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경호! 그게 아니라고 몇 번 말해!
평소에도 미르의 수업은 정말 밤고구마같이 답답해 죽을 것 같았지만, 오늘은 그 정도가 더 심했다.
“아니. 미르! 그러니까 정령을 느끼는 건 충분히 알겠다고! 그런데 내 의지를 발현하라니! 그게 도대체 뭔 소리야!”
-의지 발현이 이해가 안 된다고? 그게 왜 이해가 안 되는데?
미르는 용이었다.
용은 말만 해도 의지가 담겨 발현되는 말도 안 되는 사기 종족의 대명사였다.
오죽하면 마법 중에 ‘용언마법’이라는 마법 카테고리가 따로 있겠는가!
미르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나도 답답해서 열불이 터졌다.
“너랑 나랑 같냐고! 너 처음 검기 일으킬 때도 나한테 뭐라고 했어? 마력을 훅 일으켜서 확 뿜어내면 된다고 했지? 되기는 무슨!”
미르의 설명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핫! 하고 힘을 주면 돼!
-머릿속으로 생각하면 나와!
-자동으로 되는 건데!
그러다 마지막은 항상….
-아니 그게 왜 안 돼?
이런 식이었다.
전교 꼴찌한테 서울대 과외선생 붙이면 역효과 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하아. 몰라! 안 해! 안 한다고!”
하지만 정령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강해지는 것에 한계가 있기에 결국 다른 방법을 써야 했다.
“그래. 이론보다는 실전이 났겠다. 내가 머리보다 몸 쓰는 거 잘하거든.”
-오케이. 의지의 발현을 어떻게 하는지 실전으로 배워 보도록 하지.
잠시 후. 경호는 죽음, 아니 죽기 직전의 상태를 경험해야 했다.
-의지 중에서 가장 발현되기 쉬운 것은 생존에 대한 의지이거든.
“으아아아아아아아! 차라리 죽여!”
미르를 포함한 사도들의 집중 공격 속에 경호는 생존 의지를 불태우며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경호는 정령을 부릴 수 있는 정도의 의지 발현이 아닌 검에 의지를 실을 수 있는 경지에 빠르게 올라설 수 있었다.
***
“의지를 발현해야 한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다현이 경호의 뜬구름 잡는 듯한 설명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하급 정령을 조종하기 위해서는 계약을 하거나 의지를 통해 소통해야 했다.
“그러니까…. 이게 ‘들어와!’ 하는 생각을 전달하면 되거든.”
경호는 순간 정령계에서 능글거리며 ‘그것도 못 해?’라며 핀잔 주던 미르가 오버랩되고 있었다.
‘아! 이런 느낌이었나!’
너무나 자연스럽게 알고 있는 것을 가르친다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들을 자신처럼 두들겨 패면서 가르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우선 완드를 들어 봐.”
다현이 완드를 들어 올리자 경호가 말을 이었다.
“자아.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선 원하는 정령을 최대한 느끼는 거지.”
“느끼라고?”
“의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의지를 전달할 상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하거든.”
이해하기 어려운 아리송한 이야기였지만 다현은 자신의 주변에서 맴돌고 있는 작은 화염덩어리, 하급 정령을 쳐다봤다.
파악한다는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긴 어렵지만 다현은 하급 정령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열기와 정령력을 느끼기 위해 애를 썼다.
“어?”
그러자 어지러이 날아다니던 불꽃이 다현의 눈앞에 떠올랐다.
“어어! 경호! 이거 된 거야?”
“이제 완드에 들어오라고 의지를 보내 봐.”
“알았어!”
하지만 의지를 보낸다는 게 눈만 동그랗게 뜨고 노려본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흐으으으업!”
눈앞에 둥둥 떠 있는 불꽃을 노려보며 집중하며 괜히 기합도 질러 봤지만 ‘의지 발현’이라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단번에 성공시키긴 어려웠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정령계에 뚝 떨어진 경호와 달리 다현은 이미 어느 정도 일가를 이룬 상황이라 아주 조금씩이지만 의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호. 이것 봐라. 역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니까.’
