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정령 흡수 아티팩트 사업을 떠올리자마자 성원은 건용을 찾아왔다.
“아이고. 귀하신 분이 이렇게 먼저 찾아와 주시고. 오늘 안 올 것처럼 굴던 녀석이 웬일이냐?”
건용이 헐레벌떡한 모습으로 찾아온 성원을 보며 반가움 반, 서운한 반인 표정으로 물었다.
“에이. 웬일은 무슨 웬일입니까? 아들이 낯선 일본에 가서 죽다 살아왔는데. 당연히 아버지와 형님 보고 싶어서 왔지요.”
얼마 전까지 아버지는 어려워 눈도 잘 마주치지 못했고 형과는 마주치지도 않으려고 했던 성원이었지만 이제는 능글능글하기 짝이 없었다.
“동생아. 그렇게 보고 싶어서 차를 돌려서 경호에게 먼저 간 거였냐?”
“아. 형님. 식당에 왜 갔겠어요. 밥 먹으러 간 거죠. 기내식이 별로였거든요.”
“일본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기내식도 나왔나 보구나. 그것도 회사 전세기에서.”
성원의 농담 섞인 대답에 성준이 피식거리며 말하자 지켜보던 건용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그래. 무슨 폭탄 발언을 하려고 온 거냐.”
“폭탄 발언이라뇨! 아버지!”
“네놈 ‘이마에 폭탄 발언하러 왔습니다.’라고 써 있다. 이놈아.”
“하하하하. 그게 말이죠. 이번에 공방에서 아티팩트를 만들어 팔려고 하는데 그룹 차원의 협조가 좀 필요해서요.”
성원의 뜬금없는 소리에 건용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냐. 공방에서 만드는 물건은 전적으로 네 녀석이 전담하기로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갑자기 협조가 필요하다니. 아니 그전에 아직 교육도 제대로 하지 않은 드워프의 물건을 바로 상품화할 수 있는 거냐?”
성원의 말에 건용은 의문을 표시했다.
드워프의 기술이 생각보다 뛰어나다고 보고는 들었으나 교육을 통해 마도공학적인 요소를 더욱 발전시켜 아이템을 만든다는 것으로 이해했었다.
그런데 다짜고짜 찾아와서는 그룹 차원의 협조를 운운하니 이해가 안 될 수밖에 없었다.
“아. 제가 말씀을 안 드렸군요. 아버지! 제가 정말 운수가 대통할 팔자인 듯싶습니다!”
“녀석아! 내 아들로 태어날 때부터 너는 운수대통이었어. 재벌 2세로 태어나는 게 드라마에서나 흔하지 현실에서도 흔한 일인 줄 아느냐.”
“물론 그렇죠. 그것도 그거지만 제가 교육하려고 한 드워프 부족의 실력이 제 생각 이상이었습니다. 교육해서 아이템을 만드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쏟아 내는 물건이 던전에서 나오는 아티팩트급입니다. 아버지.”
“뭐라고?”
“엥?”
성원의 말에 건용과 성준이 놀란 토끼 눈을 뜨며 탄성을 질렀다.
“그게 무슨 소리냐? 그런 실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부에서 고작 부엌칼이나 만들게 하고 있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아티팩트를 만드는 실력을 가진 장인이 존재한다는 것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그런 장인을 가지고 냄비나 만들어 팔게 만든다는 건 아무리 정부가 무능하다고 해도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그들은 지구에 차원이동을 하고 나서 생존에 위협을 느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필사적으로 능력을 숨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쓸모없는 수준만 벗어나는 딱 그 정도의 실력을 보이며 지금까지 버텼다고 합니다.”
성원이 건용의 물음에 대답을 했지만 의문은 더 커졌다.
“그런데 그런 드워프 부족이 너에게 갑자기 협력하고 실력을 보인 것이냐?”
경호가 ‘용사’라는 것은 아직까지 1급 비밀로 하기로 결정한 사항이었다.
악마군단이 직접 나타나기 시작하는 3페이즈가 될 때까지는 무조건 비밀을 유지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경호 형님이 사실 정령계를 구한 용사인데 그 시절부터 알게 된 드워프 부족이 신화길드에 힘을 보태 주기 위해서 나섰습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거기다 아티팩트에 정령을 심는다는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거짓말로 포장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일이었기에 아예 숨기고 그냥 드워프가 만드는 물건이 대단하다고만 했다.
