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아티팩트의 등급은 ‘일반-고급-희귀-영웅-전설-신화’로 나뉜다.
뭐, 성유물이나 등외의 아티팩트도 있지만, 아주 특수한 경우니까 열외로 치고.
마석을 이용하여 만들어내는 아이템이 아닌 던전 공략이나 마수 사냥을 통해 구할 수 있는 아티팩트는 가장 기본적인 일반 등급의 물건만 해도 보통 억 단위의 금액에 거래됐다.
등급이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보통 금액은 몇 배씩 상승하기 때문에 영웅급 아티팩트는 최소 수백억까지 하는 국보급 보물이었다.
설호의 공격에도 흠집 하나 나지 않는 견고함이나 자체적으로 불꽃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면 영웅, 어쩌면 전설급 아티팩트일지도 몰랐다.
특히나 호돈은 얼마 다루진 않았지만, 이 방패가 너무나 맘에 들었다.
헌터가 좋은 장비 욕심이 나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성원아. 혹시 앞으로 던전 공략 갈 때 이거 좀 빌려 쓰면 안 될까? 방패돌진 기술 연습해서 쓰면 던전 공략에 도움 되고 좋을 거 같아서….”
호돈이 길드장인 성원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호돈의 질문엔 기본적으로 던전에서 나온 ‘상품’인 방패를 팔지 말아 달라는 요청과도 같은 것이었으니까.
“형, 지금 그 말은 그 방패를 팔지 말라는 소리로 하는 거죠?”
성원의 물음에 호돈이 머릴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미안한데. 그게 던전에서 나온 물건 처분에 대해서 관여하려고 말 한 건 아니고 그러….”
“호돈이형.”
“어, 어어.”
미안해 죽겠다는 표정의 호돈을 보며 성원이 피식 웃었다.
“그거 형이 쭉 써요.”
“어? 그럼, 판매 안 할 거야? 이거 진짜 전설급이면 300억 이상 할지도 모르는데.”
“300억이 뭐. 5000억도 날릴 뻔했는데.”
“정말 안 팔 거라는 거지? 그럼, 던전 공략 가면 내가 좀 쓸게?”
호돈의 말에 성원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아. 그렇지. 알았어. 다른 방패 구해서 방패돌진 연습부….”
“형, 그 방패 가져요. 어차피 영웅급 방패 쓸 사람 우리 길드에서 형밖에 없어. 괜히 대여니 뭐니 하지 말고 형이 가져.”
던전 공략 중 나온 모든 것은 길드 소유였다.
신화길드는 오롯이 신화그룹의 힘으로 성원이 지분 100%를 가지고 있는 개인 길드였으므로 ‘방패’ 역시 당연히 성원의 소유였다.
영웅급, 어쩌면 그 이상의 등급을 가졌을지 모를 아티팩트를 성원은 별거 아니라는 듯 호돈에게 가지라고 했다.
“어? 뭐라고?”
“아이. 진짜. 형 가지라고. 아, 나도 호구는 아니니까 길드 탈퇴할 때는 길드에 반납하고 가야 해. 뭐, 봐서 퇴직금으로 줄 수도 있고.”
호돈이 바닥에 놓인 방패와 성원을 번갈아 쳐다보며 입을 쩍 벌렸다.
“성원아. 정, 정말이지?”
아이템과 아티팩트는 차원을 달리하는 물건이었다.
마도공학 기술로 만들어진 아이템은 성능은 우수했지만 마석의 힘으로 작동하기에 고장이나 폭주가 잦았다.
그렇기에 같은 장비라도 아이템은 일회용 취급, 아티팩트는 명품으로 취급되었다.
“이 아티팩트를 나한테 준다고?”
“길드 나갈 때는 뱉어 놓고 나가야 하는 거니까. 준다기보다 장기 임대쯤 되는 거지.”
어차피 다른 길드로 이적할 마음이 없는 호돈에게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호돈이 입이 찢어질 듯 환하게 웃으며 과장되게 성원에게 굽신거렸다.
“변치 말고 충심을 다하도록 하라!”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전하!”
성원과 호돈이 사극을 찍고 있을 때 다현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파동은 분명 S급 이상 수준이었어. 그런데 벌써 재난종 마수만 4마리가 튀어나오다니….’
S급 던전은 보통 중급 정도의 재난종 마수가 보스로 있는 던전이었다.
