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화
의식의 세계.
현실에 존재하는 장소가 아니었다.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 어디쯤 존재하는 영혼만 들어갈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시공간의 개념이 뒤엉켜있고 물리적인 법칙도 현실과 다르게 작용하는 곳.
그런 이곳에도 절대법칙이 존재했다.
‘상상’과 ‘집중’, 그리고 ‘믿음’
푸른눈의 짝퉁 경호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경호를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인간 주제에 ‘의식의 세계’에서 그렇게 움직일 수 있다고? 말도 안 돼!
짝퉁은 스스로 상위 종족과 맞먹는 존재라고 지칭했다.
그리고 그 정도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의식의 세계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
의식의 세계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정신력이 필요했기에 평범한 인간이라면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기 때문이었다.
아니 평범한 인간은 의식의 세계로 들어올 수도 없었다.
하지만 경호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카르마 수치만 놓고 보면 상위 종족인 천족, 마족, 용족도 아득히 뛰어넘은 수준이었다.
“그래. 짝퉁. 여기서 나를 지우고 숙주와 기생충의 관계가 아닌 완전한 지배를 하려고 한 거였나?”
경호는 피식 웃고는 손을 쫙 펴서 들어서 짝퉁을 보며 서서히 쥐기 시작했다.
쩌저저정! 쩌저정!
새하얀 공간이 마치 유리처럼 깨지기 시작했다.
경호의 손에 힘이 들어갈수록 그 범위가 커지기 시작했다.
짝퉁을 감싸는 주변의 공간이 모두 깨져나가 그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였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뭐야! 뭐냐고!
쾅! 콰앙! 쾅!
짝퉁이 괴성을 지르며 깨져나간 주변을 주먹으로 때렸지만 결국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깨진 공간이 점점 크기를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안 돼! 멈춰! 이거 뭐야!
쾅! 쾅! 콰앙! 쾅! 쾅!
짝퉁의 발악은 더 심해졌지만, 경호는 멈추지 않고 더욱 손에 힘을 줬다.
뿌드득. 뿌득.
깨진 공간이 접혀 들어가며 짝퉁이 구겨졌다.
뼈 부러지고 살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결국에 공간 자체가 소멸했다.
공간압축.
심검을 이뤄야 할 수 있는 기적과 같은 힘의 발현이었다.
아무리 대단한 경호라도 현실이라면 불가능한 수준의 무위였지만 ‘상상’과 ‘집중’, 그리고 ‘믿음’만 있다면 거의 신과 같은 능력을 쓸 수 있는 이곳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이곳이라고 이런 힘을 아무렇게나 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서두르자.”
정령계에서는 안전이 보장된 상태에서 의식의 세계로 들어왔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현실과 완전하게 분리되어 있어 신체에 무슨 문제가 있어도 알 수 없기에 서둘러야 했다.
후우. 후우.
깊게 심호흡을 한 경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수련하기는 참 좋은 곳인데 말이야.”
의식의 세계는 의식을 잃어 무의식 상태가 되어야 빠져나갈 수 있는 곳이었다.
퍼억!
경호가 스스로 뒷목을 강하게 후려쳤다.
“제길!”
실패였다.
퍼억!
“아놔!”
역시나 실패.
오랜만에 하는 거라 그런지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빠지고 목이 움츠러들어서 기절에 실패하고 말았다.
눈을 질끈 감은 경호가 핫! 하고 짧게 기합을 외치며 손을 휘둘렀다.
빠악!
“아악!”
이번엔 제대로 터졌다.
경호의 눈에 흰자위가 떠오르며 그대로 쓰러졌다.
***
-아빵! 아빵!
골병이가 날갯짓을 하며 야단을 부렸다.
-골병아. 괜찮아. 괜찮아.
-주인님은 절대 이렇게 죽을 분이 아니십니다.
운애와 땅개가 골병이에게 그렇게 말을 하긴 했지만 애가 타긴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심장은 젤리덩이로 인해 멈춰진 상태였고 그 어떤 반응도 없었다.
심정지에 의식이 없고 반사도 없는 상태.
보통 그러한 상황을 우리는 ‘죽었다.’라고 표현했다.
