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용사의 골목식당-134화 (134/335)

#134화

성원의 머릿속에 떠돌던 조각들이 하나씩 맞춰져 가더니 커다란 그림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왜? 고미히토가 미치지 않고서야….”

일본이라는 나라는 지지 세력이 있다고 간단하게 쿠데타를 일으켜 국가를 휘어잡을 수 있는 그런 힘 없는 약소국이 아니었다.

그런 성원의 생각을 읽었는지 비스트가 고개를 저었다.

“꼭 그렇게 볼 것도 아니야. 헌터본부대의 ‘무력’, 신흥정당의 ‘정치력’, 그리고 일본 왕가가 뒤를 밀어주는 강력한 ‘금력’이라면…. 거기다 ‘사스케’ 수준의 헌터가 조직의 ‘간부’가 아닌 일등 ‘성도’니 그저 무모한 일을 저지르는 단체로 보긴 어렵지.”

모두가 비스트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신도교.

이런 극단적인 조직이 일본을 장악하면 지리적으로 가장 인접한 한국 입장에서도 좋을 것이 없었다.

거기다 억류된 상태인 자신들의 안전도 보장받기 어려웠다.

성원이 다현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정수를 봤다.

“하아.”

정수의 눈빛은 지금 자신과 비스트가 나눈 이야기도 제대로 이해 못 한 듯한 눈빛이었다.

그런 정수를 건너뛰어 호돈에게 시선을 옮겼지만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그나마 가장 믿음직스러운 비스트를 보며 성원이 물었다.

“자중지란(自中之亂),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말을 알고 있죠?”

성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비스트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총리와 일왕의 대결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겁니다.”

“네? 그게 무슨?”

“이대로 두면 분명 총리는 날아가겠죠. 하지만 정보를 흘리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정도면 될까요?”

“이번 총리는 보통이 아니거든요.”

일본의 109대 총리인 하토야마 류타로(鳩山龍太郎)의 행적을 살핀다면 모두가 비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할 만했다.

우선 총리 자리에 오르자마자 일본이 21세기에 접어들어 계속해 없애려고 했던 ‘평화헌법’을 삭제하며 ‘자위대’를 ‘군대’로 공식적으로 변화시켰다.

대격변 전이라면 전 세계적인 지탄 속에 헌법 개정이 철회됐겠지만, 지금은 협력과 공조의 힘이 느슨한 상태였다.

또한, 계속해서 일왕의 손과 발을 자르기 위해 애를 썼다.

원래도 꼭두각시와 같은 일왕이었지만 류타로는 그런 일왕의 왕권을 더욱 약화시키기 위한 법안과 정책을 펼쳤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점점 커지는 ‘제국신도교’의 존재 때문이었다.

류타로는 제국신도교를 약화시키기 위해 왕가가 가진 권한을 계속 축소시키며 여러 가지 제약을 만들었다.

“그래도 총리와 일왕이 싸울까요? 오히려 이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서로 손을 잡고 우리를 치려고 하면 어떡하죠?”

성원에 말에 비스트는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

“절대로 그럴 일 없으니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고 해도 언론에 까 버리면. 뭐. 아무리 막 나간다 해도 그렇게 해서 여론이 일어나면 함부로 건드리긴 힘들 테니까요.”

비스트의 말에 성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현아. 그럼. 다녀올게.”

비스트가 자료를 금빛 USB 드라이브에 복사해서는 작은 주머니에 담았다.

번쩍!

녹색 빛과 함께 비스트가 비둘기로 변해 작은 주머니를 쥐고는 날아올랐다.

***

도쿄도 치요다구 나가타초(永田町)에 있는 총리 관저 집무실.

그곳에 총리인 하토야마 류타로(鳩山龍太郎)가 들어서며 책상 위에 놓은 금빛으로 반짝이는 낯선 USB 드라이버를 보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류타로가 비서를 호출했다.

“자네가 내 책상 위에 USB를 가져다 놨나?”

-아닙니다. 그런 적 없습니다.

“그래?”

류타로는 컴퓨터에 USB를 꽂아 내용물을 확인했다.

