 시작됐다.
경호가 미르의 말을 듣다가 질문을 던졌다.
“분명 세계수 설명해 준다는 거 아니었어? 그런데 갑자기 창세기 썰을 하….”
-기다려 봐. 곧 나오니까. 하여간 인간들은 성격이 급해서 무조건 본론만 찾는다니까.
“헐. 이 정도면 많이 참은 거야. 원래 뭐든 본론으로 바로 안 들어가면 화부터 내는 게 한국인이거든.”
-자랑은 아닌 듯싶은데. 하여튼 조금만 더 들어 봐.
차원계와 마계는 당연하게도 문제가 발생했다.
그 문제의 발생은 힘의 불균형에 있었다.
차원계에 비해 마계의 힘이 월등하게 강했던 것이었다.
그 이유는 신의 개입 여부에 있었다.
주신은 ‘창조’라는 무한한 권능을 얻은 대신 세상에 자신의 의지를 표현할 수 없었다.
창조한 세상 밖에서 관조할 수 있는 자격만 주어진 것이었다.
반면 마신은 ‘파괴’라는 ‘창조’에 비해 훨씬 떨어지는 권능을 가졌지만 세상에 관여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
자신의 심장을 쪼개서 마계를 만들고, 자신의 피와 살로 악마, 마수를 빚었기에 마신은 많이 약해진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차원계를 공격하는 것에 큰 역할을 하기엔 충분한 힘이었다.
주신은 고민했다.
사실 파괴의 권능을 가진 마신이 차원계를 공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대로 차원계를 차례차례 흡수하여 점점 힘을 키워 가면 제2, 제3의 마계가 만들어지며 힘의 균형이 깨질 것이 분명했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주신은 자신의 권능 중 일부와 생명력까지 쏟아 넣어 세계수를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수는 성장하여 그 힘이 강해지며 존재 자체만으로 마신의 개입을 막아 내는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리하여 마신은 적극적으로 마계 침략에 개입할 수 없었고 그 뒤로 차원계는 그전처럼 무차별적으로 사냥당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대박이네. 주신이 그래서 우릴 못 도와주고 있는 거구나. 난 왜 이런 상황에서 구경만 하고 있나 궁금했거든.”
-우주의 법칙은 허술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완전무결한 법이거든. 세계수를 지어내고는 주신께서는 더는 차원계를 만들지 못하고 계시는 형편이거든.
“마신은? 주신은 세계수를 만드느라 약해졌지만 마신은 아닐 거 아니야. 그러다 틈이라도 생기면 아주 작살 나는 거 아닌가?”
경호의 질문에 미르가 고개를 저었다.
-세계수가 차원계에 자리를 잡으면서 마신의 개입만 사라진 것이 아니거든.
“그럼?”
-마계에서 차원의 문을 여는 것 자체도 어려워졌고 마기를 뿌리며 쳐들어와도 세계수가 정화하기에 그들의 힘도 약해졌거든. 그래서 마신 역시 약해진 부분을 상쇄하고자 자신의 권능과 생명력을 쏟아 부어 일곱의 마왕을 만들었어.
“아! 그래서 마왕을 만들었구나.”
-그래. 그리고 정령계, 이곳의 세계수는 좀 특별해. 그러니 꼭 지켜야 하고. 그러니 너도 제발 정신 차리고 열심히 하라고!
“아니! 매일 죽을 둥 살 둥 열심히 하고 있구만!”
경호의 설명을 들은 흰둥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그래서 주신님이 그래서 창조의 권능을 더는 쓰지 못하셨던 거군요.
“너랑 비슷한 거지. 시스템을 만들고 아주 엉망이 된 것처럼 지금 주신도 아직 회복을 못 한 상태인 거지.”
경호의 말에 흰둥이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에 밝았던 흰둥이의 표정이 다시 어둡게 변하자 경호가 서둘러 말을 돌렸다.
“그래서 세계수의 새로운 능력으로 뭘 하려는 건데?”
경호의 말에 흰둥이가 세계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번에 와서 확인한 건데 세계수는 하나의 커다란 안테나 역할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게 가능하더라고요.
