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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용사의 골목식당-115화 (115/335)

#115화

세계수 위그드라실.

주신이 가장 먼저 싹을 틔웠다고 전해지는 나무로 우주를 관통하는 세상의 시작이자 끝인 고목(古木)이자 거목(巨木)이었다.

당연하게도 위그드라실의 열매는 주신이 관리했고 ‘미르’에게 정령계를 맡기며 그 열매를 주어 정령계에도 세계수가 자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지구, ‘행운공원’에 세계수가 자라게 되었다.

“이제 세계수도 제법 컸어.”

경호는 병문안을 다녀와 흰둥이와 공원 산책을 핑계로 나왔다.

오랜만에 공원을 찾은 경호였기에 운애는 물론 땅개와 골병이까지 총출동했다.

-아빵! 나랑 놀아주러 온 거야?

이제 제법 말을 잘하는 골병이가 파닥거리며 어깨 위로 올라와 부리로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

“그렇기도 하고 겸사겸사.”

“겸사겸사? 그게 모야?”

경호도 자신을 아빠로 여기는 골병이랑 놀아주지 못한 게 미안했지만 최근 바빴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또 할 일이 생겼다.

“할 일이 생겨서 그것을 하러 왔거든.”

경호가 아공간을 열어 투명한 수정 구슬을 꺼내 들었다.

-아빵. 그건 뭐야?

골병이는 기감도 약하고 지식도 얕아 몰랐지만.

-엇! 주인님! 그거 정령석 아닙니까?

-어? 경호. 그거 어디서 구했어? 흔한 게 아닌데.

서리거인의 심장에서 꺼낸 정령석.

당연히 흔한 게 아니었다.

“운이 좋았어. 이번 던전에서 서리거인이 나왔는데. 대마법사였거든.”

위드그라실의 뿌리에서 태어난 거인족이라고 심장에 다 정령석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도 이렇게 크고 질 좋은 정령석은 정령계에서도 구하기 힘든 물건이었다.

말 그대로 운이 좋았다.

-주인님. 저 그거 한 번만 만져보면 안 될까요?

땅개의 눈동자가 아이돌 가수를 눈앞에서 본 여고생처럼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경호. 나도 한 번만 만져볼게.

운애의 눈빛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둘 다 스톱!”

경호의 말에 다가오던 땅개와 운애가 멈춰 섰다.

“이건 절대 안 돼!”

절대 안 된다!

-주인님! 한 번만요.

-경호. 그냥 보기만 한다니까.

그들의 반응에 흰둥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경호 님. 저 둘이 왜 저런 겁니까? 정령석이 뭐길래요?

지구에선 구할 수 없는 물건이기에 흰둥이도 정령석에 대해선 모르고 있었다.

정령석은 정령력이 극도로 응축되어 만들어진 결정체(結晶體)였다.

“음. 흡연자의 ‘돗대’와 같은 존재지.”

효과를 따지면 무협지에서 나오는 ‘대환단’이나 ‘만년설삼’, ‘공청석유’ 같은, 한마디로 ‘정령’에게 끝내주는 물건이었다.

-아! 어마어마한 물건이네요.

“그렇지. 그러니까 촉수 금지! 이건 용도가 따로 있다고!”

경호는 정령석을 보며 군침을 흘리고 있는 운애와 땅개를 모른 척하며 세계수로 다가갔다.

“참 척박한 곳에서 잘 자랐네. 고맙다. 고마워.”

경호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가지 끝이 부르르 떨며 응답했다.

땅개가 땅을 비옥하게 하고 운애가 정령력을 담아 물을 주긴 했다.

하지만 각성자 시스템이 운영되며 대기 중의 마나는 거의 고갈된 상태였고 마계의 침략으로 마기 농도도 높았다.

거기다 세계수의 성장에 필수적인 신력이나 정령력 역시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이었다.

“자아. 진작 챙겨줬어야 했는데… 조금 늦었네.”

경호가 세계수를 향해 정령석을 내밀자.

뚜득. 뚜드득.

거친 소리를 내며 뿌리 하나가 땅에서 올라와 경호가 들고 있던 정령석을 휘휘 감았다.

그러고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한 번만 본다니까. 치사해.

-하아. 정령석이….

그 모습에 운애와 땅개는 아쉬워했다.

그때였다.

스아아아아아아아아아.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에 갑자기 가지가 떨리며 나뭇잎이 흔들리며 소리를 냈다.

