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용사의 골목식당-95화 (95/335)

#095화

‘신화마을 프로젝트.’

예전에 미호가 이야기한 적 있었던 길드 하우스 완공 후 이 골목 일대 정비사업이 확장된 프로젝트였다.

충격에 빠진 경호가 멍한 표정으로 서 있자.

“형님! 형님이라면 무조건 1등이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님과 미호 씨 실력이면 보나 마나지.”

성원이 활짝 웃으며 경호를 응원했다.

‘아니 1등 할까 봐 걱정인데. 뭔 소리야!’

그런 경호와 지숙, 미호를 보던 건용이 자리를 권했다.

“앉아서 지금 말씀드린 것에 대해 좀 더 이야기 나눠도 될까요?”

건용의 권유에 자리에 앉자 성원이 말을 이었다.

“아버지. 제가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래. ‘신화마을 프로젝트’의 책임자는 너니까. 성원이 니가 설명하렴.”

성원이 건용의 허락에 싱글벙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님. 형님. 그리고 미호 씨. 저희 신화그룹에서, 정확히는 신화길드에서 그룹의 지원을 받아 여기 위험구역을 전체를 매입한 건 아시죠?”

길드 하우스를 공사할 때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서울의 섹터 B-4-나 구역. 탑골공원과 종묘 지역을 신화그룹에서 정부에 요청하여 매입한 일은 꽤 유명했다.

길드 하우스 상시 운영 및 마수 방어 시설, 지하 대피소 건설을 전제조건으로 위험구역 해제도 확답을 받은 상태였다.

“응. 알고 있지.”

“이제 곧 위험구역 해제가 되면 이 골목을 정비할 생각이거든요. 행운공원도 더 다듬고 헌터학원 터도 닦고.”

“뭐. 그건 미호한테 슬쩍 들어서 알고 있는데 갑자기 요리 경연이라니 무슨 소리야?”

“골목이 정비되고 나면 적어도 10여 개의 가게가 들어설 수 있을 건데. 저는 그곳에 유명 프랜차이즈 식당을 들이고 싶지가 않아서요. 반짝 유행하는 아이템을 가진 식당을 들이는 것보다 진짜 맛있는, 하지만 숨겨진 그런 곳을 찾아서 전적으로 지원해주고 싶어요.”

“지원해 준다고?”

대격변 이후 사람이 살 수 있는 백색지대, 그중에서도 주거지역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 때문에 안 그래도 비쌌던 서울 땅값은 이제 정말 하늘 높이 치솟았다.

“요리 경연을 해서 선정된 곳을 무료로 입점시킬 생각이거든요.”

“임대료 무료?”

짜장면 한 그릇이 3만 원이 넘는 세상이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임대료’였다.

“형님네는 이 가게 소유주시니까 무료 입점 대신 따로 지원해드릴 생각이지만요.”

위험지역에서 유일하게 자리를 지킨 행운식당이었기에 따로 임대료를 내지 않아도 됐다.

“무슨 상이라도 탄 것처럼 말하고 있냐? 그리고 나 출전한다고도 안 했다고!”

성원이 눈이 동그랗게 뜨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이미 전국적으로 ‘신화골목은 행운식당.’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한데 빠지신다고요?”

경호도 미호에게 그런 말이 돈다는 이야기는 전해 들었었다.

‘에이. 그냥 사람들이 하는 소리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신화길드 하우스가 완공되며 ‘신화골목’이 공식적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리고 ‘행운식당’은 정말 유명한 맛집으로 급부상 중이었다.

안 그래도 ‘레인보우 식스’가 찾는 맛집으로 이름을 알린 상태에서 ‘인생 돈가스’로 SNS 맛집으로 등극하더니, 균열에서 튀어나온 마수를 잡으며 일약 스타가 되었다.

-거인 ‘이건용’ 회장을 살린 식당사장!

-마스코트 ‘흰둥이’, 마수와 싸우다!

-신화! 식당 사장에게 목숨 빚을 지다!

-행운식당! 정말 행운을 불러왔다!

이런 제목의 기사가 지난 일주일간 하루에 수십 개씩 포털사이트를 장악했다.

마계침략이 2페이즈로 넘어가며 불안감이 고조되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이슈는 정부에서도 대환영이었다.

