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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용사의 골목식당-183화 (183/335)

#183화

정령계에 온 지도 5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다.

이제 던전에서 쏟아져 나오는 마수를 처리하는 것도 그리 힘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미르. 던전이 파열됐는데도 게이트가 사라지질 않는데?”

나는 평원 가득 마수를 쏟아 낸 던전이 사라지지 않는 것을 보고 미르에게 물었다.

-‘혼돈의 시기’를 대비해야겠네.

“혼돈의 시기라니?”

내 물음에 미르가 손가락으로 사라지지 않는 던전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던전 게이트는 우리가 던전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문이 아니라 마계에서 이곳으로 넘어오게 하는 문이거든.

미르가 내 물음에 답을 했지만 나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마계에서 이곳으로 넘어오는 문이라니?”

신수나 정령의 특성상 마기의 농도가 짙은 던전 안으로 들어가서 싸우지 않고 파열시켜 마수가 나오면 없애는 방법을 썼다.

하지만 그렇다고 던전 안으로 들어가 싸운 경우가 한 번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나를 수련시킨다는 명목하에 강제로 던전 안으로 밀어 넣어 공략하게 만든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분명 던전 안은 완전 독립된 새로운 공간이던데?”

-이제 던전의 용도가 달라지거든.

던전의 용도?

전에 미르가 설명해 준 것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던전은 침략하는 세상의 구성원들을 적당히 괴롭히는, 가축을 살찌우는 역할이라고 했었는데….’

이제 살은 충분히 찌웠다는 건가?

-이제는 도축하러 오겠다는 거지. 물론 우리도 그렇게 호락호락 잡혀 줄 마음은 없지만 말이야.

“이제 악마군단이 넘어온다는 거야?”

나의 물음에 미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금방은 아니야. 정령계는 기본적으로 엄마나무뿐 아니라 그의 자손인 세계수가 많아서 마기의 농도가 쉽게 짙어지지 않으니까.

악마군단이 넘어오려면 대기 중에 마기 농도가 짙어야 했다.

악마는 마수와 다르게 마기가 없으면 생명의 근원인 암흑마기가 점점 흩어져서 결국 죽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럼. 저 사라지지 않는 던전은 마기를 뿜어내는 통로 같은 건가?”

-마기를 뿜어낸다기보다 번식력이 좋은 하급 마수를 쏟아 내는 통로지. 일명 ‘웨이브’ 던전. 어차피 마수를 죽이게 되면 마기의 농도는 자연스럽게 높아지니까. 딴 생각할 겨를도 없어지고 말이지.

웨이브 던전.

파도처럼 마수를 쏟아 내기에 붙은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 후 일 년 동안 사라지지 않는 던전은 계속 늘어났다.

그리고 어느 날, 웨이브 던전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마수의 파도와 맞서야 했다.

***

“그러니까 사라지지 않는, 그 웨이브 던전에서 마수들이 쏟아져 나온다고?”

경호의 설명에 다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물었다.

“아직은 아니지만…. 아마도. 정령계에서는 웨이브 던전이 출몰하기 시작하고 일 년이 지나서야 쏟아져 나왔지만 지금 이곳은 거의 두 배 이상 빠르니까. 어쩌면 반년, 아니면 더 빠를 수도.”

“형님! 그럼. 어떡해요! 아직 각성자들도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고 드워프 무기 보급도 다 안 끝났고 신수 동물원도 다 짓지….”

“워. 워. 진정해. 아니 그래서 정말 악마군단 넘어오면 싸우기나 하겠어?”

걱정과 흥분으로 횡설수설 마구 떠드는 성원을 보다 못한 경호가 나서서 말렸다.

“그냥 지금 하고 있는 거. 그걸 더 열심히 잘하면 돼. 성원이 너는 학원, 길드 관리 잘하고. 다현이는 수련 열심히 하고. 그냥 지금처럼 하면 된다고. 그러니까 그렇게 벌써부터 걱정하지 마. 3페이즈가 되자마자 지구가 끝장나는 것도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냥 할 일이나 해.”

