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에이! 거짓말 마세요!”
종원이 경호를 보며 불신이 가득한 눈으로 소리치듯 말했다.
“아니 여기 어디에 마수고기가 있다는 겁니까?”
경호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종원 씨가 생각하는 마수고기는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데요?”
“….”
대답을 못 하고 있는 종원을 보다 경호가 접시에 뿔돼지 고기와 삼족우 고기를 담아서 가지고 나왔다.
“이, 이게 마수고기라고요?”
지숙을 비롯해 마수고기를 처음 본 이들은 대체로 저런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우선 헌터나 헌터마켓을 자주 다니는 이들이 아닌 이상 ‘마수고기’를 보는 것 자체가 드물었다.
그리고 마수고기를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것이 ‘방송’에서였다.
그곳에 나오는 마수고기는 대체로 상급 마수일 경우가 많았다.
시선을 끌 만한 마수를 방송에 내야 하기에 당연한 이치였다.
문제는 상급 마수일 경우 마기와 독기가 강해 보기에도 ‘나는 마수고기다! 먹으면 죽어!’ 하는 비주얼을 가지고 있었다.
마기와 독기에 절어 보통 시커멓거나 보랏빛이 강하게 돌았다.
거기다 냄새마저 고약했다.
삭힌 홍어는 상급 마수의 고기에 비하면 향긋한 수준이었다.
단순히 시큼하고 역한 수준이 아닌 고통스럽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의 악취가 풍겼다.
하지만 경호의 들고 온 접시 위의 고기는 그냥 선홍빛이 도는 평범한 고기였다.
보통의 돼지고기, 또는 소고기.
“네. 이쪽이 뿔돼지 고기고요. 이건 삼족우 고기입니다.”
“….”
종원이 멍한 표정으로 접시 위에 마수고기를 말없이 쳐다보다 성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방송 언제 들어갑니까! 마수고기 이거 분명 됩니다! 아니 분명 대박 납니다!”
***
매번 말하지만 ‘돈이면 다 된다’는 말은 우주를 관통하는 진리였다.
-KTV 특별기획 ‘천종원의 골목식당’. 인류에 새로운 식문화를 제시할 것!
-KTV 특별기획 ‘천종원의 골목식당’ 제작진 ‘모두 깜짝 놀랄 내용이 가득하다!’
-KTV 특별기획 ‘천종원의 골목식당’ - 신화그룹 100% 지원 제작.
방송, 신문은 물론 너튜브까지 시끌시끌했다.
마수고기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10부작 특별 기획으로 편성하여 엄청난 광고비를 투자했다.
“아버지. 돈 아끼면 안 됩니다! 마수고기를 유통하려는 이 사업 자체가 수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하는 자선 사업이라고 생각하고 하는 겁니다.”
성원이 처음부터 아예 말뚝을 박았다.
건용 역시 이익만 좇는 장사꾼이 아니었기에 그런 성원을 대견하게 생각했다.
“이 녀석이 이제 아비를 가르치려 하는구나. 그래. 내가 달라는 대로 다 줄 테니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해라.”
“감사합니다! 아버지!”
그리고 성원은 정말 신나게 돈을 풀었다.
지숙과 경호가 만든 마수고기 요리에 반한 천종원은 저렴하게 섭외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문 방송인이 아닌 천종원 단독 진행으로는 아무래도 약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뭐. 얼마면 되는데!”
다시 말하지만 ‘돈이면 다 된다’는 말은 우주를 관통하는 진리였다.
그렇게 추가된 진행자가 최고의 프리랜서 아나운서인 ‘조성주’와 팬층이 두꺼운 연기파 배우 ‘김보아’였다.
매끄러운 진행은 조성주가, 마수고기로 만드는 요리는 천종원이, 분위기를 살리는 것은 김보아가 딱이었다.
그 둘의 합류로 첫 방송 전부터 난리가 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언론 시사회가 열렸다.
***
‘천종원의 골목식당’ 언론 시사회 전날 저녁.
경호가 가게를 정리하고 자러 들어가려는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손목에 진동과 함께.
-관우
성원에게 전화가 왔다.
경호는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끼며 전화를 받았다.
“어? 성원아.”
-형님! 대박!
얘가 무섭게 왜 이래!
“뭐가 대박인데?”
