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용사의 골목식당-179화 (179/335)

#179화

분명 악마계약자이다.

겉보기에는 그저 좋아 보이는 성공한 사업가지만 실체는 마혼(魔魂)의 기운을 이용해 문제를 일으키려고 하는 굉장히 위험한 녀석.

그러니 처리해야 했다.

그 자리에서 용아검을 뽑아들고는.

-이 악당! 죽어라!

이렇게 한 마디 멋지게 날리고 한방에 쓱싹해서 목을 날리면 좋으련만….

하지만 현실은 판타지 소설처럼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현실에는 판타지 소설에 잘 나오지 않는 법과 질서가 있었다.

무작정 주인공이 정의의 이름으로 심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대격변 이후, 아니 어쩌면 그 이전에도 법과 질서는 많이 무너져 있긴 했지만 그래도 함부로 다른 누군가를 처리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악마계약자라도 말이다.

그렇기에 경호는 이곳을 오며 마혼의 기운만 찾은 것은 아니었다.

우선 가게 주변과 안팎으로 CCTV 카메라가 엄청나게 설치되어 있었다.

거기다 성원에게 듣기로는 동진은 모범납세자에 헌터본부에서 특별 경호도 받고 있다고 했다.

거기다 ‘일반인’이었다.

각성자는 악마와 계약을 맺으면 자연스럽게 마기가 몸에 쌓여 흔적이 남기에 정체만 밝히면 증거는 스스로 가지고 있는 셈이지만.

일반인은 악마 계약의 표식만 몸에 있을 뿐 크게 마기를 품고 있지 않았다.

결국 일반인 악마계약자를 잡으려면 뭔가 확실한 물증이 필요했다.

경호의 설명에 성원은 표식을 증거로 삼으면 안 되냐고 물었지만 그 표식도 그냥 재미 삼아 문신한 거라고 하면 끝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는 경쟁 상대였군요.”

머릿속이 복잡한 경호를 보며 동진이 말했다.

“경연에 나가게 됐지만 저는 그곳에 경쟁보다는 배우러 간다는 마음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그러니 경계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경호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 경계라뇨. 저 역시 같은 마음입니다. 거기다 저는 햄버거나 만들 줄 알지. 사실 요리를 그리 잘하는 편이 아닙니다. 그러니 저도 경연을 통해 배워 버거퀸이 더 성장하길 바랄 뿐입니다.”

경호는 마혼의 기운을 느끼지 못했다면, 눈앞의 상대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으리라고 확신했다.

‘연기가 아닌 진심 같아서 더 무섭네.’

연기력 하나는 정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하나에 진심이 담겨 있는 듯해서 듣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지만 악마계약자인 그는 절대로 진심이 아니었다.

“그렇군요. 잘 해 봅시다. 이왕이면 우승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경호도 이 순간만은 진심을 담아 웃으며 말했다.

“그렇죠. 경연 때까지 이곳에서 열심히 연습할 생각입니다. 그나저나 햄버거 맛은 어떻습니까?”

“최곱니다. 똑같은 버거지만 성원이가 들고 온 것보다 훨씬 맛있네요. 역시 음식은 바로 먹는 게 더 좋네요. 패티에서 불맛도 나고 무슨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경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질문을 던졌다.

“비결이야. 신선한 고기와 질 좋은 숯, 그리고 그것을 잘 굽는 것. 그것이 전부입니다.”

“결국, 재료와 실력이라는 말이군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다현에게 가져다줄 삼족우 버거가 완성됐다.

“필요하시면 미리 연락하세요. 언제든 환영입니다.”

“아닙니다. 괜히 귀찮게 해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잘 전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성원이 조금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감사를 전했다.

결국, 확인은 했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아닙니다. 저희야말로 다현 헌터님께 드릴 음식을 준비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동상이몽은 현장이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가족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훈훈함마저 풍겼다.

그렇게 경호와 성원은 버거에 마혼의 기운이 담겼다는 것만 확인하고는 돌아갔다.

***

“형님. 뭐 좀 알아내셨어요?”

돌아가는 차 안, 성원이 경호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우리가 지켜봤잖아. 고기에 특별히 장난치지 않았어. 그렇다면 굽는 과정인데…. 사실 숯이 가장 의심스럽긴 해. 하지만 오늘 처음 찾아가서 무슨 유명 맛집 프로그램 PD도 아니고 ‘이건 무슨 숯인가요? 비법이 뭐죠?’라고 묻기도 그렇잖아.”

