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나는 강했고 자신이 있었다.
그 어떤 역경도 이겨내며 지금까지 성장했다.
그 덕에 서른도 안 된 어린 나이에 이등특좌(二等特佐) 계급장을 달 수 있었다.
이런 인생, 이런 커리어.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만족스러웠다.
오늘 미확인 던전 공략도 자칫하면 위험할 뻔했지만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져간 조센징 놈들이 무슨 이유에선지 공략 영상을 올려 그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
재난종 설호급 마수와 멸망종 서리거인급 마수가 나오더라도 자신과 라이진 돌격대원들이면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차원막을 통과했는데.
“으윽!”
눈이 부시다는 말로 모두 설명하기 어려운 그런 강렬한 빛이 내리쬈다.
동시에 너무 뜨거운 공기가 갑자기 폐부에 들어왔다.
“크하학!”
마치 기관지가 타들어 갈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단순하게 덥다? 푹푹 찐다? 하는 온도가 아니었다.
“대, 대장!”
“대장님!”
대원들이 나를 애타게 불렀다.
머릿속에 하얗게 변해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마력을 몸으로 돌려 버텨라!”
자신과 대원들 수준의 각성자라면 마력을 써서 탈 듯이 뜨거운 열기도 막아 낼 수 있었다.
문제는 그게 전부라는 점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더운 곳이라는 루트 사막(Lut Desert)의 온도가 섭씨 70도 정도였다.
당연하게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다.
아니 동식물은커녕 미생물도 살지 못하는 환경이다.
“대, 대장. 섭씨 170도입니다.”
마력을 거둔다면 상급 헌터라도 충분히 위협 받을 정도의 강한 열기였다.
“제, 제길. 이게 무슨!”
분명 공략 영상에서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혹한의 설원이었건만.
이곳은 사막보다 더 황량하고 더 뜨거웠다.
바닥에 발목까지 푹푹 들어가는 모레의 열기에 특수하게 제작된 전투화가 이글거리며 녹고 있었다.
이대로 시간을 끌면 위험했다.
“후우. 후우.”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만 이미 던전에 진입한 이상 ‘공략’ 말고 다른 방법은 없었다.
“가자!”
***
헌터본부대 사령관인 스다 마사키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극지던전의 위험요소도 파악했고 한국의 신화길드보다 객관적으로 따져도 2배 이상의 전력이 던전에 들어갔기에 세계 최단시간 공략은 문제없어 보였다.
유치한 자존심 싸움처럼 보이는 일이지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었다.
우우우우우우우웅!
임시로 지어진 지휘통제실 밖에서 마력 파동이 느껴졌다.
“벌써 공략이 끝난 건가?”
들어간 지 1시간 남짓 지났을 뿐이었다.
“역시 료헤이! 명불허전이야!”
아베 료헤이(阿部亮平).
그리고 그가 이끄는 라이진(雷神)돌격대는 일본의 미래였다.
기쁜 마음으로 마사키는 지통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허둥대며 바삐 움직이는 분석과 장교들을 볼 수 있었다.
헌터본부대 사령관인 그가 지금의 분위기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모를 리 없었다.
공략 실패.
“이게 무슨….”
일본의 찬란한 미래가 죽었다.
그리고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은 상관인 자신에게 있었다.
마사키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 어떤 것도 희망적인 것은 없었다.
그래도 이곳의 책임자로서 확인은 해야 했다.
“마사루 분석관!”
마사키의 외침에 분석에 한창이던 마사루 분석관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달려왔다.
“상황보고 하게!”
“사, 상황보고 드리겠습니다. 마력파동 확인 결과 98.7% 확률로 전원 사망으로 분석되었습니다.”
98.7% 전원 사망.
끝났다.
마사키의 표정이 어그러졌다.
이제 자신의 커리어도 여기서 끝이었다.
그때 자신의 부관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마사키 특장님!”
다급해 보이는 얼굴이 또 무슨 일이 터진 듯해 보였다.
뭐? 또 뭐가 남았는데? 무슨 문제냐고!
“지금 미국이 공략에 성공했다는 속보가 떴습니다.”
털썩.
