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바이몬 엘 마이바르.
이제 갓 성년이 된 바이몬은 정령계를 침략하는 전쟁에 병사로 참여하게 됐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난 할 수 있어!’
상급 악마를 배출하던 명문가, 마이바르 가문을 다시금 일으키기 위해 지금까지 이를 악물고 수련을 거듭한 바이몬은 속으로 다짐하며 차원 전쟁의 병사로 지원했다.
‘기필코 성공하고 오겠다!’
실력과 재능을 모두 갖춘 바이몬은 상급 정령과 붙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물론 최근 들어 악마군단이 밀린다는 소문은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령 놈들은 상급 정령을 몇몇을 제외하고는 강한 놈들이 없었고 거기다 마기 농도가 높아지면 제대로 힘을 못 쓰는 녀석들이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차원의 문을 통과하기 전까지는….
-저! 저! 미친놈은 뭐야! 저게 정말 인간이라고?
아니 신수와 정령이 사는 정령계에 인간이 있는 자체가 ‘에러’였다.
일명 ‘미친 용기사.’
미친 듯이 강해서 ‘미친 용기사’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일검에 악마의 목이 뎅겅뎅겅 날리면서 환하게 웃고 있는 인간의 눈빛을 보면 그냥 미친 것 같았다.
거기다 수호신으로 보이는 용도 정상은 아니었다.
용도 미쳐 있었고 그 용 머리 위에 타고 있는 기사는 더 미쳐 있었다.
‘미친용’ 기사, 미친 ‘용기사’.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실 당시 경호와 미르는 침략이 3페이즈에 돌입하며 매일 같이 쏟아지는 악마군단에 진짜 반쯤 미쳐 있는 상태였다.
-소문이 사실이었어….
지옥의 대군주, 마왕 바알의 제3군단 소속 병졸인 ‘바이몬’은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소문이 잘못되었다.
조금 밀리는 수준이 아니었다.
저 ‘미친 용기사’는 전설에 나오는 용을 타고 마왕과 싸우는 용사보다 더 강해 보였다.
‘거기다 정령까지 이용하면서 싸운다고? 그거 반칙 아니냐!’
저 미친 인간은 주변에 정령을 몰고 다니며 적재적소에 그 힘을 이용하고 있었다.
정말 처음 자신에게 소문을 전한 친구 놈을 두들겨 패주고 싶을 정도로 강했다.
‘저 정도였으면 가문의 부흥이고 나발이고 다리를 분질러서라도 안 왔다고!’
태생적으로 마족은 싸움을 즐기는 편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바보는 아니었다.
‘이런 미친! 이건! 마왕님이 오셔야 해! 고작 악마 군단을 동원해서 될 수준이 아니라고!’
왜 저 미친 용기사의 소문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은지 모르겠지만 저건 재앙이었다.
싸울 상대가 아닌 어떻게든 피할 대상이었다.
그때부터 바이몬은 저 미친 용기사가 나타난 곳은 어떻게든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정말 다행인 것은 자신이 소속된 부대 특성상 저 미친 용기사를 마주칠 확률이 적다는 점이었다.
바이몬은 미친 용기사의 존재를 확인하고 스스로 나서 별동대를 자처했다.
-저를 써 주십시오! 가장 앞서 저 날벌레 같은 정령 놈들을 쓸어버리겠습니다.
지휘관에게 간절하게 말했지만 진심은 이랬다.
‘미친 용기사가 오기 전에 치고 빠지겠습니다!’
-그렇게 전공을 세우고 싶은 건가? 마이바르 가문의 부흥을 위하는 것도 좋지만 목숨을 가볍게 여기진 말게!
지휘관의 말에 바이몬은 속으로 그런 그를 비웃었다.
‘전장에서 그 미친 용기사를 본 적 없으니 그런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지.’
지휘관은 바이몬의 행동을 칭찬하며 별동대로 전향시켜 주었다.
‘그래! 이제 그 무시무시한 미친놈을 안 볼 수 있다!’
그 미친 인간은 전장이 위급한 곳만 찾아다니며 악마 머리를 추수하는 놈이었다.
