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이계인 보호구역.
냄비나 뚝딱거리는 난쟁이와 재주나 부리는 늑대인간의 관리와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특별구역.
정부의 통제하에 있는 곳이니 당연히 관리자가 존재했다.
이민철 관리소장.
50대 중반의 그는 자신의 직장인 이곳과 자신의 역할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하하하하하. 멍청한 녀석!”
지금도 그는 손가락질하며 웃어 재끼고 있었다.
TV 속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렇게 한참을 웃으며 TV를 보던 민철이 시계를 힐끗 보고는 따분한 표정을 지었다.
‘하아. 아직도 퇴근하려면 4시간이 남았네. 운동 좀 할 겸 한 바퀴 돌고 올까?’
민철이 그렇게 소파에 엉덩이를 들썩이며 고민하고 있을 찰나.
똑똑똑.
“소장님. 최 팀장입니다.”
“크흠. 무슨 일이죠?”
평소 노크 따위를 하지 않는 최성국 관리팀장이 노크했다는 것은 그냥 커피나 한잔하며 노가리를 털러 온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과자 봉지와 음료 캔을 쓰레기통에 대충 쓸어 넣고는 셔츠를 바지 속으로 밀어 넣으며 옷 매무새를 바로 했다.
팀장이 문을 열자 역시나 뒤에 손님이 있었다.
“이 팀장. 손님이 있었구…. 어! 어! 어억!”
소파에서 일어나 환하게 웃으며 문으로 걸어가던 민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니 이성원 길드장님 아니십니까? 아이고. 이런 곳을 어쩐 일로!”
“상의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
자신의 조카뻘도 되지 않는 젊은 사람이지만 민철은 굽신거리며 성원을 맞이했다.
물론 그 옆에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경호는 본체 만 체였다.
“아. 그러셨군요. 그럼. 들어오시지요.”
아무리 신화그룹의 후계자라고 하지만 민철이 이 정도까지 대우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민철은 사무실을 찾은 성원에게서 머리가 아찔할 정도로 강렬한 돈 냄새를 본능적으로 느꼈다.
‘뭔지 모르지만 분명 돈 냄새가 진하게 난다.’
그리고 그 본능적인 재능으로 그는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최 팀장은 그럼 일 보게나.”
최 팀장을 보낸 민철이 먼저 소파로 다가갔다.
“웬 먼지가 이렇게. 자자. 앉으시죠.”
민철은 손으로 소파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를 탁탁 털어 내며 경호와 성원에게 자리를 권했다.
“관광차 오신 건 아니신 것 같은데.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민철이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묻자 성원이 사무실을 둘러보며 답했다.
“소장님. 관광은 아니지만 둘러보고 싶어서 온 것은 맞습니다. 드워프 분들을 만나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자 온 것이거든요.”
“신화 쪽에서 난쟁이…. 아니 죄송합니다. 드워프와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 그러시는 겁니까? 고작해야 식칼이나 냄비를 만들어 내는 게 고작인 이들인데요.”
신화그룹에서 미쳤다고 이유 없이 이곳을 찾았을 리 없었다.
“궁금하십니까?”
“아. 뭐. 제 소관이다 보니 알아야 할 거 같아서요.”
“소장님이 손해 보실 건 전혀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위쪽에서 좋아할 내용이거든요.”
“그게 무슨….”
“제가 커다란 학원을 차릴 생각입니다. 신화의 이름을 단 정말 커다란 학원을요.”
“아. 각성자 교육기관 말씀하시는 거군요.”
민철이 아는 체를 하자 성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계시는군요. 맞습니다. 거기에 이계인도 함께 했으면 해서요.”
“그렇다면?”
민철의 머릿속이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재주나 부리는 늑대인간을 전사로 훈련시키고, 냄비나 두드리는 난쟁이를 장인으로 키우겠다는 이야기 같았다.
그것도 신화의 돈으로, 물론 보호구역에도 지원해 주면서….
‘아주 돈지랄을 못해서 안달이 났구만.’
민철은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물론 표정은 더욱 단단하게 굳혔다.
“워울프에게 전투 교육을, 드워프에게 기술 교육을 하려고 하시는 것 같은데 맞습니까?”
“정확히 보셨습니다. 소장님. 이들에게는 재능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재능을 키울 수 있는 교육 시설을 만들고자 하고요.”
민철은 한숨을 크게 쉬며 말을 이었다.