“오. 반응이 빠르네.”

마치 CG로 그려낸 것처럼 가지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기 시작했다.

대략 100개쯤 달린 것 같았다.

붉고 탐스러운 것이 사과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러자 한쪽에서 한숨 쉬며 허탈해하고 있던 운애와 땅개가 경호의 옆으로 다가왔다.

-경호. 이 과일은 뭐야?

-주인님. 이 과일에서 정령석 같은 기운이 흘러나오는데요? 먹어봐도 됩니까?

“뭐? 저게 뭔 줄 알고 먹는다는 거야.”

-세계수 열매?

-주인님. 열매가 아닙니까?

“저게 다 익으면 정령으로 변한다고. 먹긴 뭘 먹어.”

경호의 말에 세계수에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처럼 생긴 과일을 보며 운애와 땅개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정령과(精靈果). 정령이 태어나는 과일이라고.”

정령과(精靈果).

세계수는 신력, 정령력, 마력을 모두 흡수하여 조화를 이루며 성장하는 나무였다.

-주인님. 정령이 저렇게 태어나는 겁니까?

땅개는 자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게 태어났기에 그저 신기했다.

땅개의 물음에 경호가 고개를 저었다.

“물론 아니지. 정령은 보통 원래 어떠한 기운이 한곳에 맺히고 맺혀 그것이 응축되면서 생명을 얻어 만들어지는 거거든. 하지만 어디든 예외는 있으니까. 너도 그렇고.”

-네엣? 저요? 제가 다르다뇨? 저도 저렇게 열매에서 태어난 정령이었습니까?

아! 내가 말 안 했었나?

정령과에서 태어난 정령은 아니었지만, 세계수가 만들어낸, 보통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태어난 정령인 것은 맞았다.

“아. 말 안 했나? 땅개, 너는 세계수가 처음으로 만든 정령이야. 보통 세계수는 싹을 틔우면서 자신을 돌볼 정령을 만들어 내거든. 그래서 보통의 정령과 다르게 기억이 없었던 거지.”

-내, 내가 정상이 아니었다니….

“정상이 아닌 건 아니고. 품고 있는 기운이 더 순수하지. 잠재력이 크다는 장점도 있고.”

난데없이 출생의 비밀을 들어 버린 땅개가 입을 쩍 벌렸다.

경호는 ‘내가 세계수의 자식이라니! 내가 세계수의 자식이라니!’를 중얼거리는 땅개를 보며 말을 이었다.

“오! 나온다!”

경호의 말에 운애와 땅개가 세계수에 매달린 정령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팡! 팡! 팡! 팡! 팡!

열매가 번쩍하며 터지며 그 속에서 정령이 뿅! 하고 튀어나왔다.

찌릉. 키링. 코르릉. 뾰웅.

최초의 땅개보다도 못한 최하급 정령이었다.

팡! 팡! 팡! 팡! 팡!

계속해서 정령과가 터져 나가며 태어난 정령들이 행운공원 하늘을 가득 메웠다.

새파란 물의 정령이 분수처럼 여기저기로 물을 뿌리고.

불의 정령이 화르륵 불길을 일으켰다.

번쩍이는 번개의 정령도 화려하게 존재를 알렸다.

그 밖에도 나무의 정령, 빛의 정령, 꽃의 정령 같은 다양한 정령이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와아. 오랜만에 보니 더 이쁘네.”

마치 놀이공원에서 마지막 불꽃 쇼를 보는 듯한 광경이었다.

-우와. 경호 님. 최하급 정령들이긴 하지만 이렇게 정령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은 저도 처음 보네요.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거야.”

물론 엘프나 정령술사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볼 수 없겠지만.

운애의 주변으로 물정령들이 날아와 찌링! 찌링!거리며 춤을 추듯 날아다녔다.

운애도 기분이 좋은지 환하게 웃으며 가볍게 춤을 추듯 움직였다.

그런데.

“어우. 제법 잘 추잖아.”

클럽에서 제법 놀아본 느낌이 실려있는 몸놀림이었다.

다른 한쪽에선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는 중이었다.

-하하하하. 알았어. 놀아 줄게. 하하하하.

땅개 역시 운애와 별반 차이는 없었다.

커다란 장수풍뎅이의 모습을 한 땅개에게 자그만 벌레 형태의 땅정령들이 들러붙어 장난을 치고 있었다.

