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체온유지 장치.
“이건 이번 던전에서만 사용할 게 아니라 상용화해서 팔아야 합니다! 우선 공략하고 와서 더 이야기하죠!”
처음 장치를 받아들고 성원이 흥분해서 바로 계약 이야기를 뱉었을 정도로 엄청난 물건이었다.
경호의 조언에 따라 최대한 힘을 빼고 만들었지만, 명장이 만든 물건이 허술할 리 없었다.
솔딘의 대장기술과 파루스의 마공기술이 합쳐져 옷감처럼 얇은 사슬갑옷에 마석을 달았다.
마석에 마력을 불어넣으면 체온을 유지하기 쉽도록 사슬갑옷이 열기, 또는 냉기를 뿜어냈다.
이러한 기능도 대단하지만, 사슬갑옷 자체의 성능도 엄청나 소총탄도 막을 수 있는 방호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극지던전에서 쓰기 위한 그런 물건이 아닌 헌터라면 모두 탐낼 만한 아티팩트급 아이템이 만들어졌다.
“후우. 누님. 이제야 살 거 같네요.”
성원이 창백한 얼굴로 말하자 다현이 고개를 저었다.
마력을 생성해내는 마나 코어도 결국 신체의 일부였다.
“그러게. 체온유지 장치가 아니었다면 1시간. 아니 이 정도 눈보라에 혹한의 날씨라면 그 전에 탈진했을지도 모르지.”
그때였다.
크아아아아아앙!
마수의 울부짖는 소리가 눈보라를 뚫고 들려왔다.
5급 재난종 마수인 설호의 울음소리였다.
집채만큼 커다란 백호로 S급 던전의 보스급 마수였지만, ‘한빙’ 극지던전에서는 일반 몬스터에 불과했다.
물론 다현 일행 중 설호의 포효 소리만 듣고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누님. 들었죠!”
다현에게 성원이 물었다.
“울음소리에 실린 마력으로 보면 분명 재난종인 거 같은데. 조심해야 할 거 같다.”
“재난종이요? 그 정도면 보스일 텐데 벌써 근처에 나타난다고요?”
성원의 말에 다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 보스가 아니라는 소리지.”
“네엣? 설마요.”
성원의 표정에서 긴장감이 감돌았다.
재난종이 보스가 아니라면 멸망종이라도 나온단 소린가!
“모두 전투 준비. 호돈은 탱딜을 보고 성원이는 나와 뒤에서 원딜. 정수는 호돈을 보호하며 근딜. 모두 알았지?”
다현의 말에 정수는 칼을 검집에서 꺼내 들었고 성원도 자신의 활, ‘황금사자’를 손에 쥐었다.
마수의 포효 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았지만, 다현은 점점 가까워지는 살기를 느끼며 긴장하고 있었다.
“호돈. 준비해. 3시 방향. 300m 전방.”
물론 다현의 말에 모두가 긴장하며 전투 준비를 시작했다.
“흐읍!”
압축된 지방이 연소되며 호돈의 몸에서 수증기가 확 하고 피어올랐다.
다현과 훈련을 하며 성장한 호돈의 강화된 육체는 예전과 또 다른 수준으로 변해있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눈보라 속에서 갑자기 커다란 무언가가 튀어나와 호돈의 몸통을 향해 날아왔다.
바로 설호의 앞발이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눈보라 속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공격이었다.
“와! 씨!”
설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와 마력이 아니었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공격.
하지만 호돈은 다현의 경고로 설호의 접근을 파악하고 있던 참이라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이어지는 설호의 공격에 호돈이 기합을 내질렀다.
“으라차차앗!”
자신을 향해 다시금 날아오는 설호 앞발을 향해 호돈이 주먹을 날렸다.
퍼어어어억!
설호의 앞발이 튕겨 나갔다.
호돈 역시 그 충격으로 뒤로 주르륵 밀려 나갔다.
터억.
정수가 그런 호돈을 손으로 받쳤다.
“형. 이번에는 내가 저놈 발모가지를 잘라버릴 테니까. 한 번만 막아 줘.”
