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중학교 2학년.
그 미친놈이 나보고 ‘고아년’이라고 했고 나는 그냥 다시는 그 말을 뱉지 못할 정도로 밟아줬을 뿐이었다.
나는 잘못이 없었다.
무튼 내가 그 양아치를 밟아 버리자 아무도 다시는 내 앞에서 ‘고아년’이라는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내가 이겼고 평화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학교폭력’이라는 죄목으로 전학을 가야 했다.
그곳 역시 양아치들은 많았다.
하지만 나는 더는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되어서는 곤란했다.
‘착한’ 다현이 돼야 했다.
그렇게 조용조용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때.
참 답답한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최경호.
멀쩡하게 생긴 녀석이 양아치들의 빵셔틀이나 하고 있었다.
그냥 들이 받아 버리고 말지.
물론 지금의 난 그러면 안 됐지만.
하여간 답답한 녀석이었다.
“경호는 너는 아비 없는 새끼라서 봐주는 거야!”
듣기 싫었다. 하아.
“하여간 애비 없는 티 졸라 낸다니까!”
아. 적당히 하지. 양아치 새끼들.
“너가 답답하게 구니까. 니 애비도 답답해서 죽은 거야! 이 새끼야!”
선 넘네! 이 새끼들!
우득.
나도 모르게 이가 갈렸다.
으으으으. 답답해 죽겠네.
언제고 저 양아치 새끼들 참교육시켜주고 발암 유도하는 저 답답한 녀석도 손 좀 봐줘야 할 거 같았다.
그리고 기회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찾아왔다.
급식소 뒤편에서 답답한 녀석이 평소 밟고 싶던 양아치 2명에게 끼어서 빌빌거리고 있었다.
참교육을 내릴 것인가? 그냥 지나갈 것인가? 잠시 고민했다.
그때 그 양아치가 나에게 ‘고아년’이란다.
아. 괜히 고민했네.
다행히 CCTV는 없는 거 같았다.
이게 정말 중요했다.
교실에도, 복도에도, 옥상에도, 학교 곳곳에 CCTV가 엄청나게 깔려 있었다.
그전 학교에서도 분명 ‘고아년’이라는 말을 귀에 피가 나게 들으며 참고 참다 정의의 심판을 내렸음에도 영상만 찍히는 CCTV에 그냥 내가 깡패 양아치로 둔갑해 학폭의 가해자가 되었다.
“여기서 이렇게 패고 그러면 문제 안 생기냐? 요즘엔 CCTV 다 깔려있잖아.”
이렇게 묻자 사각지대라 안전하다고 큭큭거리는 양아치 새끼들.
좋아! 딱 좋아!
그리고 참교육을 친히 내렸다.
다시는 ‘고아년’이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게끔.
그리고 그 답답한 녀석을 봤다.
역시나 참 멀쩡하게 생겼다.
“너도 참 답답하다.”
나의 말에 답답한 녀석은 그냥 묵묵히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하아. 정말.
“가자.”
그제야 가방을 챙겨서 따라오는 녀석.
생긴 게 맘에 들어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라서?
모르겠다.
그냥 이 ‘경호’라는 답답한 녀석에게 시선이 가고 신경이 쓰였다.
“다현아, 혹시 우리 집에서 떡볶이 먹고 갈래?”
“떡볶이?”
뭐지? 누구의 집에 가본 적도. 누구와 떡볶이를 먹어본 적도 없었다.
‘고아’라는 낙인이 찍힌, 보육원이라는 배경을 가진 나는 지금까지 그랬다.
“떡볶이는 무슨.”
사실 떡볶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아니 원장 아빠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간식이 떡볶이였다.
“나 떡볶이 엄청 잘하거든.”
“정말?”
쳐다만 봐도 답답한 녀석이긴 했지만, 이렇게 보니 그래도 이목구비도 뚜렷한 게 제법 괜찮은 녀석처럼 보였다.
거기다 떡볶이도 잘한다니까.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다니며 단짝이 되었고.
그 후 경호가 엄마를 도와 식당을 할 때는 매일같이 가서 같이 저녁을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경호가 사라졌다.