자신이 지원한 별동대는 전장보다는 외곽을 돌며 정령을 치는 부대였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그 인간만은 절대로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바이몬은 열심히 정령계를 뛰어다녔다.
아니 정확히는 경호를 피해 다녔다.
그렇게 1년이 더 지났다.
정령계가 작은 곳은 아니었기에 계속 외곽으로 돌던 바이몬은 그 미친 용기사를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 미친놈을 보고 한동안 심장이 떨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던 바이몬은 이제 악몽을 떨쳐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 싸움을 피해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3페이즈 막바지에 투입되어 1년이 흘러 마계 침략이 4페이즈로 넘어가며 마왕 중 가장 약한 세력을 가진 ‘벨페고르’가 가장 먼저 정령계에 발을 디뎠다.
마왕이 넘어오자 별동대와 돌격대 같은 조직도 모두 한곳에 모여야 했다.
이제 그 미친 용기사를 피할 수 없었다.
‘싫어! 싫다고!’
바이몬은 마왕인 ‘벨페고르’가 넘어왔지만,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미친 용을 타고 미친 듯 악마들의 목을 잘라 내는 미친놈이 마왕 ‘벨페고르’와 격돌했다.
‘하늘정원’이라고 불리는 평원 전체가 마족의 피로 검붉게 물들 정도의 거대한 전투가 벌어졌다.
태만의 죄악을 관장하는 대마왕, ‘벨페고르’는 정말 엄청나게 강했다.
바이몬은 어쩌면 꿈에서도 나와 잠을 설치게 했던 그 무시무시하던 저 ‘미친용기사’가 드디어 끝장나리라고 생각했다.
벨페고르의 손엔 불타오르는 뱀이 쥐어져 있었는데 그의 손짓 한 번에 강물이 마르고 산이 불타올랐다.
수많은 정령들이 지워지듯 사라졌고 신수들이 터져 나갔다.
말 그대로 재앙이었다.
하지만 그 엄청난 위력에도 미친 용기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검에는 무지개 빛 기운이 서려 있었고 그 기운은 불타오르는 뱀도 잘라 버렸다.
미친 용기사 역시 재앙이었다.
재앙과 재앙이 맞붙었다.
차원계에 악명이 자자한 악마 군단도 그들의 싸움에 이리저리 휘둘리기만 할 뿐이었다.
둘의 격돌에 땅이 갈라지고 산이 무너지며 호수가 말랐다.
무시무시한 싸움이 사흘간 지속됐다.
그리고 결국 미친 용기사는 벨페고르의 목을 잘라 냈다.
마왕.
가장 약한 세력을 가진 이라고 했지만, 벨페고르는 수천 년간 마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던 7대 마왕 중 한 명이었다.
그런 마왕이 고작 인간의 손에 목이 달아났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사고의 영역을 벗어난 상황에 바이몬은 그저 공포에 빠졌다.
생명을 가진 존재에게 공포를 심어줘야 할 존재가 오히려 두려움에 빠져 거의 정신이 나가고 말았다.
그런 그의 머릿속엔 ‘복수’, ‘분노’ 따위의 고상한 단어 따위는 지워지고 없었다.
-이런 미친 새끼! 아니 인간 따위가 마왕을 이긴다고! 씨팔! 가문의 부흥은 무슨 개뿔!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단 하나의 단어는 바로 ‘생존’이었다.
‘도망쳐야 해! 내가 살고 가문이 살아야지! 죽으면 다 필요 없다고!’
바이몬은 아주 현실적인 악마였다.
죽음을 앞두고도 웃으며 싸울 수 있는 그런 독종이 아니었다.
그렇게 바이몬은 고래고래 ‘도망쳐!’를 외치며 달리고 달려 가까스로 마계로 다시 넘어올 수 있었다.
그것도 자해해 부상병 행세를 해서 넘어온 것이었다.
그 뒤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동화 같은 이야기가 펼쳐졌으면 참 좋았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마왕 ‘벨페고르’가 죽고 이어 마왕 ‘바알’까지 죽어 나가자 결국 마계가 정령계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마계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차원 침략에 실패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절대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마왕의 죽음.
