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용사의 골목식당-155화 (155/335)

#155화

천종원.

중견 외식기업의 대표이사인 그는 성공한 기업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기업인이라 불리기보다 요리연구가로 불리기를 원하는 특이한 인물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요리연구가로 방송을 타더니 최근에는 웬만한 방송인보다 더 활발하게 방송을 하고 있었다.

특히나 잘생긴 외모와 화려한 입담, 거기에 훌륭한 요리 솜씨까지 갖춘 그는 요리 프로그램 MC에 적격이었다.

그런 그를 성원이 길드 하우스로 초대해 직접 만났다.

“안녕하세요. 신화길드의 이성원입니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천종원입니다. 요즘 가장 핫한 분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30대 초반의 종원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성원을 반겼다.

“기획안은 다 보셨죠? 어떻습니까?”

이미 종원의 회사에 기획안을 보내 검토가 완료된 상태였다.

오늘은 말 그대로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계약을 위한 자리였다.

“흥미로웠습니다. 이성원 길드장님이 보내 주신 기획안을 보니 정말 궁금하더라고요. 정말 마수고기가 그리 맛있을까? 요리에 어울리는 식재료이긴 할까? 그것 때문에 어제 잠까지 설쳤습니다.”

“당연히 저희가 시식을 마쳤습니다. 아. 한번 직접 드셔 보시죠. 길드 하우스 뒤편에서 유통할 마수고기를 처리하고 있고 그렇게 완성된 마수고기를 저희 골목의 터줏대감인 행운식당에 줘 요리했는데 아주 맛이 괜찮더라고요.”

그렇기에 일부러 이곳에서 약속을 잡은 것이었다.

“아. 행운식당! 저도 들어봤습니다. 소문난 백반 맛집 아닙니까? 그곳이 여기에 있었군요.”

“네. 가서 직접 드셔 보시고 판단하시죠.”

***

천종원은 사실 처음 기획안을 받아 보았을 때는 누가 장난삼아 ‘몰래카메라’라도 찍는 줄 알았다.

‘마수고기의 식문화 정착을 위해 함께 일해 달라고? 이게 무슨 미친 소리야?’

하지만 기획을 제안한 곳이 신화 엔터테인먼트였다.

‘신화 엔터에서 장난칠 일도 없고 말이야. 이거 도대체 뭐야?’

기획안 가장 윗줄에는 프로그램 제목이 적혀 있었다.

-천종원의 골목식당.

서울 상권 중 실적이 나쁜 곳을 찾아 메뉴 개발이나 노하우를 알려주는 기획 의도는 자신이 보기에도 좋은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메뉴 개발을 왜 마수고기로 해야 하냐고! 아니 아무리 마수고기를 맛있게 만들었다고 해도 돼지고기 소고기가 부족한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먹겠냐고?”

대격변 이후 가격이 몇 배 오르긴 했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마수고기 = 못 먹는 것’이라는 인식이 크기에 아무리 저렴해도 사람들에게 선택받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런 식재료로 신메뉴를 만들어 상권을 살리라니 난도가 높아도 너무 높았다.

“아씨! 그러니까 더 하고 싶잖아!”

결국, 종원은 신화 엔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어서 와요.”

경호와 지숙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종원을 반갑게 맞이했다.

“행운식당의 서지숙 여사님과 최경호 사장님이십니다.”

옆에 있던 성원이 그런 경호와 지숙을 소개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천종원이라고 합니다. 마수고기로 만든 요리 기대 하겠습니다.”

“드셔 보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특히나 식당사장 입장에서도 좋은 재료거든요. 더 싸고 더 맛있으니까요.”

경호의 말에 종원이 약간 놀란 얼굴로 물었다.

“마수고기는 거의 버려지는 물건이니 더 싸다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더 맛있다고요? 쉽게 상상이 안 가는데요?”

“저도 직접 먹어 보기 전엔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럼.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곧 이해시켜 드리겠습니다.”

성원과 종원이 자리에 앉았다.

“형님. 그런데 오늘 메뉴는 뭡니까?”

“메뉴? 음. 대표님. 식사하셨어요?”

“아니요. 식사 전입니다.”

“형님. 저도 아침 안 먹었어요.”

“그럼. 백반 어떨까요?”

경호의 물음에 성원은 침부터 꿀꺽 삼켰고 종원도 고개를 끄덕였다.

