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용사의 골목식당-88화 (88/335)

#088화

-형님! 저 밥 먹으러 가도 되죠?

“어차피 내일 길드 하우스 완공식 하면서 볼 건데. 뭐하러 와.”

-에이! 자주 보면 좋죠. 밥 먹으러 갈게요.

“알다시피 요즘 장사도 안 해서 만들어 놓은 것도 없어.”

경호는 싫다는 티를 팍팍 내고 있었지만, 성원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냥 형님이랑 같이 밥이나 먹으려고 하는 건데요. 안 돼요?

“에휴. 그래. 내가 알아서 차려줄 테니까 와라.”

지숙도 흰둥이를 데리고 다현과 함께 데이트를 가고 없어 혼자 좀 쉬려고 했던 경호는 끈질긴 성원의 부탁에 두 손을 들었다.

-아, 그리고 손님 한 명 더 데리고 가도 되죠?

“어? 손님이랑 온다고? 그럼. 이쪽 말고 그냥 다른 곳으로 가. 장사 안 해서 딱히 낼 것도 없는데.”

-에이. 그냥 친한 사람이라 그냥 집밥처럼 해서 주면 됩니다. 그리고 이럴 때 아니면 이제 형님 가게에 북적거려서 가기도 힘들어요.

잠시 고민하던 경호도 친한 사람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그 손님 분은 뭐 좋아하는데?”

-집밥 스타일로 주세요. 원래 제가 그거에 꽂혀서 단골 된 거잖아요. 같이 가는 사람도 좋아할 거예요.

“그래. 알았다. 좀 이따 보자.”

며칠간 손님이 없어 푹 쉬었던 경호가 기지개를 쭉 켜며 허리에 앞치마를 둘렀다.

“그럼. 오랜만에 요리 좀 해볼까?”

한동안 장사를 하지 않고 있었다.

지하철과 지하수로.

그곳을 배경으로 연거푸 터진 마수 사건 때문에 세상이 난리가 났다.

지하철 사건이 터지고 제대로 조치 못 해 지하수로에서도 다시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며 국민 원성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 했기에 국가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던 위정자들의 목이 여럿 날아갔다.

그 후 헌터본부에서 대대적인 마수 소탕에 더불어 위험 시설물을 폐쇄했다.

이에 더해 안전이 확실하게 확보될 때까지 민간인의 위험지역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그동안 암묵적으로 왕래가 가능했기에 장사가 가능했던 행운식당은 한마디로 ‘개점휴업’의 상태였다.

“흐음. 집밥 스타일이라? 뭘 해주나.”

경호는 우선 냉장고를 열어봤다.

솜씨 좋은 지숙의 정갈한 반찬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통에 담겨있었다.

배추김치, 열무물김치, 깍두기 같은 김치류부터 시금치, 콩나물, 무생채 같은 나물류 같은 것들이 보였다.

“흐음. 뭔가 메인이 없긴 하네.”

두부도 있으니 된장찌개나 할까 고민하던 찰나.

“뭐야. 벌써 왔어?”

잠시 후 차량이 식당 앞에서 멈춰 섰다.

문이 열리고 성원이 환하게 웃으며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형님! 저 왔습니다!”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지 평소에도 텐션이 높았지만 오늘따라 그 정도가 더 심한 것 같았다.

“왔…. 어어?”

경호는 성원에게 아는 척을 하다 뒤따라 오는 이를 보며 놀란 얼굴을 했다.

분명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굉장히 낯익은 얼굴이었다.

아마도 성원이 나이를 먹고 조금 더 중후한 느낌이 든다면 딱 저럴 거 같은 모습이었다.

“설마? 같이 온다는 손님이.”

경호의 말에 성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뒤따라 들어온 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 형님. 여기 저랑 같이 온 사람이 바로 저의 친형입니다. 신화 바이오의 대표로 유명하죠.”

신화 그룹의 새로운 먹거리인 신화 바이오와 마도공학을 이끄는 리더.

경호도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방송과 성원을 통해 귀가 아플 정도로 많이 들어본 이였다.

“반갑습니다. 경호 씨. 성원이에게 많이 들었습니다. 부족한 녀석입니다. 많이 이뻐해 주십시오.”

흰둥이가 없어도 경호는 알 수 있었다.

100% 진심이었다.

순수한 미소와 진심 어린 눈빛, 애정이 섞인 목소리.

그 모든 것이 성원을 얼마나 아끼고 있는지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바로 알 수 있었다.

