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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용사의 골목식당-177화 (177/335)

#177화

혼돈의 시기.

마계 침략을 설명하며 3페이즈에 대해 미르가 붙였던 이름이었다.

혼돈의 시기가 도래하면 마기 농도가 짙어지며 악마군단이 넘어오기 시작하고 환경도 변화하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그냥 모르고 지나갔는데. 미르. 지금 보니 묘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은데?”

그중 하나가 바로 ‘마목(魔木)’이라는 존재였다.

쉽게 군락을 이루는 쥐똥나무처럼 마구잡이로 자라나 금세 퍼지는 암 같은 존재.

나는 마계와 연결된 거대한 게이트 주변으로 숲을 이루기 시작한 마목이 뿜어내는 기운을 느끼며 섬뜩함을 느꼈다.

단순한 마기가 아니었다.

훨씬 복잡 미묘한 그런 기운이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오. 경호. 너도 이제 느낄 수 있구나. 뭔가 기분이 더럽고 찝찝한 느낌이지?

바로 그랬다.

뭔가 불길한 것이 노리고 있는 듯한 아주 찝찝하고 불쾌한 느낌.

“어. 뭔가 표현하긴 어렵지만, 마기보다 훨씬 짜증 나는 느낌인데.”

미르는 내가 인상을 팍 쓰며 이야기하자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마냥 기분 나빠할 건 아니야.

“그게 무슨 소리야? 딱히 기분 좋을 건 없어 보이는데?”

-아니 저걸 느낀 것만 해도 네가 성장했다는 증거거든. 사도나 상급 정령 녀석들도 알아차리기 어려운 기운이니까.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는 저 마목을 봐도 못 느꼈었는데. 그 기운은 마목에서만 나오는 건가? 악마나 마수에게는 못 느꼈는데.”

-아니. 사실 모든 마계의 존재가 가지고 있는 기운이지. 바로 ‘마혼(魔魂)’이라 부르는 기운이야. 마목이 짙게 뿜어내기는 하지만.

“마혼(魔魂)?”

-마신이 태초에 만들어 낸 절대적인 힘이자 그의 의지가 담긴 기운이지. 마계 전체에 마혼이 깔려 있어 그곳에 사는 악마나 마수들의 몸 안에도 박혀 있어. 네가 느낄 만큼 강하진 않지만.

“어쨌든 우리한테는 필요 없는 거잖아. 마혼이든 뭐든 간에. 그럼. 저 나무 덤불이나 태우러 가 볼까? 이거 찝찝해서 더는 보고 있을 수가 없네.”

***

“허허. 이거 어쩌면 1등 못할지도 모르겠는데.”

우물거리던 경호가 손에 들린 삼족우 버거를 보다 피식 웃었다.

‘패티를 굽는 기술이 대단한데?’

숯불로 구웠는지 패티에 불향이 가득 배어 있었다.

육즙도 제대로 가둬서 씹을 때마다 입안을 가득 채울 정도로 뿜어져 나왔다.

햄버거.

‘패스트푸드’, ‘정크푸드’라고 부르는 간편식의 대명사였다.

그리고 보통 그런 음식들의 맛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너무 달거나, 짜거나, 기름지거나.

그런데 이 삼족우 버거는 단맛, 짠맛, 기름진 맛이 조화롭게 섞여 있어 부담스럽지 않았다.

이대로 경연에서 붙어도 승부를 쉽게 장담하지 못할 정도의, 단순하게 맛이 있다, 없다 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거 균형감도 좋고…. 생각보다 더 훌륭한데.”

음식의 완성도를 논해야 하는 차원의 맛이었다.

“어? 그런데 이거….”

그렇게 경호는 정신없이 먹다가 마지막 한입 정도만 남겨두고는, 남은 부분을 유심하게 살폈다.

성원이 그런 경호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형님도. 저도 그랬거든요. 먹다가 정신을 차려 보면 어느새 한 조각만 남았더라고요.”

하지만 성원의 말에도 경호는 망부석처럼 아무런 반응 없이 손에 쥔 삼족우 버거의 남은 조각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버거를 다 먹은 미호가 티슈로 입을 닦으며 말했다.

“우와. 이거 정말 대박! 사장 오빠. 이건 다른 버거랑은 아예 수준이 다른 맛인데요? 유명한 수제버거 가게의 시그니처 메뉴보다 훨씬 맛있어요!”

햄버거를 평소 즐기지 않는 지숙도 맛있게 먹기는 마찬가지였다.

