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3초 뿔돼지 삼겹살의 인기로 정령계 뿔돼지의 씨가 말라 가는 한편 마구잡이로 버려지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뿔돼지의 ‘다리’였다.
특별히 맛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삼겹살이면 충분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 저거 족발로 만들어 먹으면 최곤데. 어? 한번 해 볼까?”
족발은 간장 물에 돼지 장족을 삶아 내는 요리지만 대충 비슷하게 만들 수 있을 거 같았다.
어차피 요즘 마계 침략도 뜸해져서 시간적 여유도 있던 참이었다.
한때 오향족발이 유행하던 것이 떠오른 나는 미르에게 물었다.
“풀 중에 약으로 쓸 만한 녀석이 있을까?”
-당연하지.
미르가 이야기해준 것들은 주로 ‘똥약’을 만드는 재료로 쓰이는 약초들이었다.
똥약의 극악한 맛을 잘 알고 있기에 고개를 저었다.
“대단한 약효가 아니어도 되거든. 그냥 향이 좋은 녀석 없을까?”
-음. 달빛초 뿌리가 향긋하고 몸에도 좋은 편이야. 그래서 일부러 씹고 다니는 녀석도 있으니까.
미르의 말에 나는 달빛초를 캐서 뿌리를 코에 가져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쌉쌀한 향 속에 묘한 단내가 풍겼다.
마치 어릴 적에 씹던 ‘후라X노’ 같은 향이었다.
“오! 이거 좋은데.”
-아까 말한 약초보다는 아니어도 그거 약효도 꽤 좋아.
나는 달빛초 몇 개를 더 캐서 흙을 잘 털어 내고는 펄펄 끓는 물 속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냄비에서 약 냄새가 폴폴 풍겨 나오기 시작했다.
“색깔도 제법 그럴싸하네.”
펄펄 끓는 달빛초 뿌리를 달인 약물은 진하게 달인 보약처럼 검은색을 띠었다.
나는 뿔돼지 다리 중에 큼지막한 녀석으로 골라 넣었다.
그렇게 2시간을 푹 삶아 건져내니 약 냄새가 좀 강하긴 하지만 제법 그럴싸한 족발이 완성됐다.
솔딘의 공방 옆에 솥을 걸어 놓고 요리를 했기에 출출했는지 드워프 장인들이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우선 맛은 봐야 하니까.’
3초 뿔돼지 삼겹살의 맛을 이미 알고 있기에 고기 맛이야 두말할 것도 없었지만 달빛초 뿌리가 걸렸다.
슥슥슥슥.
칼로 얇게 썰었다.
김이 폴폴 나는 야들야들한 고기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었다.
“헛!”
씹자마자 나도 모르게 맛있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허허헛! 이거 뭐야.”
어이가 없는 맛이었다.
아니 사실 한번 씹자 탱글거리는 식감만 살짝 남기고 바로 녹아 버려 맛을 제대로 느낄 겨를도 없었다.
“이거 너무 얇게 썰었나.”
이번에는 세 점을 한 번에 집어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응?
두 번 씹으니 역시나 고소하고 진한 육즙만 남기고 다시 사라졌다.
“이거 대박인데!”
장충동 원조 왕족발 가게에서 먹었던 족발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거 한국 가서 팔면 대박인데!”
소주가 사무치게 그리운 순간이었다.
***
“형님! 저 왔습니다! 아이고. 어머님. 제가 힘드신데 괜한 일을 벌였네요.”
쇼케이스 당일, 성원이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가게를 찾았다.
“아니야. 그리고 오늘 요리는 경호가 맡기로 해서. 나야 할 게 많지 않아.”
지숙이 성원에게 괜찮다며 환하게 웃었다.
“괜한 일 벌인 건지 알긴 아는 구나.”
싱글벙글한 성원과 지숙과는 대조적으로 인상을 팍 쓰고 있는 경호가 무심하게 인사를 받았다.
“형님. 혹시 기분 나쁘신 거 아니죠?”
눈치 없는 성원이 눈치챌 정도로 표시를 내고 있었다.
“기분 나쁘긴 뭐가. 그냥 누가 또 갑작스럽게 만찬 준비를 시키는 바람에 무지하게 피곤해서 그러지.”
“아이. 형님. 제가 사랑하는 거 알죠?”
“성원아. 쇼케이스고 뭐고 간에 엎어 버리는 수가 있다.”
“하하하. 그, 그나저나 오늘 메뉴는 족발이라고요?”