‘성원 저 녀석. 맨날 형 욕이나 하더니. 오늘 화해했나 보군.’

경호도 눈치가 빠르진 않았지만 그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술에 취해 형 이야기를 할 때면 늘 형은 잘못이 없는데 자신의 자격지심 때문에 사이가 멀어졌다며 자기 탓을 하던 성원이었기 때문이다.

경호도 성준을 보며 미소를 띠며 인사를 건넸다.

“부족하긴요. 동생분은 저에게 과분한 사람입니다. 그나저나 이 대표님을 모시기엔 부족한 식당인데. 큰일입니다.”

경호가 한숨을 푹 쉬었다.

나름 귀한 만남인데 된장찌개에 나물에 김치나 꺼내서 대접하기엔 조금 부족한 감이 있었다.

“아닙니다. 사실 성원이 운전해서 온 거라 저도 여기 올지 몰랐지만 그냥 편하게 평소 드시는 것에 밥이나 하나 더 차리시면 됩니다.”

“맞아요. 형님. 너무 신경 쓰지…. 아이쿠.”

경호가 눈치 없는 성원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성원이 엄살을 피며 옆구리를 문질렀다.

경호가 성원에게 낮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야. 딱 봐도 오늘 형님이랑 잘 지내보려고 한 거 아니야?”

“억! 형님. 그럴 어떻게?”

“야. 그럼, 어디 근사한 데 가서 고기나 썰 것이지. 왜 일루 왔어!”

“형님 소개해주고 싶어서 왔죠. 그리고…. 아. 하여간 그래서요.”

이곳을 찾은 가장 큰 이유는 사실 형과 화해할 수 있었던 이유가 경호였기 때문이었다.

성원은 옆에서 경호의 모습을 지켜보며 자기 자신을 반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이렇게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으이구. 내가 정말 못 산다.”

말이나 못 하면 밉지나 않지.

“우선 앉아 있어.”

“넵! 형님!”

성원이 경호의 눈치를 보며 서둘러 성준을 앉히고 자신도 자리에 앉았다.

경호가 성준을 보며 우선 양해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요리가 준비된 것이 아니라 조금 기다리셔야 할 거 같네요.”

“아이고. 아닙니다. 제 동생이 갑자기 찾아온걸요.”

“손님은 언제나 갑자기 찾아오는걸요. 그럼. 이만 요리하러 들어가 보겠습니다.”

주방에 들어온 경호는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기분이 좋았다.

‘이제 더는 술 먹고 형 이야기하며 주사를 부리진 않겠군.’

물론 앞으론 경호를 찬양하며 주사를 부리게 된다는 걸 이때는 알지 못했다.

“흐음. 뭘 하지?”

집밥 스타일?

밑반찬에 삼족우를 얇게 저며서 불고기 전골만 해도 충분히 훌륭한 식사가 될 수 있었다.

경호는 고개를 저었다.

“맛은 훌륭할지 모르지만 인상적이진 않아.”

그때 경호의 머릿속에 예전에 성원이 했던 이야기가 번뜩하고 떠올랐다.

술에 취해 잔뜩 혀가 꼬여 있었지만 분명 형에 대해 좋은 추억이라며 유일하게 이야기한 것이었다.

“좋아. 스피디하게 한번 만들어 볼까?”

경호는 이제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각성자였기에 당당하게 염력을 사용했다.

냉장고가 열리고 경호의 손짓에 백숙하기 위해 사놨던 손질된 닭이 담긴 봉투에서 다리 2개가 빠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뼈가 분리되어 쓰레기통에 들어가고 살은 넓게 펴져 넓은 그릇에 담겨 조리대 위에 올라왔다.

만약에 염력 특성의 각성자가 봤으면 미쳤다고 소리를 지를 장면이었다.

S급 각성자가 [염력] 특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하지 못할 일을 경호는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며 하고 있었다.

프라이팬이 달궈지자 계란을 깨 넣어서는 나무주걱으로 슥슥 휘저어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맛소금과 후추가 두둥실 떠서 그릇에 뿌려졌다.

한편 닭다리 살이 그릇 안에서 꿈틀거리며 양념에 재워졌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우유가 둥실 떠올라 그릇에 부어졌다.

“자아. 그럼. 기름을 올려볼까?”

커다란 웍에 기름을 채우고 경호는 불을 중간으로 켜서 올렸다.

그리고 우유에 담가 논 닭다리 살을 꺼내 튀김가루를 꼼꼼히 발랐다.

기름이 달궈지자 경호는 튀김가루가 묻은 닭다리 살을 기름 속으로 넣었다.