거기엔 단 하나의 문서 파일만 담겨 있었다.

“제국신도교?”

제목에 놀란 류타로는 서둘러 문서를 열었다.

내용을 빠르게 읽어 내려갈수록 총리의 표정은 굳어지고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사실 여부를 의심했지만, 그동안 행한 일에 대한 성패와 여부와 그에 따른 분석까지 담겨 있었다.

‘이건 분명 진짜다!’

콰앙!

문서를 모두 읽은 총리가 책상을 내려치며 소리쳤다.

“이 미친놈들!”

총리가 비서를 호출했다.

“지금 당장 방위대신과 경시총감을 부르게! 당장!”

그렇게 일본에 조용하지만 빠르게 피바람이 불었다.

쿠데타를 계획했던 ‘제국신도교’였지만 쿠데타의 성공을 위해서는 비밀 유지와 신속함이 관건이었기에 그 정체를 알아차린 정부에서 처리하지 못할 정도로 그 힘과 규모가 큰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총리와 방위대신, 경시총감의 결단으로 ‘제국신도교’는 이적 단체로 규정되어 빠르게 진압되었다.

그와 동시에 ‘천황’과 그 일가 역시 모조리 잡아들였다.

외부로 알려져 봤자 이득이 될 것이 하나도 없는 일이었기에 은밀하게 진행되어 ‘제국신도교’는 아무도 모르게 묻혔다.

문제는 ‘천황’과 그 일가였다.

“고미히토 천황폐하. 아니 왜 그러셨습니까? 그냥 얌전히 권세를 누리고 계시지. 쓸데없이 일을 벌이셨습니까?”

류타로 총리는 자신의 앞에 포박되어 있는 고미히토 일왕을 보며 혀를 찼다.

“자네가 나의 손발을 모조리 잘라 내려고 하지 않았나!”

천황 가문이 하는 사업을 감사하고 비자금을 조사하는 등 류타로의 압박은 날로 강해지는 중이었다.

“폐하. 손발이 잘린 병신이라도 목숨은 부지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일을 벌이시면 제가 도저히 막아 드릴 수가 없습니다.”

대격변 이후 일왕의 인기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줄어든 상태였다.

그렇기에 이참에 류타로 총리도 왕권을 약화시키기 위해 칼을 빼든 것이고.

“그래서 나를 죽이기라도 할 셈인가? 천황인 나를?”

“천황폐하. 횡령죄 수준에서 왕위를 박탈하는 정도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왕권 개혁을 할 것이니 그렇게 알고 계십시오.”

“국민들이 그것을 가만히 지켜볼 것 같은가?”

“아. 재판에 들어가시게 되면 제국신도교와 ‘고미히토’ 천황폐하가 연관이 있다고 알릴 생각입니다. 그러면 국민들이 폐하를 별로 안 좋아하겠지만 말입니다.”

“뭐라! 내가 한 것은 자금 지원뿐이었네!”

지금까지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던 고미히토도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과 직접 관계가 없어!”

제국신도교의 교주라고 했지만 그들은 수십 년 전부터 존재했고 고미히토를 교주로 삼은 것은 대격변 이후였다.

한마디로 ‘고미히토’는 제국신도교의 바지사장 같은 존재였다.

“뭐.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관계가 있어 보이게 만들면 되는 거니까요. 앞으로 지켜보겠습니다. 또 이런 일이 발생하면 여생은 감옥에서 편하게 보내시면 될 겁니다.”

“총리! 자네! 아니 류타로. 제발 도와주게. 아니 제발 살려만 주게.”

고미히토가 간절하게 말했지만 류타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게. 폐하. 그냥 손발만 얌전히 잘리셨으면 끝날 일을…. 왜 괜히 나라를 뒤집어엎으려고 하셨습니까?”

***

“일본 정부를 대신하여 죄송합니다. 그리고 일본 모든 국민을 대표해서 감사드립니다.”

헌터본부대의 부사령관인 시마다 히사 특장보가 성원을 향해 허리를 굽히며 사과했다.

“수사 결과는 어떻게 나왔습니까?”

