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마수(魔獸).
마계에 사는 짐승으로 이빨, 손톱, 뼈 같은 것부터 등급에 따라 귀금속보다 더한 가치가 있는 마석까지.
대격변 이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이자 인류의 발전에 가장 많이 기여한, 모순적인 존재였다.
그런 마수에게도 가장 가치가 없는 부분이 있었다.
마수고기.
마수의 가죽이나 힘줄은 아이템 재료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살덩이는 정말 쓸모가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마수고기에 배어 있는 진한 마기와 강한 독기였다.
그러한 마기와 독기로 인해 섭취가 불가했고 그것을 제거하고 먹기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그리고 어떻게 마기와 독기를 제거한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맛(味).
마기나 독기를 빼기 위해 약품과 마력으로 처리를 한 마수고기는 육질이 질겼고 역한 풍미가 풍기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소고기나 돼지고기보다 맛이 없었다.
한마디로 상품성이 없었다.
건용이 성원을 보며 다시 물었다.
“마수고기를 유통하고 싶다고?”
“네. 아버지. ‘헌터 업그레이드 대작전’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거든요.”
“헌터 업그레이드 대작전?”
“그러니까요. 그것이….”
성원은 어제 행운식당에서 있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경호의 네이밍 센스로 인해 참 직관적이면서 거창하게 지어진 일명 ‘헌터 업그레이드 대작전’ 중 하나로 마수고기 유통 발단의 시작은 이랬다.
“그래도 비스트 상태가 나쁘지 않아서 다행이네.”
“우리가 좀 늦긴 했죠. 눈가에 눈물이 좀 맺혀 있더라고요.”
부랴부랴 비스트를 산에서 데리고 와 신화병원에 입원시키고 다시 식당으로 돌아온 이들은 랩터 튀김과 맥주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헌터들의 성장에 대한 부분으로 넘어갔다.
지금도 빠른 침략 속도에서 더욱 빨라져서 아까와 같은 악마들이 지구로 넘어온다면 인류는 그냥 악마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다.
“형님. 템빨 말고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템빨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었지만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기에 성원이 경호에게 질문을 던졌다.
“있긴 있는데. 이게 참 아이템이랑 다른 성질이라….”
딱히 기대를 하고 질문을 던진 것은 아니었지만 경호는 이미 준비했던 것처럼 바로 말을 이었다.
드워프의 아티팩트로 다들 엄청난 능력 향상을 겪었기에 다들 궁금한 표정이었다.
경호가 말을 멈추고 ‘음…. 그러니까 그게. 음….’을 반복하자 참을성이 부족한 다현의 손바닥이 빠르게 움직였다.
짜악!
시원한 소리와 함께 다현의 등짝 스매시가 터졌다.
“악! 왜 또?”
“자꾸 궁금하게…. 도대체 뭔데 ‘음음’거리고 있는 거야.”
“하아. 난 생각도 못 하냐!”
다현에게 맞은 등짝을 쓱쓱 문지르며 경호가 말을 이었다.
“그게 그러니까 마수고기를 먹으면 좋거든. 무슨 버프 물약 같은 효과는 없지만 꾸준히 먹으면 마력 향상이나 특성 성장, 육체 회복 같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어서.”
“아. 그래요?”
“내가 정령계에서 단시간에 강해진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마수고기로 만든 요리였지.”
특히나 정령계와 달리 강해질 방법이 제한적인 이곳의 상황에서 마수고기는 꽤나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형님. 마수고기가 맛만 좋은 게 아니었네요?”
성원이 말에 경호가 고개를 저었다.
“마수고기는 모두 폐기 처리되거나 애완 마수의 먹이로 쓰이는 게 일반적이던데? 아니야?”
경호의 말에 모두가 ‘아!’를 외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3초 뿔돼지 삼겹살, 삼족우 떡갈비, 드레이크 랩터 튀김 같은 것을 먹다 보니까 모두가 착각하고 있었다.
마수고기는 결코, 절대로 맛있지 않았다.
“아. 맞네. 마수고기 그거 그냥 버리는 건데. 형님 때문에 착각하고 있었네.”
정수가 중얼거리자 경호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사람들이, 각성자들이 먹을 수 있게 하느냐가 문제인 거지.”
“성원아. 그냥 신화가에서 유통하면 팔리지 않을까? 몸에 좋다고 광고하면서 말이야.”
“아니 그 정도로는 부족해. 지금 성공적으로 정착 중인 드워프제 정령무기 수준이 되려면 마수고기를 쌀밥에 김치 수준으로 먹어야 하거든. 그런데 그냥 몸에 좋다고 광고하면서 팔면 과연 사람들이 그렇게 사서 먹을까? 아, 물론 입소문이 나서 점차 사람들이 사 먹을 수도 있겠지. 마왕이 지구에 강림할 정도 즈음에 말이야.”
경호의 말에 틀리지 않았기에 다들 심각한 얼굴이 됐다.