치르르르르륵.

고소한 냄새가 훅 올라왔다.

튀김 냄새는 언제나 옳지만 그중에서도 치킨을 튀길 때 나는 냄새는 정말 최고였다.

“흐음. 그럼, 소스를 만들어 볼까?”

경호는 프라이팬에서 스크램블 에그를 그릇에 덜어내고는 물엿, 케첩, 고추장 등을 넣어 섞고는 졸이기 시작했다.

달콤 상콤 매콤한 향이 주방 안을 가득 채웠다.

“좋아.”

마침 치킨도 노릇하게 튀겨져 군침이 도는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경호의 손짓에 잘 익은 치킨이 기름 속에서 튀어 올랐다.

공중에서 부르르 떨며 기름을 날린 치킨이 조려지고 있는 프라이팬 안으로 뛰어들었다.

몇 번 뒤적이니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양념치킨이 완성됐다.

양념치킨?

언제나 옳은, 진리의 요리임은 틀림없었지만 십수 년 만에 화해하고 같이 밥 먹기로 한 이들에게 반찬으로 내어주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요리이기도 했다.

물론 경호도 양념치킨을 그냥 반찬으로 내려 한 것은 아니었다.

경호는 밥솥에서 밥을 퍼 비빔밥용 대접에 담았다.

그리고 참기름을 아주 살짝 두르고 그 위에 스크램블 에그를 얹었다.

그리고 양념치킨을 한입 크기로 잘라 그 위에 놓았다.

경호도 사실 먹어본 적 없는, 성원에게 들어 만드는 방법만 알고 있었던 ‘치밥’이었다.

‘이게 맛있다고?’

성원의 말대로 완성은 했지만 경호 스스로도 괴상한 치밥 비주얼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냄새는 좋네.”

경호가 피식 웃으며 치밥을 쟁반에 담아 홀로 나갔다.

***

“인상이 좋아 보이더구나.”

성준의 말에 성원이 고개를 저었다.

“인상도 좋지만 인성이 더 좋은 분이야.”

“부럽다. 부러워. 그리고 참 고맙네. 정말 너의 그런 미소를 보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그런가?”

“요즘 하는 일도 잘 돼간다며?”

성준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성원에 대한 소식에 신경 쓰고 있었다.

사실 성원은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최근 진행되는 일이 잘 풀리는 것도 성준의 영향이 컸다.

“운이 좋았어. 그리고 아직 발표하지 않았지만 다현 누님도 우리 길드에 함께 하기로 했거든.”

비각성자에 헌터 세계와 동떨어진 삶을 사는 성준이지만 그런 그에게도 다현은 슈퍼스타였다.

“레인보우 식스의 ‘위치’가 신화길드로 들어오기로 했다고?”

“우리 형님이 힘 좀 썼지.”

“경호 씨가 힘을 썼다고? 그런다고 솔플로 유명한 그녀가 신화길드로 들어온다고?”

물론 그동안 성원을 비롯한 다른 이들과 친분이 쌓인 것도 한 이유였지만 그 모든 것의 시작은 바로 경호였다.

그때였다.

쟁반을 든 경호가 주방에서 나왔다.

“오래 기다리셨죠?”

“어? 형님. 벌써 다 하신 거예요?”

경호의 말에 성원이 깜짝 놀라 대답했다.

“내가 이래 봬도 각성자 아니겠냐. 칼질도 훨씬 빨라졌고 염력까지 쓰니까 정말 편해졌어.”

“아….”

자신의 부족한 모습도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호의 모습에 성원이 다시 한번 감동했다.

“자아. 그럼. 맛있게 드세요.”

경호가 치밥이 담긴 대접과 그에 잘 어울리는 깍두기, 열무 물김치를 식탁에 올렸다.

“형님. 잘 먹겠….”

성원이 경호를 보고 크게 외치다 대접에 담긴 치밥을 보곤 그대로 굳었다.

성준은 그런 성원을 보다 치밥을 보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이다. 너 어릴 적에 내가 자주 해줬던 건데. 성원아. 기억나니?”

성원이 성준의 물음에도 대답 없이 앞에 놓인 숟가락을 집어서는 한 숟갈 크게 떠서 입안 가득 넣고는 우적거리며 먹기 시작했다.

“뭐야? 너 배 많이 고팠구…. 어?”

주르륵.

성원의 눈에 가득 찬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넘쳤다.

“성원아. 왜 울어?”

“…아니야.”

성원이 눈물을 흘리며 다시 밥 한 숟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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