하루, 이틀, 사흘,
뜬눈으로 경호를 기다리던 엄마는 결국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쓰러졌다.
나는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하지만 내가 겪은 세상은 경호 녀석보다 더 답답했다.
25살 편부모 고졸 남성.
그게 뭐! 그게 뭐 어쨌다고!
실종이 아니라 가출이란다.
‘민중의 지팡이’께서 피식거리며 마음먹고 가출하면 찾기 힘들 거라고.
‘여기보다 흥신소나 가보시죠.’ 이런다.
하아. 참아야지. 엄마도 몸져누운 상태에서 내가 참아야지.
그때 귓가로 참 듣기 싫은 소리가 들렸다.
-25살 먹은 남자가 사라졌으면 100% 딴 여자랑 나른 거지.
뭐? 참기는 지랄.
“야! 이 미친 새끼야! 뭐! 흥신소? 실종신고 하러 온 사람한테 그게 할 소리야! 이 개새끼야! 그리고 딴 여자랑 날랐다고!”
그날 좀 심하게 지랄을 떨어서 자칫하면 공무집행 방해로 문제가 커질 뻔했다.
다행히 뒷말 깐 게 있어서 좋게 넘어갔지만.
결국엔 흥신소도 찾았고 엄마와 함께 전단도 돌리고 지역신문에 광고도 내봤다.
다 허사였지만.
경호가 사라지고 가슴 한쪽이 뻥 뚫린 것 같은 허전함이 있었다.
가끔은 ‘나에게 경호가 참 소중한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현에게는 경호가 유일한 친구였고 그 답답한 녀석도 그랬다.
이성 관계였지만 모든 것을 까놓고 다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친구였다.
그런데 그런 유일한 친구가 사라졌다.
하루하루 힘겨웠다.
물론 엄마의 힘듦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엄마.
처음 ‘경호 아주머니’에서 ‘어머님’이 되었고 그러다 ‘어머니’라 부르다 이제는 ‘엄마’가 되었다.
원장 아빠가 나를 세상에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준 분이라면 엄마는 내게 세상은 살아갈 만한 곳이라는 걸 알게 해준 분이었다.
그런 엄마가 아팠다.
몇 년간 계속된 스트레스와 과로가 쌓이고 쌓여 ‘암’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대격변’이라고 부르는 ‘2028년 3월 22일’이 되었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엄마와 함께 골목 입구에서 지나가는 이들에게 ‘경호’를 찾기 위한 전단을 돌리려고 할 때였다.
파치치치치치치치칙!
뭔가 굉장히 이질적인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전기 합선이라도 되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였다.
“뭐야? 엄마. 우리 이만 들어가….”
엄마와 함께 자리를 피하려다 비현실적인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공간이 깨졌다고 해야 하나? 아니 그게 말이 되는 표현인가?
훗날 ‘균열’이라고 불리는 것을 보게 되었다.
키아아아아아아악!
이상한 소리와 함께 털이 수북한 거대한 맹수의 발이 튀어나왔다.
사자? 뭐 그런 종류의 발 같았다.
다만 발의 크기가 사람 얼굴만큼이나 컸다.
비명이 난무하고 거리는 금세 엉망이 됐다.
여기저기에서 엄청난 크기의 사자 같은 괴물이 튀어나왔다.
그 괴물은 배가 고팠는지 깨진 공간에서 나오자마자 사람을 씹어 삼키기 시작했다.
앞발을 휘두르면 사람이 터져 나갔고 입을 벌려 물어뜯으면 허리가 잘려나갔다.
아비규환.
지옥이 펼쳐졌다.
“결국, 우리 경호는 보지 못하고 가겠구나. 다현아. 괜히 이 어미 돕는다고 와서 너까지.”
7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렸던 엄마는 체념한 눈빛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 커다란 사자가 달려오고 있었다.
남편의 죽음. 아들의 실종. 고생, 고생, 고생, 고생. 죽도록 고생만 했다.
그러다 폐암. 그리고 최후는 이런 지옥 같은 세상이라니!
‘신’이라는 게 있다면, 그리고 그 ‘신’이라는 존재에게 ‘양심’이라는 게 있다면 이럴 순 없었다!
아니!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어딨어!