“사실 경호 형님 덕분입니다. 그 부족에 형님이 거래를 하며 엄청 친해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형님을 믿고 저에게 협력하기로 했답니다.”
“거참. 경호, 그 아이는 정말 복덩어리구나.”
“그러게요. 아버지. 애물단지인 녀석이 제 노릇 하게 만들어 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도 만들어 주는군요.”
“그래. 그래서 그룹 차원에서 뭘 도와주랴?”
“드워프 부족이 만드는 아티팩트의 질이 너무 좋아서 그냥 공방에서 만든 제품이라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우리나라 정부부터 시작해서 전 세계 마도공학 연구소에 탈탈 털릴 거 같거든요.”
“그래서 신화 바이오와 마도공학 연구소의 이름을 빌리겠다는 거냐?”
“신화 바이오의 재료와 마도공학 연구소의 기술, 거기다 보조적으로 드워프의 노동력이 들어갔다고 포장을 하면 어느 정도 넘어갈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신화 바이오와 신화 마도공학 연구소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기에 건용과 성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제품이 언제쯤 나오는데 이리도 서두르는 거냐? 사실 오늘 숙취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거라 생각했거늘.”
“숙취라뇨! 지금 술 먹을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경호가 들려준 마계 침략 이야기에 성원을 비롯한 모두가 마음가짐을 고쳐 먹었다.
특히나 정령계에서는 10년이 걸렸지만 지금 지구를 침략해 오는 마계의 속도가 그때보다 적어도 서너 배는 빠르다는 말에 모두가 위기감을 느꼈다.
“얼마 전까지 잘 마시던 녀석이 무슨 소리냐?”
“하여간 이제 저 술 끊었습니다. 물건은 지금 공방을 짓고 있으니 그것만 완성하면 바로 나올 거고요.”
“그래. 알았다. 그렇게 하마. 일주일 뒤에 그 골목에서 ‘마수 킬러’ 쇼케이스를 하며 공표하도록 하마.”
“그리고 아버지. 돈 좀 빌려주세요.”
“돈? 왜? 무슨 사고 쳤는데?”
“사고는 무슨. 일본에서 마석을 대량 구매하려고요.”
“마석은 왜? 아. 아티팩트 만든다고 했지? 그런데 일본에서 마석을 판다고? 그거 수출금지 품목이잖아? 필요하면 한국에서 사야지. 얼마나 필요한데?”
마석은 당연하게도 마수를 사냥해야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정부 주도 헌팅이 적은 한국은 마석의 대부분을 대형 길드에서 독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형 길드들은 이미 마도공학 연구소나 공방에 계약을 해 공급하는 상황이었다.
한마디로 한국에서 마석을 구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많이 필요해요! 엄청나게 많이!”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 헌터의 무기를 모조리 바꾸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일본 정부에서 마석을 신화길드와 거래하기로 했어요. 6개월이지만요. 그동안 최대한 많이 사야 해요. 그러니까 돈 좀 빌려주세요.”
드워프가 아티팩트를 만든다는 소리보다 더 놀라운 소리였다.
“아니 일본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
“아버지. 고마워요! 그럼, 저 가 볼게요! 공방 화로부터 장비 지금 옮기고 있는 중이거든요!”
건용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성원에게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이미 사라져 버렸다.
“허참. 녀석도.”
“저렇게 열정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니 좋기는 한데. 그 드워프 부족에게 괜한 덤터기 쓰고 그러는 거 아니겠죠?”
“네가 가서 한번 확인해 보거라. 바이오나 마공연구소에서 합작한다고 거짓말을 하려고 해도 어느 정도 쿵짝은 맞아야 하니 말이야.”
“네. 제가 연구원 몇 명 데리고 확인해 볼게요.”
성원의 변화가 너무 극적이라 좋은 일임에도 걱정이 되는 건용과 성준이었다.
***
골목 끝에 자리한 길드 하우스와 골목 초입에 자리한 행운식당 사이에는 꽤 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식당 뒤편 공원 옆으로는 정부 허가가 떨어지기 전부터 기초공사를 시작했었고, 허가가 나자 본격적으로 신화학원 건설이 시작되었다.
