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마수킬러 프로젝트’ 쇼케이스 행사는 신화그룹의 역량이 총동원된 프로젝트를 전 세계를 상대로 소개하는 자리였다.
그런 행사가 로봇의 폭주로 엉망이 되고 말았다.
신화 길드의 적절한 조치로 다행히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이미 최악의 사태임은 변함이 없었다.
거기다 신재용 박사의 죽음까지.
“당장 회의실 문 닫아!”
건용이 소리치자 성원이 서둘러 회의실 문을 닫아걸었다.
현재 회의실에 있는 인원은 경호와 운애. 건용 삼부자. 다현과 정수, 호돈. 그리고 김현태 연구원과 김세연 의료팀장.
이렇게 열 명의 인원이 전부였다.
운애가 손을 뻗어 정령력을 일으키자 투명한 물방울이 쓰러져 있는 신재용 박사를 감싸고는 검붉은 피로 얼룩진 것들을 깨끗하게 씻어 냈다.
“고맙네.”
그런 운애의 행동에 건용이 감사를 표하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모두 지금 상황이 이해 안 되는 건 아니겠지?”
정수는 살짝 이해를 못 하는 것 같기는 했지만 모두가 건용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의 의견을 묻고 싶네.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건용의 질문에 모두가 머뭇거릴 때 성준이 그에 대한 대답을 했다.
“아버지. 우선 헌터 본부와 의견을 나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단순하게 기계적 오류가 아닌 마계의 존재를 통한 테러니까요.”
성준이 고민하다 대답을 했다.
성원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다.
“저도 적당히 내용을 공유해서 정부와 함….”
그때.
-안 돼!
경호가 성원에게 전음을 날렸다.
‘분명 용사인 다현을 죽이면 다 끝난다는 말을 했어.’
경호는 악마들이 ‘용사’를 죽이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는 사실을 파루스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물론 그 ‘용사’는 바로 자신이었다.
어쨌든 그렇다는 것은 ‘리나’라는 엘프 역시 악마계약자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었다. 아니 100% 확실했다.
그렇다면 헌터 본부도 믿을 수 없었다.
파루스가 그 어떤 곳도 안전하지 않다고 분명히 말했었다.
마계의 손이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사실이었기에….
“께에에….”
성원이 갑자기 말을 멈추고 이상한 소리를 내자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저번에 이야기한 악마계약자 이야기 기억하지?
경호의 전음에 성원이 슬쩍 고개를 까닥였다.
-그들이 헌터 본부에 있을 수도 있어. 그리고 설사 제대로 수사를 한다고 해도 악마계약자를 알아낼 수준도 안 되기도 하고. 걔들보다 우리에게 더 좋은 전문가가 있잖아.
평소 눈치가 더럽게 없는 성원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경호의 말을 이해 못 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게 말이죠. 생각해 보니 형님의 말이 원칙적으로 맞는 말이긴 합니다만….”
성원의 말에 건용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하지만 아버지. 지금 이 일은 좀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접근을 다르게 해야 한다니?”
“신화길드가 커지면서 손에 쥐는 정보도 커지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알아낸 내용 중에 악마에게 계약을 맺은 이들이 세상을 야금야금 좀 먹고 있다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벌어진 일도 아마 그러한 것으로 생각이 들고요. 아니 악마계약자가 분명합니다.”
경호에게 악마계약자에 대해 조금이나마 들었던 성원은 그때 들은 내용에 거짓을 적당히 섞어 이야기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성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무작정 사실을 공표하고 정부와 함께 일을 처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거냐?”
“우선 비밀로 해야 합니다. 신재용 박사님의 죽음이 악마계약자 때문이라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사회적 혼란이 가중될 뿐 아니라, 그들이 더욱 은밀하게 행동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신화길드에서 조사를 하겠다는 거냐? 너무 위험해! 그건 안된다!”
“사실 하려고 해도 길드 능력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비스트 헌터님께 부탁해 볼까 합니다.”
물론 성원은 경호와 정령, 신수들의 도움도 받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 파괴된 가디언을 조사해서 약점과 추적할 방법을 연구할 생각입니다. 김현태 연구원님 가능하겠죠?”
옆에서 가만히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던 그가 성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뜯어 보면서 확인하면 가능할 거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아버지.”
건용이 무거운 표정으로 한참을 침묵했다.
가볍게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낳게 되어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다.
하지만 성원의 말이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후우. 그래. 알았다. 네 말대로 하자. 조심해야 한다. 알고 있지?”
“알겠습니다. 아버지.”
***
-신화그룹. 마수킬러 프로젝트 실패인가?
-신화그룹 관련주 급락! 프로젝트로 몰렸던 개미들 멘붕!
-최악의 쇼케이스! 마수킬러 프로젝트 무기한 연기!
이러한 기사가 연이어 계속 터져 나오던 그때.
-세계적 석학인 신재용 박사 사망. 사인은 ‘과로’로 판정.
그의 죽음을 놓고 많은 고민을 했지만 죽음 자체를 숨길 순 없었다.
그렇다고 그렇다고 존재가 확실하지도 않은 악마계약자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인을 밝힐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의 죽음의 원인은 마기로 인한 ‘폭주’에서 과도한 업무로 인한 ‘과로’로 변했다.
이를 위해 운애의 치유력으로 마기에 의한 상처를 회복시켜 관련된 흔적을 모두 지웠다.
또한, 신재용 박사의 유족들에겐 그룹 차원에서 최고의 보상을 제공했다.
