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용사의 골목식당-137화 (137/335)

#137화

위드그라실. 세계수. 엄마나무 등등.

대격변의 시대가 아니라도, 또한 각성자가 아니라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단어였다.

신화에 나오는 배경이자 판타지 장르의 영화나 소설의 소재로도 많이 쓰이는 유명한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경호야? 그러니까 세계수도 있다고?”

“악마도, 정령도, 신수도, 거기다 수호신에 귀환용사도 있는데. 세계수도 당연히 있지.”

“그러니까 지구에?”

“응. 가까이에 있어.”

경호가 다현의 물음에 별거 아니라는 투로 대답하니 여태까지 가만히 지켜보던 정수가 신난 아이 같은 표정으로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형님! 세계수라뇨! 그거 막 우주까지 솟아오르는 거대한 나무 아닌가요? 그게 지구에 있다고요? 그거 막 차원 연결해 주는 힘 있지 않아요? 아! 엘프도 세계수와 연관 있죠? 그게 가까이에 있다고요?”

정수, 너 이런 거 좋아하는구나?

“뭐. 백번 말하는 거보다 한번 보는 게 나으니까. 보러 가자.”

“보러 가자고?”

다현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고.

“네엣? 보러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어요?”

정수는 더 신이 난 표정이었다.

“비행기 준비할까요?”

성원은 역시 금수저였고.

“형님. 지금 바로 간다고요? 저 미호에게 전화 한 통만 할게요!”

호돈은 미호에게 전화부터 걸 기세였다.

“비행기도 필요 없고 미호한테 괜히 전화해서 미친놈 소리 듣지 말고 그냥 따라와.”

***

“형님. 여긴 공원이잖아요? 나무라고 해 봐야 저기 있는 그…. 설마 저게 세계숩니까?”

성원이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제 제법 거목 티가 나는 세계수를 가리키자 경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수는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그럴 리 없어! 그럴 리 없다고! 구름 위에 가지가 뚫고 올라가야 세계수란 말이야!’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경호를 본 골병이가 신나게 달려오더니 어깨 위로 뛰어 올라왔다.

삐익! 삐익!

-아빠! 아빠다!

그런 골병이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다현이 ‘설마’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거 설마 신수는 아니지?”

어차피 용사도, 수호신도, 세계수도 오픈 한 상태이기에 경호는 지금 여기 있는 이들에게 더는 비밀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

“골병아. 인사해.”

삐익! 삐익!

-안녕! 난 골병이야!

골병이가 삑삑거리자 모두의 머릿속에 전음이 퍼졌다.

‘골병이’라는 이름의 금빛 약병아리가 말을 건네는 것은 흰둥이와 울피로 경험한 일이지만 역시나 이상하게 느껴졌다.

“흰둥이는 지구의 수호신이고 울피는 수호신의 사도. 그럼. 이 새는 주작 막 그런 건가?”

다현의 중얼거림에 다들 설마 하는 표정이었다.

“골병이는 대붕이야. 그것도 금봉황이라는 신수야. 우리나라의 수호 신수였던 존재의 후손이지.”

경호의 말에 모두 이제 더는 놀랄 힘도 없다는 듯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정령계를 구한 용사님은 식당 사장이고 그곳 구석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강아지는 지구의 수호신이었다.

이제는 그 식당의 뒤편 공원에 우리나라의 상징과도 같은 금봉황의 후손이 산다고 했다.

거기다 세계수까지.

“형님. 이제 뭐 더 없는 거죠? 더 놀라면 진짜 수명 줄 거 같아요.”

“이제 진짜 끝이야. 운애야! 땅개야! 나와 봐!”

경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안 그래도 공원에 들어올 때부터 지켜보고 있던 운애와 땅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타났다.

-엇? 뭐야? 뭐야?

반투명한 푸른빛의 운애.

다현을 비롯한 다른 이들이 그런 운애를 보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만 달싹거렸다.

특히나 놀란 정수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으악! 귀, 귀, 귀신이다!”

빡!

정수의 외침에 옆에 있던 성원이 그의 뒤통수를 때리며 말했다.

“하아. 저게 어떻게 귀신이야. 이 바보야.”

성원이 경호를 쳐다보다 공중에 떠서 싱긋 웃고 있는 운애를 보며 인사했다.

“정령술사가 아닌 진짜 정령이셨군요.”

“네. 물의 상급 정령, 운디네입니다. 지금까지 제 정체를 속여서 미안해요.”

