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이게 도대체….
마왕 사탄의 3군단장인 오로바스가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바이몬의 모습을 지켜보거나 다시 마계로 불러올 수는 없었지만 그 녀석 몸에 심어 둔 자신의 암흑마기를 살필 수는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사라졌다.
용사를 죽이고 죽었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설마 바이몬, 그 겁쟁이 녀석이 용사를 죽이는 것에 실패했다고?
앞서 멍청한 군단장 녀석들과는 차원이 다른 계획이었고 당연히 완벽했다.
다른 녀석들처럼 멍청한 다크엘프를 쓰지도 않았고, 믿음이 안 가는 인간을 부리지도 않았다.
거기다 오로바스는 애초부터 ‘리나’가 용사를 죽일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용사’를 무대로 끌어올리는 역할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러했기에 바로 바이몬을 섭외했던 것이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자신의 계획은 완벽했다.
리나를 이용해서 용사를 무대 위로 끌어내는 것에 성공했고 그 무대에 바이몬을 풀었다.
그 뒷 상황은 몰라도 된다고 생각했다.
실패할 수 없으니까.
이 모든 과정에서 용사인 다현을 죽이지 못할 이유는 그 어떤 것도 없었다.
이미 앞서 실패한 멍청한 군단장 놈들 덕에 다현의 실력은 충분히 확인했다.
중급 멸망종 마수 수준으로 하급 악마 정도면 충분하게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확실히 처리하기 위해 집행부에 거금을 들여 상급 악마인 바이몬을 빼낸 것이었다.
지구의 마기 농도가 낮다고는 하나 바이몬은 양패구상을 할 정도로 약한 악마는 결코 아니었다.
-뭐야! 도대체 뭐냐고!
경호의 존재를 몰랐기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아무리 고민한다 해도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악마계약자 따위로 용사를 죽일 순 없다. 더 성장하기 전에 악마군단을 이끌고 내려 가야한다!
상급 악마도 실패한 이상 용사를 죽이기 위해 악마계약자를 쓰는 것은 낭비에 불과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을 서둘러야 해!
오로바스는 서둘러 귀족회의 소집령을 요청했다.
***
“형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다현의 공격에 죽을 뻔했던 경호에게 성원에 질문을 던졌다.
아니 성원이 질문을 했지만 모두가 궁금해하는 부분이었다.
무지갯빛 검기와 악마의 반응, 이해 안 가는 대화까지.
경호는 간단하게 ‘미친 용기사’의 업적을 간략하게 소개했다.
“정말요? 아까 그 무지갯빛 검기에 산이 부서지고 막 호수가 증발했다고요?”
상상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상식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경호의 말은 그 상식의 수준을 넘어서는 이야기였다.
“야! 너 진짜 무슨 낚시꾼도 아니고. 마왕이 강한 줄은 알겠는데 그건 좀 많이 간 거 같은데. 뻥 치지 마.”
다현이 경호의 옆구리를 툭치며 피식 웃었다.
“뻥은 무슨.”
“아까 그 악마랑 싸우는 거 보니 아무리 그래도 산을 무너뜨리고 호수가 증발하고 하는 건 진짜 좀….”
“아까 그 악마 어땠어? 다현, 니가 느끼기에는?”
경호가 다현을 집어 물었지만 다들 바이몬이 뿜어내던 마기는 떠올리고는 절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확실히 마수와는 다른 느낌이긴 하더라…. 그러니까 3페이즈가 되면 저런 놈이 넘어온다는 거지?”
“아까 그 녀석 상급 악마니까 꽤 강한 편이긴 하지.”
그렇게 이야기해 봤자 쉽게 감이 오진 않았다.
그런 분위기를 읽은 경호가 가볍게 보충 설명을 했다.
“악마군단이 넘어오면 아까 같은 녀석들이 대대장쯤 되는 거지.”
대대장이라고 하자 다현을 제외한 모든 이들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성원을 비롯한 정수와 호돈 역시 군필자였기에 대대장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대대장이면 대장보다 높은 거 아니야? 사령관 같은 건가?”
다현의 머릿속에선 대대장(大隊長) 직책이 아닌 대장(大將) 계급보다 높은 대대장(大大將)으로 해석되고 있었다.
