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용사의 골목식당-176화 (176/335)

#176화

그렇게 생일이 지나고 다시 바쁜 일상이 시작됐다.

“뿔돼지 돈가스 2개요!”

경호가 주방에 대고 주문을 넣자.

“네! 오빠. 바로 나가요!”

미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지 않은 식당 안은 그야말로 복작복작했다.

행운식당은 원래도 장사가 잘 되는 편이었지만 이제는 정말 밀려드는 손님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천종원의 골목식당’ 덕분이었다.

마수고기로 요리를 한다는 것이 이슈가 되면서 원래도 ‘인생돈가스’로 유명했던 행운식당이 ‘뿔돼지돈가스’로 더욱 장사진을 이뤘다.

물론 처음부터 뿔돼지고기로 돈가스를 만들었기에 특별한 차이는 없었지만 사람 심리라는 것이 묘했다.

“여기 뿔돼지돈가스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경호가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어린 커플에게 돈가스를 서빙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자 어린 여성 손님이 북적거리는 주변을 둘러보며 울상을 지었다.

“우와. 사장 오빠. 여기 이제 정말 먹으려면 너무 기다려야 하네요. 히잉. 나만 알고 싶은 맛집이었는데. 골목식당 덕에 너무 유명해져서 아쉬워요.”

‘아니 언제 봤다고 사장 오빠냐?’

요즘 젊은이들의 친화력에 경호는 항상 놀랄 따름이었다.

“다들 맛있게 드셔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경호의 말에 남성 손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바삭거리는 식감도 대박이지만 정말 뿔돼지고기는 일반 돼지랑 완전 육즙이나 풍미가 다르네요. 사장 형님. 원래도 맛있었는데 이제는 완전 수준이 달라졌네요.”

‘얘는 사장 형님이라네. 거 참. 그리고 전이랑 달라진 거는 가격이랑 메뉴 이름밖에 없다고.’

전무가처럼 육즙이니 풍미니 그랬지만 분명 같은 고기, 같은 방법으로 만든 돈가스였다.

미호의 ‘사장 오빠. 고급화 전략 몰라요?’ 하며 건넨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가격도 올렸다.

‘사장 오빠! 우리가 아는 샤넬이나 구찌 가방이 몇십만 원이라면 그게 명품이라고 불릴 거 같아요? 당연히 사람은 싼 음식을 좋아하지만 뭔가 대단한 것을 먹었다고 느끼는 것을 더 좋아한다니까요. 그러니까 돈가스 가격을 무조건 올려야 해요!’

결국, 가격을 그 전보다 두 배 정도 올려 5만 원을 받았다.

짜장면이 3만 원 하는 요즘 물가에서 그리 비싼 것도 아니었지만 지숙은 결사반대했다.

특히나 뿔돼지고기는 성원이가 공짜로 공급해주기에 식재료 단가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렇게 수익성이 엄청나게 좋은 뿔돼지돈가스였지만 손님들은 특수처리한 마수고기를 재료로 했음에도 이렇게 저렴하게 팔아도 되냐고 오히려 걱정하는 지경이었다.

경호에게 말을 걸던 이 커플도 그랬다.

“사장 오빠. 이거 5만 원 받으면 손해 아니에요? 요즘 삼겹살 1인분에 7만 원 받는 곳도 많은데…. 뭐, 전에 백반은 2만 원 받으시긴 했지만.”

어린 여성 손님의 걱정에 경호가 웃으며 말했다.

“많이 팔면 손해는 안 봅니다. 손님 분들이 맛있게 드셔주시면 그게 가장 큰 행복이죠.”

사실 마진율이 90% 가까운 말도 안 되는 요리였지만 경호는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뱉어냈다.

“사장 형님. 제가 원래 돈가스 매니아여서 대격변 전에는 일본까지 가서 돈가스 투어도 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정말 여기 뿔돼지 돈가스가 최고예요. 거기다 우리가 이렇게 마수고기를 먹으면 환경도 살리는 거잖아요.”

“그렇죠. 이렇게 오셔서 마수고기를 드시면 땅에 묻거나 태우면서 나오는 독기나 마기도 줄어드니까요. 물론 신화그룹에서 특별히 개발한 방법으로 독기와 마기를 손질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요.”

운애가 세계수 잎사귀로 만든 정화수를 이용해 독기와 마기를 제거하기에 돈도 들지 않았고 특별히 어려움도 없었다.