“사, 상급 정령!”

“아! 운애 씨?”

운애의 소개에 다들 또 한번 놀랐다.

사실 소개 전에도 운애에게서 풍기는 기세로 강함을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다.

“사, 상급 정령이라고?”

다현이 말까지 더듬으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금이야 정령이 거의 사라져 찾아보기 힘들지만, 대격변 초기만 해도 상급 정령의 활약이 제법 있었다.

그리고 그때 봤던 상급 정령의 강력한 힘은 지금 S급 헌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거기다 다현은 다른 이유로 놀란 상태였다.

‘정령이었단 말이야?’

다현은 경호가 자신의 정체를 밝힌 이후 마음속이 복잡해졌다.

그전까지 경호를 보면 마음이 흔들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애써 이것저것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며 외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보호해야 할 존재라는 핑계와 운애를 좋아하는 것 같다는 핑계는 사라지고 만 것이었다.

‘후우. 모르겠다. 모르겠어.’

운애 옆에 있는 기다란 뿔이 달린 커다란 풍뎅이도 있었다.

경호가 그런 풍뎅이를 보며 말했다.

“땅개야. 너도 인사해.”

-안녕하세요! 저는 땅개입니다! 땅의 상급 정령으로 처음 주인님을 만났을 때만 해도 하급 정령에 불과했지만 주인님의 은덕으로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땅개가 날개를 파닥이며 안 해도 될 말을 씩씩한 목소리로 전했다.

모두의 시선이 경호를 향해 꽂혔다.

정령계를 구하고 왔다더니 ‘정령술사’라도 된단 말인가?

경호가 귀환한 지 2달도 지나지 않았다.

아무리 ‘용사’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그 짧은 시간에 하급 정령을 상급 정령으로 성장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운이 좋았어.”

운이 좋았다 라는 말로 끝낼 수준의 일은 아니었지만, 경호의 말은 사실이었다.

봉인석을 구해 단기간에 강해진 것 자체가 정말 운이었다.

그런 땅개에 대해 구구절절이 설명할 필요까진 없었기에 경호는 그저 웃으며 넘어갔다.

사실 이곳에 온 진정한 이유는 바로 세계수였기에.

“세계수가 더 좋아졌네. 역시 드레이크 랩터의 심장도 꽤 쓸 만해.”

“형님! 그게 무슨 소리예요?”

경호의 중얼거림을 들은 성원이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드레이크 랩터가 아룡족이잖아. 그러니까 걔들의 심장도 마나를 엄청 품고 있거든.”

성원은 물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번 던전 수확물 중에서 드레이크 랩터의 드래곤 하트를 가장 큰 수확으로 생각하고 있던 성원이었다.

그런데….

“그 심장을 세계수에 쓰셨다고요?”

“아! 내가 심장 뺐다고 말 안 했던가? 미안. 내가 좀 썼다. 앞다릿살 잘라서 챙기면서 심장도 꺼내 왔지.”

무슨 호텔 어메니티 가져가는 느낌으로 이야기했지만 무려 드레이크 랩터의 심장이었다.

“커어억! 혀어엉님”

“그게 세계수 비료로 쓰기에 딱이거든.”

“그걸 비료로 쓰셨다고요?”

재난종 마수 중에도 희귀한 용족 마수의 심장은 부르는 게 값이었기에 성원도 애써 담담하게 말했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것은 완전히 막지 못했다.

“내가 나중에 갚아 줄게. 지금 꼭 필요했었거든.”

“하하하. 괜찮습니다. 형님. 5000억도 날려 먹은 마당에 랩터의 드래곤 하트 정도야. 뭐. 대수겠습니까?”

“그거 지금 나 돌려 까기 하는 느낌인데?”

“하하하하하. 티 났습니까?”

“하여튼 정말 잘 썼어. 이거 봐 봐.”

경호가 다가가 이제 성인 3명이 둘러싸야 가능할 듯 굵어진 세계수를 쓱쓱 쓰다듬자 그것에 반응하듯 청량한 기운이 감도는 신력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고는 뭔가 기운이 확하고 공원 전체를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경호뿐 아닌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이 충분히 느낄 정도의 힘이었다.

“괜찮아. 모습을 보여 줘도….”

경호가 뜻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자 갑자기 묘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찌릉. 키링. 코르릉. 뾰웅.

그 소리가 들려온 방향은 머리 위쪽이었다.

다현을 비롯한 모두가 고개를 위로 들었다.