증거를 찾진 못했지만 경호는 숯이 가장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맛을 보러간 거지 압수수색 하러 간 것이 아니었기에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죠. 그럼. 어쩌죠.”

“내 생각엔 비스트에게 최대한 조심스럽게 버거퀸을 조사해 달라고 부탁해야 할 거 같아. 어차피 요즘 신수 납치는 사라졌으니까. 거기다가 더 친해져야지. 특히나 네가 그 대표랑 말이야.”

“형님. 제가요? 저보다 형님이 낫….”

“성원아. 머리 좀 쓰자. 나도 참 머리 안 쓰는 캐릭턴데 너는 도대체 그거 왜 달고 다니는 거야? 아까 걔가 막 정중하게 굴고 착한 척 하지만 사실 악마계약자라고. 기본적으로 욕망으로 악마를 불러낸 존재야. 그런 존재가 경연 상대에다가 별 볼 일 없는 식당 주인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겠냐? 아니면 재벌 2세에 잘나가는 길드장이랑 친하고 싶겠냐? 그러니까 니가 적당히 떡밥 던져 주면서 친해지라고.”

운전하던 성원의 미간이 팍 찌푸려졌다.

“아. 형님. 저 그런 거 잘 못하는 거 알면서 그러세요.”

사실 재벌 2세로 태어난, 다이아수저인 성원이 거짓으로 남의 비위를 잘 맞출 리가 없었다.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그런 거 잘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럼. 잘해 보자.”

“후우. 알겠습니다. 형님.”

그렇게 골목으로 차를 몰아 들어왔을 때였다.

“어?”

-어?

“왜요?”

경호와 흰둥이가 서로 마주 보며 중얼거렸다.

“멈춰!”

“네엣? 멈추라고요?”

경호의 말에 성원이 차를 세웠다.

-경호 님도 느꼈죠?

“어! 느꼈어! 가자! 너도 주차하고 공원으로 와!”

경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흰둥이를 데리고 차에서 내리자 성원이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뭔데요! 형님! 저도 쫌 같이 느끼게 해 줘요!”

***

행운공원에서 자라고 있는 세계수는 분명 아직 어리고 약한 존재이긴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어떤 세계수보다도 빠르게 커 나가고 있었다.

사실 지구는 기운이 좋은 행성이 아니었다.

대기가 품고 있는 마력량도 적었고 생명의 기운도 좋지 않았다.

대격변 이후에는 더 심해져서 시스템 설치로 인한 마력 소모는 더욱 커지고 마기는 점점 강해지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호가 그냥 세계수 씨앗을 심었다면 뿌리를 뻗어 싹을 틔우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경호와 흰둥이가 힘을 불어넣어 줬고 땅개와 운애의 보살핌이 있었다.

거기다 경호가 드레이크 랩터의 심장으로 성장을 도왔다.

그때부터 정령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그때 뻗어 나간 기운을 현무가 느끼고 한국을 찾은 것이었다.

그 뒤로 흰둥이가 강해지면서 흩어져 있던 신수 역시도 세계수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계수는 빠르게 성장하다 현무의 힘을 받아들이며 ‘초진화’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나게 성장했다.

그리고 경호와 흰둥이는 그렇게 성장한 세계수에서 또 다른 엄청난 존재감을 느꼈다.

마력이나 마기 같은 강력한 기운이 아니라 성원은 느끼지 못했지만 경호는 바로 알 수 있었다.

‘현무와 비슷하지만 또 다른 느낌의 존재다.’

경호가 흰둥이와 함께 세계수를 향해 달려 현무와 비슷한 기운을 뿜어내는 존재를 확인했다.

화염이 넘실거리는 붉은빛을 띠는 제법 커다란 새.

푸른 비늘을 지닌 팔뚝 굵기의 신룡.

구름처럼 새하얀 털을 가진 강아지 크기의 백호.

사신(四神)에 대한 조예가 없다고 하더라도 주작, 청룡, 백호인 것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생김새였다.

거기다 세계수 뿌리에 감겨 땅 속으로 들어갔던 현무도 나와 있었다.

“역시나 이곳에 모두 모이셨군요. 잘 오셨습니다.”