“너 형한테 너무 쉽게 목숨 걸라는 거 아니냐?”
“에이. 엄살은.”
설호는 뒤로 물러나서는 다시 눈보라 속으로 숨어들었다.
전신이 흰색인 설호가 눈보라 속에 섞이니 안 그래도 시야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왼쪽. 왼쪽이야!”
설호에게서 흘러나오는 마력으로 대략의 위치만 파악할 뿐이었다.
크아아아아앙!
괴성과 함께 다시 설호의 앞발이 날아왔다.
다현의 경호로 미리 준비했던 호돈이 힘을 줘서는 날아오는 앞발을 몸으로 받아냈다.
퍼억!
엄청난 충격에 절로 신음이 튀어나왔다.
“크윽. 제법인데. 정수야!”
정수가 공격할 시간을 벌어야 했다.
호돈이 가슴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이를 악물고 양손으로 설호의 앞발을 끌어안았다.
정수는 검을 치켜들었다.
새하얀 마력검기가 번뜩이는 검날이 호돈이 잡고 있는 설호의 앞발을 내리쳤다.
스가아악!
거대한 설호의 앞발이 단번에 잘렸다.
커어어어어엉!
고통에 몸부림치는 설호를 향해 성원이 쏜 새파란 마력화살이 날아가 목덜미 깊숙이 박혔다.
푸욱!
그리고.
콰아아아앙!
마력화살이 폭발했다.
커억! 커어억!
아직 숨이 붙어있는 상황.
“죽엇!”
다현의 외침과 함께 그녀가 뻗은 완드의 끝에서 새파란 불꽃이 튀어나와 쩍 벌어진 목덜미를 향해 날아갔다.
크어어어엉!
설호가 청염에 담긴 위력을 느끼고 피하려고 했지만, 앞발은 잘려나가고 목덜미는 길게 찢어진 상태에서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것이 고작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찢어진 목덜미를 파고든 청염이 폭발하고 결국 머리를 잃은 설호가 그대로 쓰러졌다.
“후우. 그래도 중간보스는 처리했네.”
다현이 쓰러진 설호를 보며 한숨을 돌렸다.
“그러게요. 누님. 설호의 공격 패턴이 단순해서 이 정도였지 아니었으면 고생할 뻔했네요.”
S급 헌터인 다현과 A급 헌터 수준의 성원 일행이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후우. 그래도 마공 아이템을 챙겨 와서 다행이네요.”
호돈이 마도공학 아이템인 마력 결계 방패를 손목에 찼다.
팔찌 형태로 마력을 불어넣으면 결계가 생기며 방패 역할을 하는 아이템이었다.
다현이 그런 호돈을 살폈다.
설호를 혼자서 탱킹하느라 꽤 지쳐 보였다.
“호돈아. 뭐라도 먹어. 회복하지 않고 계속 가면 결국 큰일 난다.”
[압축]과 [연소]를 쓰기 위해서는 뭐든 먹어야 했기에 고열량 식품을 챙겨온 호돈은 고개를 끄덕이며 짐에서 고열량 에너지바를 꺼냈다.
호돈이 그것을 막 한입을 깨물었을 때.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저 멀리서 아까보다 더 강한 마력이 실린 포효가 들려왔다.
“우와. 누님. 이놈, 이거 중간 보스도 아니고, 그냥 필드몹이였나 본데요.”
정수가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검집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이번에는 다른 쪽에서 또 포효가 들려왔다.
최소 2마리.
“호돈아. 3시. 10시. 내가 3시 쪽 막을 테니. 니가 10시 막아.”
다현의 얼굴에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
설호(雪虎).
최하급 재난종 마수지만 중상급 재난종 마수보다 위험한 녀석이 바로 설호였다.
분명 호랑이였지만 사자처럼 무리 지어 사냥하는 녀석들이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극지던전에서 무리지어 공격하는 설호는 최상급 재난종 마수와 맞먹을 정도로 강력했다.
-경호 님. 3마리가 달려드는데 안 도와줘도 괜찮을까요?
