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당연하게도 극지던전은 대한민국, 미국, 일본이 끝이 아니었다.
‘극지던전’이 점점 여러 나라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국의 ‘공략법’이 이미 알려진 상황이고 극지던전의 내부 환경을 확인할 방법도 공개된 상황이었다.
물론 ‘볼칸’의 죽음이나 일본의 사건을 잘 아는 이들은 극지던전 공략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인간은 상대의 실력은 가볍게 보길 좋아하면서도 자신은 과대평가하는 성향이 있었다.
특히 ‘헌터’라는 족속은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이 넘치는 이들이기에 그런 성향이 더욱 강했다.
‘신화도 성공했잖아!’
전 세계에 ‘다현’만큼 강한 헌터는 많았고 ‘신화길드’보다 강한 길드는 더더욱 많았다.
그렇기에 쉽게 생각하고 덤벼들었다.
‘신화길드도 했는데 자신들이 안 될 리가 없다.’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미국과 일본에서 그런 얕은 생각에 사달이 났음에도 학습 효과는 없었다.
그 결과 많은 수의 S급 헌터들이 극지던전의 제물이 되었다.
공략에 참여한 전력이 분명 ‘신화길드’의 공격대보다 강했음에도 성공률은 10% 미만이었다.
그렇게 공략 실패를 맛보고 나서야 전 세계의 눈이 신화길드로 향했다.
전력과 공략법은 공개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아이템이다!’
대격변 이후 ‘템빨에 장사없다.’라는 말은 만국 공통이었다.
***
식당 오픈을 위해 지숙과 미호가 주방에서 음식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들! 바닥 닦고 있지?”
“예에! 마님! 바닥 다 닦고 탁자 닦고 있습니다!”
경호는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식탁을 닦고 있었다.
그때 행운식당의 문이 벌컥 열리고 벌겋게 상기된 얼굴의 성원이 안으로 들어왔다.
“뭐냐? 갑자기?”
경호가 그런 성원을 보고 물었다.
“어머님! 저 형님 좀 빌릴게요! 오픈 전에 반납하겠습니다!”
성원은 그런 경호의 물음을 무시하며 지숙을 향해 소리치듯 말했다.
급해 보이는 성원의 말에 지숙이 서둘러 대답했다.
“그래. 반납만 잘 해줘!”
“내가 무슨 ‘따릉이’라도 되는 줄 알아! 어어! 아잇! 왜….”
그렇게 경호는 성원의 손에 붙들려 끌려 나왔다.
식당 앞으로 끌려나온 경호가 한층 더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뭔데?”
“솔딘 족장님이랑 이야기할 게 있어서요.”
“그래. 이야기 잘 해라! 수고!”
경호가 ‘뭐. 어쩌라고.’라고 하는 표정으로 몸을 돌리자 성원이 온몸으로 막으며 말했다.
“아! 형님이 이야기 좀 같이 해 주세요. 아직 뭘 부탁하기 어렵단 말이에요. 그리고 지금 길드 무기 만드는 것도 바쁜데 또 부탁하기도 그렇고요.”
“아. 그렇군요.”
경호가 밀어붙이며 가게로 들어가려 하자 성원이 간절한 표정으로 눈을 크게 껌벅이며 부탁했다.
“우엑! 너 그 표정 멈춰! 아니면 눈뽕이다!”
“넵!”
성원이 경례를 부치며 헤실헤실 웃었다.
경호가 그런 능글능글한 성원의 모습에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다음부터 그런 표정 지으면 얄짤없다.”
“알겠슴다!”
“그런데 뭐 이리 아침부터 왔어. 어차피 점심쯤에 만나서 정령 심기로 했잖아.”
오늘이면 이야기했던 87개의 무기가 모두 완성되는 날이었다.
“급해서요. 우선 가면서 이야기해요. 그러니까 말이죠.”
성원이 행운공원을 지나 공방으로 가면서 이야기한 내용을 요약하면 간단했다.