수천 년을 이어온 7대 마왕 중 2명이 죽은 것이었다.
그 중 ‘바알’은 마계의 동쪽을 지배하는 ‘대군주’라고 불리는 강력한 마왕이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바이몬의 행실이 밝혀졌다.
차원 침략에서 전투 중 도망치는 것만으로도 ‘즉참’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중죄였다.
거기다 자해를 해서 마계로 복귀하기까지.
그는 666년 노역형을 선고받고 지옥불광산에 갇혔다.
거기다 그는 물론이고 마이바르 가문까지 마족들의 손가락질을 한 몸에 받아야 했다.
-마왕이 죽자마자 도망쳤다며! 목숨 바쳐 복수는 못 할망정!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도망이라니?
-가문을 부흥시키려고 간 거 아니었나? 그런데 도망쳤다고?
-마족의 수치! 더러운 배신자!
바이몬은 지옥불광산에서 징역을 살면서도 다른 죄수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았다.
‘빌어먹을!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고!’
바이몬은 징역 생활을 하면서도 수련을 계속했다.
이 빌어먹을 상황을 벗어날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차원 침략은 다시 생긴다. 아니 정령계 침략의 실패로 더욱 빨리 전쟁이 벌어질 거다. 그러니 준비해야 한다!’
어차피 666년 징역을 마치고 나가도 자신과 가문의 명예를 회복시키지 못한다면 죽은 목숨이었다.
마이바르 가문의 가주는 그러고도 남을 악마였다.
바이몬은 살기 위해 죽을 각오로 힘을 길렀다.
그리고 강해질수록 그 ‘미친 용기사’에 대한 악몽이 서서히 사라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상급 악마 수준으로 강해진 바이몬에게 기회가 왔다.
예전부터 눈독을 들이던 ‘지구’ 침략의 단계가 2페이즈로 넘어간 것이었다.
‘그래! 기회다! 이제 몇 년 안에 3페이즈가 올 거다. 그러면 어떻게든 전쟁에 참여해야 해!’
운 좋게도 마왕 ‘사탄’의 군단장 중 하나인 오로바스의 눈에 띄어 그 기회를 빠르게 얻을 수 있었다.
-…러니까 네가 가서 ‘용사’라 불리는 인간을 처리하면 된다. 붉은 머리를 가진 하급 악마 수준의 암컷 인간이다. 할 수 있겠지?
오로바스의 말처럼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마기가 부족한 2페이즈 단계였지만 오로바스의 생명력인 ‘암흑마기’의 결정으로 소환되는 거라 힘의 소실도 거의 없었기에 하급 악마 수준의 인간 따위는 가볍게 죽일 수 있었다.
-오로바스 님. 그러면 그 ‘용사’를 처리하고 나면 어떻게 합니까?
-잠시 기다리면 내가 지켜보다 다시 문을 열어 주겠다.
물론 거짓이었다.
상급 차원인 마계에서 하급 차원인 중간계, 지구로 가는 것도 대악마인 오로바스의 암흑마기 일부가 쓰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지켜볼 수도 없었고 다시 차원문을 열 수는 더더욱 불가능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바이몬은 가벼운 마음으로 지구에 넘어왔다.
인간들이 보였다.
우선 기선 제압이 필요했다.
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크게 소리를 지르자 다들 귀를 막고 괴로워했다.
‘어디 보자. 저기 있다! 빨간 머리!’
바이몬은 처치해야 할 용사를 확인했다.
붉은 머리를 가진 여자.
귀를 막고 괴로워하고 있는 그 여자에게 다가가 죽여 버리면 끝이었다.
‘어? 뭐야?’
바이몬의 눈동자가 옆으로 돌아갔다.
다들 귀를 막고 괴로워하며 있었다. 한 녀석만 제외하고….
-넌 뭐야? 어떻게 ‘용사’보다 더 강한 거지?
바이몬이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날카로운 기감’ 덕분이었다.
분명 여기 있는 인간 중 가장 강했다.
바이몬은 그런 경호를 보고는 분명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마치 정령계에서 처음 그 ‘미친 용기사’를 봤을 때의 바로 그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