“다른 작업 올 스톱하고 공방부터 만들 겁니다.”
성원의 말에 신화건설 책임자가 질문했다.
“공방을 만드는 팀이 따로 있어 지금 공사를 동시에 시작하고 있는데도 말입니까?”
“네. 공방부터 만듭니다. 학교 시설 모두를 스톱하고 공방에 집중하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필요한 마도공학 장비와 설비는 모두 동원하셔도 됩니다.”
마도공학이 발전하며 원래도 빨랐던 한국의 건설 속도는 더욱 빨라져서 공사 기간은 대격변 전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공방은 원래 구조가 간단하여 지금도 50% 정도 공사가 진행된 상황입니다. 모두가 달려든다면 내일 아침이라도 당장 그 안에서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루 만에 공방이 완성되고 최용사공방의 물건이 모두 건너왔다.
당연히 솔딘과 파루스를 비롯한 드워프 부족의 장인들도 같이 건너와 공방을 새롭게 꾸몄다.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본 성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경호도 생각보다 훨씬 빠른 건설 속도와 장비 이전에 깜짝 놀랐다.
“마도공학이라는 기술이 이렇게 쓰이니 인간이 마석을 끊지 못하지.”
그 덕분에 지구는 정령계보다 훨씬 빠르게 마기에 잠식당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마도공학을 쓰면 쓸수록 마계의 침략이 빨라지니 쓰면 안 됩니다!’라고 떠들고 다닐 수도 없었다.
아니 당장 솔딘과 파루스가 만들 아티팩트도 마석을 대량으로 써서 만들 것이었다.
마석이 품은 마기가 대기 중 농도를 높이는 문제가 있지만 아티팩트 재료 중에 마석을 대체할 만큼 가성비가 좋은 물건이 없기 때문이었다.
용아검처럼 최상급 신수나 마수의 뼈 같은 것이 마석의 대체품이 될 수 있지만 수량이 부족하고 가격도 너무 비쌌다.
“우아아아아아아아아!”
새로운 공방에 마력 화로 설치가 끝나자 솔딘과 파루스를 비롯한 드워프 장인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솔딘과 파루스가 성원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는 바로 경호에게 달려왔다.
“용사님. 이렇게 왔는데 잔치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솔딘의 말에 파루스도 한마디 거들었다.
“시원한 맥주도 빠지면 안 되지요!”
그때 성원이 다가오며 말했다.
“솔딘 족장님. 죄송하지만 그 잔치는 조금만 미룰 수 없겠습니까?”
“네엣? 미루다뇨?”
“일주일 뒤에 이곳에서 만든 물건을 외부에 공개할 생각입니다. 그때까지 길드원에게 무기를 하나씩 만들어 나눠 주고 싶습니다. 막 대단히 좋은 무기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그저 정령을 담은 무기를 나눠 주고 싶습니다.”
막 대단히 좋은 무기가 아니면 정령을 담을 수 없었기에 성원의 말은 어폐가 있었다.
“무기로 인해 길드원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 준다면 그것보다 좋은 광고가 없을 듯해서요.”
“나쁘지 않을 듯하네요. 그런데 길드원의 숫자가 얼마나 됩니까?”
성원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우선은 B급 이상의 길드원에게만 나눠 줄 생각입니다.”
“마력이 너무 약한 이가 아티팩트를 잘못 쓰면 위험하니 그러는 편이 낫겠습니다.”
“네. 그래서 B급 이상의 길드원의 총 숫자는 87명입니다.”
“네엣?”
길드의 길드원이 보통 50명을 넘지 않기에 B급 이상의 헌터가 87명인 것은 엄청난 숫자였다.
인원수는 결국 돈이었다.
괜히 ‘돈의 신화’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솔딘이 한숨을 푹푹 쉬며 ‘87명’을 중얼거렸다.
“대단한 장인인 건 저도 잘 알고 있지만 일주일 안에 87명의 무기는 좀 어렵겠죠?”
성원은 경호에게 이미 드워프의 자존심에 대해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일주일이면 충분하지. 알았네! 파루스! 화로에 불 올려!”
새롭게 지어진 공방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