전 세계에 극지던전이 속속 등장했고 무식하게 자신의 능력만 믿고 들이받은 녀석 중 열에 아홉은 박살 났다.
그리고 그제야 신화길드에 SOS를 쳤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화 바이오앤텍’이라는 자회사를 급조했거든요.”
“신화 바이오앤텍?”
“물건을 팔면서 드워프인 솔딘 족장님이 다 만들었다고 할 순 없으니까요.”
체온유지장치 정도는 몰라도 정령무기를 보는 순간 솔딘을 납치하러 미국이나 중국이 쳐들어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것도 그렇지. 특히 정령무기는 정말 대단한 아티팩트니까.”
“그래서 신화 바이오 한 국자와 연구소 한 국자, 그리고 드워프 한 꼬집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라고 알릴 생각입니다.”
“그래야겠네. 그래서 체온유지장치 같은 걸 판다는 거지?”
“정령무기는 미루더라도 다른 것들은 팔 생각입니다. 족장님에게 물어봐서 설계도 공개해도 되면 그냥 복제하더라도 크게 문제 삼지 않을 생각이고요.”
“그래. 그런 장난감으로 돈 벌 생각하지 말자. 어차피 돈은 정령무기 같은 걸로 벌면 되니까.”
솔딘과 파루스가 만든 무기에 정령을 담아 판다면 최소 영웅급 아티팩트 수준의 금액을 받을 수 있을 게 분명했다.
거기다 정령무기는 복제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나중이라면 몰라도 현재 수준에서는 솔딘 수준의 대장장이도 없었고 파루스 수준의 마도공학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지구에 무기에 정령을 담을 수 있는 이들은 경호와 다현, 성원, 정수, 호돈이 전부였다.
“용사님!”
공방에 들어서자 솔딘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파루스도 피곤함에 절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왔는데? 무슨 일 있어?”
경호가 그런 파루스를 보며 묻자.
“여기가 지옥보다 더한 곳입니다.”
“엥? 그게 무슨 소리야?”
87개의 무기를 만드는데 솔딘을 포함한 장인들이 분담해서 만들었지만 회로를 새기는 일은 파루스가 전적으로 전담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사정을 들은 경호가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눈치 빠른 파루스가 그런 경호의 표정에 발작하듯 소릴 질렀다.
“악! 뭐요! 또 뭐 시키시려고 그러는 거죠!”
“미안.”
“용사님! 저 죽어요! 일주일만 쉬게 해 주세요! 제가 어떻게 살아남았는데 여기서 과로로 죽을 순 없다고요!”
“정말 어려운 거 아니야. 그냥 체온조절장치랑 결계방패 같은 거 몇 개만 만들어 줘.”
체온조절장치나 결계방패 같은 경우는 정령무기에 비해 마력회로가 단순하기에 파루스의 표정도 조금은 풀렸다.
“어휴! 정말 그거면 됩니까?”
파루스도 그런 것 몇 개 정도면 체력적으로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거라면 뭐. 몇 개나 필요하신데요?”
파루스의 질문에 경호가 성원을 쳐다봤다.
“몇 개 필요하다고 했지?”
“그게….”
성원도 파루스의 절규를 봤기에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게 조금 많습니다.”
“몇 개나 필요한데요?”
“급하게는 100개 정도고요. 조금 여유 있게는 1000개 정도는 필요할 듯싶습니다.”
100개라고 할 때 이미 부들부들 떨던 파루스는 결국 1000개에서 폭발했다.
“으아아아아아악! 나가! 이 악마보다 더한 놈들! 으아아아악!”
경호와 성원은 눈이 뒤집혀 화로 속으로 뛰어들려고 하는 파루스를 한참 동안을 말려야 했다.
“아니! 1000개는 취소요! 취소!”
절충안으로 100개만 만들고 나머지는 설계도를 공개하는 것으로 최종적으로 합의를 봤다.
***
신화 바이오앤텍의 등장에 세상은 또 난리가 났다.
-신화그룹! 진짜 신화를 쓰다!