“어. 일반적인 족발에 불족발, 냉채족발. 거기다 쌈 채소. 어때?”
뿔돼지 족발이 맛도 좋았지만 경호가 족발을 메뉴로 정한 이유는 외국인이 많이 온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좋네요. 요즘 안 그래도 ‘쌈’이 유행인데. 특히나 중국에서 쌈이 유명해지자 자국 음식처럼 알리는 상황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 오늘 외국인 많이 온다며. 그래서 일부러 족발이랑 쌈 준비했다. 따지고 할 것도 없이 한국이 원조인 음식이지만 한쪽이 계속 우기면 외국인들은 그런가 보다 할 거 아니야.”
“그렇죠! 그럼. 저 쇼케이스 준비하러 가 볼게요. 어머님! 저 가 보겠습니다!”
“그래. 오늘 잘 하고!”
“네엡!”
그렇게 성원이 나가자 경호는 구석에서 꾸벅거리고 있는 흰둥이에게 전음을 날렸다.
-흰둥아. 그만 졸고 엄마랑 산책도 다녀와라. 이제 요리해야 한다.
뿔돼지 다리와 달빛초 뿌리를 이용해서 족발을 만드는 걸 지숙에게 보여 줄 수는 없었다.
경호는 미리 연락해서 미호도 나오지 말라고 한 상태였다.
흰둥이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목줄을 물고 지숙에게 애교를 부렸다.
“흰둥아. 아줌마 바빠. 산책은 오후에 가자.”
지숙이 난감한 표정 짓자.
“아니 왜? 어차피 쌈 채소도 미리 씻어 놨고 같이 먹을 부추 무침이랑 쌈장, 고추, 마늘 같은 거 다 해 놨으니 다녀와. 이제부터 슬슬 삶으면 되니까.”
끼잉! 끼잉!
흰둥이가 애처롭게 낑낑거리자 지숙의 맘도 약해졌다.
“그럼. 경호야. 잠깐 산책 다녀올게.”
“아이고. 길게 다녀오셔도 됩니다.”
그렇게 지숙까지 나가고 식당에 혼자 남은 경호는 물을 담은 커다란 곰솥 2개를 화구에 올렸다.
그리고 아공간을 열어 미리 챙겨 둔 달빛초 뿌리와 손질한 커다란 뿔돼지 다리를 꺼냈다.
“100명쯤 먹는다고 했으니 6개 정도 삶으면 되겠네.”
식사가 아닌 브레이크 타임에 가볍게 제공하는 맛보기 음식이었기에 많은 양은 필요하지 않았다.
마력으로 물을 끓인 경호는 마지막으로 향과 색을 입히기 위해 간장을 넣었다.
“역시 족발은 간장이 들어가야지. 이거 맛있겠네.”
정령계에서 간장 없이 끓여 먹었던 족발도 환상적인 맛이었기에 경호는 지금 솥에서 끓고 있는 족발이 기대되었다.
***
“읏짜! 끝!”
기본 족발은 물론, 매콤한 소스를 넣고 볶은 불족발과 아삭한 야채와 겨자소스를 넣고 코가 찡하게 무쳐 낸 냉채족발까지 완성한 경호가 식당 밖으로 나와 행사장을 쳐다봤다.
“와. 절반은 외국인이네.”
대격변 이후 관광 산업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관광지 중 도심에 있는 곳은 상관이 없었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에는 던전이나 균열로 인한 피해가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애초에 대격변 초기에 관광지 대부분이 폐허로 변해 버렸다.
그렇기에 이렇게 많은 외국인이 모이는 경우를 본 일이 잘 없었다.
외신 기자도 많았지만 그보다 ‘신화 바이오앤텍’의 물건을 확인하고 거래를 트고자 온 이들이 많았다.
행사 1부가 거의 끝나는 중이었다.
마침 성원이 나와 요리 경연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저는 이 골목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법 알려진 내용이지만 바로 저기 보이는 ‘행운식당’ 때문입니다.”
성원이 연단에서 행운식당을 언급하며 손가락으로 골목 초입에 있는 행운식당을 가리키자 행사장에 모인 이들이 고개를 돌려 행운식당을 쳐다봤다.
식당 앞에 나와 있던 경호는 갑작스러운 주목에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행운식당에서 저는 엄청난 행운을 얻었고 그때부터 승승장구하여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다른 부분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길드 하우스는 완성되었고 신화학원도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죠. 신화 바이오와 마공연구소와 드워프 공방이 합작한 회사도 설립이 끝났고요. 이제 슬럼화된 이 골목을 활성화하고자 합니다.”