“형님. 정말 괜찮겠죠?”

“괜찮고 말고가 어디 있어. 그리고 지금 시작도 안 한거야. 말 그대로 튜토리얼이라고! 튜토리얼! 진짜 시작은 3페이즈부터라고!”

악마군단이 넘어오는 3페이즈, 사실 마계 침략은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경호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성원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 다현을 봤다.

S급 던전을 홀로 공략하고 온 상태였기에 꽤나 엉망이었다.

“밥은 먹었냐?”

“아니. 공략하고 먹으려고 했지. 밥 먹으면 속 더부룩해서 싸우기 힘드니까.”

“그럼. 가자. 내가 특별식 해 줄 테니까. 성원이, 너도 궁상 그만 떨고 빨리 와.”

어차피 걱정해서 될 문제도 아니었다.

경호는 무거워진 마음을 애써 털어 내고는 행운식당을 향했다.

***

경호와 다현, 성원이 조금은 어두운 표정으로 식당에 들어왔다.

“엄….”

경호가 주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지숙을 부르다 말고 귀를 기울였다.

“역시 전문적으로 배운 티가 나네. 나는 처음 국수 뽑을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아니. 선생님이 좋으니까 잘하는 거죠. 그래도 아까 어머님이 한 거에 비하면 엉망인데요. 뭐.”

칼국수 면을 밀면서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웃음소리가 홀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흘러나오는 지숙과 미호의 웃음소리에 어둡고 심각했던 이들의 표정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주방에서 평소와 다름없는 지숙과 앞치마와 머리 군데군데 하얀 밀가루를 묻힌 미호가 모습을 보였다.

“어? 다현이 왔네?”

“엄마가 해 준 칼국수 먹으러 왔어요.”

“오늘은 경호가 한다는데? 아주 자신만만하게 말했으니 우리 여기서 수다나 떨면서 기다려 보자. 얼마나 맛있게 만드나. 아들, 그래도 되지?”

지숙이 다현과 함께 식탁에 앉으며 묻자 경호가 과장되게 굽신거리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장금이가 울고 갈 기가 맥힌 칼국수를 만들어 올릴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지숙이 깔깔 되며 웃자 옆에 있던 다현도 피식거렸다.

“성원이 너도 앉아. 미호는 나가서 옷 좀 털고 오고. 면은 만들어 놨지?”

“도마 위에 썰어 놨어요. 대충 서너 명 먹을 양은 충분할 거예요.”

그거면 됐다.

“오케이. 그리고 저만의 비밀 레시피로 요리할 예정이니 염탐할 생각 마시고 앉아 계시면 되겠습니다. 아셨죠?”

혹시나 아공간을 열거나 하는 것을 지숙이나 미호가 볼 수 있기에 가볍게 농담을 섞어 말을 해 놨다.

터억.

주방에 들어가자마자 커다란 솥을 꺼냈다.

육수를 내는 시간을 줄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물은 적게! 재료는 많게! 화력은 강하게!

경호는 아공간에서 세계수 수액을 꺼내 커다란 솥에 절반 정도 차도록 부었다.

그런 다음 양손 가득 가져온 칼날타조 고기와 잡뼈를 솥 가득 넣었다.

“뭐. 세계수 수액이면 잡내도 안 날 테지만. 그래도 기본은 해야지.”

경호는 솥에 통마늘과 파 뿌리, 통후추를 넣고는 뚜껑을 덮어 불 위에 올렸다.

그리고 경호는 양손을 뻗어 솥을 잡았다.

지숙이 보면 놀라 뒤로 넘어질 모습이었다.

우우우우우우웅.

경호가 마력을 심장에 불어넣어 기운을 변화시켰다.

예전처럼 기운을 회전시켜 정제하고 압축할 필요가 없었다.