-신화 바이오앤텍의 장비로 극지던전 공략 성공!
-신화그룹에서 외계인을 납치했나?
같은 뉴스가 전 세계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 뉴스를 접한 대한민국 국민들이 또다시 ‘신화’ 국뽕을 한 사발 거하게 들이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다 이어진 소식은 놀람을 넘어선 충격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신화 바이오앤텍! 극지던전 공략 장비 설계도 공개!
마계의 침략을 막기 위한 가장 기본 장비로 돈을 벌고 싶지 않다는 이유와 함께 체온유지장치를 비롯한 기본 방어 장비의 마도공학 설계도를 공개한 것이었다.
‘정령무기’라는 비장의 한 수가 있기에 던진 카드였지만 그것을 모르는 이들은 걱정이 가득했다.
응원이 넘쳐 났지만 중요한 자산을 너무 쉽게 넘겨준 것 아니냐는 등의 ‘경솔했다’라는 비난 여론도 거셌다.
***
미연방 마도공학센터.
수석연구원인 브루스는 안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으아아아아악! 이 미친 한국 놈들! 정말 외계인이라도 납치한 거냐!”
다른 차원의 드워프니 외계인이라는 표현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제 고작 3일이지 않습니까?”
“곧 성공할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맞습니다. 브루스. 머리 좀 그만 뜯으세요.”
주변 연구원들이 나섰지만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었다.
“야! 신화그룹에서 설계도 준 거 보고도 회로 분석도 못 하고 있으면서! 뭐? 고작 3일! 너 나한테 3일 동안 맞으면 정신 차릴 거야!”
“그게 지금까지 보던 회로와 결이 완전히 다른지라….”
지옥에서 배운 방법이라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핑계 말고 방법을 찾으라고!”
브루스의 머리가 또 한 움큼 뜯겨 나왔다.
“아, 알겠습니다!”
이 같은 일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유럽연합 마도공학연구소. 체온유지장치 복제품 제작 실패!
-중국 국영 마도공학 연구공사. 체온유지장치 제작 중 폭발로 큰 화재 발생!
-일본 특수방위 산업청. 한국에 협조 요청 중!
이러한 뉴스에 대한민국은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뭐야. 체온유지장치는 간단한 거 아니었어? 도대체 솔딘과 파루스는 무슨 물건을 만든 거야?”
점심시간이 지나고 조금 한가해진 시간 뉴스를 보던 경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모습에 흰둥이가 피식하며 말했다.
-이거 신화학원으로 마도공학 배운다고 유학 오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그럴지도.
신화학원은 숨겨진 특성을 키울 생각으로 만든 헌터 교육기관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라면 마도공학자들이 헌터보다 더 신화학원을 찾을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뭐. 성원이가 알아서 잘하겠지….”
아니면 말고!
신화와 관련된 뉴스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언론을 통해 신화 마도공학연구소의 ‘마수킬러’ 쇼케이스 소식이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물론 원래도 충분히 주목받을 일이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내에 한정된 수준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금 신화그룹, 특히 ‘신화 바이오앤텍’에 전 세계의 눈이 쏠려 있는 상태였기에 신화 마도공학연구소의 새로운 전략무기 공개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우우우우웅! 우우우우웅!
-관우.
“하여간 양반은 아니라니까.”
경호가 성원에게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형님! 행운식당을 전 세계에 알릴 기회가 왔습니다!
“어. 그래. 듣기만 해도 싫은데.”
-에이! 농담하지 마시고요.
“나 지금 진지하다.”
경호는 전화기로 살기를 싣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말했다.
-이번 쇼케이스에 참석자가 늘면서 1부, 2부 나눠서 진행하려고요.
“어. 축하한다.”
-형님이 그 중간 브레이크 타임에 먹을 간단한 음식 좀 만들어 주시면 안 될까요?
“뭐! 인마! 그거 내일이잖아!”
-형님. 그러니까 오늘 전화했죠.
경호는 진심으로 전화기로 살기를 싣지 못함을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