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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용사의 골목식당-101화 (101/335)

#101화

“너희 안 바쁘냐?”

경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의 휴식시간을 방해하며 식당에서 뭉개고 있는 일당들을 노려봤다.

“떡갈비 맛있게 먹었으니 그만 가보는 게 어떨까 싶은데? 지금 비상사태잖아.”

경호는 이른 아침부터 지숙과 미호에게 떡갈비를 만들며 들들 볶이느라 한껏 피곤한 상태였다.

“형님. 곧 정부 발표가 있다고 하네요. 그거만 보고 갈게요.”

성원. 네 이놈!

“길드 회의라도 하러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여기서 TV만 봐도 되겠어.”

경호의 걱정에 성원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었다.

“어차피 누님이랑 정수, 호돈까지 핵심 멤버는 여기 다 있으니 여기서 TV 보면서 회의하면 되죠.”

그러니까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한 건데….

경호의 깊은 한숨을 뒤로하고 TV에서 극지던전에 대한 뉴스 속보가 떴다.

“경호야. 볼륨 업!”

다현의 외침에 경호는 ‘지는 손이 없어 발이 없어’라며 투덜거리면서도 바로 TV 볼륨을 키웠다.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던전이었기에 브리핑을 주체하는 이도 거물급이었다.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인.

바로 던전관리국장 최현성이었다.

성원 입장에서는 리스폰 던전 관련해서 한동안 가족보다 더 자주 봤던 사이였다.

“누님. 저 양반 미간의 골이 평소보다 2배는 깊어진 거 보니 뭔가 나온 게 없는 거 같은데요.”

감이 떨어지는 성원의 평가는 평소와 달리 정확했다.

최 국장은 한참을 진지한 표정으로 A4에 적힌 분석내용을 성실하게 발표했다.

20분이 넘어가는 길고 긴 내용이었지만 요약하면 이랬다.

-분석결과 S급 게이트가 분명하다.

-묘하게 다르다.

-그런데 그 다른 부분을 모르겠다.

한마디로 쓸데없는 속보였다.

“역시 본부에서도 정확히 모른다는 거네.”

다현이 TV를 끄며 말했다.

“사부. 사부는 대충 알 거 같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어. 정확하지 않아서 관리국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지.”

당연히 뻥이었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가 말을 하니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S급 던전 수준의 마력 파동이 흘러나오는 것도 다들 느껴서 알고 있지?”

귀를 쫑긋거리고 있던 이들이 다현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서 나는 미약하지만 아주 차가운 냉기를 느꼈어.”

다현은 속으로 뜨끔했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극도로 차가움. 단순한 느낌이긴 하지만 던전 안의 마수가 냉기를 사용하는 건 아닌 듯했어.”

성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곤 질문을 던졌다.

“그럼. 혹시 던전 안에 환경이 극지방 같은 그런 곳이라는 건가요?”

“내 느낌에는 아마도 그런 거 같아.”

다현의 말에 정수와 호돈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찌 보면 별거 아닌 사소한 정보였지만 던전 공략의 성패를 가를 가장 중요한 정보였다.

“역시! EX급 헌터! 대한민국의 보물! 최고 미녀 헌터! 역시 대단하십니다.”

성원이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다현을 칭송하기 시작했다.

“에이. 무슨. 그냥 우연히 느낀 거뿐이야.”

사실 다현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울피의 도움으로 알아냈기에 살짝 민망하기도 했다.

“얼굴만큼 실력도 아름다우신 우리 누님! 헌터본부의 최첨단 마도공학 기술로도 알아내지 못한 던전의 비밀을 알아내….”

“성원아!”

“넵. 누님.”

성원은 ‘불의 마녀’가 아닌 ‘불같은 마녀’ 다현의 진실 된 모습을 익히 알기에 바로 자세를 바로 하며 대답했다.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경호는 피식 웃으며 다현의 품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는 울피에게 슬쩍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럼. 누님. 어떡하실 겁니까?”

장난기를 쏙 뺀 성원이 길드 마스터의 얼굴로 돌아와 다현에게 물었다.