“길드장님. 이들이 과연 그런 교육을 받고자 할까요? 저는 이들을 오랫동안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입니다. 이들은 이미 타성에 젖을 대로 젖어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교육을 받기 힘든 고령자나 부녀자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당장 관광 수입이 끊어지거나 주방 도구라도 팔지 않으면 삶이 어려워집니다. 물론 정부에서 지원금이 나오지만, 구역 관리하고 보급품을 구하는 것만 해도 빠듯하니까요.”
말은 길었지만 한 줄로 요약하면 이런 말이었다.
-워울프? 드워프? 데려가려면 돈 내놔!
성원은 오히려 이렇게 나와주는 민철이 마음에 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돈으로 해결하는 것은 대한민국 누구보다 자신 있는 성원이었다.
거기다 아무리 자신이 잘 나간다고 해도 정부에 입을 털어서 이빨이 박히려면 같은 쪽 인물이 나서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눈앞에 있는 탐욕스러운 ‘속물’이 바로 그런 인물로 딱이었다.
“어차피 정부 측과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사실 소장님도 이곳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끼실 텐데요?”
이계인 보호구역이 처음 일반에 공개되던 2년 전에는 아주 난리가 났었다.
판타지 소설 속에서나 보던 존재가 공연하니 왜 인기가 없겠는가.
연일 대박이었다.
민철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절로 미소가 지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은 이곳에도 통했다.
연일 대박이던 매출도 점점 하락세를 그렸다.
아직 적자 수준은 아니었지만 이대로라면 적자는 불 보듯 뻔했다.
‘그리되면 이 꿀 보직도 날아가는 거지.’
성원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소장님. 만약 워울프와 드워프 측에서 제 제안을 받아들이면 지금 매출의 2배를 지원해 드리도록 하죠.”
밀당을 준비하던 민철은 성원의 제안에 입을 쩌억 벌렸다.
“두, 두 배요?”
대박 행진이 끝났다고 하지만 지금도 제법 짭짤하게 벌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수익의 2배가 아니었다!
‘매출의 2배라니!’
물론 이 돈이 자신에게 들어오는 건 아니었지만 굴러가는 돈이 많을수록 슬쩍해도 티가 나지 않는 법이었다.
민철은 터무니없는 제안에 어이가 없어 터질 뻔한 웃음을 애써 참아야 했다.
‘신화가의 애물단지’라고 하더니 정말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그렇다면 질질 끌면서 밀당할 필요도 없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민철이 오케이 사인을 보내자 성원이 명함을 꺼내 건넸다.
“이건?”
“아. 제 직통 전화입니다. 도와 드릴 일이 있으면 전화 주십시오.”
금박 명함을 쥔 민철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대박이다! 대박이야!’ 당장 펄쩍펄쩍 뛰며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것을 겨우겨우 억누른 민철이 자신의 명함도 건네며 담담히 말했다.
“알겠습니다. 길드장님.”
“그럼. 공방에 들려 이야기 나눠보고 다시 연락드리도록 하죠.”
“모쪼록 잘 진행되길 바랍니다.”
“오히려 제가 부탁드려야죠. 앞으로 정부 쪽에 이야기 좀 잘 해 주십시오. 관광 사업보다 교육 사업이 더 좋을 거라고 말입니다.”
성원이 민철의 손을 덥석 잡으며 환하게 웃었다.
***
“정수야!”
“정수야!”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달려가 정수의 몸에 꽂힌 전기침을 뽑아냈다.
보안요원들이 갑자기 나타나 난입한 경호와 성원을 보며 멈칫했다.
경호를 모르는 이들은 있었지만, 성원을 모르는 보안요원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상황 파악이 안 된 성원이 보안요원들을 노려보며 물었다.
그런 반응에 보안요원들도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성원 길드장님. 귀 길드의 박정수 헌터님이 이곳, 이계인 보호구역을 무단침입했습니다. 저희는 규정에 따라 행동했을 뿐입니다.”
“네엣? 정수가 이곳을 무단침입했다고요?”
기절한 정수를 깨워서 묻기도 어려웠다.
일이 복잡해질 듯 보이자 성원이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어 스피커폰으로 전환시켰다.
-아. 네. 누구시죠?
“소장님. 저 이성원입니다.”
공무원 사회에선 직급이 깡패였다.
소장은 날 호구로 보겠지만, 그 호구의 돈주머니에 빨대를 꽂아 단물을 빨기 전까지는 꼼짝없이 집사 노릇을 해야 했다.
‘빨대 꽂기 전에 처리하면 그만이니까.’
성원이 바보 호구여서 소장에게 돈 냄새를 흘린 것이 아니었다.
-아, 넵. 아니 무슨 일이십니까?