“백반 좋죠. 요즘 집밥 같은 음식을 못 먹어서요. 그런데 마수고기로 만든 요리는 따로 나오는 겁니까?”

“비밀입니다. 그럼. 백반 2인분 준비하겠습니다.”

경호가 아리송한 말을 남기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

“엄마. 우리 하나씩 맡을까? 어때?”

“그래. 엄마는 제육볶음 할게. 너는 찌개를 할래?”

지숙의 말에 경호가 냉장고에서 만들어 둔 뿔돼지 돈가스와 삼족우 떡갈비를 꺼내며 대답했다.

“어. 그럼. 내가 이거로 고추장찌개 끓일게. 자아. 엄마.”

경호가 뿔돼지 살덩이를 꺼내 지숙에게 건넸다.

경호는 돈가스를 튀김기에, 떡갈비는 예열한 오븐에 넣고는 삼족우 갈빗살을 조금 꺼냈다.

“자아. 그럼. 고추장찌개를 해 볼까나.”

경호가 지숙을 힐끗 보니 벌써 뿔돼지 고기를 얇게 저미고는 제육 양념을 만드는 중이었다.

‘하여간 손은 엄청 빠르다니까.’

경호는 뚝배기를 꺼내 기름을 두르고는 약한 불에 올려 고추장을 한 숟갈 척 퍼서 넣고는 채소를 손질했다.

대파, 양파, 애호박, 감자, 땡초를 썰어 준비하고는 삼족우 갈빗살을 자글거리는 뚝배기에 넣고 고추장과 함께 볶았다.

적당히 고기가 익으면서 삼족우 특유의 고소한 냄새와 고추장의 매콤한 냄새가 섞여 절로 침이 고였다.

그때 준비한 채소를 넣고 물을 붓고는 액젓과 국간장으로 간을 했다.

바글바글.

붉은 고추기름이 영롱하게 맺히며 갖은 채소와 삼족우 고기가 어우러져 맛있어 보이는 비주얼을 뽐내고 있었다.

“엄마는 이제 끝인데? 우리 아들은 다 했니?”

완성된 요리를 접시에 담은 지숙이 경호에게 물었다.

“나야 아까 끝내고 한숨 자다 왔는데?”

경호의 농담에 지숙이 피식하고는 서둘러 밑반찬으로 아침에 만든 콩나물무침과 깍두기, 미나리 장아찌를 담아냈다.

“엄마. 반찬은 그냥 이 정도만 하자. 메인은 요리니까. 그럼. 가져간다.”

경호가 쟁반에 백반 2인분을 담아 홀로 나가며 말했다.

“자아. 백반 2인분 나왔습니다.”

종원은 경호가 나오기 한참 전부터 킁킁거리며 머릿속으로 마수고기로 만든 요리를 그리기 시작했다.

‘튀김? 제육에 순두부찌개나 고추장찌개 냄새도 좀 나는 것 같고.’

그의 후각세포가 총동원돼 나올 요리에 대해 추리를 했지만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마수고기 요리는 후식으로 나오는 건가?’

그때 경호가 백반을 가지고 나와 식탁에 음식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의 예상대로 돈가스도 있었고 제육도 나왔다.

맛있어 보이는 고추장찌개에 떡갈비까지.

‘정말 그냥 백반이잖아? 이거 뭐지? 설마 이 떡갈비가 마수고기로 만든 건가?’

머릿속이 복잡한 종원과 연신 침만 꼴깍꼴깍 삼키고 있는 성원을 보며 경호가 가장 기다리고 있던 말을 뱉었다.

“자아. 드셔 보세요.”

“형님! 잘 먹을게요!”

“네. 잘 먹겠습니다.”

성원이 고슬고슬한 흰쌀밥에 제육을 얹어 첫술을 펐다.

“우왓! 형님! 제육 대박!”

“그래. 엄마가 한 거야. 많이 먹어.”

그러거나 말거나 종원은 젓가락으로 조심스레 떡갈비를 반으로 쪼갰다.

“흐음.”

쪼개진 떡갈비를 이리저리 굴려 가며 관찰하다 들고 킁킁거리며 냄새까지 맡는 종원을 보며 경호가 물었다.

“혹시 못 드시는 재료가 있으신가요?”