물론 그러한 사항은 아무도 모르는 특급 기밀이었다.

“그래서 저도 하루 한 끼 ‘마수고기 챌린지’ 하고 있어요.”

천종원이 가진 체인점에서 조금씩 마수고기를 이용한 메뉴가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메뉴를 먹고 인증하는 ‘마수고기 챌린지’ 최근 SNS를 통해 인기를 끌고 있었다.

결국 그 커플은 경호의 노력-돈보다는 환경과 맛을 지키려는 고집-을 칭송하며 식당을 나섰다.

하루에도 그 커플과 같은 이들이 넘쳐났다.

그렇게 마수고기는 사람들에게 거부감 없이 조금씩 다가가고 있었다.

그렇게 점심 장사를 끝내고 경호와 지숙, 미호가 정리를 하고 믹스 커피 한잔하며 잠깐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엄마. 이제 쉬라니까. 저번에 봤잖아. 내가 미호랑 주방 보고 홀에 알바 쓰면 된다고. 엄마. 이제 좀 쉬어. 흰둥이랑 산책이나 좀 하고.”

경호가 피곤한 기색이 보이는 지숙을 보며 애정 섞인 잔소리를 했다.

흰둥이 덕에 건강이 좋아지고 있는 지숙이었지만 세월을 이길 수는 없었다.

특히나 요즘은 뿔돼지돈가스가 소문나며 점심에만 100개 이상 돈가스가 나가고 있었다.

“요리 좀 잘한다고 칭찬해줬더니 이 녀석이 벌써 엄마를 뒷방 늙은이로 만들 생각이니. 엄마는 아직 팔팔하니까 걱정하지 마라.”

사실 힘에 부치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지숙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아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것이 힘든 주방일이어도 상관없었다.

아니 그래서 더 의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들과 자신의 추억이 가장 많이 서려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으니….

그때였다.

“형님!”

문이 벌컥 열리며 성원이 환한 미소와 함께 양손에 ‘Burger Queen’이라고 적혀 있는 종이백을 들고 들어왔다.

“어. 왔냐? 근데 그건 뭐냐?”

“식사 안 하셨죠? 그래서 간단히 요기할 거 가져왔습니다.”

“식사를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거야. 온종일 기름 냄새를 맡으니 밥이 안 넘어간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짜안!”

성원이 종이백에서 햄버거를 꺼내서 식탁에 올렸다.

“성원아. 이게 뭐니?”

지숙은 특별히 햄버거에 관심이 있거나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요즘 젊은이들에게 뜨고 있는 ‘버거퀸’이라는 브랜드를 당연히 알지 못했다.

“아. 어머님. 이게 요즘 유행하는 버거퀸이라는 버거인데요. 엄청나게 인기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저희 경연에 후보로 뽑은 곳이라 제가 일부로 본점까지 가서 구해왔습니다.”

“엉? 네가 본점까지 가서 직접 구해왔다고? 저번에는 수련한다고 바쁘지 않았어? 동물원 준비도 있고. 그런데 안 바빠?”

“수련은 정체기라서요. 동물원은 반대로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고요. 그리고 다른 것들도 요즘엔 좀 조용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직접 왔습니다.”

2페이즈로 돌입하고 초반만 해도 투명균열이니 극지던전이니 여러 가지 새로운 형태의 침략에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력 하나는 기가 막힌 종족이었다.

신화그룹의 정령이 심어진 아이템이 큰 역할을 하긴 했지만 어쨌든 이제 큰 피해 없이 침략을 막아내고 있었다.

최근 들어 신수 납치도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비스트가 그것을 조사하는 중이었지만 특별한 것은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형님도 경연 준비하셔야죠.”

“주최 측 최고위급 담당자와 경연 준비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 행위 아니냐?”

경호의 말에 성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지금은 신화그룹 관계자가 아닌 형님의 동생으로 온 거니까 괜찮습니다.”

“녀석. 갖다 붙이기는. 그런데 너 저번에 맛은 있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가게를 발굴해서 골목을 꾸미고 싶다고 하지 않았냐? 그런데 버거퀸은 그런 알려지지 않은 맛집은 아닌데. 신화그룹이랑 비교해서 그렇지 거기도 엄청나게 큰 프렌차이즈잖아.”

한마디로 성원이 경연을 이야기하며 생각했던 후보와는 거리가 먼 식당이었다.

