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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용사의 골목식당-152화 (152/335)

#152화

‘어쩌려고 저러는 거지?’

다현은 경호와 악마를 힐끗거리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저 뱀 같은 얼굴의 악마가 뿜어내는 기세는 정말 무시무시했다.

‘여기 있는 모두가 덤벼도 이길 수 없어!’

자신이 느끼는 것을 경호가 모를 리 없었다.

도대체 뭐 하는 거야!

다현은 경호에게 당장이라도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당장 저기 널브러져 있는 가디언부터 일으켜 세우고, 모두가 힘을 모아 공격해도 모자란 상황에서 이상한 대화로 시간을 끌고 있었다.

다현은 경호와 이야기를 제법 나눴기에 그의 수준과 ‘악마’라는 존재에 대해 꽤나 자세히 알고 있었다.

-내가 사실 마왕도 잡았다고 하지만 그것은 ‘미르’라는 수호신과 수많은 정령과 신수의 도움 덕분이지. 지금의 내 수준으로는 상급 악마도 간당간당해. 아니 무차별적으로 광범위하게 공격할 악마와 주변을 보호하며 싸워야 하는 내가 붙으면 오히려 질 가능성이 높아.

경호는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그리고 다현은 확신했다.

멸망급 마수를 압도하는, 숨 막힐듯한 강렬한 마기를 뿜어내는 악마는 상급악마인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미친놈이 왜! 자꾸 헛소리나 하면서 시간을 끄는 건데!

그때 경호의 검에서 무지갯빛 검기가 뿜어져 나왔다.

처음 느껴보는 엄청난 기운이었다.

저런 힘을 숨기고 있었다고?

악마가 괴성을 지를 때 쏟아져 나온 마기가 숨 막힐 듯 강렬했다면, 지금 경호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지갯빛 검기는 모든 것을 짓누르는 압도적인 기운이었다.

검기의 모습은 눈부시게 아름다워 보였지만, 그 속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기운들은 하나하나가 날카롭고 단단했으며 사나웠다.

그 기운들이 집약되어 악마를 향해 집중되고 있었다.

눈에 띄게 악마가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억지로 통제하는 것이 다현의 눈으로도 확연히 보였다.

‘아니 왜?’

경호의 검에서 뿜어내는 무지갯빛 기운이 위력적이긴 했지만 악마가 뿜어내는 마기 역시 만만치 않았다.

아니, 사실 경호의 기운은 불안해 보였다.

악마의 마기가 자연스러운 힘의 흐름이라면 경호는 억지로 쥐어짠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진짜 쥐어짠 거냐?’

다현이 슬쩍 경호의 얼굴을 보니 눈빛이 살짝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다현은 경호를 10년 넘게 지켜보았기에 누구보다 잘 알았다.

‘동네 양아치 싸움도 아니고 왜 허세를 부리는 거야! 저거 지금 힘들어 뒤질 듯한 표정이잖아?!’

동네 양아치들이야 겁만 줘도 도망치기 바쁜 놈들이니, 없는 용기를 쥐어짜 허세를 부릴 법도 했다.

하지만 차원을 넘어온 악마에게 허세라니! 미친 거 아니냐고!?

***

경호는 당연히 미친 게 아니었다.

“그래? 그 약속, 무슨 내용으로 할 건데? 나도 헌터들이 충분히 강해지기 전에 악마 놈들이 마구잡이로 넘어오는 것은 반대거든.”

경호의 물음에 바이몬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마계로 가면 너에 관해서는 절대 말하지 않겠다. 그리고 최대한 침략을 늦출 수 있도록 노력하지.

“그게 정말인가?”

-마신의 맹약이다. 죽음을 선택할 생각이었으면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지.

‘마신의 맹약’이었기에 바이몬은 약속을 제대로 지킬 생각이었다.

경호에 관한 이야기를 말로 전하지 않고 보고서로 작성해 올릴 생각이었다. 또한, 침략을 늦출 수 있게 노력도 할 것이었다. 아주 소극적으로.

어쨌든 계약엔 문제가 없었다.

“흐음.”

경호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이몬을 노려봤다.

“마왕과 싸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런 악마 놈의 말장난에 고민이나 하다니…. 참나, 꼴이 우습군.”

-인간의 말로 하자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한 일이지. 나는 마계의 경쟁자들을 줄여서 좋고 너는 시간을 벌고 말이야. 진심으로 지구가 마계의 침략을 막아 내길 바라지.

“좋아. 정령계와 다르게 각성자들에게 시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니까. 받아들이기로 하지.”