“정력에 좋다고 소문내면 안 되겠죠? 우리나라 사람들 정력에 좋다면 양잿물도 마실 사람들이잖아요.”
호돈이 야심차게 대안을 말했지만 경호는 고개를 저었다.
“음. 헌터가 30대 이상 남성으로만 이뤄져 있다면 그 의견에 나도 찬성이야. 그런데…. 다현아. 정력에 좋으면 사 먹을 거야?”
“미쳤어! 내가 그걸 왜 사 먹어!”
다현의 눈빛에서 살기를 느낀 경호가 서둘러 말을 돌렸다.
“그러니까. 자아.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그렇게 마수고기를 유통할 방법에 대해서 한참을 고민하고 있던 때에 주방에서 설거지를 마친 지숙이 나오며 물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는 거야?”
“아. 다른 게 아니라 워울프 부족이 마수고기를 먹을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가지고 신화그룹에서 대량 유통을 하면 어떨까 대화 중이었어. 또 그 마수고기가 몸에도 엄청 좋다고 하네. 그런데 인식이 워낙 안 좋아서 방법을 생각 중이거든.”
그렇게 해서 지숙도 마수고기 유통에 대한 고민을 같이하기 시작했다.
“아들. 이건 어떠니?”
“엄마. 좋은 생각이라도 났어?”
“인식이 바뀌려면 직접 써 보는 수밖에 없거든. 엄마가 어릴 적에도 생수를 사 먹는 건 상상도 못했는데 이제는 안 사 먹으면 이상한 시대가 됐듯이 말이야.”
지숙의 설명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성원만 ‘생수 대신 물 먹으면 되지 않나?’라며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마수고기도 직접 요리해 먹게 유도를 해야지.”
“그러니까 어떻게?”
“요즘 티비 프로 보면 그 누구냐? 왜 그 요리 잘하는 아저씨 나와서 요리 가르쳐 주고 하잖아. 그룹 차원에서 그런 사람 섭외해서 마수고기를 주제로 프로그램 만들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괜찮지 않아?”
덥석!
다짜고짜 성원이 지숙의 손을 꽉 움켜잡고는 초롱초롱한 눈을 하곤 말했다.
“그거 좋은데요! 그거랑 나중에 요리 경연까지 연계하면 되겠어요!”
어차피 행운식당 요리의 대부분은 마수고기로 만든 것들이었다.
성원의 머릿속에서 마수고기를 홍보할 방법들이 마구마구 솟구치기 시작했다.
“오케이! 내일 당장 아버지를 만나야겠어요!”
그렇게 해서 오게 된 자리였다.
“성원아. 그런데 워울프 부족의 비법으로 마수고기를 맛있고 몸에 좋게 만든다 해도 사람들이 사서 먹을까? 인식 자체가 그렇잖아. 거기다 우선 마수 자체가 징그럽고 그러니까. 이건 개고기보다 더 사회적 장벽이 생길 거 같은데.”
성준의 말에 성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도 가장 문제로 생각한 것이 바로 ‘인식’에 대한 해결이었으니까.
“처음에 실제로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게 중요할 거 같아. 생수처럼. 사람들은 편하고 좋으면 쓰게 되어 있잖아.”
“어떻게?”
“티비 프로그램 하나 만들까 해서. 아버지가 힘 좀 써 주세요. 굵직하게 투자해서요.”
“우선 들어나 보자.”
“요즘 유명한 ‘천종원’을 섭외해서 프로그램을 하나 만드는 겁니다. 음. 대충 어려움에 빠진 식당을 돌면서 메뉴를 개발해 주는 거죠. 마수고기를 써서 말이죠.”
“오. 그거 괜찮은 생각이구나.”
성원의 제안에 건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아 보였다.
기획 의도도 좋았고 메뉴를 공개해서 사람들이 따라서 만들 수 있도록 하면 효과가 더 클 것 같았다.
그리고 매회마다 식당을 돌며 메뉴를 개발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전국적으로 마수고기 소비가 늘어날 것이 분명했다.
“거기다 어느 정도 마수고기의 인식이 개선되면 바로 ‘요리 경연’을 여는 겁니다. 마수고기를 활용한 요리를 대상으로 말이죠.”
“좋아. 그럼. 내가 밀어줄 테니 진행해 보아라.”
“아버지. 감사합니다.”
***
‘돈이면 다 된다’라는 말은 우주를 관통하는 진리였다.
신화그룹에서 대놓고 돈을 풀자 길드 하우스 뒤편으로 엄청나게 거대한 건물이 뚝딱 지어졌다.
건설 기술은 마도공학의 발전으로 더 발전해서 정말 돈을 쓸수록 공사 기간 따위는 몇 배로 줄일 수 있었다.
마수고기야 수요가 없어서 그렇지 공급은 차고 넘쳤다.