신화길드의 입장에서는 다현의 결정 없이는 S급 던전은 시도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다현이 성원의 말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머리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회색지대나 흑색지대가 아닌 이상 S급 던전은 무조건 공략해야 했다.

파열되어 한 번에 쏟아져 나오면 도시 붕괴 수준의 파괴가 일어난다.

하지만 내부 구조나 마수의 종류를 모르면 함부로 공략에 나서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멸망종 마수가 나올 수도 있는 던전이기에 5인 던전이라면 S급 헌터가 2명 이상은 참여해야 했다.

문제는 마수와의 상성이나 환경이 맞지 않아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 공략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공략 실패는 곧 죽음이었다.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다.

다만 마계의 침략이 점점 거세지고 있는 상황에서 죽을 수는 없었다.

-울피야. 니가 용기 좀 줘야겠다. 지금 상황에서 극지던전을 공략할 수 있는 인물은 다현뿐이거든.

경호의 전음에 울피가 고개를 들어 다현의 턱을 할짝거렸다.

끼잉!

-누나. 걱정 마요. 누나 정도면 충분히 공략할 수 있다니까요.

울피의 응원에 다현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할게. 성원아. 가자. 공략하러. 내가 화끈하게 처리할 테니까.”

“정말요? 괜찮으시겠어요.”

사실 도심에 S급 던전이 처음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그때마다 헌터본부가 자체적으로 공략하거나 ‘피닉스’나 ‘강철’ 길드에서 처리했다.

대책회의 때는 3대 길드라고 같이 끼워주긴 했지만 신화길드는 공략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다.

항상 회의 시간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자리만 지키고 있었을 뿐이었다.

신화길드에는 S급 헌터는커녕 A급 헌터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젠 그때와 달랐다.

SS급, EX급이라 불리는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가 함께 하고 있었다.

우웅. 우웅. 우웅. 우웅.

그때 성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늙은 구렁이.

발신자를 확인하고 피식 웃었다.

“안녕하십니까. 국장님.”

던전관리국장 최현성의 전화였다.

“네. 서울입니다. 30분 안에 본부로 가겠습니다. 아. 임원이신 저희 고문님도 같이 갈까 하는데 괜찮을까요?”

길드를 상대로 막강한 힘을 휘두르는 최 국장이었지만 다현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부담스러웠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잠시 후 뵙겠습니다.”

다현이 울피를 쓰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경호에게 다가갔다.

“경호야. 저번에 먹었던 고르곤졸라 피자 해줄 수 있어?”

“재료가 있긴 한데.”

“그럼. 오늘 저녁에 고르곤졸라 피자에 소주. 어때?”

오늘 저녁도 싫었고 고르곤졸라 피자에 소주도 싫었다.

“어. 싫은….”

퍽!

경호의 배에 묵직하게 들어오는 다현의 주먹.

“어멋. 장난으로 친다는 게 힘이 너무 들어갔네.”

이게 장난이라고?!

“끄윽. 엄마가 이런 모습을 봐야 하는데.”

지숙이 저런 사악한 다현의 모습을 봤어야 했는데 아쉽게도 길드 하우스에 떡갈비를 주러 간 상황이었다.

“그리고 너 진짜 자꾸 마력 실어 때릴래. 이거 살인미수라고!”

요즘 들어 각성했다고 경호에게 마력을 실어 때리는 다현이었다.

“에이. 그렇게 단련하는 거지. 그럼. 저녁에 올게.”

“형님. 저도 같이 올게요.”

성원이 인사를 했고.

“저랑 정수는 길드 하우스 가볼게요.”

정수는 길드 하우스에 숙소에서 지내기도 했고, 호돈 역시 미호를 보기 위해 간다는 것 같았다.

“그래. 저녁에 오던가. 피쏘 하러.”

나가는 이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경호에게 흰둥이가 다가왔다.

앙! 앙!

-극지던전 괜찮겠죠?

“다현은 이미 S급을 넘어섰으니까. 뭐. 나도 따라 들어갈 생각이고.”