경호의 활약이 많이 노출될수록 전국적으로 생긴 투명균열에 대한 피해 사실이 덜 노출되기 때문이었다.

입을 삐쭉 내밀고 있는 성원을 보던 경호가 피식 웃었다.

“알았어. 하면 되잖아. 하면. 회장님. 그럼. 저도 참가하도록 하겠습니다.”

“공정해야 할 경연이지만 생명의 은인인 자네가 출전해준다면 나도 도울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서 돕도록 하겠네. 물론 그룹의 회장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말이네.”

신화그룹의 회장인 그가 개인적으로 도와준다면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불가능한 일은 없을 거였다.

“아닙니다. 그저 이곳을 안전하게 만들어 주시…. 아. 한 가지 부탁이 있긴 합니다.”

“뭔가? 자네 부탁이라면 내 언제나 환영이네.”

건용은 무엇이든 도움을 줘서 생명의 빚을 갚고 오히려 그에게 빚을 지우고 싶었지만, 언제나 사양만 하는 터라 오히려 더 뭔가 해주고 싶어 안달이 난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부탁이 있다고 하니 건용이 반색을 하며 물었다.

“행운공원을 예정보다 더 크게 만들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행운공원?”

“식당 뒤편에 있는 공원입니다.”

“아. 여기 식당 뒤에 있는 그 공원을 이야기 하는 건가?”

운애와 땅개의 힘으로 세계수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공원의 크기는 지금보다 무조건 커야 했다.

“네. 사실 대격변 이후 삶의 터전이 좁아지며 도시에 녹지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 저는 너무 안타깝습니다. 어차피 이곳이 주거지역은 아니니 공원의 크기가 좀 더 커도 상관없지 않을까요?”

건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런 건 부탁이랄 것도 없네. 알았네. 그렇게 하지. 성원아. 들었지?”

“네. 아버지.”

우우웅. 우우웅.

그때 성준의 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신재용 마공연구소장.

“어? 소장님이시네? 네. 소장님!”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저야 언제나 안녕합니다. 소장님도 안녕하시죠?”

-물론입니다. 대표님. 다름이 아니라 회장님께서 재가해주신 덕분에 진행한 ‘정령’을 이용한 마수 킬러 연구에 진척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옆에서 모르는 척 듣고 있던 경호가 ‘정령’, ‘마수킬러’라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 그래요? AI보다 진행이 잘 되는가 보죠? 소장님, 목소리만 들어도 알겠는데요?”

신 박사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들떠 있음을 느낀 성준이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하하핫! 이거 그렇게 티가 났습니까?

“제가 촉이 좀 좋은 편이지요. 지금 아버지도 같이 있으니 스피커폰으로 돌리겠습니다.”

성준이 스피커 기능을 켜 테이블 위에 폰을 올려놨다.

“신 박사. 안 그래도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한다기에 관심이 갔었네.”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그래. 인사는 생략하지. 정령을 이용한 새로운 로봇 운영체제를 만든다고 해서 굉장히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일주일 만에 성과가 있었나?”

경호는 ‘정령’이니 ‘마수킬러’니 할 때만 해도 고개를 갸웃거리다 로봇의 운영체제로 ‘정령’을 사용한다는 말에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정령을 가지고 로봇을 움직인다고? 그게 가능해? 마도공학이 아무리 ‘신의 힘’에 도전하는 기적 같은 기술이라고 하지만….’

경호가 아는 지식과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화에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다음 주 정도에 프로토 타입 ‘마수 킬러’에 대해 시연회를 열까 합니다.

“그게 가능한가?”

-가능합니다. 회장님. 프로토 타입의 하드웨어는 이미 완성된 상태였고 운영체제만 손보던 상태였습니다. 다음 주 AI와 정령을 사용한 각각의 프로토 타입을 시연하는 행사를 통해 전세계에 마수 킬러를 알리면 어떨까 합니다.

“흐음. 비공개가 아닌 공개 행사는 조심스럽긴 한데. 그럼. 우선 지금까지 데이터를 보내주게. 이성준 대표와 상의해보고 내일까지 답을 주도록 하지.”

경호는 눈치가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었다.

로봇, 마수킬러, 하드웨어, 프로토 타입, 시연회.

이런 단어가 모여 하나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킬러 로봇. 마수용 킬러 로봇이구나! 그런데 정령을 이용해서 작동시킨다고?’