“누님. 대장보다 높은 게 아니라 한참 낮아요. 중령 아시죠?”
성원의 말에 다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인보우 식스로 활동하기에 군 관계자도 만날 경우가 제법 있었다.
그때 주로 만나는 참모들이 중령 계급이었다.
40대 초중반의 아저씨들이 대부분이 중령들이었다.
“어? 그 중령이 대대장이야?”
다현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까 그 녀석이 고작 그 아저씨들 수준이라고?”
“애초에 마수와 악마는 비교가 불가한 족속이야. 짐승과 각성자와 비교하는 것과 같아. 간혹 신수 같은 짐승이 있을 수 있지만 각성자가 짐승에게 밀리진 않잖아.”
경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중하로 나뉜 악마는 사실 평민이야. 상급 악마가 되어야 출세할 기회라도 얻을 수 있지.”
정령계에서 미르와 10년을 부대끼며 살았기에 마계에 대한 정보는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그 위로 마왕이 있는 건가?”
다현의 말에 경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중령 다음에 바로 육군참모총장으로 가는 수준인데.”
“그럼? 뭐가 있는데?”
“악마 귀족들이 있어. 공작, 후작, 백작 이런 식으로 말이지. 당연히 위로 갈수록 인원은 적은 대신 그 힘은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지지. 그리고 그 정점인 마왕은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산도 갈라 버린다고 한 거야.”
“그거 정말이냐? 그런 괴물을 니가 죽였다고?”
산을 때려 평원을 만드는 것은 거의 전략무기급 위력이었다.
그런 위력으로 서로 공방을 펼쳤다니….
“이제 저쪽에서도 침략 속도를 더 내려고 할 거야. 다현, 니가 상급 악마를 때려잡았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러니 우리도 각성자의 발전 속도를 더 끌어올려야지.”
“형님. 정령 무기 말고 또 방법이 있습니까?”
“음. 우선 떠오르는 게 있어. 우선 집에 가서 밥 좀 먹자. 배고프다.”
엄마가 걱정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지친 몸을 이끌고 행운식당을 향했다.
식당에 거의 도착할 때쯤 성원이 배를 슥슥 문지르며 말했다.
“형님. 그런데 오늘 메뉴는 뭡니까?”
경호가 대답하기 전에 다현이 말을 이었다.
“난 떡볶이! 삶은 계란이랑 우동 사리 넣어서!”
“뭐. 맡겨 놨냐?”
“돈 내면 되잖아! 치사하게 떡볶이 그거 얼마 한다고!”
“쳇!”
“형님. 전 랩터 고기를 먹은 다음부터는 치맥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네요.”
“알았다. 치맥도 해 줄게.”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지숙이 초조해 보이는 얼굴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다현과 성원, 정수, 그리고 호돈의 얼굴을 보자 그제야 지숙의 얼굴이 펴졌다.
“다들 괜찮니? 소식 듣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경호. 너는 지금 같이 어수선할 때 어딜 쏘다니고 그래?”
“아. 흰둥이랑 울피랑 해서 산책하고 왔지.”
억울하고 섭섭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서지숙 여사님. 아들이 오늘 정말 큰일 날 뻔했다고요!’
뭐. 어쨌든 정말 큰일 날 뻔한 상황이었지만 잘 넘길 수 있었다.
만약에 자신이 정체를 밝히지 않고 뒤를 쫓으면서 도움을 주려 했다면 오늘 다현은 정말 죽었을 수도 있었다.
상급 악마는 뒤를 쫓으며 도움을 주는 정도로 해결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었으니까.
“엄마도 앉으세요. 그럼. 조금만 기다려. 내가 금방 매콤달콤한 우동볶이에 둘이 먹다 셋이 죽어도 모를 치킨, 시원한 맥주 내올 테니까!”
경호가 지숙을 억지로 끌어 의자에 앉히며 말하자 다현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오! 웬일? 경호 사장님이 쏘는 겁니까?”
다현의 말에 경호가 엄근진한 표정으로 말했다.
“손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식당에서 사장이 쏘는 그런 해괴한 경우가 어디에 있습니까?”
