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바삭. 바사삭.
오십여 명의 언론 관계자가 나눠진 돈가스를 먹었다.
입안에서 바삭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정작 모두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문이 막혔다.
그런 언론 관계자들을 단상에 앉아 지켜보던 종원은 행운식당에서 시식 후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역시나 다들 ‘후아! 후아!’거리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종원, 자신 역시 그랬다.
처음엔 진짜 농담인 줄 알았다.
마수고기에서 그런 맛이 나다니….
무슨 몰래카메라인 줄 알고 믿지 못하다가 결국 늑대인간들이 작업하고 있는 공장에 가서 직접 고기를 확인하고 최종적으로 그 고기로 직접 요리까지 하고 나서야 믿게 됐다.
물론 그렇게까지 하고 나서도 경호의 요리실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내가 만든 돈가스보다 완성도도 높고 맛도 있었으니까.’
종원은 옆에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경호를 힐끗 쳐다봤다.
뉴스로 신화가의 성원과 의형제를 맺은 식당 사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저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만 했었는데 그렇게 단순하게 평가할 인물은 아닌 듯싶었다.
돈가스뿐 아니라 그날 먹은 모든 음식은 놀라울 정도로 균형감이 훌륭했다.
ASMR 방송을 튼 것처럼 바삭거리며 먹는 소리를 제외하고 조용하던 시사회장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언론 관계자, 주로 기자들이었기 때문에 맛있기는 하지만 왜 갑자기 돈가스를 시식하게 했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라 서로 그것들을 추측하며 떠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다시 시사회장이 어두워지며 영상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화면에는 꽤 친숙한 마수인 뿔돼지가 나왔다.
승합차보다 큰 커다란 몸집에 코만 돼지코지 영락없이 생김새는 코뿔소인 마수였다.
물론 죽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상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뿔돼지와 ‘천종원의 골목식당’이라는 제목은 전혀 상관없어 보였지만 다들 잠자코 영상을 시청했다.
그때 작업복을 입고 있는 워울프들이 카메라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손에는 전기톱이며 도끼, 커다란 칼을 들고 있었다.
다들 설마, 설마 하는 표정으로 영상을 지켜봤다.
위이이이이잉! 퍼억! 슥슥!
전기톱이 돌아가고 도끼가 찍혔다.
커다란 칼이 여기저기 훑으며 고기를 발라내기 시작했다.
피가 튀기고 살이 잘려 나가는 모습이 모자이크 처리되긴 했지만 다들 잔혹한 장면에 입을 쩌억 벌렸다.
다들 이게 뭐지? 하는 표정이 되어 갈 때쯤 화면이 전환됐다.
전에 나왔던 장면이었다.
작업복을 입은 거대한 덩치의 워울프들이 두건에 마스크까지 쓴 채 고기를 자르고 포장하는 모습.
-그러니까 이게 바로 저게 그 특별한 재료라는 거죠? 저 고기가요?
-네. 저게 바로 행운식당 요리의 특별한 비법입니다.
그리고 작업복을 입은 성원과 종원이 그러한 워울프 작업장에 모습을 드러내며 말하는 모습까지.
그렇다는 것은?
여기 있는 이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으아아아!”
“이, 이게 설마!”
“미, 미친!”
“이게 뿔돼지 고기라고?”
켁켁거리며 구역질하는 이들까지 있었다.
그때 앉아 있던 종원이 일어났다.
“다들 드셨으니 확실히 아시겠지요? 맛이 어땠습니까?”
물론 맛이야 끝내줬다.
그냥 맛있다고 하는 영역을 넘어가는 놀라운 맛이었다.
하지만 마수고기라니!
음식은 맛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종원이 관계자들의 표정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다들 황당하시죠? 말도 없이 마수고기를 먹이다니…. 저도 처음에 모르고 먹었습니다. 그리고 뒤에 이것이 마수고기로 만든 요리임을 알고 정말 놀랐습니다. 저 역시 헛구역질을 할 정도였죠.”
물론 거짓말이었다.
