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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용사의 골목식당-124화 (124/335)

#124화

각성자관리원 던전관리국 최현성 국장은 눈을 껌뻑이며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자신이 씹고 있는, 아니 이미 스르르 녹듯이 사라진 떡갈비를 떠올렸다.

‘떡갈비가 입안에서 이렇게 녹듯이 풀어질 수 있는 음식이었어?’

그냥 부드럽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풍부한 육즙이 폭발하듯이 터져 나왔고 불향과 육향이 어우러지는 풍미의 깊이가 얕지 않았다.

던전관리국 국장이라는 대한민국 권력의 정점에 있다 보니 당연히 고급 요리라는 것을 질리도록 접해 봤다.

그런데 이건?

“국장님. 여기는 행운식당의 그 맛 때문이라도 꼭 특별상업지역이 돼야 합니다.”

성원의 말에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동의하며 끄덕였다.

“여기 떡갈비 맛집이군요. 웬만한 유명한 한정식 식당은 다 다녀 봤는데 이렇게 깊은 맛을 내는 떡갈비는 처음인데요. 아니 비결이 뭡니까?”

현성이 한편에 서 있는 경호를 향해 물었다.

“아, 비결이라…. 정성이랑 손맛이지요. 뭐.”

비결은 삼족우 갈빗살과 다진 갈빗살을 손으로 주무를 때 마력을 불어넣는 것이었지만 그건 며느리에게도 알려줄 수 없는 비밀이었다.

“정성과 손맛이라…. 이런 곳에서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을지 몰랐는데 정말 놀랐네.”

그렇게 정신없이 음식을 먹던 현성이 어느 정도 식사를 마치자 정신을 차리고 서류 가방에서 테블릿 PC를 꺼내 성원에게 건넸다.

한미일의 극지던전 분석 자료였다.

“일본의 던전은 확실히 명동이나 미국의 던전과는 외형이 다르네요.”

성원이 자료를 보며 느낀 점을 말하며 태블릿 PC를 다현에게 넘겨줬다.

그때 경호가 다현의 품에 안겨 있는 울피에게 전음을 날렸다.

-극지던전 위쪽에 마계어가 적혀있는데 한국과 미국은 ‘한빙’이고 일본은 ‘초염’이야. 그걸 적당히 알려 줘.

울피가 경호의 전음에 자료를 보고 있는 다현을 올려다봤다.

끼잉. 끼잉.

“울피야. 왜 불편하니?”

-아니, 누나. 저 일본 던전, 한국과 미국이랑 외형만 다른 게 아니라 저 위쪽에 새겨진 글씨가 완전히 달라. 저번에 명동 던전에서도 저 새겨진 글씨에서 풍기는 기운으로 던전 안의 상황을 느낀 거거든.

“어! 그러네!”

갑자기 ‘유레카!’를 외치는 다현에게 모두의 시선이 몰렸다.

다현이 태블릿 화면을 모두에게 보이게 들어 설명을 시작했다.

“여기 봐봐!”

던전 게이트마다 글씨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는 부분을 손가락을 벌리며 몇 배로 확대하니 명확한 차이가 보였다.

우선 그것은 그냥 단순한 문양이 아닌 글자였다.

이것만 해도 놀라운 발견인데 심지어 한국과 미국의 던전에 새겨진 글자 모양이 같았다.

“어! 일본의 던전은 글자가 다르잖아! 이걸 도대체 어떻게 본 거지?”

성원이 외치자 옆에 있던 정수가 눈을 크게 뜨며 말을 이었다.

“설마! 누님. 일본은 우리와 다른 환경의 던전일 수도 있다는 거죠? 우와. 정말 눈썰미 대박!”

“허허허. 단순한 문양이 아니라 글자라니…. 우리도 놓친 부분인데. 다현양, 역시 대단하십니다.”

“저번에 기운을 느낀 곳이라 유심히 살폈더니 보이더라고….”

모두의 칭찬에 다현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울피가 아니었다면 다현이 절대로 몰랐을 부분이었다.

“그럼. 누님. 저 글자에서 풍기는 기운을 느끼면 우리가 공략할 수 있을까?”

성원이 마른 침을 삼키며 물었다.

“아마도 난이도는 비슷할 듯한데. 이번에 가보고 이것에 대한 정보도 공개하자.”

다현의 말에 성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오히려 지켜보던 현성이 놀라 버렸다.

“아니. 이 중요한 사실도 알리겠다고요?”

“국장님. 앞으로 이런 미확인 던전이 얼마나 생길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모두 독점 공략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헌터들이 저곳에서 계속 헛되이 죽을 순 없지 않습니까?”