“쳇! 알았어. 계산할게.”
그러자 경호가 환하게 웃으며 다현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금세 우동볶이와 치맥 대령하겠습니다.”
치맥?
갑자기 치맥을 떠올리던 경호가 뭔가 찜찜하면서도 싸한 기분이 들었다.
‘아. 뭐지? 분명 치맥이랑 관계있는 거 같은데.’
그때 갑자기 머릿속에서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비스트가 자신을 보며 분명 이렇게 말했었다.
‘그럼. 오늘 일 마무리하고 식당에서 같이 치맥이나 하시죠.’
경호가 갑자기 우뚝 서며 소리쳤다.
“맞다! 맞아!”
“뭐가 맞아요? 형님.”
경호가 성원에게 전음을 날렸다.
-저기 산에 비스트를 두고 왔어!
“네엡?!”
성원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
비스트는 풀이 무성한 차가운 바닥에 여전히 쓰러져 있었다.
엉망이 된 마나코어도 회복되고 외상도 거의 회복이 끝났지만 아직 움직일 수 있을 만큼 몸에 힘이 들어가진 않았다.
저 멀리서 마치 불벼락이라도 내리는 것처럼 쾅쾅쾅거리는 소리와 번쩍이는 불빛이 보이더니 그 후 한참 동안 조용했다.
“에이. 설마. 날 까먹은 건 아니겠지? 에이. 아니겠지. 아닐 거야. 경호. 그 사람이 그럴 사람이 아니지. 으으으.”
몸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가 유난히도 차갑게 느껴지는 비스트였다.
***
“아버지. 형. 이번 일 겪어 보니 아시겠죠?”
서초동에 있는 신화그룹 사옥 회장실에서 성원이 건용과 성준을 보며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어 가고 있었다.
성원의 물에 건용과 성준도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외부에는 빌런 조직이 가디언의 핵심 장치를 해킹한 것으로 발표되었다.
그와 더불어 검찰과 경찰에서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악마계약자와 악마에 대한 부분은 당연히 묻힌 상태였다.
“악마계약자가 얼마나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번엔 다현 누님이 막았지만 상급 악마의 힘은 정말 무시무시했습니다. 다현 누님을 도와 모두가 힘을 모았지만 정말 쉽지 않았으니까요.”
경호의 활약이 그대로 다현에게로 넘어갔다.
“알아낸 정보로는 3페이즈가 되면 그런 악마가 군단을 이뤄서 지구를 침략한답니다. 거기다 이번에 온 악마는 중간 간부에 불과하다고 하더라고요.”
직접 확인한 일이기에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성원의 말처럼 침략 단계가 높아져 그런 악마가 넘어오기 시작하면 사업보다 생존이 중요했다.
그러한 혼란 속에서는 돈과 권력이 중요하지 않았다.
바로 ‘힘’.
지구와 인류를 지킬 힘이 있느냐가 가장 중요했다.
애물단지 같던 녀석이 어느새 새로운 세상에서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찾아 전진하고 있었다.
“그래. 드워프의 무기를 풀고 하는 것도 다 그런 상황에서 지구를 지키려는 방안 아니냐?”
“네. 역시 ‘템빨’이라고. 다행히 예상보다 더 빠르게 헌터들의 기량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건용은 누구보다 뛰어난 사업가였다.
그렇기에 헌터 사업을 깊이 있게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성원이 벌이는 사업이 얼마나 큰 돈이 되고 큰 권력이 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좋은 무기 하나에 목숨을 거는 헌터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들리는 이야기로 지금 성원이 드워프를 동원해서 생산하고 있는 무기들이 정말 그 가격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물건이라는 것은 들어 알고 있었다.
이사진이 나서서 무기의 가격을 높이고 판매 수량을 조절해야 한다고 건의를 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건용은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천명했다.
‘성원이 전적으로 맡아 하는 사업이니 그 어떤 간섭도 용납하지 않겠다!’
건용은 그런 성원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럼. 또 다른 대책이 있는 거냐?”
성원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수고기를 식재료로 유통하고자 합니다.”
“에엥?”
“어엉?”
성원의 말에 건용과 성준이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