경호는 경호대로, 바이몬은 바이몬대로 속으로 ‘만세’를 외쳤다.

경호는 바이몬이 ‘마신의 맹약’을 하면 방심하기를, 바이몬은 마계에서 다시 차원의 문이 열릴 때까지 시간을 벌길 바랐다.

바이몬이 마기를 천천히 끌어 올려 검은 연기처럼 피워올렸다.

그렇게 연기처럼 퍼지던 마기가 서로 엉겨 붙어 실타래처럼 길게 이어지더니 이리저리 문양을 만들기 시작했다.

바로 ‘마신의 맹약’을 위한 마법진이었다.

잠시 후, 바이몬은 손 앞에 제법 커다란 마법진이 떠올랐다.

암흑마기를 뽑아내 만드는 것이기에 바이몬은 조금 지친 기색을 보였다.

“듣기는 했지만 나도 보는 것은 처음이네. 뭐, 악마 놈들이라 약속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 없으니까.”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

마계로 복귀해 ‘미친 용기사’의 존재를 알리고 서둘러 악마군단을 이끌고 올 생각에 바이몬은 터져 나올 것 같은 웃음을 참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여기 중앙에 마력을 불어넣으면 되는 건가?”

가까이 다가간 경호가 마법진 중앙에 왼쪽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널 공격하면 어쩌려는 생각이지? 날 너무 믿는 거 아닌가?”

-인간은 이익을 좇는 족속이라 들었다. 그런데 나를 공격한다고? 내가 도망치거나, 아니 설사 죽더라도 결국 지구에 대한 침략 속도만 가속될 텐데? 이익이 하나도 없는 그런 멍청한 짓을 한다고?

바이몬의 말에 경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인간은 이익을 좇는 족속이지. 그래도 말이야. 내가 널 공격한다면 어쩔 거지?”

-그게 왜 궁금한지 모르겠다만, 너를 피해 도망쳐 인간 세상을 최대한 파괴하면서 시간을 끌다 마계로 통하는 차원문을 찾아 넘어가야겠지. 도망치는 것은 내 특기거든.

“그래?”

경호가 폭발적으로 마력을 끌어올리며 오른손에 쥐고 있던 용아검을 바이몬을 향해 휘둘렀다.

“그럼. 도망쳐봐!”

-이런 미친!

바이몬은 즉시 몸을 뒤로 날리…. 아니, 날리려고 했다.

하지만 어느새 발목까지 두툼한 흙이 감싸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단순한 흙이 아닌 땅개가 혼신의 힘을 담아 단단하게 만든 흙이었다.

찔러 들어오는 용아검에 마력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피하기엔 이미 늦었다는 것을 느낀 바이몬이 반격을 위해 마기를 끌어 올렸다.

아니, 끌어올리려 했다.

파지지지지직!

-끄아아아아악!

순간, 바이몬의 전신을 강타하는 강력한 기운.

바로 흰둥이가 쥐어 짜낸 전격의 힘이었다.

마기를 끌어 올리려던 순간, 몸이 굳어지며 호흡이 흐트러졌다.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울피가 여우구슬을 치켜들자 하늘에서 불비가 쏟아졌다.

불덩이 하나하나가 다현의 백염에 맞먹는 위력을 품고 있었다.

운애 역시 정령력을 끌어올려 경호에게 물의 기운을 씌웠다.

콰앙! 쾅! 쾅! 쾅! 콰앙! 쾅!

바이몬에게로 쏟아진 불비가 엄청난 굉음과 열기를 뿜어내며 폭발했다.

푸우욱!

마지막으로 무지갯빛을 머금은 경호의 검이 불비를 맞고 있는 바이몬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

-커어억!

바이몬은 쏟아지는 불비에 타오르는 와중에도 고개를 들어 경호를 노려봤다.

-이런 빌어먹을….

검에 찔리는 순간, 바이몬은 경호의 수준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제대로 싸웠으면 널 죽일 수도 있었겠군.

“그래. 제대로 싸웠다면 말이지.”

하지만 바이몬은 발이 묶이고 몸이 굳고 불길에 휩싸인 채 경호의 검기에 암흑마기를 담고 있는 심장을 찔렸다.

-처음부터 속인 건가?

“피차 마찬가지잖아.”

바이몬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은 저 미친 용기사에게 진 것이 아니었다.

그에 대한 두려움에 스스로 지고 만 것이었다.

-너를 죽이고 상급 악마를 넘어 귀족이 될 수도 있었는데….

무지갯빛 검기가 아주 조금씩 심장을 찢어내며 더욱 깊숙이 찔러 들어가고 있었다.