-그럼. 다행이네요.

“그럼. 피자 도우나 만들어야겠다.”

툴툴거리면서도 은근히 다현을 챙기는 경호였다.

***

각성자관리원의 회의실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유명한 인물들이 하나씩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피닉스길드 길드장, 박혁수.

강철길드 길드장, 김철수.

신화길드 길드장, 이성원.

신화길드 비상임고문, 김다현.

김다현은 물론이고, 박혁수와 김철수도 유명한 S급 헌터였다.

“이성원 길드장님. 제가 참 김다현 헌터님을 존경하긴 하지만 이 회의에 참석하게 하는 건은 좀 아니지 않습니까?”

뜬금없이 피닉스길드 길드장인 혁수가 성원에게 명백한 시비조로 말을 걸었다.

성원은 ‘뭔 헛소리야!’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내심 담담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박혁수 길드장님, 그게 무슨 말이시죠?”

이제 자신은 예전처럼 구석에 덩그러니 놓인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아니었다.

“길드장만 호출한 회의에 비상임고문이라는 그런 요상한 직책을 가진 길드원이 참석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말이지요. 거기다 그 여우 새끼는 뭡니까? 정체불명의 던전이 나타나 대책회의를 하려는 자리에 여우 새끼라뇨?”

“길드장님. 말씀이 심하십니다.”

대놓고 시비를 거는 혁수를 보며 다현의 불같은, 아니 불보다 더 뜨거운 다현의 성격을 잘 아는 성원이 당황하며 말했다.

안 그래도 불편한 기류가 감돌던 회의장 안에 냉기가 감돌았다.

웃으며 울피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던 다현도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채 피식 웃었다.

“지금 시비 거시는 건가요?”

박혁수.

S급 헌터에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라 인정해주는 피닉스 길드의 주인.

시비 거는 것이 맞았다.

대격변 초기에 활약한 S급 헌터로 결성된 ‘레인보우 식스’.

국민적 영웅이었지만 혁수는 그런 그들을 싫어했다.

‘고작 조금 빨리 각성하고선 그게 마치 벼슬이라도 된 양 행동하는 멍청이들.’

한마디로 삐뚤어진 자격지심이 만들어낸 유치한 질투심이었다.

“시비요? 시비라뇨. 제가 감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화염의 마녀’께 시비나 걸 수 있겠습니까. 그저 사실을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성원은 두 눈을 꼭 감고 ‘누님, 참으세요. 제발!’을 속으로 100번쯤 외치고 있었다.

물론 이런 모욕에 가만히 있으면 일진 강냉이를 털고 다니던 ‘불꽃광전사’ 다현이 아니었다.

살기.

다현의 몸에서 엄청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무형의 기운이었지만 화살처럼 곧장 날아가 혁수에게 꽂혔다.

푹! 푹! 푹! 푹! 푹! 푹!

실재하진 않았지만, 혁수는 살기가 자신에게 꽂힐 때마다 꿈틀거리며 신음을 애써 삼켜야 했다.

“이야기하실 게 더 남으셨나요?”

다현이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하지만 땀에 흠뻑 젖은 혁수는 멍한 표정으로 그저 고개만 저어야 했다.

멸망급 마수도 1대1로 겨뤘던 다현이었다.

괜히 SS급이니 EX급이니 추켜세우는 것이 아니었다.

살기에 직접 노출된 혁수 만큼은 아니지만, 이곳에 있는 모두가 다현의 무시무시한 힘을 똑똑히 확인하게 됐다.

적막이 감도는 무거운 회의장 분위기.

끼잉.

-누나. 누나가 안 그랬으면 내가 혼내주려고 했어. 감히 나에게 여우 새끼라니! 고작 약해빠진 인간 주제에.

울피의 말에 다현의 굳어있던 표정이 풀리며 피식 웃었다.

그러자 숨 쉬는 것도 힘들 정도로 무거웠던 회의장 분위기도 조금은 가벼워졌다.

그때.

“죄송합니다. 제가 좀 늦었습니다.”

던전관리국장 최현성이 회의장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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