신화그룹의 유통망을 이용하여 마수고기를 구하니 하루도 지나지 않아 커다란 대형 창고에 마수고기가 그득하게 채워졌다.
거기다 마수고기는 기본적으로 내재된 마기와 독기로 인해 잘 상하지도 않기에 보관도 편했다.
“우와. 정말 빠르구나.”
경호가 마수고기 유통을 위해 새롭게 지어진 건물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말을 꺼낸 지 단지 사흘이 지났을 뿐이었다.
거기다 일꾼으로 쓸 워울프 부족원까지 모두 데리고 온 상태였다.
“과감하게 투자했습니다. 형님. 그러니까 무조건 성공해야 합니다.”
“돈도 돈이지만 ‘헌터 업그레이드 대작전’이 실패하면 인류가 끝장이라고.”
쓸 만한 것들이 더 있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당장은 정령무기와 마수고기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전 준비를 끝냈으니 이제 형님 차례예요.”
마수고기 유통에 대해 이야기하며 경호가 부탁한 것이 워울프 부족원과 마수고기를 작업할 수 있는 장소였다.
사실 워울프가 아니어도 상관은 없었지만 각성자라고 할지라도 하급 각성자는 마수고기에 마기와 독기에 노출되면 위험했다.
그렇다고 고급 인력인 상급 각성자를 고작 마수고기 처리에 쓰는 것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그때 경호의 머릿속에 겉돌고 있는 워울프 부족원들이 떠올랐다.
이계인 보호구역에서 대다수의 드워프들은 장인으로 차출됐지만 워울프는 소수의 전사를 제외하고는 보호구역에 머물고 있었다.
일반 부족원에게 무작정 훈련을 시킨다고 전사가 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기본적으로 강인한 육체를 가졌기에 마기와 독기에 저항력이 강했다.
마수고기의 마기와 독기 제거를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성원 역시 그런 그들이 제대로 사회적인 활동을 못 하는 것에 대해 신경이 쓰이던 상황이라 반색을 하며 반겼다.
경호는 준비가 완료된 워울프 부족원들에게 마수고기 처리 방법을 직접 가르쳐 주었다.
마수고기의 정화에는 세계수의 잎사귀와 운애가 만들어 낸 정화수가 사용되었다.
그렇게 마기와 독기를 제거한 뿔돼지 고기와 삼족우 고기를 얻어온 경호가 행운식당으로 와 시식회를 준비했다.
지숙과 함께 그 마수고기를 사용하여 돈가스와 떡갈비를 만들었다.
공식적으로 마수고기로 만든 첫 요리에 대한 시식이라 건용과 성준까지 자리에 참석했다.
혹여나 맛이 없을 수도 있기에 언론 공개는 하지 않았다.
물론 예전부터 경호의 요리가 모두 마수고기로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다현과 성원 일행은 만들어진 돈가스와 떡갈비를 보며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
“자아! 제가 나눠 드리도록 할 테니 솔직한 평가 부탁드립니다.”
경호가 뿔돼지 돈가스 한 조각과 삼족우 떡갈비 한 조각을 그릇에 담에 모두에게 나눠 주기 시작했다.
킁킁. 킁킁.
건용이 조금은 긴장한 얼굴로 음식에 코를 가져가 냄새를 맡았다.
보기엔 평소에 먹던 돈가스나 떡갈비와 차이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역시 사람이기에 선입견이 있기 마련이었다.
“이게 뿔돼지고, 이게 삼족우라고 했나?”
“아까 만들면서 맛을 봤는데 생각보다 훨씬 맛있었습니다. 안심하고 드셔도 됩니다.”
경호의 말에 건용이 젓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돈가스 조각을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바사삭!
건용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입안이 따끔할 정도로 바삭했다.
게다가 씹히는 순간 바로 터져 나온 육즙에 입안이 가득 찼다.
느끼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고소한 육즙에 놀라 우물거리자 고기가 어느새 입안에서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아!”
건용이 놀란 얼굴로 경호를 바라봤다.
“자, 자네….”
“회장님. 떡갈비도 드셔 보시죠.”
“아, 알았네.”
돈가스 때와 다르게 한껏 기대감에 차 있는 표정이었다.
숯불로 구웠는지 불향이 풍부하게 풍겨 나왔다.
다행히 비린내 같은 역한 냄새는 없었다.
건용이 떡갈비 조각을 한입에 넣어 씹었다.
우물우물.
그리고 끝이었다.
돈가스보다 더 허무했다.
아니 허무함보다는 아쉬웠다.
행복한 맛이었지만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
“자네 요리가 원래 맛있었지만 이건 정말…. 돼지고기나 소고기보다 훨씬 풍부하고 진한 맛이야!”
사실 경호가 평소 만든 요리와 같은 재료와 양념으로 만든 것이라 똑같은 맛이었다.
하지만 맛이 없을 거로 생각하다가 생각 이상의 맛이 느껴지니 그 맛이 훨씬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당장 진행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