노트북 키보드를 두들기는 기자들의 손가락이 점점 바빠졌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먹자골목을 만들 생각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맛있는 식당을 이 골목으로 모셔야 하는데 여러모로 어려운 점이 많아 전국 식당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요리 경연대회를 열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경연대회의 상위권 식당들은 특별한 혜택과 함께 이 골목에 입점시킬 생각입니다.”
성원이 다시 한번 손가락으로 행운식당 쪽을 가리켰다.
“요리 경연의 1호 참가자인 행운식당에서 2부 준비를 위한 브레이크 타임에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요리를 준비했습니다. 그럼. 이것으로 1부 행사를 마칩니다. 가볍게 음식을 드시면서 준비가 완료되면 바로 오늘 행사의 핵심인 ‘마수킬러’를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신화그룹 측에서 인원들이 나와 족발과 쌈 채소, 불족발, 냉채족발까지 접시에 담아 옮기기 시작했다.
행사장에 착석해 있던 이들은 접시를 받아 든 이들은 각기 다른 요리에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고 어떤 이들이 놀란 표정으로 접시를 사진에 담는 이들도 있었다.
쌈 채소를 묘한 눈길로 쳐다보던 외신 기자들은 능숙하게 쌈을 싸서 먹는 한국인 참석자를 곁눈질하며 비슷하게 쌈을 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커다랗게 싼 쌈을 한입에 넣었다.
“오! 마이 갓!”
그때부터였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족발을 먹으며 시끌벅적해진 행사장을 보며 경호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접시에 일반 족발과 불족발, 냉채족발을 각각 두 점씩 만 담았기에 잠시 후 접시를 비운 이들의 아쉬움 가득한 한탄 소리가 행사장을 가득 채웠다.
아쉬움과 놀라움이 가득한 행사장의 연단 위로 이건용 회장이 올라왔다.
“다들 맛있게 드셨나요? 그럼. 신화 마도공학연구소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프로젝트 결과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프로젝트 총책임자인 신재용 연구소장을 모셔 보도록 하죠.”
건용의 소개와 함께 뒤쪽에 앉아 있던 신재용 박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안녕하십니까. 신재용 박사입니다. 여기 오신 분들은 이미 다 알고 계시겠지만 오늘 소개할 아이템은 로봇입니다. 백번 말하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좋다고 하니 시제품을 먼저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연단 중앙에서 물러선 신재용 박사가 뒤편을 향해 몸을 돌리며 말했다.
후우우우우우우웅!
제법 큰 소음이 뒤편에 있는 길드 하우스 쪽에서 터졌다.
그리고 서서히 하늘로 올라오는 거대한 은빛 구체가 보였다.
‘오! 드론처럼 날 수 있게 만들었네. 거기다가 변신로봇이잖아!’
경호는 전투로봇이라고 하기에 커다란 바퀴가 달린 원통에 기관총이 달린 그런 기계를 생각하고 있었다.
‘대박이네!’
하지만 예상을 벗어난 로봇의 모습에 경호의 눈을 반짝였다.
로봇은 몸을 둥글게 말아서 금속 구체 형태로 변화한 채 커다란 2개의 프로펠러로 날 수 있는 형태였다.
커다란 은빛 구체가 연단 위에 올라섰다.
“인간을 위해 마수와 싸울 전투로봇, ‘가디언’을 소개합니다.”
위잉! 치익! 위이잉!
커다란 은빛 구체에서 기계음이 터져 나오며 이리저리 변형되기 시작했고, 곧 팔과 다리, 머리가 솟아 나오며 3m 크기의 인간형 로봇이 연단에 우뚝 섰다.
곡선과 직선이 적절하게 조화된 단단해 보이는 장갑과 어깨에 달린 레이저 캐논의 모습은 행사장에 모인 이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오오오오오!
탄성과 함께 미친 듯이 플래시 세례가 터져 나오며 키보드 위를 움직이는 손가락은 더욱 빨라졌다.
특종!
그것도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그런 대박 특종 거리였다.
스윽.
행사장이 보이는 골목 건너편 건물 옥상에 흐릿한 존재감을 흘리는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는 바로 ‘리나’였다.
회색빛 로브를 깊게 눌러썼지만 뾰족한 귀와 아름다운 외모를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지구를 구할 용사가 얼마나 강한지 한번 확인해 볼까?”
그 말과 함께 리나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흐릿하게 변하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