경호는 다현이 정령계에 소환됐으면 분명 자신보다 훨씬 강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안 그래도 예전 미르에게 물었던 적이었다.
“미르. 그런데 왜 지구의 그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나를 데리고 온 거야? 사실 재능 없다고 맨날 구박하고 하지만 내 재능도 대단한 거 맞지?”
나의 질문에 미르가 ‘한심하다’라는 의미를 가득 담은 얼굴로 대답했다.
-내 자랑 같지만 차원 마법이라는 것 자체가 나 정도의 수호신이 아니면, 아니 나 정도 되는 수호신도 하기 힘든 대단한 마법이거든.
“알지. 알지. 그래서 그 대단한 마법으로 지구의 재능 만렙 청년인 나를 데리고 온 거야?”
-그런 차원 마법을 통해 이동하는 것보다 어려운 게 바로 소환이지.
“그러니까 차원이동보다 더 대단한 차원소환으로 날 소환한 이유….”
-랜덤이었어.
“엥? 랜덤이었다고?”
미르가 깊은 한숨과 함께 내뱉은 단어에 경호가 되물었다.
차원 소환마법은 마법의 조종(祖宗)이라고 불리는 드래곤이라고 할지라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대마법이었다.
그것도 단순한 물건을 소환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를 소환하는 것이라 그 난이도가 몇 배 더 높아졌다.
다른 것을 포기해서 마법의 난도를 낮춰야 했다.
차원을 특정하지 않거나 대상을 특정하지 않으면 마법의 난도를 낮출 수 있었다.
-인간의 가능성을 알고 있었기에 우리는 ‘지구’라는 차원계를 포기할 수 없었지.
미르는 어쩔 수 없이 지구에서 아무나 걸리는 인간을 소환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미르와 신수들은 경호를 용사로 키우기 위해 더 노력해야 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경호 역시 용사가 되기 위해 더 많이 고통받아야 했다.
경호가 그런 다현을 보며 천재적인 재능에 놀랄 때.
다현은 다현대로 짜증이 난 상태였다.
‘저 약골 바보도 그렇게 간단하게 하는 걸 내가 못 한다고!’
10년간 정령계에서 마계와 싸웠으니 강한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이런 감각적인 것은 자신도 충분히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다현이었다.
물론 경호가 속으로 놀라고 있다는 것은 다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후우우우. 경호. 너 이거 얼마 만에 성공했냐?”
“이거….”
경호는 차마 다현에게 자신의 재능이 바닥이라 생사가 왔다 갔다 하는 일주일간의 지옥 훈련이 끝나서야 성공했다고 죽어도 말할 수 없었다.
“…한 10분?”
10분은 ‘의지 발현’이라는 뜻도 이해하지 못했을 시간이었지만 어차피 아무도 모를 일이었기에 경호는 당당하게 말했다.
“뭔가 느낌이 오는 것 같긴 한데. 쳇. 10분 지났네.”
경호가 다현에게 설명해 준 지 막 10분이 지난 시간이었다.
‘정말 미친 재능이네.’
어차피 경쟁할 일이 아니었기에 경호는 ‘힌트’를 던져 줬다.
“그냥 의지만 실어서 될 게 아니라 마력도 끌어올려야 해. 그래야 마력 파동과 함께 의지가 더 잘 전달되거든.”
“아! 그렇구나!”
역시나 미친 재능의 다현이 경호의 작은 힌트에 낮은 감탄사와 함께 바로 의지와 마력을 섞어 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바로 정령이 완드에 들어올 만큼의 실력을 보이진 않았다.
‘우와. 진짜 괜히 내가 민망해질 정도네. 이거 30분 정도만 더 하면 가능하겠는데.’
경호는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 일주일이 넘게 걸렸지만 다현은 벌써 거의 성공이 코앞이었다.
문제는 다현에게 재능에 비해 의지가 조금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하아. 포기! 오늘은 더 못하겠다.”
다현의 포기에 오히려 옆에서 지켜보며 감탄과 응원을 하던 경호가 놀라며 그런 그녀를 말렸다.
“왜? 거의 다 됐는데!”
“거의 다 됐다고?”