“아. 그게 아니라 이게 마수고기로 만든 요리가 아닐까 해서 봤는데 그냥 소고기로 만든 거군요.”

“드셔 보세요. 숯불로 초벌하고 오븐으로 구워 불향도 나고 육즙도 끝내줍니다.”

경호의 말에 종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집고 있던 떡갈비를 입에 넣었다.

그리고 끄덕이던 종원이 머리가 멈췄다.

우물우물.

그리고 잠시 후 우물거리던 입도 멈췄다.

“후아! 이거 뭐야! 미쳤잖아!”

한참을 가만히 있던 종원이 입을 열어 깊게 심호흡하며 감탄을 터뜨렸다.

멍한 표정을 짓던 종원이 번뜩 정신을 차리고 경호에게 사과부터 했다.

“아. 죄송합니다. 떡갈비 맛에 너무 놀라서…. 그나저나 이거 어디 한우로 만든 겁니까? 육즙하며 육향이 정말 좋은데요. 요리도 물론 잘하셨지만 재료도 보통 물건이 아닌데요?”

“다 드시고 나면 제가 말씀드릴게요. 식으면 맛없으니 우선 드시고 이야기 나누시죠.”

“아. 죄송합니다. 제가 궁금한 음식을 보면 참질 못하는 성격이라서요.”

“네. 그럼. 다 드시면 불러 주세요.”

경호가 그렇게 말하고 주방으로 들어가자 종원이 다시 식탁 위로 시선을 옮겼다.

떡갈비로 다시 가려는 젓가락을 억지로 움직인 그가 큼지막하게 잘린 돈가스 조각을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바사삭.

‘……!’

종원은 우물거리다 꿀꺽 삼키고는 열심히 밥을 먹고 있는 성원을 보며 허탈한 표정으로 물었다.

“길드장님. 여기 원래 음식이 이렇습니까?”

열심히 먹던 성원이 뜬금없는 종원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하더니 대답했다.

“제육은 평소보다 좀 더 맛있는 것 같고요. 돈가스나 떡갈비는 바로 해서 먹으면 더 맛있어요. 이건 미리 만들어 놓은 거 조리한 거라서요.”

“네에엣?!”

전혀 생각하지 않은 답변에 종원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그러더니 종원은 제육볶음과 고추장찌개까지 맛보고는 허탈한 표정 그대로 헛웃음을 지었다.

“왜요? 식사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식사를 끝낸 성원이 그런 종원을 보며 묻자 그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길드장님, 이번 프로는 저와 할 게 아니라 이분들과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마수고기로 만든 건 아니라지만 이 백반만 봐도 알겠네요. 이거 도저히 제가 평가할 수준이 아닌데요?”

“천종원 대표님. 겸손하시기까지 하시네요.”

종원의 말은 겸양의 표현이 아닌 진심이었지만 어느새 행운식당의 음식에 길들여진 성원은 이해를 못 하고 있었다.

최상급 요리를 아침저녁으로 먹고 있어 자신도 모르게 행운식당의 음식이 기준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어떻게 입맛엔 좀 맞으셨나요?”

그때 경호가 홀로 나오며 종원을 향해 물었다.

종원의 눈빛이 이글거리는 태양처럼 달아올랐다.

“아니 떡갈비의 재료 비율이 어떻게 됩니까? 돈가스의 튀김유 배합은요? 아! 내가 미쳤지! 죄송합니다. 영업 비밀일 텐데. 정말 죄송합니다.”

혼자 질문하고 혼자 탓하고 혼자 사과하는 종원의 모습에 경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영업 비밀이랄 것도 없습니다. 필요하시면 제가 레시피 따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말입니까? 물론 절대로 그 레시피 그대로 쓰진 않겠습니다! 그저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거 가만히 두면 큰절하며 제자로 삼아 달라고 할 판이었다.

“별거 아닙니다.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아. 한가지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긴 합니다.”

안 그래도 활활 타오르던 종원의 눈빛이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 특별한 재료가 무엇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이미 종원의 머릿속에서 ‘마수고기’따위는 지워진 지 오래였다.

“물론이죠.”

꿀꺽.

종원이 마른침을 크게 삼켰다.

“바로 특별한 재료는 마수고기입니다.”

“그렇죠! 바로 마수고기…. 네엣?! 마수고기요?!”

“네. 마수고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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