바로 뜨거운 불의 정령력으로 변한 기운이 경호의 양손으로 움직였다.

치이이이이이이익.

경호의 손이 닿은 솥이 불그스름하게 변하며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세계수 수액이 끓어오르며 김이 올라오자 경호는 염력을 이용해서 들썩이기 시작하는 솥뚜껑을 내리눌렀다.

“백숙을 괜히 압력솥으로 하는 게 아니거든.”

압력이 높아지면 끓은 점이 높아지며 맛이 더 깊게 우러나는 법이었다.

10분.

사실 뼈로 육수를 우려내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경호의 정령력과 염력, 세계수의 수액까지 동원되어 불가능의 영역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경호가 손을 떼고 뚜껑을 열자 사골 국물보다 더 뽀얗게 우러난 칼날타조의 육수가 자태를 뽐냈다.

고기 부분도 너무 익으면 풀어지고 덜 익으면 질기기 마련인데 쫄깃하게 잘 익은 상태였다.

경호는 잘 익은 고기를 건져 내고는 우려낸 뼈는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리고 전골냄비에 따로 육수를 담고는 불에 올렸다.

그러고는 칼날타조 칼국수에 넣을 채소를 준비했다.

“우선 색도 예뻐야 하고 맛도 있어야 하니….”

당근, 양파, 애호박, 부추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 내고는 우선 지숙과 미호가 같이 만든 칼국수 면을 넣었다.

면의 간격이 일정한 것이 기계로 뽑은 면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아. 맛있겠다.”

어릴 적 그리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었기에 멸치 육수에 칼국수나 수제비를 해서 먹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질릴 만도 했지만 희한하게도 정령계에서 있는 동안 가장 그리웠던 음식 중 하나가 엄마가 해 준 칼국수와 수제비였다.

면이 적당히 익었을 때 썰어 놓은 채소를 예쁘게 얹고는 꺼내 놓은 칼날타조 고기를 손을 찢어 수북할 정도로 쌓았다.

육수까지 내는 과정을 거쳤지만 완성까지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자아! 나갑니다!”

***

주방에서 들려온 경호의 외침에 요리에 문외한인 다현과 성원은 그저 ‘맛있겠다!’만 외치며 조건반사적으로 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지만.

“뭐? 벌써 다 됐다고?”

“멸치 육수도 아니고 닭 육수가? 치킨스톡이라도 썼나?”

지숙과 미호가 의문을 품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엄마. 10분도 넘게 걸렸는데 느린 거 아니고?”

사실 1분만 더 지났어도 ‘왜 이리 늦어!’를 외치며 주방으로 들어갈 생각이던 다현이었기에 머쓱해하며 지숙에게 물었다.

“라면이야 면이 익을 때까지 끓이면 끝이지만. 칼국수는 육수를 내야 하거든. 칼국수 전문 식당이야 끓여놓은 육수가 있으니 5분이면 나오지만, 경호는 육수까지 만들어야 했으니까 40분은 걸릴 줄 알았는데 금방 됐네.”

“분명 치킨스톡을 넣어서 끓인 거 같다니까요. 아니면 절대 이 시간에 완성될 수가 없거든요.”

미호의 말처럼 치킨스톡 같은 조미료를 쓰지 않는 이상 10분 만에 칼국수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령력과 염력을 쓰지 않았다면 말이다.

경호가 전골냄비를 식탁 가운데에 올렸다.

“와! 이거 냄새가 진국인데?”

내심 치킨스톡을 의심하던 미호는 생각과 다르게 진하게 올라오는 육수 향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박!”

성원은 경호에게 엄지척을 날리며 ‘대박!’을 외쳤고.

“면보다 고기가 더 많아!”

다현도 수북하게 쌓인 칼날타조 고기를 보며 마냥 기뻐했다.

“….”