“끝 맛이 살짝 매콤해서 그런지 느끼하지도 않고 괜찮은데? 이건 엄마도 다 먹을 수 있겠다. 어르신 입맛에도 충분히 통할 거 같은데.”

삼족우 버거를 한 입 맛 본 지숙 역시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렇지? 특별하게 다른 건 없고?”

미호와 지숙의 평가를 들은 경호가 다시 한번 묻자.

“글쎄요. 저는 좋은데요?”

“엄마도 이건 돈 주고 사 먹을 거 같다.”

경호의 물음에서 묘한 기색을 읽은 성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요? 형님은 뭔가 마음에 안 드셨어요?”

“아니다. 흰둥아. 이리 와 봐.”

“아니, 형님. 그거 흰둥이 주게요? 마지막 한 조각까지 드셔야죠. 그거 시제품도 아니어서 못 구하는 건데…. 저도 겨우 사정해서 인당 한 개밖에 못 가지고 왔어요.”

경호가 흰둥이를 부르자 성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말렸다.

“아니. 맛은 충분히 느꼈어. 그리고 흰둥이도 저렇게 먹고 싶어 하는데 줘야지. 우리 식당의 마스코튼데.”

앙! 앙!

-경호 님. 갑자기 햄버거요? 이거 무슨 문제 있는 겁니까?

-야. 내가 주면 문제 있는 거냐?

-그, 그게….

-근데 문제 있는 건 맞아.

-헐….

결국 흰둥이는 엄청 찝찝한 표정으로 경호가 내미는 삼족우 버거를 먹었다.

우물우물.

육즙도 풍부하고 소스도 괜찮았다.

‘맛있는데 왜? 뭐가 문…. 어?’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아주 미묘한 맛, 아니 정확히는 기운이 느껴졌다.

-맛이 어때?

-흐음. 맛은 좋습니다. 경호 님의 요리만큼이나 맛은 좋은데. 미묘하게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데요. 좀 찝찝하게 기분 나쁜…. 근데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흰둥이가 맛있게 먹는 것을 본 성원이 그것 보라는 듯 말했다.

“역시 흰둥이도 맛있게 먹잖아요. 형님. 여기 진짜 대박이라니까요. 그래서 이곳을 특별히 경연 후보로 넣었습니다. 마수고기의 세계화에 가장 적합한 곳인 거 같아서요.”

성원의 말에 경호가 고개를 끄덕이다 물었다.

“너도 이거 먹어 본 거지?”

“네. 저는 본점에서 시식하고 왔죠. 형님, 왜요?”

“맛이 어때?”

“끝내주던데요. 사실 그전에도 버거퀸에서 한우로 만든 버거도 먹어 본 적 있었는데 이 ‘삼족우’로 만든 버거는 그것과 비교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맛있더라고요.”

미묘한 기운을 느낀 것은 결국 경호와 흰둥이밖에 없었다.

‘아니 사실 나도 못 느낄 뻔했다. 이거 문제가…. 좀 심각한데.’

경호가 성원에게 전음을 날렸다.

-성원아. 이 버거 아무래도 악마계약자가 만든 거 같아. 확인차 같이 본점에 좀 가봐야겠는데?

푸웃!

예상치 못한 경호의 전음에 음료수를 따서 마시던 성원의 입에서 사이다가 시원하게 뿜어져 나왔다.

“꺄아아아아악!”

놀란 미호가 성원이 분수처럼 뿜어내는 사이다에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다행히 뿜는 순간 성원이 바로 고개를 돌려 대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형님. 그게 무슨 소립니까?”

성원이 놀라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아니 갑자기 뭔 소리야. 너 기면증이라도 걸려 꿈이라도 꾼 거야?”

경호의 대답에 성원이 조금 전 대화가 전음이었던 것을 떠올렸다.

“아하하하하. 제가 딴생각하다 사이다도 뿜고 헛소리도 했네요.”

성원이 마대 걸레로 바닥에 뿜어낸 사이다를 닦아 내다가 갑자기 ‘아! 맞다!’를 외치며 어색한 연기를 시작했다.

“형님. 점심 장사 마쳤으니 시간 좀 있으시죠?”

“어? 왜? 시간은 있지만 쓸데없는 일에 불려갈 정도로 한가하진 않은데.”

물론 경호는 저 어색한 연기에 쿵짝을 맞춰 주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그래도 한번 살짝 튕겼다.

“아. 그게…. 어. 그러니까 드워프 족장님이 오늘 한번 같이 보자고 했었는데 이제야 생각이 났네요.”

경호가 성원의 어색한 연기에 웃음이 터질 뻔했다.