-내일 언론 시사회에 참석시켜 달라고 했더니 ‘오케이’ 받았어요!
근데 제작 지원사 대표는 시사회 참석이 당연한 거 아닌가?
“그게 그렇게 대박인 사항이냐? 그래. 축하한다. 그럼. 잘 자라!”
-그럼요! 제가 말은 했지만 형님까지 참석시켜 줄 줄은 몰랐거든요.
“어? 무어라고?”
-형님. 내일 제가 모시러 갈게요!
“야! 이 미친놈아! 누가 시사회 가고 싶데! 아니 내가 뭔데 나가! 나가긴! 야! 그리고 그걸 왜 내 허락도 없이 니가 부탁하는데!”
-서프라이즈! 헤헤!
이제 하다 하다 방송 프로그램 시사회까지 끌려가게 생겼다.
그러고는 한다는 소리가 ‘서프라이즈!’란다.
뒷목이 급하게 땡기기 시작했다.
이러다 마왕 만나기 전에 혈압으로 먼저 죽을지도….
-마수고기 요리의 창시자! 완전 대박이죠!
“그래. 너 한번 나한테 대박으로 맞아 보자! 으아아아아악!”
-형님. 내일 봬요!
경호의 간절한 바람에도 시간을 흘러 다음 날 아침은 밝았다.
“형님!”
역시나 밝은 성원이 식당을 찾았다.
“성원아. 우리 아들 잘 부탁해.”
이미 아침 일찍 지숙에게 전화해 아군으로 만든 성원이었다.
아들이 마수고기 요리의 창시자로 초청되어 간다는데 반대할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성원에게 끌려간 경호는 헤어와 메이크업, 코디까지 완벽하게 마쳤다.
“오우! 형님! 대박!”
무릎이 늘어난 시퍼런 추리닝만 걸친 모습만 봤던 성원은 명품 슈트를 걸치고 서 있는 경호의 모습에 입을 떡 벌렸다.
항상 꾸부정하게 있어 그렇지 슈트를 입고 구두를 신은 경호의 모습은 ‘옷빨’이 났다.
거기에 항상 부스스한 머리도 정리하고 가볍게 메이크업까지 하니 지나가다 마주치면 돌아볼 정도의 외모였다.
“뭐가 또 대박인데.”
“형님이 대박이라고요.”
성원이 엄지를 치켜세웠지만 경호는 ‘어, 그래.’ 정도의 반응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시사회장에서 경호는 성원과 함께 다니며 많은 사람과 원치 않는 인사를 나눠야 했다.
이미 성원의 의형제이자 이제 제법 유명해진 골목에서 유일하게 남은 식당의 사장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180도 달라진 경호의 모습에 다들 성원에게 인사하며 질문을 던졌다.
-옆에 분은 누구세요?
-길드장님. 옆에 계신 분은 누굽니까?
-안녕하세요. 배우 하셔도 되겠는데요?
이런식이었다.
“제 형님이십니다. 아시죠? 행운식당 사장으로 유명한, 바로 그분입니다.”
성원의 소개에 경호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손이 닳도록 악수를 해야 했다.
누구누구 PD, 누구누구 작가, 누구누구 투자자, 누구누구 기자 등등.
어쨌든 대충 성원을 졸졸 따라다니다가 자리에 앉았다.
시사회장이 어두워지며 화면이 밝아졌다.
“형님. 저 나옵니다!”
경호 옆에 앉은 성원이 옆구리를 쿡 찌르며 조용히 말했다.
메이킹 필름 형태의 영상이었다.
“그러니까 된다니까! 무조건 돼요! 무조건! 먹어 보면 안다니까!”
성원이 종원에게 거의 협박조로 설득을 하는 장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시사회에 참여한 언론 관계자들의 얼굴에 도대체 ‘뭐가 된다는 거지?’ 하는 표정이었다.
이들은 아직 ‘마수고기’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다.
성원과 종원, 연출, 카메라 감독 등 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고 보안을 철저하게 해 절대로 모르게 했다.
-그게 될 리가 없잖아요! 저 못해요! 이성원 길드장님! 전 요리연구가입니다.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요! 그런데 이런 장난 같은 기획을 들고 와서 같이 하자고요?
-장난이라니!
-그럼. 이게 장난이 아니란 말입니까?