번쩍이는 빛무리가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환상적인 풍경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건?”

다현이 손을 뻗어 활활 타오르는 붉은 기운을 어루만지자 하급 불정령도 그런 다현의 손길이 싫지 않은지 그녀의 손을 감싸 돌며 화르륵 불길을 키웠다.

“어멋! 우와아아아!”

다현뿐이 아니었다.

전격의 특성이 있는 성원에게는 하급 번개 정령이 그의 주변을 번쩍이며 날아다녔다.

“세계수는 정령의 가장 좋은 터전이거든. 지구가 인간에 의해서 망가지며 정령이 살 곳이 거의 사라진 지금 이들을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세계수의 힘을 키우는 수밖에 없거든. 그래서 서리거인의 심장이랑 드레이크 랩터의 심장을 세계수의 비료로 썼지.”

“아! 서리거인의 심장도 형님이 가져가신 거였구나. 하하하하하하. 세계수가 아주 입맛이 고급인 모양입니다.”

“괜히 세계수가 아니지. 그래도 이렇게 성장해서 거의 사라진 정령을 불러낼 수 있게 된 거야. 성원이 네 덕분이다.”

“제 덕은요. 뭐. 형님이 말도 없이 심장 가져가서 비료로 준 덕분이죠.”

안 그래도 서리거인의 심장이 없다는 보고 때문에 원인을 알 수 없어 머리가 아팠던 성원이 입을 삐쭉거리며 투덜거렸다.

서리거인의 사체에서 마석과 심장이 차지하는 가치가 절대적이었는데 원인도 모르게 심장이 없어졌으니 정말 답답하던 참이었다.

“그리고 이 정령들이 내가 솔딘을 너에게 소개한 가장 큰 이유야.”

“형님.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저한테 솔딘 족장님을 소개한 이유라고요?”

경호의 말에 이제 드워프의 능력이 엄청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세계수 주변을 날아다니는 정령이 그 이유라니?

성원이 물었지만 경호의 말이 궁금하기는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보여 줄게. 무슨 말인지.”

경호가 아공간을 열었다.

“오오!”

“우와!”

다시 봐도 신기한 건 신기한 거였다.

경호가 아공간에 손을 넣어 용아검을 꺼내 들었다.

“형님. 검은 왜?”

경호가 용아검을 치켜들자 주변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던 정령 중 하나가 쑤욱하고 검날에 빨려 들어가듯 흡수됐다.

그러더니 용아검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형님. 서, 설마 정령을 흡수한 겁니까?”

“정확히는 정령을 흡수한 것이 아니라 정령이 들어온 거야. 강제로 한 것은 아니거든.”

흡수하든 들어갔든 어쨌든 엄청난 사건이었다.

“하급 정령이 들어가기만 해도 위력이 달라지거든.”

경호가 가볍게 용아검을 휘두르자 마치 검풍이 일어나는 듯 요란한 소리와 함께 풍압이 강하게 일었다.

“마력을 쓰지 않아도 검풍을 일으키다니….”

검에 가장 일가견이 있는 정수가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경호가 검을 털어 내자 다시 정령이 빠져나갔다.

“형님. 정령을 무기에 담는 것은 그런 대단한 무기가 아니어도 되는 겁니까?”

성원이 자신의 주변에서 번쩍이는 번개 정령을 보며 경호에게 물었다.

“아무 아티팩트나 되는 건 아니야. 하지만 솔딘이 만든 아티팩트는 무조건 가능해. 거기다 솔딘의 능력이면 정령 하나가 아니라 둘, 셋도 가능한 물건을 만들 수도 있어.”

“그럼. 저희 모두 가능하겠네요.”

“아니. 정령을 받아들일 수 있는 아티팩트는 기본으로 있어야 하는 거고. 그것만 있다고 무조건 정령을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야.”

정령을 담을 아티팩트 말고도 두 가지가 중요했다.

첫 번째는 정령을 느낄 수 있어야 했다.

지금이야 경호의 부탁으로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눈으로 볼 수 있었지만 정령력을 느끼고 체득해야 정령의 의지와 상관없이 느낄 수 있다.

두 번째는 자신의 의지를 발현시킬 수 있어야 했다.

의지를 아티팩트를 통해 발현시킬 수 있어야 그것을 느낀 정령이 그곳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말은 쉽지만 둘 다 개념조차 떠오르지 않는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다행히도 경호라는 ‘일타강사’가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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