흰둥이와 정수는 하도 자주 연기를 해서 이제 제법 수준급의 연기 실력을 갖췄지만 성원은 아무래도 어색함이 가득했다.

물론 지숙이나 미호처럼 순수한 이들이 알아챌 정도로 엉망은 아니었다.

“아. 솔딘 족장님이?”

“네. 어쨌든 족장님은 형님이랑 더 가까우니 뭔가 상의할 게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엄마. 그럼. 나 잠시 갔다 올게요.”

앙! 앙!

흰둥이도 당연히 따라붙었다.

“그래. 너도 바람 쐬고 싶지?”

***

“형님.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립니까? 악마계약자가 만든 버거라니요? 아무리 봐도 그쪽 대표가 딱히 빌런 같은 느낌이 나지 않던데요? 마기도 그렇고.”

성원이 버거퀸 본점을 향해 차를 몰며 말했다.

“너는 뭐. 나 처음 봤을 때 정령계 구하고 온 줄 알았냐? 흰둥이는 수호신인지 알았고?”

“아. 네에.”

경호의 타박에 성원이 바로 수긍하며 꼬리를 내렸다.

“그리고 너는 모르지만 버거에서 나랑 흰둥이는 미묘한 기운을 느꼈거든.”

“미묘한 기운이요?”

-경호 님. 근데 그 기운이 뭔지 아십니까? 저는 처음 느껴 보는 기운이라서요.

“알다마다. 절대로 못 잊는 아주 인연이 깊은 기운이거든.”

“아니, 형님 정말 뭔가 느껴졌다고요?”

요즘 꽤 강해지며 감각이 예민해졌다고 자부했던 성원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괜히 시무룩하지 말고. 그거 느끼기 어려운 기운이야. 우리가 사실 숨 쉴 때 산소가 필요하지만, 그것을 느끼면서 숨을 쉬는 건 아니잖아. 나도 겨우 느낀 거기도 하고.”

“아….”

경호의 설명에 성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마혼’이라 불리는 마신이 마계에 심은 기운이야.”

“마혼?”

-그 기운이 마혼이군요.

흰둥이는 마혼을 구분할 줄은 몰랐지만 알고는 있었다.

“혹시 그게 암흑마기보다 더 안 좋은 건가요?”

“어. 왜냐하면….”

미르에게 들었던 ‘마혼’에 대한 이야기를 경호는 떠올렸다.

최초에는 ‘혼돈’만이 존재했다.

빛과 어둠.

공존할 수 없는 기운이 하나로 섞여 질서도, 균형도, 선악도 없는 혼돈이 있었다.

그러다 그 혼돈 속에서 빛과 어둠이 분리되어 세상을 만들었다.

눈부시게 밝은 빛 속에서 주신이 탄생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마신이 태어났다.

주신은 세상 속에 천상계, 인간계, 정령계를 만들고 세계수를 세워 기운을 조화롭게 퍼뜨려 천사, 인간, 정령 같은 생명체를 만들었다.

마신은 빛이 미치지 않는 세상 밖에 마계를 만들고 악마와 마물을 만들었다.

세상 밖에 만든 세계였기에 모든 것이 부족했다.

생명의 근원 자체가 어둠인 존재인지라 다른 존재의 생명을 뺏어 섭취해야 생존할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마계는 죽고 죽이는 살육이 끊이질 않았다.

자신의 피조물이 매일 같이 살육을 벌이는 것을 지켜보던 마신은 절대적인 서열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마혼(魔魂)이었다.

마신이 자신의 기운을 쏟아 내 특별하게 가공해 만든 것으로 마목(魔木)이라는 나무를 통해 나오게 했다.

마계 곳곳에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마목. 그리고 그것이 뿜어대는 마혼의 기운이 몸 안에 쌓이면 품고 있는 마기의 수준에 따라 높은 쪽의 명령에 낮은 쪽이 복종하게 됐다.

이름처럼 혼에 새겨지듯, 격차가 느껴지면 아무리 의지를 불태우고 분노를 일으켜도 복종하게 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부터 마계의 존재들은 서로를 잡아먹기보다는 마기를 더 강화시키기 위해 단련했다.

그리고 그렇게 키운 힘을 가지고 다른 이들을 지배하여 다른 차원을 침략해 사냥하며 살아왔다.

“형님. 그러니까 인간도 그 기운에 물들면 나중에 악마들이 넘어와서 지시하면 꼼짝도 못 하고 따르게 된다는 거죠?”

“아마도…. 아니 분명 그럴 거야. 마신의 기운은 인간이 저항할 수 있을 정도 약하지 않으니까.”

경호의 말에 성원이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최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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