부관의 말에 마사키는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일본의 미래를 희생시키고도 일미한 삼국 중에서 유일하게 공략에 실패한 것은 목숨으로 그 대가를 치러야 할 큰 죄악이었다.
큭큭큭큭.
허탈하게 웃던 마사키가 핏발 선 눈으로 하늘을 우러러보다 소리쳤다.
“천황폐하! 만세!”
품에서 단검을 꺼내 든 마사키가 그것을 휘둘렀다.
“특장님!”
푸욱!
부관이 말릴 틈도 없이 그가 쥔 단검이 자신의 복부를 찔러 들어갔다.
***
“아침부터 왜?”
오늘의 손님은 성원과 정수였다.
“형님. 형제가 뭉치는 데 이유가 있어야 합니까?”
성원이 환하게 웃으며 식탁에 앉았다.
“중요합니다. 손님. 이유가 타당하지 않으면 당장 나가 주시겠습니까?”
경호가 성원과 정수를 보며 정색하며 말하자.
“길드 하우스 구내식당은 맛이 없는걸요. 그리고 신화학원 공사로 너무 시끄럽기도 하고요.”
“그럼. 구내식당보다 맛없게 만들어 대접하면 되는 거였네. 내가 그동안 멍청했네.”
주방에서 지숙이 나오며 그런 모습을 보며 피식 웃으며 반찬을 차렸다.
“매일 보면 좋지. 너는 왜 얘들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니?”
“어머님.”
“그러게요.”
지숙의 말에 성원과 정수가 간식을 갈구하는 흰둥이의 애절한 눈빛과 흡사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식당에 자꾸 무전취식하는 범죄자를 방치하면 우리 가게 망한다니까. 그나저나 다현이는 안 왔네?”
“누님은 수련한다고 오늘 던전 공략 간다고 했습니다. 저번 던전에서 서리거인과 싸움에서 밀렸던 것에 화가 많이 나신 거 같더라고요.”
우우웅. 우우웅.
그때 손목에 진동이 울렸다.
-마녀.
정말 다현의 전화 타이밍은 그 어떤 칼보다 날카로웠다.
“어? 수련한….”
-시끄럽고 TV 틀어!
“이건 뭐. 갑자기 뭔 소리….”
-아! 빨리 틀라고! 성원이나 정수보고도 보라고 하고.
“성원이랑 정수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가기 전에 연락했어. 하여간 틀라고!
‘쳇! 다짜고짜 성질이야!’라고 중얼거리며 경호가 TV를 켰다.
화면에는 미국의 미확인 던전이 공략됐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어. 성원아. 공략 영상이 도움 됐나 보다….”
이어서 또 다른 속보가 화면에 흘러나왔다.
“일본이 공략에 실패했다고? 어엇?”
경호가 영상에 나오는 극지던전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구석에서 하품하며 늘어져 있던 흰둥이가 경호의 반응에 질문을 던졌다.
-경호 님. 왜요?
-너도 ‘마계어’ 알지? 저기 봐봐. 던전 게이트 위쪽.
-초염. 그럼. 저번에 들어간 던전처럼 추운 게 아니라….
-그래. 불지옥 같은 곳이지. S급 헌터도 열기에 버티는 것이 고작인 그런 곳이야.
료헤이와 라이진 돌격대원들이 뛰어났기에 공략을 시도할 생각이라도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아니, 저 인원이면 공략 못 할….”
그때 성원에게도 전화가 걸려 왔다.
최현성 국장이었다.
“네. 국장님.”
-자네에게 부탁할 일이 있네.
“무슨 부탁이요?”
-일본 정부에서 우리 정부로 공략 협조 요청이 들어왔네. 자기들 S급 헌터를 지원해 줄 테니 공략을 도와줄 수 있냐고? 그래서 자네들이 일본으로 가 도와 줬으면 하는데. 어떤가?
성원은 이번 제안이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신화길드’를 우주로 쏘아 올려 줄 로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화 한 통화로 덥석 물 정도로 간단한 것도 아니었기에 성원은 현성에게 물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식사? 아니, 그게 무슨.