유족들도 연구를 향해 있던 그의 열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슬퍼하고 안타까워했지만 신화그룹을 탓하거나 원망하진 않았다.
“후우. 이런 일로 이렇게 갈 인물이 아니었는데….”
정말 어렵게 영입한 인사였던 만큼 그의 죽음을 가장 안타까워한 것은 다름 아닌 건용이었다.
***
“드워프가 정말 이런 걸 다룰 수 있다고?”
연구원들은 망가진 가디언을 해체하고 있는 드워프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봤다.
하지만 이건용 회장의 지시였기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뭐야! 벌써 거의 해체를 끝냈잖아!”
사실 처음엔 마도공학연구소의 인력으로만 가디언을 분석하려고 했다.
하지만 연구원 대부분이 기계를 다루고 해체하는 기술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외부인력을 쓰는 것 역시 보안상 문제가 있었다.
그때 떠오른 대안이 바로 ‘드워프’였다.
“오! 인간의 기술도 대단한데?”
그리고 그러한 작업에 파루스는 특히나 신이 나 있었다.
특유의 능글능글함으로 연구원들에게 다가가 모르는 것은 바로바로 물어보면서도 아쉬운 부분은 또 지적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기분이 나빠지지 않게 조율하는 것을 보고 지켜보던 성원은 혀를 내둘렀다.
‘눈치가 정말 장난 아니네! 친화력도 괜찮고 실력은 말할 것도 없네.’
마도공학에 문외한인 성원이 보기에도 파루스의 손이 닿으면 뚝딱뚝딱 해결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해체를 마친 가디언을 연구원과 드워프들이 관찰하며 분석하기 시작했다.
“하아. 도대체 신 박사님은 뭘 건든 거야? 이거 완전 다르잖아!”
AI버전과 SP버전의 구동핵이 완전히 달랐기에, 뛰어난 연구원들조차 파악하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물론 파루스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호오. 흥미롭네. 이건 마계에서나 쓰는 방법인데? 악마계약자가 확실하네.”
성원은 경호에게 파루스 역시 악마계약자라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기에 흥미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알아내신 게 있나요?”
“그 엘프가 물 정령을 쓴다는 것. 그리고 그 엘프보다 물 정령을 잘 다루는 이가 있다면 어쩌면 이 로봇의 통제권을 뺐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리나가 물 정령을 다룬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뒤이어 나온 이야기는 엄청난 정보였다.
“정말입니까?”
“그럼. 이제부터 통제권을 뺐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
비스트가 다현의 초대로 행운식당을 찾았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늦은 시간에 다들 모였대?”
식당 주인인 경호는 물론, 다현과 성원, 정수에 호돈까지 있는 자리였다.
바삭! 바사삭!
“일본에서 보고 첨이네? 회식이라도 하자고? 음. 이거 맛있네?”
비스트가 식탁 위에 놓인 랩터 다릿살 튀김을 맛있게 먹으며 말했다.
10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모인 이유는 당연하게도 ‘리나’ 때문이었다.
바삭! 바사삭!
비스트가 자기도 모르게 계속해서 튀김을 집어먹다가 머쓱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뭔데 이리들 심각한 표정인데.”
“크흠. 비스트. 부탁할….”
“아니. 누님. 제가 말할게요.”
다현의 말을 끊으며 성원이 치고 들어왔다.
“아이고. 답답해. 뭐. 누가 됐던 말 해 봐. 뭔데.”
“부탁이 아니라 의뢰를 하고 싶어서요. 꽤 힘든 일이고. 아니 사실 굉장히 위험한 일입니다.”
“내가 하는 일 중에 위험하지 않은 일이 있었던 거 같아?”
비스트가 피식하며 말했지만 성원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아마도 이번 일이 가장 위험할 겁니다.”
비스트도 무거운 분위기에 미소를 지우며 물었다.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의뢰 받아 줄 테니까 말해 봐.”
성원이 신재용 박사의 죽음과 악마계약자 리나에 대해 모두 이야기했다.
물론 경호에 대한 부분은 빼고 이야기했다.
“알아봐 줄 수 있을까요?”
“나 빼고 누가 할 수 있겠어? 그나저나 이거 아는 사람은?”
“그냥 저희 빼고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리고 앞으로도 아무도 몰라야 하고요.”
“정말 무슨 007이라도 된 기분인데….”
“필요한 지원은 뭐든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현 누님과 저희가 언제나 5분 대기조 상태로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성원의 말에 다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스트. 정말 중요한 일이야. 던전이나 균열은 우리 말고도 막아 낼 이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이런 일은 우리 말곤 할 수 없으니까.”
신화그룹에서 아이템을 풀면서 극지던전의 공략과 마수 사냥이 활발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악마계약자’처럼 은밀하게 움직이는 적은 아이템이 생겼다고 일반 헌터들이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바삭! 바사삭!
비스트가 식탁 위에 놓인 튀김을 다시 한번 집어 먹었다.
“아니 경호 씨. 여긴 백반집이면서 치킨집보다 더 맛있게 치킨을 만들면 어떡합니까?”
“재료가 좋아서 그렇죠. 뭐. 이번에 들어온 생닭이 아주 싱싱하더라고요.”
경호의 말에 비스트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속으로 ‘저 사기꾼!’을 외쳤다.
“입맛에 맞으신다고 하니 다행이네요.”
손에 묻은 기름기를 옷에 쓱쓱 닦아 낸 비스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그 ‘리나’라는 악마계약자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알아오겠습니다. 그 뒤에 치킨에 맥주 한잔하죠.”
“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