지숙은 마치 심사 위원이라도 된 듯 말없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칼국수를 살피다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아들. 이제 엄마보다 낫네.”

내심 긴장하고 있던 경호가 지숙의 한마디에 환하게 웃었다.

“자아. 다들 눈으로 평가하셨으니까 이제 드셔 보시죠. 아마 깜짝 놀랄 겁니다.”

아닌 게 아니라 경호도 아까 간을 보며 먹은 육수 맛에 스스로 감탄할 정도였다.

성원이 먼저 국자를 들어 지숙의 앞 접시에 면과 고기, 국물을 덜었다.

“어머님. 드셔 보세요.”

“아니 내가 뜨면 되는데…. 다들 어여 먹어. 불면 맛없어.”

그렇게 말하면 지숙이 면과 고기를 집어서 후후 불고는 입에 넣었다.

“엄마. 어때? 맛있어?”

경호가 기대 가득한 얼굴로 지숙에게 물었다.

“아들. 이거 정말 그, 칼날타조로 육수 낸 거 맞니?”

맛을 본 지숙이 평가에 앞서 질문부터 던졌다.

“왜? 주방에서 내가 사기라도 쳤을까봐.”

“이거 정말 꿩 육수랑 비슷하면서도 더 진하네.”

“그래서 맛있다는 거지?”

“너무 맛있다. 엄마가 지금껏 먹어 본 닭칼국수 중에 최고로 맛있다.”

지숙의 말에 눈치만 살피던 이들도 서둘러 맛을 보기 시작했다.

후루룩. 후루룩. 쩝쩝. 쩝쩝.

한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면 치는 소리와 국물 먹는 소리만 식당 안을 채웠다.

그리고.

“대박! 형님! 이거 무조건 1등입니다! 1등!”

성원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요란을 떨었다.

“오빠. 이거 뭐예요? 조미료 맛도 안 나는데 어떻게 10분 만에 이런 육수를 만들었어요?”

“그야…. 압력 밥솥으로 만들었지. 압력 밥솥!”

“그래도 10분은 좀…. 하여튼 정말 대박인데요. 길드장님 말처럼 제가 면만 잘 만들면 1등 노려 볼 만하겠는데요. 사장 오빠. 우리 잘 해봐요.”

“그게 무슨 소리야. 무조건 1등이라니까! 미호 씨가 잘 만들 것도 없이 그냥 시판용 면 써도 이건 1등이라고.”

경연에 나갈 미호보다 성원이 더 흥분해서는 ‘1등!’을 외치고 있었다.

“다현아. 어때?”

“괜찮네. 뭐.”

다현이 경호가 만든 음식에 ‘괜찮네. 뭐.’ 할 정도면 최고의 칭찬이었다.

“하여간 솔직하지 못한 녀석이라니까.”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경호가 피식 웃었다.

그때였다.

앙! 앙!

-경호 님. 저도 좀 먹어 보면 안 될까요?

요 며칠 사도들을 찾지 못해 계속 시무룩해 있던 흰둥이였기에 경호는 서둘러 그릇에 칼국수를 담았다.

“자아. 많이 먹고 기운 차려.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말고. 좀 웃고 그래. 말도 좀 하고.”

순간 흰둥이에게 전음을 날린다는 것을 까먹은 경호였다.

“아들?”

“오빠?”

갑자기 흰둥이에게 칼국수를 건네며 응원하는 듯이 말하는 경호의 모습에 지숙과 미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흰둥이가 힘들데?”

“오빠. 흰둥이랑 대화도 하시는 거예요?”

“하하하하하. 그냥 흰둥이 표정이 어두워 보여서 장난친 거야.”

“장난? 흰둥이 표정이 어두워?”

“오빠. 흰둥이 표정도 읽을 줄 아시는 거예요?”

“….”

-경호 님. 저 기분 좋으라고 하신 거면 성공하셨습니다.

흰둥이가 그런 경호를 보며 큭큭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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