아니 버거퀸은 정확히 말하면 식당이 아닌 외식기업이었다.

“그때는 신화그룹 차원에서 이 골목을 살리고 싶어서 한 생각이고요. 지금은 다르잖아요.”

“응?”

경호뿐 아니라 지숙이나 미호도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게 아니라 이번 경연이 마수고기를 널리 퍼뜨리는 역할도 하게 될 테니까요. 그러니 버거퀸 같은 프렌차이즈 기업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나 지금 집중하고 있는 아시아권 뿐 아니라 유럽이나 미국도 진출하겠다고 하더군요. 그 부분은 신화가 그룹차원으로 도와줄 생각입니다.”

“맘에 쏙 들었나 봐?”

“뭐. 그럭저럭. 사실 천종원의 골목식당은 예고편이죠. 그것을 통해서 마수고기의 선입관을 지웠다면 이제 경연을 통해 본격적으로 마수고기의 맛을 알릴 겁니다. 그리고 그 가장 선봉에 행운식당이 서야 하고요.”

성원이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경호를 지긋이 쳐다봤다.

“왜? 뭐!”

“형님! 제가 확실하게 밀어드릴 테니 무조건 1등 하셔야 합니다!”

“니가 안 밀어줘도 1등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냥 해본 말이 아니었다.

10년간 마수고기와 부족한 재료로 요리를 한 경험은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랬기에 경호는 마수고기로 요리해서 누군가에게 질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버거퀸을 후보로 삼은 것은 마수고기를 빠르게 퍼뜨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선택한 것도 있지만 버거퀸 대표인 김동진 대표가 먼저 저를 찾아와서 이야기하더군요.”

“김동진 대표? 그가 널 찾아왔다고? 찾아와서 뭐라고 했는데?”

“마수고기로 햄버거를 만들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 뭐. 맛있는 재료를 쓰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나 가진 거니까.”

“그것도 그렇지만 김동진 대표는 햄버거 패티 소비량이 어마어마하다는 점을 들어서 설명하더라고요.”

김동진 대표는 성원을 찾아와 진정성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이성원 길드장님. 길드장님이 주관하는 경연에 꼭 참여하고 싶습니다. 청탁이라고 생각하실까 봐 찾아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혹시 대형 프렌차이즈라 생각하시고 기회도 주지 않고 탈락일까 싶어 찾아왔습니다. 기회를 주십시오.’

‘왜 경연에 참여하시려는 거죠? 이미 유명한 프렌차이즈 기업이라 저희가 만들고자 하는 골목에 굳이 들어오실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햄버거 패티를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소와 돼지가 키워지고 도살되는지 알고 계십니까?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 내는 환경오염은요?’

‘….’

‘그에 비해 마수고기는 정말 혁신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환경을 오염시키며 키우지 않아도 세상의 모든 육류 중에 가장 많은 양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금은 고스란히 땅에 묻거나 태우고 있습니다. 보통의 육고기를 태워도 엄청난 오염물질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래서요?’

‘전 세계를 상대로 마수고기의 소비를 촉진하고 싶습니다. 저희 버거퀸의 덩치를 더 키워서요. 신화그룹에서 지원해 주시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흐음. 그럴 수도 있겠군요.’

성원은 김동진의 말에 어느새 설득당하고 있었다.

‘물론 그냥 지원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연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정식으로 합병이나 투자를 통해서 도와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우선 경연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다시 이야기하는 거로 하시죠.’

성원의 이야기에 끝나자 경호는 김동진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그것은 지숙이나 미호도 마찬가지였다.

“그 대표라는 사람. 참, 사람이 된 사람이네.”

“그러게요. 정말 사람이 멋있네요.”

“그래서 저도 후보로 선택했습니다. 그럼.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고 했으니 우선 햄버거 드셔 보세요. 이거 특별히 삼족우 고기를 본사로 가져가서 그것을 이용해 만든 패티가 들어간 버거입니다.”

성원의 말에 모두가 삼족우 버거를 집어 들어 종이를 벗겨내고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우물우물.

어엇! 어어엇!

경호는 입안을 가득 채운 엄청난 육즙과 짭짤고소달콤하다 마무리는 살짝 매콤한 소스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삼족우고기가 원체 맛있는 고기지만 이건 정말 놀라웠다.

“허허. 이거 어쩌면 1등 못할지도 모르겠는데.”

경호가 손에 들린 삼족우 버거를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