종원은 애초에 마수고기 요리를 시식하기 위해 행운식당을 찾았다.
물론 백반의 재료가 마수고기인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지금부터 준비한 연기를 시작할 시간이었다.
“마수고기의 대중화! 이 프로그램의 취지입니다. 미친 소리죠! 하지만 저는 이 프로그램을 맡기로 했습니다. 그 이유를 아십니까?”
신화그룹에서 돈을 많이 썼나? 하지만 천종원 역시 외식업체의 대표로 돈에 팔리는 인물은 아니었다.
이성원 길드장과 친분? 하지만 이 역시 아니라는 것 정도는 여기 있는 이들 모두 잘 아는 내용이었다.
“사명감이 들었습니다. 제가 여기 계신 ‘이성원’ 길드장님께 물었습니다. 왜 이 사업을 시작하신 거냐고. 혹시 돈이 많이 남는 사업입니까? 그랬더니…. 아니 여기 계시니 직접 말씀해 주시지요.”
성원이 무척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마수고기를 유통하는 일은 돈이 많이 남는 사업이 아닙니다. 지금이야 거의 거저라고 할 정도로 마수고기가 저렴해서 손해를 보지 않는 정도지 고기 단가가 조금만 올라도 무조건 손해를 보는 구조입니다.”
성원의 말에 언론 관계자의 눈동자에 불신의 빛이 떠올랐다.
“마수고기로 만든 돈가스를 드셨으니 아시겠죠. 맛도 좋고 육즙도 풍부합니다. 그런데 왜? 마수고기는 못 먹는 식재료라는 선입견이 있을까요?”
그러게 왜 이렇게 맛있는 고기인데….
“마수고기 속에 깊숙이 배어 있는 마기와 독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제거하는 일을 아까 보신 워울프 부족원들이 하고 있던 겁니다. 단순히 정육을 하는 것이라면 기계로 하면 되는 것이지만 손질 중에 마력을 불어넣어야 하고 특수한 재료 역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굉장히 비싸지요.”
그러자 모두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긴 몰라도 마도공학의 산물일 테고 그것들은 무조건 비쌌다.
물론 세계수 잎사귀와 운애가 만들어 낸 정화수로 마기와 독기를 제거하기에 공짜라는 것은 비밀이었다.
“그렇게 수익이 나지도, 쉽지도 않은 일이지만 저는 마수고기를 유통하기로 했습니다. 왜냐고요?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갑자기 등장한 ‘지구 구원’에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다들 저보다 더 잘 아시겠지만 마수를 잡으면 모든 부위가 재활용됩니다.”
이빨, 발톱, 뼈 같은 것은 무기의 재료로 쓰이고 장기, 가죽 같은 것은 마도공학의 원료로 사용된다.
마석의 경우는 등급에 따라 다르지만 엄청난 가치를 가진 말 그대로 보물이었다.
하지만 마수의 고기는 쓰레기, 그것도 일반 쓰레기가 아니라 잘 처리해야 하는 법정 지정폐기물이었다.
“하지만 마수고기는 마기와 독기를 머금고 있어 처리에 어려움이 있는 물건입니다. 흑색지대에 묻어 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그곳에 고인 마기와 독기로 인해 돌연변이 마수가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도 떠돌고 있습니다.”
사실 최근 들어 점점 던전과 균열의 발생 빈도가 잦아지면서 정부와 환경단체의 마찰로 인해 그에 관한 기사가 꽤 올라오는 상황이었다.
“신화그룹은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기업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 기여하는 그런 기업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바람을 담은 사업의 시작이 바로 ‘마수고기 유통’입니다.”
성원의 말에 언론 관계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이 길었지만 맛이 좋고 몸에 나쁘지 않다면 먹어 치우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긴 했다.
“그리고 신화 바이오에서 마도고기의 안정성에 대해 검사를 하며 알아낸 것인데 장복하면 각성자의 경우 마력 수치가 높아집니다. 마나코어도 강해지고요.”
-오오!