-경호 님. 눈 좀 떠 보세요!
흰둥이도 계속해서 신력을 불어넣고 있었지만, 경호의 몸은 점점 차가워지기만 할 뿐이었다.
흰둥이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두 분의 정령력을 경호 님의 심장에 쏟아내 폭주하게 만드는 것은 어떨까요?
죽어가는, 아니 이미 죽은 것 같은 경호를 깨우기에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어려워 보였다.
흰둥이의 말에 운애와 땅개가 경호의 양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때.
“아! 뒷목!”
죽은 듯 쓰러져 있던 경호가 벌떡 일어나 뒷목을 부여잡고 소리를 질렀다.
-아악! 깜짝이야!
-아이고!
운애와 땅개도 놀라 손을 놓고 물러섰다.
-아빵! 아빵!
-경호 님. 깨어나셨군요.
정신을 차린 경호가 주변을 보니 어딘지 알 수 없는 숲속이었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이들이 보였다.
삐약! 삐약!
-괜차나?
“어. 당연…. 어?”
‘당연하지’를 외치려고 하는 순간 경호는 땅이 기울어진다고 느껴졌다.
“뭐, 뭐야?”
퍼억.
당연히 갑작스러운 지각변동으로 땅이 기울어진 것이 아닌 경호가 바닥에 쓰러진 것이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거기다 심장에서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다.
“허억! 헉! 허억!”
의식의 세계에서 영혼이 빠져나와 깨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심장은 멈춰있는 상태였기에 발생한 일이었다.
“뭐야. 흰둥아. 나 왜 이래?”
-경호 님. 혹시 아까 그 푸른색 젤리 같은 것이 뭔지 아십니까? 그것이 경호 님의 심장에 달라붙어….
“뭐? 아! 그렇구나!”
짝퉁!
그 푸른빛 젤리덩이!
흰둥이의 말에 경호는 자신의 내부를 찬찬히 관조하기 시작했다.
심장은 멈춘 지 오래였고 몸도 얼음처럼 차갑게 식어 엄청난 고통이 일었지만, 경호는 차분하게 집중했다.
LV10의 [간파] 특성은 관조에 큰 영향을 미쳤다.
거기다 이미 심장을 감싸고 있는 것의 정체를 알고 있기에 경호는 빠르고 상세하게 그 상태를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초진화를 했다고 하지만 고작 하급 마수였던 주제에 나를 어떻게 ‘의식의 세계’로 끌고 왔나 했더니 이렇게 했던 거였군.’
경호가 잡았던 푸른빛 젤리덩이가 심장을 몇 겹이나 감싼 채 굳어있었다.
완전히 심장이 멎은 상태.
젤리덩이를 분리해서 제거하면 끝나는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경호는 저 젤리덩이의 능력을 온전히 흡수하고 싶었다.
그것이 자신의 마력과 신력, 정령력의 기형적인 불균형 상태를 가장 빠르고 안전하게 고칠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를 좀 도와줘!”
제법 긴 싸움이 될 것 같았다.
***
콰앙! 콰앙! 쾅!
성원이 주먹에 전격을 실어 땅개가 만든 흙벽을 때려 부쉈다.
“누니이이이이이이임!”
그리고 쓰러져 있는 다현을 보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다.
“다현 누님이 쓰러졌다!”
“의료팀! 들것 들고 와!”
성원이 의료팀을 불렀다.
신화길드 유일의 힐러이자 의료팀장인 김세연이 팀원들과 함께 달려와 쓰러져 있는 다현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아!”
세연의 입에서 탄성이 나오자 성원의 눈이 커지며 다급하게 물었다.
“세연아. 어때?”
“마나코어가 텅텅 비었어요. 마나회로들도 여러 군데 찢어져 있고요. 싸울 때 엄청 괴로웠을 텐데. 어떻게 이 지경까지….”
“치료하면 괜찮은 거지?”
“시간은 걸리겠지만 회복하면 그전보다 더 강해지실 거예요. 마나코어나 마력회로는 원래 손상되었다가 회복하면 더 단단해지니까요.”
세연의 말에 성원은 혀를 내두르며 중얼거렸다.