짜고 치는 연출된 장면이지만 제법 날 선 연기를 보이는 성원과 종원이었다.
-한번만 가 보자고. 가서 먹어 보고 결정해도 되잖아!
-알겠습니다. 대신 먹어 보고 아니다 싶으면 이번 기획은 못 들은 거로 하겠습니다.
영상이 천천히 페이드아웃되었다.
그리고 장소가 바뀌었다.
“어엇!”
경호가 그 장소를 보고 입을 쩍 벌렸다.
화면에 ‘행운식당’ 간판이 나오고 있었다.
“야! 이거 뭐냐?”
“서프라이즈!”
경호가 고개를 돌려 성원을 보니 눈을 찡긋거리며 ‘서프라이즈!’란다.
이거 죽일까?
아무리 봐도 성원의 시선으로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너 저거 언제 찍었냐?”
“진짜 영화처럼 단추에 카메라를 심을 수 있더라고요. 대박이죠?”
아. 대박 때리고 싶다.
경호의 모습이 나오고 인사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편집이 가미된 영상이라 ‘마수고기’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
-자아. 백반 2인분 나왔습니다.
고추장찌개와 제육볶음, 돈가스에 떡갈비가 차려진 화려한 백반 정식이었다.
하지만 뭔가 대단한 그런 음식은 아니었기에 언론 관계자들은 여전히 의문이 가득 얼굴이었다.
-자아. 드셔 보세요.
그리고는 바로 종원의 시식 장면이 아주 먹음직스럽게 편집되어 영상에 나왔다.
처음은 떡갈비였다.
우물우물.
-후아! 이거 뭐야! 미쳤잖아!
다음은 돈가스.
바사삭.
-길드장님. 여기 원래 음식이 이렇습니까? 이거 도저히 제가 평가할 수준이 아닌데요?
절묘하게 대사를 이어 편집한 상태였다.
마수고기를 빼고 음식 자체의 소리와 맛을 더욱 잘 느낄 수 있도록 편집된 영상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고추장찌개와 제육볶음까지 아주 맛있게 먹은 종원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말했다.
-이 음식들의 비법이 뭡니까?
그러자 경호가 피식 웃으며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고. 한가지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긴 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화면이 다시 어두워졌다.
‘저렇게 피식 웃으니까 엄청 건방져 보이잖아!’
경호는 조금 전 영상 속 자신을 보며 낮게 한숨을 쉬었다.
하여간 성원이 녀석 덕분에 제 명에 못 살 듯싶었다.
다시 화면이 밝아졌다.
웅성웅성.
이번에는 언론 관계자들도 놀라 웅성거렸다.
화면에는 작업복을 입은 거대한 덩치의 워울프들이 커다란 고기를 해체하고 있었다.
두건에 마스크까지 쓴 모습이 조금 기괴해 보였다.
경호가 놀란 표정으로 성원에게 물었다.
“워울프 전용 마스크도 있었어? 아니면 이번에 만든 거야?”
“아. 그게 찾아보니 있더라고요. 십여 년 전에 코로나로 한창 난리였을 때 ‘펫마스크’라는 게 출시됐더라고요. 저게 그겁니다.”
“별게 다 있었네.”
하여튼 워울프들은 능숙하게 고기를 자르고 뭔가를 발라 냈다.
그때 작업복을 입은 성원과 종원이 그러한 워울프 작업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니까 이게 바로 저게 그 특별한 재료라는 거죠? 저 고기가요?
-네. 저게 바로 행운식당 요리의 특별한 비법입니다.
종원의 물음에 성원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화면이 꺼지고 다시 시사회장에 불이 환하게 들어왔다.
하지만 여전히 언론 관계자들은 뭔가 답을 알 수 없는 상태로 의문만 더해진 상황이었다.
그때였다.
시사회장 뒤편에서 사람들이 쟁반을 하나씩 들고나오기 시작했다.
그 쟁반 위에는 바삭해 보이는 돈가스가 한입 크기로 담겨 있었다.
성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언론 관계자들을 보며 말했다.
“영상에서 보신 고기를 가지고 천종원 대표가 만든 돈가스입니다. 다들 시식해 보시죠. 이번 신화그룹에서 유통하게 될 새로운 품종의 고기입니다. 아마 드셔 보시면 마음에 드실 겁니다.”
돈가스 재료의 정체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