정령은 영혼이 있는 생명체였다.

특히나 정령계에서 10년간 그들과 생활한 경호에게 있어 단순한 존재 그 이상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럼. 계속 수고하게나.”

그렇게 통화가 끝났다.

-경호 님! 정령을 가지고 로봇을 움직인다고요? 아무리 마도공학이 발달했다고 했지만 이건 다른 종족의 인권을 침해하는 거로 보이는데요?

경호도 흰둥이처럼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쉽게 질문을 꺼낼 수가 없었다.

“형님. 방금 신 박사님이 이야기한 거 뭔지 아시겠어요?”

눈치 없는 성원이 웬일로 눈치 좋게 경호에게 질문을 던졌다.

“음. 요즘 많이 나오는 킬러 로봇 이야기 아니었어? 근데 그게 과연 괜찮을까? 나 어릴 때 영화 보면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 지배하고 막 그러던데.”

경호는 아직도 어릴 때 봤던 영화에서 인간을 죽이려고 덤벼드는 로봇의 무시무시한 모습이 기억에 생생했다.

“형님. 도대체 무슨 영화를 보셨길래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하다못해 지금 형님이 차고 계시는 뱅글폰도 다 AI 운영체제가 들어가 있다고요.”

경호가 손목에 차고 있는 폰을 들여다보다 피식 웃었다.

“세상 많이 좋아졌구나.”

“아니 형님 사정도 알지만 10년 전에도 AI 기술은 꽤 발전한 상태였다고요.”

“그랬나? 그런데 AI는 알겠는데 정령은 무슨 말이야?”

경호는 슬쩍 AI에서 정령으로 주제를 틀었다.

그러자 성준이 나서 경호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건 내가 알려줄게. 우리 회사에서 마석을 가공하는 파트가 있는데. 이번에 마석에 있는 마기를 완전히 제거하는 기술을 개발했거든.”

경호가 성준의 말에 꽤 놀랐다.

마석(魔石)은 이름처럼 단순한 마기와 마력이 담겨있는 돌이 아니었다.

마기와 마력이 생성되고 응축되는 하나의 정교한 기관이었다.

그런 마석에서 마기를 완전히 제거한다면….

“그러한 마석에는 정령이 깃들 수 있다고 하더라고.”

사실 정령은 어디든 깃들 수 있었다.

하지만 마기에 타격을 받기에 마석엔 깃들기가 어려웠다.

‘마기가 제거된 마석이라면 정령석 만큼은 아니라도 좋아하겠네.’

경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래서 정령이 깃든 마석을 로봇에 결합해서 구동하는 시스템을 연구 중이거든. AI는 아무래도 해킹이나 바이러스에 취약하니까. 마수와 싸울 때 빌런이 그런 식으로 방해 공작을 할 수 있으니까.”

성준의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하지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였다.

“그럴 수 있겠네요. AI라고 해도 결국은 컴퓨터 프로그램이니까요. 그런데 정령이 마석에 깃들어 로봇을 조종할 때 누군가 정신공격을 해서 정령을 혼란스럽게 만들면 어떡하려고요? AI는 전원을 끊으면 그만이지만 어쩌면 더 안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거 같은데. 괜찮을까요?”

정령은 자연을 다루는 힘은 매우 강했지만 순수한 존재이다 보니 정신공격, 특히 마족의 정신공격에 아주 취약했다.

그래서 정령이 마족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정신공격에 강한 신수가 함께 있어야 했다.

경호는 그러한 사실을 질문이라는 방법으로 완곡하게 성준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경호의 의도와 다르게 성준에게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

“경호. 정령은 그저 정령술사에게 힘을 빌려주는 신비한 존재지만 그렇다고 인간처럼 복잡한 사고를 하는 그런 존재는 아니잖아. 최근 연구에 따르면 개나 고양이보다 지적 수준이 높아야 정신공격을 당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니까.”

하아.

경호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정령이 개나 고양이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게 현실이니….’

지금 이 말을 운애가 들었다면 아마 노발대발하며 화를 냈을 게 분명했다.

평소에는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존재지만 화가 나면 그 어떤 존재보다 무서운 존재였으므로.

그때 갑자기 식당 문이 열렸다.

푸른 원피스를 입은 압도적 아름다움을 가진 여성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경호야.”

맑고 고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운애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