성원의 말이 틀리지 않았지만, 손해 보는 것 같아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럼. 저희가 가도록 하죠. 그런데 우리가 얻는 것은 뭡니까?”

성원의 물음에 국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까 설명했던 것을 다시 말했다.

“그것은 아까 말했듯이 위험지역인 이곳을 특별상업지역으로 지정….”

“국장님. 저 이제 던전 하나 얻으려고 벌벌 떨던 그때의 성원이 아닙니다. 사실 특별상업지역도 크게 저에게 필요한 부분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을 얻을 수 있는 라인도 이제 제법 생겼고요. 우선 가장 윗선께서 저에게 관심이 많으시니까요. 재미있게도 야당 대표님도 어제 연락을 주시더라고요. 이거 참.”

성원이 현성의 말을 자르며 웃음기를 거두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다시 묻지요. 우리가 일본에게 얻는 것은 뭡니까? 한국에서 주는 것 말고요.”

성원의 말에 다현과 정수가 ‘아!’하는 표정을 지었다.

‘제법이네. 기분파에 덜렁거리던 녀석이….’

주방 입구 쪽에서 지켜보던 경호 역시 제법 노련해진 성원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아. 이, 일본에게 얻을 거를 말하는 거였나. 그러니까 그건….”

사실 크게 생각하지 않고 온 부분이었다.

외교부에서 계속 협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데 국가 간의 보상적인 측면이 크다고 했던 것 같았다.

“아직 외교부에서 협상 진행 중이네. 그러니….”

“우선 상황이 급하니 우리가 먼저 출발하죠. 대신 일본 측과 이 일로 맺은 협상서는 저희도 열람하고 서명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아니면 저희는 물러나겠습니다.”

대격변 이후 해상무역이 막히며 수출길이 쪼그라들었다.

자원 산업이나 관광 산업이 아닌 수출 산업으로 선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은 급격하게 삶이 어려워졌다.

중진국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이번 던전 공략의 쾌거는 국민의 무너진 자존감을 올려 주었다.

지금의 ‘신화길드’를 향한 국민 여론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길드장인 성원이 ‘대통령 선거’에 나와도 된다고 하는 수준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헌터들에게 절대갑인 헌터본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실세 중 하나라는 던전관리국의 국장이라도 함부로 할 수는 없었다.

“알겠네. 당연한 것을 그리 정색하며 말하고 그러나. 내가 무조건 일본과의 협상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 내어 주겠네. 걱정하지 말게. 그래, 일본은 언제 갈 건가?”

던전 공략은 안 할 거라면 모를까 할 거라면 서두를수록 좋았다.

“지금 바로 김포공항에서 신화그룹의 전용기를 타고 가겠습니다. 호위 부탁드리겠습니다.”

해양 마수로 인해 뱃길은 끊겼지만 생명력이 부족한 하늘에는 던전이나 균열이 거의 생기지 않아 전투기 1대 정도만 대동하면 위험하지 않게 이동할 수 있었다.

“알겠네. 2시간. 2시간 안에 준비하겠네.”

협조를 얻어 냈다는 기쁨과 녹록지 않음을 느낀 당혹감이 섞인 표정의 현성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 가게를 나섰다.

“우리 관우가 이제 제법 재수 없는 재벌티가 나기 시작하는데?”

“이게 모두 유비 형님의 영특함을 닮아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 오늘 보니까 어디 가서 손해는 안 보겠더라. 잘 했다. 잘 했어.”

“형님. 저는요! 저도 요즘 무기 바뀌고 검술도 늘고.”

이건 뭐! 칭찬 경연대회도 아니고!

“그래. 우리 장비는 장비가 바뀌니까. 장비 같네.”

“형님. 그, 그거 칭찬인 거죠?”

“촉한의 명장, 장비가 얼마나 위대한 무인인데. 당연히 칭찬이지.”

“하하하핫! 저희 형제가 날로 성장하네요. 형님도 곧 경연 우승하실 테고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날로 발전하는 성원에 비해 정수는 여전히 둔하고 눈치가 없었다.

‘뭐. 저 우직함이 저 녀석의 장점이지.’

그 우직함이 정수의 검술을 더욱 단단하고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옆에서 피식거리며 보던 다현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럼. 가자. 성원이 너는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알겠습니다!”

***

“내 능력이 아닌, 아들 덕에 청와대를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건용 회장이 성준과 함께 청와대를 찾은 것은 신화바이오와 신화마도공학연구소에서 공동 개발 중인 ‘마수 킬러 프로젝트’에 대해서 VIP가 갑작스럽게 궁금함을 표시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건용은 이 만남이 최근 떠들썩한 성원의 활약으로 성사됐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신화길드 덕에 지지율이 오르고 있는 상황에 우리 그룹에서 만드는 대마수(對魔獸)용 로봇을 끌어들여 이슈화해 분위기를 더 올리려는 수작이지.’