“아직. 이 정도는 충분히 막을 수 있어. 아니 이 정도도 못 막으면 앞으로 2페이즈에서 살아남기 힘들기도 하고.”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뜨리는 아빠 사자의 마음으로 경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사실 추위만 이겨내면 극지던전은 공략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니까.”
경호가 따라 들어온 것은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으로 공략이 실패할 경우에 대비한 것이었다.
앙앙!
흰둥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신이나 꼬리를 흔들었다.
-오. 대박! 경호 님. 퀘스트가 대박으로 들어왔습니다!
경호가 보니 흰둥이가 대박이라고 소릴 지를만했다.
[소원성취 퀘스트 (공유) : 무조건 살아 나간다! / 김다현]
-이거 쉽지 않겠는데….
-던전 공략 성공 시 카르마 5000만이 지급됩니다.
[소원성취 퀘스트 (공유) : 아버지와의 약속. / 이성원]
-아버지와 저녁 먹기로 했는데….
-오늘 자정까지 공략 성공 시 카르마 7000만이 지급됩니다.
-남은 시간 – 10시간 32분 27초
[소원성취 퀘스트 (공유) : 여기서 죽을 순 없어! / 박정수]
-우리 의형제 한 날, 한 시에 죽기로 맹세했는데!
-죽지 않고 던전 탈출 성공 시 카르마 5000만이 지급됩니다.
[소원성취 퀘스트 (공유) : 사부와의 약속! / 유호돈]
-뭐든 막아내기로 약속했다고!
-대미지 10만 포인트 방어 성공 시 카르마 5000만이 지급됩니다.
일석 사조의 대박 찬스!
-경호 님. 2억 2천만 카르마면 레벨업입니다.
“잘 들어왔네. 안 그랬으면 퀘스트도 못 받았을 거 아냐.”
-그것도 그러네요.
“그럼. 그럴싸한 기연을 하나 던져 줘볼까?”
허공에 떠서 상황을 지켜보던 경호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
피식 웃으며 허공에서 상황을 지켜보는 경호와 다르게 아래쪽은 긴장감이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앙! 크아아앙!
눈보라 속에서 들리는 설호의 발소리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고조되는 긴장감을 더욱 끌어올렸다.
“모두 조심해! 아까와 다르다. 이놈들 일부러 소리를 흘리고 있어!”
다현이 긴장하며 주의를 주었다.
크아아앙! 크아아아아앙!
역시나 이번에도 또 위치가 달라졌다.
눈보라 속에서 빠르게 위치를 바꿔가며 으르렁거리는 설호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모두 필사적으로 기감을 끌어올렸다.
그때였다.
후우웅!
눈보라를 가르는 바람 소리와 함께 가장 앞장 서 있는 호돈을 향해 예리한 발톱을 한껏 세운 커다란 앞발이 맹렬한 속도로 날아왔다.
“으억!”
그것을 본 호돈이 반사적으로 양팔을 교차해서 머리 위를 보호하듯 막았다.
콰아아아앙!
마치 폭탄이라도 터진 것 같은 소리와 함께 호돈이 뒤쪽으로 튕겨 나갔다.
설호가 튕겨 나가는 호돈을 쫓으며 마치 축구 선수가 드리블하듯 계속 앞발로 몰아갔다.
“으윽!”
호돈은 서둘러 몸을 피하려고 했지만 그대로 밀려 나가며 다른 이들과 멀어졌다.
시야가 가장 넓은 다현도 멀어져가는 호돈을 눈으로 좇았지만, 결국 놓치고 말았다.
“우리를 이렇게 하나씩 떨어뜨릴 작정이야! 호돈! 정신 차리고! 이쪽으로 와!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다현이 성원과 정수에게 다가가며 소리치자 그들도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호돈이형! 이쪽이야!”
“정신 차려! 형! 돌아와! 형! 형!”
성원과 정수가 목이 쉬게 소리를 질렀지만 거친 눈보라가 몰아치는 소리에 금세 묻힐 뿐이었다.
그것을 본 다현이 완드를 꺼내 커다란 불꽃을 피어 올리며 말했다.
“가자! 호돈이 찾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