5급 재난종 마수인 설호가 4마리나 나온 이상 이제는 보스급 마수가 나올 순서였다.
‘설마 멸망종은 아니겠지?’
그렇다는 것은 설호 4마리를 합친 것보다 강한 무언가가 있다는 소리였다.
“다들 긴장해. 이제 보스급 마수가 나올 테니. 설호 이상 되는 마수면 한방만 허용해도 성원이나 정수는 위험하니까.”
다현의 말에 성원과 정수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불이 타오르는 방패를 든 호돈을 선두로 그 뒤를 따라 다현과 성원, 정수가 뒤를 따라 천천히 눈보라를 헤치며 나아갔다.
***
-경호 님. 그걸 왜? 그거 찹쌀떡 아닌가요?
쫄깃한 새하얀 떡에 팥앙금이 가득 들어간 찹쌀떡이 담긴 그릇을 경호가 아공간에서 꺼냈다.
“맞아.”
울피도 호기심이 생겼는지 귀를 쫑긋거리며 물었다.
-용사님. 찹쌀떡을 왜?
흰둥이나 울피도 찰쌀떡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눈보라가 몰아치는 이곳에서 왜? 갑자기.
“우선 하나 먹어봐.”
울피가 입을 벌려 경호가 건네는 찹쌀떡을 한입에 넣었다.
얌얌얌얌.
-움움. 이거. 움. 엄청 쫄깃하고 말캉거리네요. 움움. 그리고 달콤해요.
“그거 유명한 집에서 산 거거든.”
찹쌀떡을 먹은 울피가 황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안에 감도는 여운을 즐겼다.
그것을 본 흰둥이도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경호에게 물었다.
-경호 님. 저는요?
‘울피는 입이고 저는 주둥입니까?’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흰둥이는 최대한 순화하고 압축해서 경호에게 전달했다.
경호가 피식 웃으며 몰아치는 눈보라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경호의 손짓에 따라 눈보라가 한데 뭉치며 주먹만 한 눈덩이가 만들어졌다.
“좋아.”
결계가 걷히며 눈덩이가 그릇 앞으로 다가오자 경호는 그것을 그릇에 담고는 찹쌀떡을 잘게 뜯어내며 비비기 시작했다.
-아, 아니. 경호 님! 그게 도대체! 먹는 거로 장난치면 어떡합니까!
-아니 그 맛있는 찹쌀떡을 아깝게!
‘아깝다!’라는 생각이 흰둥이와 울피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둘이 보기에 경호의 행동은 그저 맛난 찹쌀떡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거의 다 됐으니 기다려봐.”
하지만 결국 찹쌀떡을 먹지 못한 흰둥이는 입을 삐쭉 내밀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눈과 찹쌀떡이 한데 섞여 죽처럼 변해있는 상태였다.
쫄깃하고 달콤한 맛이 매력인 찹쌀떡은 결국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 경호가 아공간에서 숟가락을 꺼냈다.
솔딘이 정령계에서 만들어 준 숟가락으로 무려 미스릴 합금으로 만들어 어떤 독이든 판별할 수 있는 아티팩트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물론 경호에게는 그냥 숟가락이었다.
“자아. 흰둥아. 이거 먹어봐.”
경호가 완성된 팥빙수를 숟가락으로 크게 퍼서 흰둥이에게 내밀었다.
-경, 경호 님. 지금 이걸 저한테 먹으라고 주신 겁니까?
흰둥이는 이런 거로 속 좁아 보일까 봐 울컥울컥 속에서 올라오는 걸 억지로 참았다.
별거 아닌 찹쌀떡이었지만 달라고 할 때 안 주더니 괜히 눈이랑 마구 섞어 엉망으로 만든 죽 같은 걸 만들어서는 먹으라고 하니….
“뭐야? 팥빙수 싫어해? 싫으면 말고.”
고개를 갸웃한 경호가 숟가락에 담긴 팥빙수를 먹었다.
얌얌얌.
“날이 추워서 좀 아쉽지만 역시 팥빙수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니까. 아! 맞다. 연유!”
아공간에서 연유를 꺼낸 경호가 그릇에 새하얀 연유를 쭉 짜며 두 바퀴 돌렸다.
“됐다. 완벽해!”
흰둥이는 경호의 감정을 읽었다.
‘분명 거짓이 아니야.’
저런 이상한 잡탕을 먹고는 진심으로 맛있어하며 ‘완벽해’를 외치는 경호의 모습에 흰둥이와 울피도 호기심이 생겼다.