흰둥이가 세계수에 다가가서는 앞발을 갖다 댔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그러자 마력 파동이 강하게 울리더니 세계수의 잎사귀가 마구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흰둥이의 머릿속으로 퀘스트가 마구 떠오르기 시작했다.
흰둥이는 그것을 경호에게 공유했다.
[소원성취 퀘스트 (공유) : 우리집 냥이가 없어졌어! / 김호정]
-‘나비’가 사라졌어! 제발 누가 좀 찾아 줘요!
-‘나비’를 찾아주면 카르마 100만이 지급됩니다.
-나비 : 특징 및 외형.
-김호정 의뢰인 위치.
[소원성취 퀘스트 (공유) : 도둑이야! 도둑! / 최정배]
-우리 집에 도둑이 들었어요! 다른 건 몰라도 부모님이 물려주신 유품은 찾아야 해요.
-도둑을 잡으면 카르마 1000만, 유품을 찾으면 카르마 1000만이 각각 지급됩니다.
-유품 : 특징 및 외형.
-최정배 의뢰인 집 주소.
이와 같은 퀘스트가 경호의 눈앞에 쭈욱 떠올랐다.
“설마? 퀘스트를 세계수가 대신 받아 주는 거야?”
-네. 원래는 시야에 있는 존재의 소망만 해결할 수가 있었는데 세계수는 인간의 의지나 소망 같은 것을 증폭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더라고요.
“그건 나도 몰랐네.”
-그래서 퀘스트를 본격적으로 깨 보려고요.
“그래. 나도 이제 경연 준비하고 하면 힘드니 따로 퀘스트 깨면서 레벨 올리면 되겠네.”
경호의 말에 흰둥이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다고 제가 직접 하겠다는 건 아니고요.
그때 동물원으로 들어오는 이들이 있었다.
“크릉. 경호 님. 안녕하세요.”
이제는 신화길드 소속인 테일러와 그의 부족원들이었다.
모두 10명으로 기운이 강하면서도 정돈된 것이 꽤 강해 보이는 이들이었다.
“네. 테일러도 잘 있었죠?”
“신화길드 소속으로 훈련하고 하느라 꽤 바빠졌지만 이계인 보호구역에서 서커스를 하던 때보다는 훨씬 좋습니다.”
“다행이네요. 정말로 다행입니다.”
경호와 테일러의 인사가 끝나자 흰둥이가 나섰다.
-테일러 사도. 잘 왔어요. 부족원들에게 대충 설명은 했죠?
“네. 수호신님. 잘 설명했습니다.”
-그럼. 자아. 지금부터 퀘스트를 3개씩 공유하겠습니다. 모두 최대한 빠르게 성공해 주시고 완료하면 테일러에게 보고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테일러는 모두 완료되면 나한테 보고하고요.
“알겠습니다.”
흰둥이가 10명의 워울프에게 퀘스트를 각각 3개씩 공유하고는 다시 말했다.
-수련만 해도 바쁘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제가 강해지면 테일러도 강해지니까 ‘내 일이다.’ 생각하고 조금만 수고해 주세요.
“네엣.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크릉.”
흰둥이의 말에 테일러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경호가 입을 쩌억 벌리고 있었다.
“우와. 이거 ‘오토’ 돌리는 거보다 더한데…. 몸이 열 개여도 부족하다는 말이 여기서 통용되는 단어였네. 이게 게임이었으면 관리자에게 불법이라며 신고할 판인데.”
-써먹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써먹어야지요. 제가 최대한 빠르게 강해져야 시스템도 수정하고 할 테니까요.
“시스템을 수정한다고?”
-앞으로 헌터들도 계속해서 성장하고 더 강해질 텐데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거든요. 그러니 업데이트가 필요한데 그게 레벨 7은 돼야 가능하니까요.
“처음 레벨업 할 때는 나한테 버스 타더니 이제는 오토까지 돌리는구나.”
세계수의 성장으로 뜻밖에 흰둥이의 오토 프로그램이 가동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