성원의 설명에 관계자들의 탄성이 들렸다.
“그리고 정력이 좋아지는 작용도 하더군요. 괜히 비싼 장어 꼬리를 구해 먹는 것보다 마수고기를 추천하고 싶네요.”
-오아아아아아아아!
아까보다 몇 배는 큰 반응이 터져 나왔다.
반짝이는 언론 관계자들의 눈빛을 보고 성원은 성공을 확신했다.
“끝으로 마수고기의 가능성을 가장 알아보고 이렇게 일을 진행할 수 있게 도와준 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형님! 형님 차례입니다!”
성원의 소개에 경호가 억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한 대사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행운식당 사장인 최경호라고 합니다. 이성원 길드장의 소개처럼 제가 마수고기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소개한 것은 맞지만 그것은 순전히 운이 좋아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경호는 담담하게 드워프 부족과 자신의 친분을 설명하고 우연히 그들이 마수고기를 가지고 요리를 한 것을 얻어먹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해서 마수고기 처리를 연구해 대량화에 성공하게 됐고 지금 이곳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모쪼록 환경을 위해, 그리고 헌터님들의 실력 향상을 위해, 끝으로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 고개 숙인 남성들을 위해 마수고기가 꼭 대박 났으면 좋겠습니다!”
경호의 외침에 언론 관계자 모두가 기립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역시 ‘정력’은 치트키였다.
***
‘오로바스’가 다른 군단장과 똑같이 용사라고 착각하고 있는 ‘다현’을 죽이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그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인간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다른 군단장들은 자신의 계약자가 실패했음에도 그 이유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벌레 따위 이번엔 놓쳤지만 다시 잡으면 그뿐.’이라는 사고방식이었다.
하지만 오로바스는 그들보다 훨씬 계획적으로 접근했다. 게다가 ‘상급 악마’라는 굵직한 패를 꺼내 들었음에도 실패하자 그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타다닥!
북악산을 빠르게 뛰어오르는 두 명의 남녀가 있었다.
각기 전혀 다른 복장에 통일성이 없는 둘이었지만 손목 안쪽에 검은색 부엉이 문양이 새겨져 있다는 점이 같았다.
“여기다.”
앞서 걷던 남자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가 멈춰 선 곳은 상급 악마 바이몬이 경호와 싸운 곳이었다.
바이몬은 재가 되어 사라졌고 리나 역시 차원문을 여는 재료가 되어 소멸했기에 특별히 남아 있는 흔적은 없었다.
하지만 여기 온 이들은 악마계약자 중에서 기감이 좋은 이들로 ‘오로바스’에게 특별히 바이몬의 실패에 대한 부분을 조사하도록 명 받은 이들이었다.
그렇게 오로바스에게 차원문이 열렸던 좌표를 받아 달려온 이들이었다.
여성이 바닥을 손으로 쓸어 흙 한 줌을 쥐어 혀로 맛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복잡한 맛이야.”
여성은 [미각]이라는 특성을 가진 각성자로 혀로 기운을 느껴 정확히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한두 명이 아니었어. 아니 애초에 인간만 있는 게 아니야.”
남성 역시 눈동자가 붉게 변하며 주변을 살폈다.
특성 [귀안].
주변의 사념이나 특수한 기운을 눈으로 볼 수 있는 특성이었다.
“사념이 거의 흩어지긴 했지만 분명 신수와 정령이 개입한 것 같다.”
“다현이 데리고 다니던 그 여우 새끼는 분명 신수 같더군. 정령은 의외지만.”
여성도 혀에서 분명 불과 물, 땅, 그리고 전기적 기운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거기다 마력, 신력, 정령력, 마기가 여기저기 섞여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이렇게 복잡한 기운을 맛보는 것은 그녀 역시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용사에게 신수와 정령까지 붙었다는 거지?”
“그것도 상급인 것 같아. 맛이 깊이가 꽤나 깊어.”
“이거 용사 잡는 것은 보류한다길래 이제 한가할까 했는데 어쩌면 더 바빠지겠군.”
“그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