세상 나쁜 놈들은 떵떵거리며 잘만 사는데!
“죽긴 누가 죽어! 엄마! 엄마는 내가 살릴… 으윽!”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니 단순하게 두근거리는 것을 넘어 터질 듯이 요동쳤다.
“크윽! 큭!”
바로 ‘각성’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었다.
뜨거운 기운이 심장에서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고개를 드니 자신과 엄마를 노리고 달려오는 거대한 사자가 보였다.
처음 시도하는 것이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눈에 보일 듯 그려졌다.
손을 뻗자 번쩍하며 푸른색 불꽃이 피어올랐다.
“뭔진 모르지만! 죽엇!”
달려오는 사자를 향해 불꽃을 날렸다.
콰아아앙!
사자의 머리가 터져나가며 그대로 쓰러졌다.
“다. 다현아!”
나는 놀란 얼굴의 엄마를 보다 손에 불꽃을 피어 올리며 소리쳤다.
“이 새끼들! 다 죽었어!”
‘화염의 마녀’의 전설이 시작된 날이었다.
그렇게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면서 엄마를 많이 도와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폐암은 날로 나빠졌다.
그렇게 3년이 지난 어느 날.
매일같이 찾고 기다리던 답답한 녀석이 멀쩡히 돌아왔다.
자신은 머리도 빨갛게 변했고 눈가 주름도 생겼는데 이 답답한 녀석은 10년 전이랑 달라진 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뭐? 이게 말이 돼?
그래. 뭐. 살아 돌아왔으면 된 거지.
엄마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르는 것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짜식. 그런데 왜 더 잘생겨진 거 같지?’
묘하게 분위기가 변해 보였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랬다.
괜히 신경 쓰이게.
그런데 갑자기 아랫배가 시원했다.
으응? 뭐지? 아. 내가 꿈을 꾼 건가?
아! 서리거인!
그 답답한 녀석의 뒷모습을 언뜻 본 것 같은 착각과 함께 기억이 끊겼다.
“으으음.”
***
다현은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최고의 VIP인 성원이 병실을 찾자 담당 주치의가 다현의 상태를 브리핑했다.
“마나코어의 회복을 위해 강제로 재운 상태로 마나 회복포션과 세포 재생을 돕는 영약을 투입하는 중입니다.”
“괜찮겠죠?”
성원은 1시간 전에도 들었던 내용이었지만 다시 듣고 그때와 똑같은 질문을 다시 던졌다.
“마나코어의 손상이 심한 상태라 회복에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현 환자님의 회복력이 좋아 다른 문제는 없을 듯합니다.”
“그렇다고 하네요. 형님.”
성원의 말에 경호가 운애를 보며 말했다.
“누나. 다현이 좀 봐줘.”
운애가 다현에게 다가가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그녀의 배에 손을 올렸다.
주치의가 움찔했지만 성원의 ‘괜찮으니 나가보세요.’라는 말에 아주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이럴 때는 정말 성원이 다르게 보였다.
역시 재벌 2세!
샤아아아아아아아아아.
상쾌한 느낌의 마력 파동이 병실을 가득 채웠다.
운애의 맑고 깨끗한 정령력이 뿜어내는 기운이었다.
그 기운이 이내 빨려 들어가듯 운애의 손으로 몰려들었다.
그것을 보던 성원이 경호를 보며 물었다.
“형님. 그런데 물의 정령술사가 정령도 안 부르고 저렇게 치유도 할 수 있는 거예요?”
“야. 내가 뭘 알겠냐? 그런 건 나보다 당연히 니가 더 잘 알겠지.”
“운애 씨랑 친하시니까 알 줄 알았죠.”
“아마 우리 눈에 안 보이게 불러냈겠지. 정령은 안 보일 수도 있다고 하잖아.”
경호는 뜨끔했지만, 적당히 둘러대며 넘어갔다.
“다 끝났어요. 다행히 마나코어의 손상이 심하지 않아 수월하게 치유할 수 있었어요.”
사실 손상이 심했지만 운애의 능력으로 수월하게 치유할 수 있었기에 곧이곧대로 말할 필요는 없었다.
“으으음.”
낮은 신음과 함께 다현의 감겨있던 눈이 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