“뉴스를 보셨겠지만 던전 내부를 조사 결과 안타깝지만 사스케의 죽음은 사냥 중에 일어난 것으로 결론지었습니다.”

“그래요? 그렇단 말이죠?”

조사했다면 사스케의 죽음이 사냥 중에 일어난 것이 아님을 모를 수 없었다.

조사관이 바보 멍청이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이었다.

“수상 각하께서 이번 던전 공략의 보상과 일본이 끼친 실례에 대해 사과하고자 뵙고 싶다고 하십니다.”

비스트가 전달한 자료를 보고 어떻게 반응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사스케의 죽음을 제외하고는 조용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짐을 챙겨 내려가도록 하겠습니다.”

히사가 나가자 침실에 있던 비스트가 거실로 나왔다.

“그럼. 잘 마무리하고 오라고. 무조건 뼛속까지 뽑아낼 수 있는 한 최대한 뽑아내고.”

“알았어. 조심히 가.”

비스트의 말에 다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비스트 헌터님 아니었으면 정말 일이 꼬였을 텐데. 어쨌든 무슨 속셈인지 모르지만 가 봐야죠. 헌터님도 제가 연락해 놓을 테니 전용기 타고 돌아가시면 됩니다. 정말 수고하셨어요. 사례는 제가 한국으로 돌아가서 할게요.”

“그래. 비스트. 정말 고마워.”

성원과 다현이 감사를 표하자 비스트가 고개를 저었다.

“사례는 무슨. 됐어. 아. 다음에 거기. 그때 그 식당에서 맥주나 다 같이 한잔하지.”

“행운식당?”

“어. 그래. 거기. 저번에 피자도 너무 맛있더라고.”

침을 꿀꺽 삼키는 비스트를 제외한 모두가 문득 랩터의 앞다리를 해맑게 웃으며 자르고 있던 경호의 모습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하하. 그래. 거기. 행운식당 맛있지. 그래. 안 그래도 다음에 치킨 해 준다니 그거랑 맥주 한잔해.”

물론 닭이 아닌 드레이큰 랩터로 만든 치킨이긴 하지만.

“그래. 그럼. 한국 와서 연락해!”

비스트가 번쩍하며 비둘기로 변해 창밖으로 날아갔다.

성원이 그 모습을 지켜보다 다현에게 물었다.

“랩터 치킨도 맛있겠죠? 누님.”

“인제 와서 안 먹기도 그렇고. 그냥 마수 생각하지 말고 먹자. 예전에 개구리 튀김도 먹어 봤는데. 그냥 고기라고 생각하고 먹어 보니 닭고기보다 맛있더라고.”

다들 경호가 정령계에서 고생하며 배운 요리라며 해 주는데 ‘마수고기’라고 안 먹는다 하기가 좀 그랬다.

거기다 맛이라도 없으면 모르겠는데 그러기에는 너무나 맛있었다.

“그렇죠. 먹어야죠. 누님.”

“그래. 다들 짐 챙겨서 내려가자. 총리가 뭘 던져 줄지 가보자고.”

***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도 사스케 헌터가 그럴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총리인 하토야마 류타로(鳩山龍太郎)가 성원 일행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조사 결과가 나온 겁니까?”

성원의 물음에 류타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스케 헌터가 신화길드의 업적에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었나 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내막을 몰랐다면 성원도 총리의 사과에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며 겸양을 피웠겠지만 제국신도교에 만행을 알고 있기에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풋.

아니 자기도 모르게 코웃음이 겉으로 튀어나왔다.

‘아차!’

성원의 코웃음에 류타로 총리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지은 잘못이 있기에 코웃음에도 화를 낼 수 없는 노릇이었다.

“죄송합니다.”

성원이 사과하자 애써 환한 표정을 지으며 류타로가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그러실 수도 있죠. 무슨 재미있는 일이라도 생각나셨나 보죠?”

“아뇨. 뻔히 보이는 거짓말에 웃음이 나서요. 제가 속으로 웃는다는 게 그만 실수했습니다.”

“뭐, 뭐라고 하셨습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