‘이거 울피의 공격이 아니었다면 내가 죽었겠네.’

온 힘을 다하고 있음에도 아직 바이몬의 심장 속에 들끓고 있는 암흑마기를 없애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될 거였나.

어릴 적부터 가문의 부흥을 위해 이를 악물고 수련에 애쓰던 어린 시절과 정령계에 투입되어 저 미친 용기사 놈을 보고 두려움에 자해까지 하며 도망쳤던 일. 그 일로 광산에서 노역하며 기회를 얻기 위해 노력하던 기억까지.

모든 것이 주마등처럼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더는 도망갈 곳도 없었고 애쓸 필요도 없었다.

-죽음이 이렇게 별거 아닌 줄 몰랐네.

크하하하하하하하핫!

그렇게 중얼거린 바이몬이 갑자기 광소를 터뜨렸다.

경호는 광소에 섞인 진득한 마기에 미간을 찌푸리며 마력을 더욱 용아검에 불어넣었다.

‘엇!’

검신을 타고 넘어오는 칠흑 같은 기운, 바로 암흑마기가 용아검을 타고 넘어오고 있었다.

경호는 그것을 뻔히 보고 있었지만 검을 회수할 수가 없었다.

‘이런!’

검을 회수했다가는 잘못하면 바이몬이 도망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도 위험했다.

검을 회수하거나 찌르거나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지만 고를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뿐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

경호는 암흑마기가 용아검을 타고 넘어와 몸속을 침투하는 와중에도 기합을 내지르며 검을 잡은 손에 더 힘을 주었다.

푸우욱!

심장을 완전히 관통한 용아검이 바이몬의 몸을 뚫고 삐죽 튀어나왔다.

경호가 용아검의 손잡이를 놓자 바이몬이 바닥에 그대로 꼬꾸라졌다.

잠시 후, 바이몬의 몸에서 검은 불길이 일더니 잿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커억! 컥!”

그 모습을 지켜보던 경호 역시 심장을 움켜쥐며 바닥에 그대로 꼬꾸라졌다.

“경호야!”

“형님!”

“경호!”

-경호 님!

그런 경호의 모습에 사방에서 모두가 소리치며 달려왔다.

***

암흑마기.

악마가 가진 생명의 진원이자 살아있는 독립된 생명체 같은 기운.

상급 악마인 바이몬의 암흑마기는 강했다.

사탄의 3군단장인 오로바스의 암흑마기도 섞여 있던 터라 더욱 그랬다.

그 암흑마기가 경호의 몸을 차지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경호의 심장 역시 필사적이었다.

피를 순환시키는 단순한 역할이 아닌, 기운을 흡수하여 경호가 쓸 힘으로 변환시켜주는 공생 관계인 새로운 기관이었다.

그런 심장이 경호의 몸을 차지하기 위해 덤벼드는 암흑마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암흑마기가 그 끝을 뾰족하게 만들어 심장을 찔러 들어가면 심장은 그것을 어떻게든 끊어내어 흡수했다.

경호의 심장은 마력뿐 아니라 신력과 정령력이 점차 강해지면서 더욱 그 능력이 강해져 있었다.

문제는 상대인 암흑마기 역시 지금까지 흡수했던 기운과 차원이 다른 강한 녀석이라는 점이었다.

심장도 암흑마기의 공격에 점점 상처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암흑마기 역시 심장에 흡수당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처와 흡수되는 수준이 거의 비슷했다.

위기를 느낀 서로가 공세의 강도를 점점 줄여갔다.

그때였다.

경호의 몸속으로, 정확히는 심장으로 신력과 정령력, 마력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각각 성질이 다른 기운이었지만 암흑마기처럼 공격적이지 않은 기운이었기에 심장은 즉시 그 기운들을 흡수하여 상처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대로 흡수될 위기에 빠진 암흑마기는 그대로 응축되더니 마석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했다.

강제로 흡수하기 위해 마석처럼 단단하게 굳은 기운을 깨부순다면 그 폭발력에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심장도 그것을 느끼고는 기운을 뻗어 마석처럼 굳은 암흑마기를 심장에 붙여두었다.

위험인자를 가까이 두고 관리하겠다는 본능적인 행동이었지만, 그것은 가장 옳은 판단이기도 했다.

“으으으으윽.”

그렇게 내부에서 전쟁을 치른 경호가 힘겹게 눈을 떴다.

그런 경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다현의 얼굴이 들어왔다.

“어엇. 다현아. 너 설마 울었….”

퍼억!

다현의 주먹이 경호의 복부에 박혀들었다.

“커억! 나 죽다 살아난 환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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