-힘을 합쳐 세계수를 성장시킨다면 마계의 침략을 훨씬 더 쉽게 막을 수 있을 겁니다.

그때 주차하고 온 성원이 후다닥 튀어오다 세계수 앞에 자리하고 있는 사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 발이 꼬였다.

쿠당탕.

“설마 사신이 다 모인 겁니까?”

그대로 넘어진 성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경호에게 물었다.

“그런 거 같은데. 현무 님. 맞죠?”

경호가 땅 위로 올라온 현무에게 물었다.

-그래. 내가 모두를 불렀다.

“역시 그러셨군요.”

바다 속에서 마수와 싸우며 마기에 잠식당하던 현무와 다르게 다른 사신들은 크게 문제가 없었기에 이곳에 모일 이유가 없었던 것이었다.

-세계수와 함께 하다 보니 알겠더군. 내가 이 세상을 구하는 것에 가장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세계수를 성장시키는 것이라는 걸 말이야.

“정말 큰 결심 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른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현무의 말에 경호는 세계수 앞에 선 사신을 향해 진심을 담아 감사를 표했다.

-난 아직 한다고 안했다고….

흰둥이 정도 크기의 하얀 백호가 앞발을 혀로 핥으며 투덜거렸다.

-어허. 너는 수십억 년이나 산 녀석이 언제 철들래?

그러자 현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런 백호를 나무랬다.

-쳇.

그때였다.

삐익! 삐익!

한동안 안 보이던 골병이가 삑삑거리며 나타났다.

오랜만에 모습을 보인 골병이는 병아리만한 크기에서 비둘기만한 크기로 커져 있었다.

-아빠! 아빠! 저 조금 자랐어요!

하지만 여전히 골병이가 가진 힘은 약했다. 아니 정확히는 불완전했다.

사실 금봉황이 죽으며 남긴 알은 땅속에서 금기(金氣)와 지기(地氣)를 흡수하여 성장한다.

그 기간은 적어도 500년 이상.

하지만 골병이는 대격변으로 인해 기운이 줄었고 마수들이 날뛰면서 200년 만에 깨어나고 말았다.

아기가 양수에 담겨 탯줄로 영양을 받아야 잘 클 수 있듯이, 금봉황도 땅속에서 충분한 기간 동안 기운을 잘 받은 후 깨어나야 제대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골병이는 시작부터 틀어져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대로 틀어진 채 가만히 있지 않고 스스로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나도 땅개 아저씨처럼 노력하면 강해질 수 있어! 그러면 아빠가 힘들 때 도와줄 수 있을 거야! 그러면 아빠가 덜 바쁠 거고 나랑 더 많이 놀아 줄 수 있을 테니까!

결론이 이상하게 흘러갔지만 어쨌든 골병이는 강해지기 위해 애를 썼다.

땅 속에서 금기(金氣)와 지기(地氣)를 흡수하기 폐광들을 찾아다니며 그 속에 고여 있는 자연의 기운을 흡수하며 다녔다.

그렇게 한 달 정도를 다니자 기운이 제법 모였고 크기도 비둘기 정도로 커져 돌아온 것이었다.

삐익! 삐이익!

골병이가 아빠인, 경호를 보고 좋아 주변을 살피지 않고 있다 세계수 주변에 있는 낯선 존재와 그들이 뿜어내는 기온에 놀라 소리를 질렀다.

-아, 아빠. 저들은 누구에요?

골병이가 경호의 뒤로 피하며 물었다.

“겁먹지 않아도 돼. 골병아. 좋은 분들이야.”

경계하는 골병이의 모습과 달리 사신은 그런 골병이를 보며 관심을 드러냈다.

-여기서 금봉황의 후손을 보게 될 줄이야.

현무가 중얼거리자.

-하지만 어떻게 저런 상태로 깨어난 거지?

백호가 그 말을 받았다.

-마계가 침략해 온 마당에 저런 게 문제가 되나?

주작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그래도 우리의 기운이 뭉쳐 탄생한 존재의 후손인데 좀 도와줄까?

청룡의 말까지 들은 경호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저기 그게 무슨 소립니까? 사신의 기운이 뭉쳐 탄생한 존재의 후손이라뇨? 골병…. 아니 금봉황을 이야기 하시는 거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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