“행운식당이라고 아시지요? 같이 식사하면서 이야기하시죠.”
-알겠네! 당장 가지!
성원이 환하게 웃으며 경호를 보며 말했다.
“누님도 오시라고 해주세요.”
“아니, 왜? 우리 식당은 헌터본부 회의실이 아니라고!”
-지금 바로 갈게!
뚝.
“하아.”
이 어이없는 상황에 한숨을 쉰 경호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
서류 가방을 든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인이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가 그 유명한 행운식당이군. 안녕하세요.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최현성 국장이 지숙과 경호를 향해 인사를 하면서 식탁에 앉아 있는 다현과 성원, 정수를 보며 아는 체를 했다.
“최 국장님. 어서 오세요. 아침 먹으면서 이야기하려고 국장님 것까지 시켰습니다. 아. 여기는 백반 메뉴 하나뿐이거든요.”
물론 돈가스, 떡갈비 등등 점점 메뉴가 늘어나며 백반집 이미지를 탈피하고 있었지만, 행운식당의 정식 메뉴는 백반이었다.
현성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요즘 자주 보는군. 백반이라… 그것도 좋지. 그럼. 본론부터 바로 이야기하지.”
“그러시죠.”
“일본이 급하긴 한 모양이더군. 우리에게 그렇게 저자세로 나오는 것은 처음 봤으니 말이야.”
말을 듣던 성원이 고개를 갸웃할 이례적인 일이었다.
대격변 이후 예전 같은 글로벌 사회는 사라졌다.
교류 자체도 어려워졌고 각자 자기만 생각하기도 바쁜 시대가 되니 자연스럽게 연합, 동맹, 조약 같은 가치는 빛을 잃었다.
객관적으로 봐도 압도적으로 S급 헌터의 숫자가 많은 일본이 외교적으로 저자세를 취하며 접근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항이 중하다는 뜻이었다.
“세부적인 내용은요?”
“뭐든 최대한 맞춰 준다고 하네. 성원, 자네와 다현 양을 초청했네. 일본 최고의 헌터 셋을 동원해서 같이 가는 조건이면 좋겠다고 하더군.”
“네엣? 그건 좀. 공략 영상을 공유하는 정도면 모를까. 손발도 안 맞는 이들이랑 들어가는 건 사양입니다. 갈지 안 갈지 결정하지 않았지만 가더라도 저번 공략과 같은 인원으로 들어갈 생각입니다.”
“알겠네.”
“그럼. 이번 건을 받으면 뭘 주실 겁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요즘 제가 욕심부릴 것도 거의 없는 상황이라서요.”
신화학원부터 이계인 교육까지 모두 허가가 떨어진 상황에서 더는 사업을 확장하고 싶어도 그럴 여유가 없는 지경이었다.
“위험지역인 이곳을 특별상업지역으로 지정하겠네.”
길드 하우스가 만들어지며 골목에 위험도가 낮아지며 위험지역 해제가 유력하게 점쳐지긴 했지만, 그것과 특별상업지역 지정은 엄연히 달랐다.
특별상업지역으로 지정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교통과 치안이 좋아지고 세금 혜택도 있었다.
“오. 이건 좀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네요.”
그때 경호가 음식을 차려서 나왔다.
깔끔하게 끓여 낸 아욱 된장국에 풍미가 살아있는 삼족우 떡갈비, 갖은 채소가 들어간 달걀말이가 상에 차려졌다.
“그럼. 일본에서 던전 관련해서 보내온 자료가 있으면 먹으면서 보도록 하죠. 저희가 간다고 무조건 공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럼. 그러지.”
성원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젓가락으로 떡갈비를 한 입 크기로 잘라내 입에 넣었다.
‘응? 어어? 떡갈비가 무슨?’
떡갈비를 먹은 현성의 눈동자가 튀어나올 듯 커졌다.
떡갈비를 처음 먹어본 이들은 모두 저런 표정을 지으며 놀라워하기에 성원이 말했다.
“국장님. 던전 공략이 문제가 아니라 여기는 행운식당의 음식 맛 때문이라도 꼭 특별상업지역이 돼야 합니다.”
현성이 성원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