항상 진지한 표정의 땅개에게서 터져 나온 웃음소리에 경호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신수인 골병이마저 하늘을 날아다니며 정령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생각 이상으로 많은 수의 정령과 더 다양한 종류의 정령이 태어나 경호도 기분이 좋았다.

사실 정령석을 세계수에 먹인다고 해도 정령과가 몇 개나 열릴지 경호도 알 수 없었기에 도박에 가까운 행위였다.

‘정령계에서는 넘쳐나는 게 정령력이었으니….’

그렇기에 세계수가 정령석 같은 물건으로 정령력을 따로 흡수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정령과가 주렁주렁 열렸다.

한 번에 열리는 숫자만 수천 개가 넘었고 그것에서 태어나는 정령도 중급 이상인 경우가 많았다.

-경호 님! 오! 극지던전 돌면서 거인족 다 때려잡아 정령석 모아서 계속 이렇게 만들면 정령 생태계가 회복될 수도 있겠는데요! 당장 극지던전 찾으러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경호가 흰둥이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선 극지던전이 흔하지도 않지만, 대마법사급 서리거인이 잘 있지도 않고.”

-그래도 가능성은 있으니….

“하여간 너는 그 머리로 도대체 수호신은 어떻게 한 거야?”

-네엣?

흰둥이는 ‘저도 하기 싫은데 주인님이 시켜서 억지로 했다고요!’라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지만 말해 봐야 본전도 못 찾는다는 것을 잘 알기에 애써 말을 삼켰다.

입을 삐쭉이는 흰둥이를 보며 경호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흰둥아. 잘 들어봐. 사과나무 한그루가 있어. 농부가 좋은 비료를 주고 물도 잘 주고 하니 맛있는 사과가 열린 거야. 기분이 좋아진 농부가 신이 나서 비료를 엄청나게 때려 붓고는 물도 종일 뿌려댔어. 자아. 그럼. 맛있는 사과가 엄청나게 열리겠네? 그치?”

경호의 물음에 입을 삐쭉이던 흰둥이가 도로 입을 넣었다.

“사실 지금도 세계수는 꽤나 무리한 거라고. 그런데 정령석을 구해서 마구 때려 넣자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꼭 갈라야 속이 시원하겠냐? 으이구.”

-제 생각이 좀 짧았네요. 경호 님.

흰둥이가 앞발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자 경호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야. 생각이 짧다니. 그게 아니라 넌 생각이 없다고 해야지. 짧은 건 그래도 있다는 거잖아. 자아. 그러니까 그냥 아무 생각 하지 말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치잇!

‘삐뚤어질 테다.’를 중얼거리며 흰둥이는 경호의 뒤를 쫓았다.

***

몸을 회복한 성원이 가장 먼저 간 곳은 서초동에 있는 신화그룹 사옥이었다.

“오랜만이네.”

리스폰 던전 프로젝트로 매일같이 왔다 갔다 하던 때가 6개월 전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엇! 이성원 길드장님! 안녕하십니까!

지나가는 사원마다 자신에게 큰 목소리로 인사를 꾸벅했다.

-오랜만이군. 어서 오게. 회장님 뵈러 왔나?

이름은 잘 기억 안 나지만 그룹 임원도 자신을 보며 아는 체를 했다.

그렇게 회장실 앞까지 왔다.

“아. 오셨습니까? 비서실로 미리 연락 주시고 오시지 않고요.”

아버지의 비서까지 예전과 다르게 친절했다.

회장실 앞, 오늘 이곳까지 오며 만난 사람들의 태도로 자신이 열심히 살았다는 것을 증명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6개월 전만 해도 비웃는 듯한 시선을 주거나 아예 무관심으로 반응하던 이들이었다.

“아버지와 따로 연락하고 오는 길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들어가 보셔도 됩니다.”

성원이 환하게 웃으며 회장실 문을 열며 들어갔다.

“아버지. 저 왔습니다.”

회장실 중앙에 놓인 소파에 이건용 회장과 이성준 대표가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왔어? 근데 너 도대체 무슨 마술을 부린 거냐?”

성준이 묘한 표정으로 성원에게 질문을 던졌다.

“뭐가?”

성원이 소파에 앉으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성원아. 오늘 아침에 VIP 라인에서 직접 연락이 왔다.”

“뭐가요?”

“신화학원 지으란다.”

건용의 말에 성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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