“자아. 봐봐. 내가 마력을 끌어 줄 테니까 그대로 따라와 봐!”
경호가 다현의 등에 손을 대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뭐야! 갑…, 으윽.”
등에서 화끈한 기운이 밀려들어 왔다.
그렇게 들어온 경호의 마력이 부드럽게 모여 다현의 몸 전체를 고루 움직였다.
다현도 집중하며 경호의 마력을 쫓았다.
“이렇게 전신에 마력을 고루 끌어올리며 집중하면 의지가 더 멀리 더 강하게 퍼지거든. 나중에 의지를 쏘아 내는 힘이 강해지면 이럴 필요도 없지만 지금은 이렇게 하면 증폭시킬 수 있지.”
그때 다현의 앞에 둥둥 떠 있던 작은 불꽃 모양의 정령이 그녀가 쥐고 있던 완드에 쑥하고 들어왔다.
“우왓! 대박! 들어왔어! 들어왔다고!”
다현이 환한 표정으로 방방 뛰며 경호를 보며 좋아했다.
순간 기분에 취해 포옹할 뻔한 것을 겨우 참고 물러난 다현이 괜히 경호의 눈을 피하며 물었다.
“크흠. 이거 이러면 끝이야? 불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큰 차이는 없는데?”
“어. 그 완드에 마력을 불어넣으면 느껴질 거야. 근데 괜찮아? 얼굴이 좀 붉어졌는데?”
“그, 그래? 불의 기운 때문인가?”
다현이 말을 돌리며 마력을 끌어올려 완드에 밀어 넣자 확! 하고 완드에 불길이 치솟았다.
“오!”
다현뿐 아니라 지켜보고 있던 성원, 정수, 호돈 역시 놀라 탄성을 질렀다.
하급 정령이라고 하지만 정령의 순수한 정령력은 마력을 사용해서 만드는 원소력과 다르게 빠르게 반응하고 효율성도 훨씬 좋았다.
한마디로 마법의 제한점 중 하나인 속도와 마력의 한계를 커버해 줄 수 있는 좋은 해답이었다.
“경호? 그러면 이거 이렇게 정령이 들어가면 계속 들어가 있는 거야?”
“의지로 거기 있어 달라고 전달하면 아마 한동안은 계속 있을 거야.”
“한동안?”
“최소 1년 정도? 정령에게 1년 정도 한곳에 머무르는 것은 일도 아니니까. 거기다 기운이 뭉치는 곳을 좋아하는 특성상 마력만 자주 불어넣어 주면 그들에게도 최고의 주거환경이니까. 서로 win-win이지.”
경호의 말에 가만히 듣고 있던 다현이 대뜸 주먹을 날렸다.
이제 실력을 숨길 필요가 없으니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경호였지만 피하면 배로 피곤해지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저 배에 힘을 줄 뿐이었다.
퍼억!
“컥. 또 왜?!”
“그러면 네가 그냥 정령 넣어 주고 있으라고 하면 되잖아.”
“이게 숙달되면 나중엔 무기뿐 아니라 마법이나 성원이 같은 경우는 화살에 정령을 담을 수도 있는데 그때마다 내가 해 줄 순 없잖아. 그리고 앞으로 공방에서 정령이 들어간 아티팩트 만들어서 팔아야 할 거 아니야. 그러려면 최소한 너희는 정령을 의지로 다룰 수 있어야지. 그러다 보면 점점 의지로 다루는 정령의 수준도 높아지고 의지의 힘도 강해지고 일석이조지!”
경호의 말에 성원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건 ‘돈’이다!
물론 마계의 침략을 막기 위해 풀어야 할 물건이기도 했지만 이건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물건이었다.
‘돈’도 그냥 돈이 아니라 ‘큰돈’이 되는 사업이었다.
“어? 그런데 형님이 말하는 공방이 최용사공방을 이야기하는 거죠? 엇! 그러고 보니 최용사공방의 최용사가 형님….”
“맞아.”
“그러니까 제가 생각하는 게 맞는 거죠? 그냥 족장님의 실력을 알아본 게 아니라….”
“어. 정령계에서부터 친했어.”
“형님! 또 뭐 숨기고 있는 거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