하지만 이 수작이 신화그룹 차원에서도 결코 나쁘지 않았기에 건용은 밝은 얼굴로 청와대 비서관의 안내를 받으며 상춘재(常春齋)를 향했다.

사실 프로젝트에 정말 관심이 컸다면 청와대 측에서 자료를 요청하거나 그룹 내 전문가를 대동하여 회의하는 것이 맞지만 그것이 진정한 목적이 아니었기에 상춘재에서 오찬이 예정돼 있었다.

“아버지. 정말 ‘행운식당’이 그 녀석에게 행운을 준 것 같네요.”

몇 달 전만 해도 앞가림이나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하던 녀석의 성장 속도가 놀랄 정도로 빨랐다.

“성원이뿐이냐. 우리 모두에게 행운을 줬지. 어쩌면 이 나라에 행운을 준 것일지도 모르지.”

나라가 위기에 빠질 뻔한 굵직한 사건마다 다현과 신화 길드가 얽혀있었다.

다현과 신화 길드.

행운식당에서 성원이 ‘경호’라는 존재를 만나지 않았다면 절대 이뤄질 수 없는 조합.

그랬기에 그 만남이 없었다면 어쩌면 위기를 극복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여기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앞에서 안내하던 비서관이 멈춰 서서 문을 가리켰다.

대한민국 재계 1위, 세계적으로도 위상이 높은 글로벌 그룹의 수장이자 ‘거인’이라고 불리는 이건용 회장이기에 역대 VIP의 부름을 받고 청와대에 초청된 적이 여럿 있었다.

재계와 정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기에.

하지만 그런 건용도 이렇게 따로 부름을 받아 오찬에 참석한 적은 없었기에 묘한 기분을 느꼈다.

단순한 긴장이나 초조함이 아닌 좀 더 복합적인 기분이었다.

‘이게 잘난 아들 둔 아비의 마음인가?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군.’

문을 열고 건용과 성준이 오찬장으로 들어가자 VIP 내외가 환한 얼굴로 그들을 반겼다.

“어서 오세요. 바쁘신 분들을 제가 괜히 부른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평소 신화그룹의 행보에 관심이 많아 이렇게 자리를 청했습니다.”

사실 바쁜 건 사실이었지만 VIP의 인사에 ‘예, 바쁜데 힘들게 시간 내서 왔습니다.’라고 말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아닙니다. 저 역시 대통령님을 평소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불러 주셔서 큰 영광입니다.”

그렇게 좋은 분위기에서 명목상의 주제였던 ‘마수 킬러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나오지 않은 채 신화길드와 신화학원에 대한 부분만 신나게 이야기하며 오찬이 진행되었다.

식사가 마무리될 즈음.

-둘째 녀석.

건용에게 성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VIP의 눈치를 살핀 건용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아들놈이 양반은 아닌 모양입니다. 때마침 전화가 온 것을 보니 말입니다.”

건용의 말에 VIP가 환하게 웃었다.

“그러면 스피커 통화로 목소리 좀 들을 수 있을까요. 대한민국을 구한 영웅 아닙니까?”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아버지! 지금 당….

“지금 청와대에 와서 대통령님과 함께 식사 중이다. 통화는 스피커폰 상태고 말이다.”

-아…. 안녕하십니까! 대통령님. 사실 제대로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 지금 당장 일본을 가야 해서 길게 통화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니 벌써?’ 하는 표정이 VIP의 얼굴에 떠올랐다.

사실 오늘 오찬을 빌미로 일본 던전 공략을 조금 더 압박할 요량이었던 VIP는 벌써 결정되었다는 소리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일본에 가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아들.”

오히려 건용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터라 평소답지 않게 당황한 얼굴로 성원에게 물었다.

-그런 게 있어요. 대통령님께서 말씀해 주실 겁니다. 아버지. 신화그룹 전용기 바로 사용할 수 있게 지시 부탁드려요. 그럼. 또 전화할게요! 사랑해요!

“아, 아니. 성원아.”

뚝.

끊어진 전화기를 붙잡고 떨리는 눈동자로 건용이 VIP를 쳐다보자 그도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정말 장한 아들을 두셨습니다. 부모로서 참 부럽습니다. 제 자녀들은 앞가림도 잘 못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아니, 대통령님. 그게 무슨. 지금 성원이 왜 일본을 간다는 겁니까?”

“일본을 구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가는 것입니다.”

“네엣? 뭐라고요? 그게 무슨 미….”

건용은 VIP의 앞이라 욕이 튀어나오려고 하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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