“좀 문제가 생겼습니다.”
거기까지 이야기한 성원이 보안요원 중 가장 앞에 있는 이를 보며 물었다.
“혹시 이 일로 피해 사항이 있습니까?”
“아니, 그런 건 없습니다.”
-보안대장인가? 지금 그게 무슨 소린가? 피해 사항이라니?
보안대장이 정수가 무단침입하여 테이저건에 쓰러진 상황까지 소장에게 짤막하게 전달했다.
-보안대장! 이, 이게 무슨! 아니 일 처리를 그따위로 하면 어쩌나!
보안대장의 이야기에 관리소장은 머리가 아팠다.
사고도 대형사고였다.
성원은 자신의 호구 물주였다.
절대로 그런 VVVIP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어서는 안 됐다.
사실 보안대장은 무단침입을 한 ‘거수자’를 쫓아 아무런 피해 사항 없이 제압했으니 상을 줘도 모자란 상황이었다.
문제는 그 ‘거수자’가 VVVIP의 오른팔인 정수라는 점이었다.
-아니! 피해 사항도 없는데 민간인에게 무턱대고 테이저건을 쏘는 경우가 어디 있나!
스피커를 통해 분노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호구 물주의 기분이라도 상할까 봐. 아주 지극 정성이시네.’
성원이 그런 소장의 반응에 피식 웃었다.
스피커를 통해 전해질 정도로 한숨을 크게 쉰 소장의 말이 이어졌다.
-길드장님. 저희 보안팀이 워낙 철저하다 보니 조금 과격한 면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극도로 저자세를 보이는 소장의 모습에 보안팀이 입을 쩍 벌렸다.
“소장님! 저희는 규정에 의거….”
-보안대장! 규정은 무슨! 피해 사실도 없는 일로 테이저건을 쏜 것은 엄연히 과잉대응이네!
성원도 더는 일이 커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에 소장을 달래기 시작했다.
“잘못은 저희 쪽에서 먼저 했으니 기절한 녀석을 대신해 사과드리겠습니다.”
-우리 쪽에서도 과하게 대응한 부분이 있으니 적절하게 넘어갔으면 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때 쓰러져 있던 정수가 끄응! 하는 신음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으으, 형님들. 아, 나 기절했었지.”
아직 정신을 덜 차린 정수가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런 모습에 성원이 깊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소장님.”
그렇게 전화를 마무리한 성원이 보안요원들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신화그룹 차원에서 적절한 보상을 하도록 진행하겠습니다.”
옆에서 눈만 껌뻑거리고 있던 정수의 머리를 성원이 억지로 눌렀다.
“제가 급히 뭘 가져오라고 했는데. 이 녀석이 오바 한 것 같습니다. 워낙 무식한 녀석이어서 말이죠.”
성원의 말에 정신을 대충 차린 정수도 이어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앞뒤 분간 못 하고 일을 벌였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보안대장이 그런 모습에 입을 열었다.
“저희도 과잉대응했음을 인정합니다. 죄송합니다.”
쭈뼛거리던 보안요원들도 대장이 사과하자 작게 투덜대며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그렇게 보안팀이 사라지자 성원이 정수의 귀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야. 인마. 뭐야? 미쳤어. 무단침입이라니.”
정수가 손에 쥔 칼자루를 슬쩍 보이며 대답했다.
“이걸 급하게 고쳐야 하는데. 이곳이 떠올라서.”
“급하긴 뭐가 급한데.”
검령의 사정을 모르는 성원은 여전히 정수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경호 님. 여기 계셨네요.
건너편 담벼락에 은신하고 있던 흰둥이가 멀뚱히 서 있는 경호에게 전음을 날렸다.
-제가 검령을 살리려면 최대한 빨리 최용사공방으로 가서 검을 구하라고 했거든요.
-지금 정수가 아주 똥줄이 타고 있겠네.
-그러니 담을 타고 넘어서 여기까지 무작정 달려왔죠.
흰둥이의 말에 이 상황이 이해가 된 경호가 피식 웃으며 성원에게 다가가 말했다.
“성원아. 우선 공방부터 가자.”
“알았어요. 형님. 야. 따라와.”
경호가 앞장서서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니 커다란 창고 같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각성자라면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만한 강한 ‘화기’가 느껴졌다.
“형님들. 빨리 들어가요. 저 현기증 날 거 같아요.”
정수가 공방이 가까워져 오자 경호와 성원의 등을 떠밀며 성화를 부렸다.
그렇게 공방을 찾은 그들의 앞에는 치열한 싸움이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