-저어. 경호 님. 그게 뭡니까? 아까는 모르는 거라서 안 먹은 건데요.
“아. 팥빙수 몰랐어?”
-팥빙수요? 그게 팥빙수라는 겁니까?
먹는 거로 장난치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원래는 단팥을 넣고 떡이나 젤리, 후르츠 칵테일에 연유랑 미숫가루 같은 걸 넣지만, 난 이렇게 찹쌀떡을 잘게 찢어서 비벼 먹는 게 좋더라고. 자아. 울피 먹어볼래?”
찹쌀떡만 해도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맛있었기에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경호가 숟가락으로 팥빙수를 떠서 울피에게 내밀었다.
울피가 앙증맞게 입을 벌려 팥빙수를 받아먹었다.
얌얌얌얌.
-어억! 이거 완전! 고작 눈에 비볐을 뿐인데….
울피의 코가 벌름거리며 감탄을 터뜨렸다.
앙앙!
-겨, 경호 님. 저도 팥빙수 한입 만 주시면 안 될까요?
피식 웃은 경호가 숟가락으로 팥빙수를 크게 떠서 흰둥이에게 주자 조그만 입으로 덥석 받아먹었다.
욤욤욤욤욤.
오물거리면서 팥빙수를 먹던 흰둥이의 눈이 번쩍하고 커졌다.
-경, 경호 님! 이, 이건! 말, 말도 안 돼.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린 팥빙수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흰둥이가 다시 입을 쩍 벌리며 말했다.
-경호 님. 팥빙수 한 입만 더 주세요!
***
경호가 찹쌀떡 팥빙수를 맛있게 먹고 있을 때 다현 일행은 더욱 거세진 눈보라를 뚫고 가는 중이었다.
정말 코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발이 심했다.
‘300m 정도 전방에서 심상치 않은 마력 파동이 느껴진다.’
다현은 레인보우 식스 중에서 기감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평가일 뿐 S급 헌터인 다현의 기감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이쪽으로 쭉 가면 뭔가 나올 거 같아. 모두 긴장해.”
다현의 말에 다들 긴장하며 더욱 걸음에 힘을 줬다.
그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퍼붓던 눈보라가 거짓말처럼 그쳤다.
“뭐야? 갑자기 눈보라가 그쳤…. 누, 누님!”
성원이 눈보라가 그치며 갑자기 환해진 주변을 둘러보다 깜짝 놀라 소리쳤다.
“나도 봤어. ‘설호’ 다음이 ‘서리거인’이라니. 하아. 이 정도면 S급 던전이라고 싸잡아 부르기 좀 그런데….”
영하 120도의 추위와 강력한 눈보라 거기에 재난종 설호에….
멸망종인 서리거인까지.
멸망종은 말 그대로 대격변 초기 문명에 멸망을 일으키는 존재였다.
모두가 그런 서리거인의 크기와 흘러나오는 마기에 놀라 입을 쩍 벌렸다.
10m. 작은 건물 수준의 크기였다.
300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음에도 눈에 확 들어오는 정말 거대한 크기였다.
“사부. 그래도 저놈 불에 약하잖아요!”
호돈이 새파란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방패를 들어 보이며 애써 밝게 말했다.
“불은 그나마 통한다고 해야 맞겠지. 백염은 어찌어찌 통하긴 하겠네.”
“그, 그런가요?”
“그래. 성원과 정수는 최대한 하체를 노려서 이동을 제한하고 어쨌든 나와 호돈은 화염 공격으로 머리를 노려서 타격을 주는 방법으로 가야 할 거 같아.”
“그럴게요.”
“정수, 한 대라도 스치면 위험하니 조심 또 조심하고.”
“넵. 알겠습니다. 누우…. 어! 어어! 호돈이형!”
다현의 말에 대답하던 정수가 눈을 크게 뜨며 놀라 호돈을 불렀다.
우우우우우우웅.
호돈이 들고 있던 방패에서 낮은 진동음과 함께 활활 타오르던 불길이 갑자기 사그라들었다.
“어엇? 이, 이게 뭐야?”
때마침 석상처럼 꼿꼿하게 서 있던 서리거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야! 하필 지금 불이 꺼지고 난리야!”
호돈이 방패에 마력을 불어넣으며 이것저것 만져댔지만 한번 사그라든 불꽃은 다시 피어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