“우리 누님 때문에 정말 SS나 EX 같은 새로운 등급의 제정이 시급할 거 같네.”
세연이 간단하게 응급조치를 하고는 들것에 다현을 싣고는 성원에게 물었다.
“길드장님. 그럼, 다현 님은 신화병원에 입원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내가 병원장님한테 전화해놓을 테니.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옆에서 좀 잘 봐줘. 길드엔 따로 안 나와도 되니까. 알았지?”
“알겠습니다.”
들것에 실려 멀어져가는 다현을 지켜보다 성원이 고개를 돌렸다.
“누님도 정말 대단도 하시지.”
성원은 그 작고 여린 체형에서 어찌 그런 대단한 힘이 나오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다현이 싸우던 모습을 떠올리며 멍한 표정을 짓던 성원은 정수의 물음에 정신을 차렸다.
“형님! 서둘러 마수처리팀부터 불러야 할 거 같은데요. 그것도 저희 길드 처리팀 뿐 아니라 다른 대형 길드에 협조요청을 돌려야 할 거 같은데요.”
머리가 잘린 마수의 사체는 커다란 빌딩보다 더 컸다.
멸망종 수준의 마수.
마수 처리에 수백 명이 달라붙어도 하루 이틀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정수의 말을 들은 성원은 고개를 저었다.
“우선 소유권은 어찌 될지 몰라도 우리가 최대한 침을 발라야 하니까 좀 더 고민해보자. 다른 길드나 정부가 끼어들면 불리해질 테니까.”
마수는 단순하게 사람들을 위험에서 구하기 위해서 잡는 것이 아니었다.
각성자들이 괜한 정의감을 내세워 목숨 걸고 헌터를 하는 것도 아니었고 길드도 단순한 자경단이 아니었다.
자본주의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존재는 머니머니해도 머니(money)였다.
마수 사냥으로 나오는 부산물들은 엄청난 액수의 머니가 된다.
그렇기에 마수 사냥에도 규정과 법칙이 존재했다.
게이트와 균열 같은 경우는 기본적으로 정부에서 소유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의 소유권을 판매하거나 소탕할 때 지원 여부에 따라서 그에 따른 지분을 나누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오늘 상황은 조금 달랐다.
균열의 조짐도 없이 마수가 튀어나왔고 군대나 본부 요원도, 그 어떤 다른 길드도 참여하지 않은 사냥이었다.
정확히 표현하면 다현 혼자서 사냥한 것이지만 어쨌든 공식적으로 신화길드가 처음부터 끝까지 처리한 것이 되었다.
“저기 엿들으려고 엿들은 거는 아닌데 말이죠.”
자신이 만든 완드의 위력을 보기 위해 왔던 솔딘은 우연히 둘의 대화를 듣게 됐고 슬쩍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 그…. 부족장님. 맞죠? 저기 누님의 완드를 만드셨다는 바로 그분.”
“맞습니다. 여기도 제가 만든 녀석이 잘 작동하나 보려고 온 것이고요. 그런데 우연히 들리는 이야기에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끼어들었습니다.”
“아. 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러시죠?”
“마수처리에 대해 여쭙고 싶어서요.”
“보통 길드 자체 처리팀만 이용하면 되는데. 저 마수의 크기가 너무 커서 말이죠. 오래 놔두면 버리는 부분이 더 많아지기도 하고요.”
“절반. 어떻습니까?”
솔딘의 뜬금없는 소리에 성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절반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제가 저희 부족원들 모두 끌고 올 테니 생각한 금액의 절반만 받고 도와드리겠습니다.”
“네엣? 드워프가 마수 해체도 잘하나요? 저는 전혀 몰랐는데요?”
모르는 게 당연했다.
드워프는 마수 해체를 잘못하는 게 맞으니까.
하지만 정령계에서 강철뿔양과 뿔돼지, 삼족우 따위의 씨를 말리며 수도 없이 마수를 사냥하며 해체하다 보니 어느새 검은 망치 부족원들 모두 마수 해체술의 달인이 되어있었다.
솔딘이 거대한 마수 사체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손가락 2개를 폈다.
“이틀이면 충분합니다. 어때요?”